2015년 10월, 프란치스코 교황은 미사 집전 직전 베드로 광장에 모인 신자들 앞에서 성직자들의 아동 성추문 사건에 대해 사과한다. 2002년 보스턴 글로브 탐사보도팀 스포트라이트의 성추문 기사가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든 지 10여 년 만에 침묵을 깬 것이다.

'실화를 기반으로 만들어졌다'며 시작하는 영화 <스포트라이트>는 기묘하게 끈질기다. 그리고 '진실의 추구'라는 언론의 당연한 역할에 대한 승리의 기록을 지켜보면서 차라리 영화적인 허구로 끝났어야 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교황청이 10여 년이 지나서야 '간신히' 공식 인정한 사건을, 끈질기게 파헤친 언론인들의 '승리담'이라니! 이게 실화라는 것을 믿고 싶지 않았다.

 영화 <스포트라이트> 공식 포스터

영화 <스포트라이트> 공식 포스터 ⓒ (주)팝엔터테인먼트


언제부턴가 우리에게 잊혀진 '진짜 언론'의 모습

이 영화는 보스턴 글로브라는 신문사 기자들이 주인공이다. 하지만 영화에는 세상이 온 힘을 다해 숨기고 싶어 하는 진실을 밝혀내기 위해 용기를 낸 수많은 '외부인'들이 등장한다. 공교롭게도 그들은 그들이 어떤 직업을 갖고, 어떻게 살아가는 지와는 관계없이, 모두 세상으로부터 '괴짜' 혹은 '피해 망상증' 환자로 취급당하면서 살아가고 있었다. (정말 신기하게, 누구도 그들에 대해 좋은 이야기를 하는 사람은 없었다.) 그들의 반대편에서 진실을 감추려는 자들이 사회로부터 인정받는 '좋은 사람'으로 안정된 삶을 유지하는 동안 말이다.

언제부터인가 진실이 중요하지 않은 세상을 살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어쩌면 우리가 속한 '공동체'가 추구하는 가치에 동참하는 사람과 동참할 수 없는 사람의 구분만이 존재하는 것은 아닐까? 하지만 공동체의 가치에는 구성원 개개인의 의사와는 무관한 결정들이 포함될 수 있으며, 개인의 가치와 대립하는 경우 발생하는 갈등을 다루는 데에는 인색하다.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야지.' 과연 절을 떠난다고 갈등이 해결되는 것일까? 이런 갈등의 처리를 위해 중요한 기준이 될 수 있는 것이 '진실'인데, 언제부터인가 세상은 누구의 편인가만 묻고 있다.

달콤한 '은폐'의 유혹, 떨쳐낼 수 있을까

 영화 <스포트라이트> 공식 포스터

영화 <스포트라이트> 공식 포스터 ⓒ (주)팝엔터테인먼트

여기서 <스포트라이트>의 질문이 등장한다. 만약 공동체가 숨기고자 하는 것이 '진실'이며 그것에 동참하는 자에게 주어지는 '안정감'과 '사회적 인정'이 너무도 달콤하다면, 당신은 어디에 서 있을 것인가? 진실의 폭로는 오래된 친구와의 우정을 잃는 것을 의미하기도 하고, 사랑하는 사람에게 상처 주는 것이기도 하며, 다수의 대중에게 무모한 험담을 들어야 할 수도 있다. 영화는 '내부자들'의 이너서클을 벗어나서 느낄 수밖에 없는 '불안'을 선택할 용기가 있는지 묻는다.

스포트라이트 팀이 파헤치는 사건을 대하는 보스턴이라는 지역 공동체의 대응은 우리에게도 꽤 익숙한 장면이다. 진실을 이야기하는 자들의 작은 목소리는 언론에서도 외면받기 일쑤였으며, 기자들은 진실을 알리고자 했던 자들의 투서가 존재했었는지조차 잊어버렸다. 힘없는 약자들의 용기는 그렇게 쓰레기통에서 폐기되곤 했다. 그게 현실이었다. 어쩌면, 그것이 내가 사는 지금의 대한민국인지도 모르겠기에, 스포트라이트 팀의 승리가 여전히 이질적이다. 승리의 기억도 진실에 대한 추구도, 지금의 우리와는 너무도 거리가 멀어 보인다. 게다가 우리는 사회의 수많은 '배신자'들을 외면하는데 이미 익숙해져 있다. 나 자신도 '낙인이 찍혀서는 안 된다'는 생각만 하고 있었던 것은 아닌지 부끄러워졌다.

스포트라이트 팀원들은 공동체가 쳐 놓은 경계를 벗어나 '진실'에만 끈질기게 매달렸고, 결국은 세상 밖으로 꺼내어 놓는다. 우리가 '언론'에 기대하는 모습 그대로다. 하지만 그들의 폭로 이후에도 교황청은 새로운 교황이 임명될 때까지 십여 년 동안 아무런 대응을 하지 않음으로써 외면해왔다. 사회 공동체의 암묵적인 동의가 갖는 힘은 세다. 어쩌면 개인의 저항으로는 결코 이겨낼 수가 없을지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외부자에 대한 차가운 시선을 이겨내는 사람들의 '인간에 대한 염치'와 부끄러움 덕분에 세상이 아직은 살 만한 곳으로 남아있는 것은 아닐까? 그러니 외부인들을 외면하지도, 밀어내지도, 외롭게 하지도 말자. 화이팅!

스포트라이트 오늘날의 영화읽기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