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노무 감사합니다."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감사하다는 말을 담은 문자를 빠르게 전송하려는 순간 오타를 내고 만 것이다. 두 자판 사이의 간격은 1센티도 채 되지 않지만 '너무'를 '노무'로 잘못 쓰는 순간 그로 인한 파괴력은 상상 이상이다. 왼손 검지를 조금만 뻗어 'ㅓ' 대신 'ㅗ'를 누르는 순간 '일베충'이 된다.

서둘러 액정을 때리던 손가락을 잠시 거두고 나는 처음부터 꾹꾹 눌러 다시 문자를 보냈다. 문자를 보내고 문득 억울한 생각이 들었다. 이제 '노무'라는 말도 영영 못쓰게 되는 걸까.

두부와 절벽은 금지어?

 류준열 배우가 SNS에 올린 일베 논란 게시글

류준열 배우가 SNS에 올린 일베 논란 게시글 ⓒ 류준열 인스타그램


<응답하라 1988>에서 덕선은 엄마의 콩나물 심부름에 집을 나섰다가 콘서트장까지 가게 된다. 콩나물과 두부는 흔한 심부름 품목으로 자주 쓰는 단어다. 류준열은 사진과 함께 '엄마 두부 심부름 가는 중'이라며 개인 SNS에 올렸다.

이번에 논란이 된 류준열 배우의 '두부(豆腐)심부름'이 이른바 '두부(頭部)'로 일베에서 즐겨 사용된다는 사실을 안 사람은 많지 않았을 것이다. 가장 아이러니한 점은 일베를 이용하지 않는 사람은 정작 일베에서 어떤 용어가 즐겨 쓰이는지 알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야말로 광의의 추측을 해야지만 절벽과 두부를 연결시킬 수 있다. 일베를 해야만 일베를 피할 수 있다니 형용모순이다.

이처럼 일베를 하지 않는 사람들이 자기도 모른 채 일베용어를 사용하는 행태를 막기 위해 일베용어사전까지 등장했지만 인터넷 상에 자신이 쓰고 싶은 글을 쓸 때마다 일베용어사전에 검색해야 하는 과정은 여간 불편한 일이 아니다(심지어 일베용어사전에는 두부(豆腐)도 두부(頭部)도 등장하지 않는다. 설사 일베를 의식해서 사전을 찾는다 할지라도 두부를 찾을 수 없고 단어 사용을 피할 수도 없다!). 또한 늘 머릿속이 일베에 대한 생각으로 가득 차 있지 않은 다음에야 그렇게까지 주도면밀하게 할 수도 없는 일이다.

연예인들이 무심결에 내뱉는 단어 중에 일베용어가 몇 번 등장했고 그 과정에서 해당 연예인의 사회적 평판이나 여론이 악화돼 되돌릴 수 없는 지경에 처했다. 그러자 어느 매체에서는 연예인이 조심해서 사용해야 할 일베용어를 따로 정리해서 기사화했다. 기사를 읽고 용어 사용을 조심하라는 의미다. 하지만 '일베용어'를 그저 피하는 것만으로 괜찮을까. 기사에는 민주화, 산업화, 홍어, 앙망, 알보칠과 같은 충분히 다른 의미로 사용될 수 있는 단어도 포함됐다.

당신은 알고 있었는가. 특수문자 ↙ 또한 일베용어로 분류될 수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 는 남서쪽 방향을 가리킨다는 의미에서 '전라도'의 은어로 사용된다고 한다. 이쯤 되면 어떤 단어가 일베용어이고, 일상적인 단어를 어느 정도 제한해야 하는지 분간하기 어려워진다.

류준열 배우의 일베 논란은 조금씩 사그라지고 있지만, 이제 자연스럽게 두부나 절벽 같은 단어를 두고 일베를 연상하는 사람은 많아졌다. 어쩌면 그 단어를 앞으로도 쉽게 쓰기 꺼릴지 모른다. 그것이 단지 일베에서 자주 사용되는 단어라는 이유만으로, 두부와 절벽을 비롯해 홍어와 앙망과 같은 단어를 일베에 빼앗겨버린 것이다.

혐오를 목적으로 사용되고 있는 특수한 일베의 은어가 아니면 어떤 단어도 이런 식으로 취급받아서는 안 된다. 또한 이는 역으로 일베를 의식하고 있다는 증거가 되기도 한다. 무엇보다 나는 계속 두부와 절벽과 같은 단어를 마음 편히 사용하고 싶다.

'일베충'이면 신상 털어도 되나?

 일베 캡처

일베 캡처 ⓒ 일베 갈무리


더 우려스러운 지점은 류준열이 일베를 하고 있다는 '의심'이 간다는 이유만으로 인터넷상에서 그의 이메일과 같은 신상 정보가 털렸다는 것이다. 문제의 핵심은 해당 연예인이 일베를 하느냐 하지 않느냐가 아니다.

그가 연예인이고 설사 일베 이용자라고 할지라도 그것이 곧 신상을 까발려도 된다는 이유가 되지 않는다. 각 개인은 자신의 개인정보를 지킬 자유가 있고 그것이 인권이다. 일베 이용자든 아니든 마찬가지다.

당신이 사용하는 언어가 일베용어일수도 있다. 혹은 일베에서 쓰는 단어와 유사한 단어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것이 곧 당신의 신상이 인터넷에 까발려져도 괜찮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그것이 우리가 지키려는 민주주의가 아닌가.

류준열 일베 인스타그램 두부 일베논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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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부터 오마이뉴스에서 근무하고 있습니다. 팟캐스트 '말하는 몸'을 만들고, 동명의 책을 함께 썼어요. 제보는 이메일 (alreadyblues@gmail.com)로 주시면 끝까지 읽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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