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의하는 스포트라이트 팀. 이들은 공범이 되는 대신, 언론 본연의 역할을 다하기로 한다.

회의하는 스포트라이트 팀. 이들은 공범이 되는 대신, 언론 본연의 역할을 다하기로 한다. ⓒ (주)팝엔터테인먼트


언론인은 영화계 단골손님이다. 역할을 따지자면 악역. 펜을 무기 삼아 온갖 권력비리의 첨병이 된다. 지난해 <내부자들>이 그랬고, <돌연변이>가 그랬다. 특히 <내부자들>의 이강희 주필은 뿌리 깊은 권력과의 유착관계의 표본을 보여준다. 권력과 독립해 사회의 자정기능을 해야 할 언론은 없다. 되레 권력과 자웅동체처럼 하나가 돼 공생하는 저널리즘이 있을 뿐이다.

영화가 사회적 공기를 담는다면 카메라에는 사회적 인식이 배어 있다. 언론인에 대한 우리 사회 인식은 참담하다. 사건이 터질 때마다 진짜 범인만큼 돌팔매질 당하는 것이 언론이다. 사건을 대하는 관점, 방식 그리고 전달 방법에 문제가 있는 언론이라면 그들 역시 '악질의 공범'이기 때문이다.

한국 영화가 '범인과 공범이 된 지금의 언론'을 비추는 동안. 할리우드는 잠시 시계를 거꾸로 돌렸다. 9.11 테러로 혼란에 빠진 2001년 미국. 더 이상의 비극은 없길 바라는 미국인들에게 비보의 뉴스가 전달된다. '천주교 사제들의 충격적인 아동 성추행 스캔들' <스포트라이트>은 이 사건을 추적한 <보스턴 글로브> 기자들의 삶을 추적한 영화다.

"메모해도 될까요?"

 <보스턴 글로브>의 탐사보도팀 '스포트라이트'의 기자들은 타협하지 않는다.

<보스턴 글로브>의 탐사보도팀 '스포트라이트'의 기자들은 타협하지 않는다. ⓒ (주)팝엔터테인먼트


<보스턴 글로브> 소속의 '스포트라이트' 팀은 5명의 기자로 구성되어있다. 단기적 이슈를 쫓기보다는 규모가 큰 사건을 추적하는 탐사보도팀이다. 그렇기에 취재과정은 항상 고되다. 거절당하기 일쑤다. 하지만 그들은 타협하지 않는다. 철저한 직업윤리를 통해 진실에 한 다가가려는 발걸음을 멈추지 않는다.

앉아서 아직 발생하지도 않은 사건에 대해 논평하는 논설주간도, 권력에 타협해 정보를 얻어내려는 일선기자도 존재하지 않는다. 그저 노트를 쥐고 그것을 놓지 않을 뿐이다. 사건에 대해 말하기 꺼리는 취재원에게 스포트라이트 팀이 끈질기게 묻는다. "메모해도 될까요?" 진실한 눈동자와 함께. 무겁게 닫혀있던 입이 열린다. 펜이 총보다 진짜 무서운 이유다.

집단 망각과의 투쟁

 취재하는 스포트라이트 팀. 이들은 고통을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 시스템 전체의 문제로 확장한다.

취재하는 스포트라이트 팀. 이들은 고통을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 시스템 전체의 문제로 확장한다. ⓒ (주)팝엔터테인먼트


끈질긴 직업윤리를 통해 스포트라이트 팀은 취재를 계속해 의혹을 점차 구체화해간다. 생각보다 많은 수의 사제들이 사건에 연류 되어 있었고, 피해자들은 생각보다 가까이 존재했다. 내 이웃 가까이에 이었던 성범죄자, 내 고등학교 동기가 그 범죄의 피해자인식이다. 그리고 가톨릭 교단은 수십 년간 지속된 성범죄를 조직적으로 감싸주고 있었다.

감정의 분노가 극에 달할 수 있는 순간이지만 스포트라이트 여기서 폭발하지 않는다. 한 걸음 더 나아간다. 이 문제를 개개인의 아픔과 도착의 문제로 치부해 감정에 호소하는 것을 넘어. 성범죄를 방조하던 가톨릭 조직을, 이를 수십 년간 망각하려 했던 보스턴 시 전체를 꼬집는다. 그리고 말한다. 조직적인 성범죄보다 악질인 건 그것을 망각하려 했던 집단의식이라고. 껄끄러워 감추고 잊으려 했던 그들 또한 '악질의 공범'이라는 사실을 말이다.

진실의 힘은 강하다

스포트라이트 팀은 결국 사건을 기사화하는 데 성공한다. 신성해 누구도 건들지 않았던 천주교를, 침묵해 발견하기 힘들었던 망각의 역사를 수면으로 드러낸다. 특이한 점은 영화가 단 한 번도 성폭행 장면을 묘사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러한 장면을 통해 영화에 대한 이입을 극대화할 수도 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하지만 선정적 장면 없이도 영화를 보는 내내 누구보다 피해자들에게 동감할 수 있었다. 마치 잘 쓰인 정직한 기사를 읽는 것처럼 말이다. 사건 현장을 다시 목격할 수 없음에도, 선정적인 묘사가 없음에도 정직한 기사와 함께 누구든지 진실에 도달할 수 있다. 저널리즘의 기능이자 기사의 힘이다.

종교 부패, 참된 언론관도 있지만 '망각의 범죄' 역시 간과해서 안 된다. 다른 부분은 문제 삼아 수정할 수 있지만, 망각의 범죄는 공론화해 잘잘못을 따지기에 모호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영화는 의도적 '기억 지움'에 대해 그 어떠한 범죄보다 막중한 책임을 묻는다. 설사 그것이 현재의 평화와 안정을 위해서라도 말이다. 기억 없이, 과거 없이 현재도 그리고 미래도 존재할 수 없다.

2016년은 대한민국은 어떠한가? 어쩜 우린 지금 걸림돌이 된다고 너무 많은 과거의 아픔을 의도적으로 잊고 살고 있는지 모르겠다. 더는 피해자들이 잊히지 않길 바라며.

영화 <스포트라이트> 포스터  <스포트라이트>는 망각과 싸우는 영화이다.

▲ 영화 <스포트라이트> 포스터 <스포트라이트>는 망각과 싸우는 영화이다. ⓒ (주)팝엔터테인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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