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에는 오랜 논란거리가 있는데, 그중 하나가 바로 감독의 역할이다. 야구는 감독이 공 하나 단위로 개입할 수 있는 경기다. 포지션이 정해지면 일단 모든 경기를 선수들이 풀어야 하는 축구나 농구 등의 스포츠보다 감독이 개입할 수 있는 여지가 풍부하다. 그런데도 감독이 승부에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하는지를 물으면, 대답하기가 쉽지 않다.

빅볼(Big ball)과 스몰볼(Small ball)이라는 말이 있다. 빅볼은 메이저리그에서 유행하는 방식으로 선수들이 주도하는 경기를 뜻하며 스몰볼은 번트나 도루 등 감독의 작전 지시가 잦은 경기를 뜻한다. 이는 2006년 WBC에서 우승한 일본 국가대표 감독 왕정치가 미국 야구와 일본야구를 구분하면서 나온 말인데, 한국 야구는 일본과 미국 야구 중간 즈음에 있다고 평가받고 있다. 원래 인문사회과학에서 '개념'의 역할은 보이지 않았던 현상을 일목요연하게 드러내는 것이다.

빅볼과 스몰볼은 경기장에서 감독개입을 평가하는 단어로 의미 있는 분석 틀을 제공하지만, 감독과 대비되는 대상을 '선수'로 국한 시킨다. 이는 혼선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데, 왜냐하면 감독의 역할은 단순히 경기장 안에만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감독의 진정한 상대는 선수보다 '프런트'라 부르는 야구 구단의 운영자들이다. 빅볼과 스몰볼로 미국야구와 일본야구를 구분하면, 프런트의 존재가 가려지게 된다. 그래서 이 단어는 국가 단위의 야구를 비교하는데 적절치 않다.

<감독이란 무엇인가> 명장 김성근과 김인식이 한국에서 감독하기란 무엇인지를 진지하게 논의한 책 <김성근, 김인식의 감독이란 무엇인가>의 표지이다. 야구에서 감독의 역할은 늘 뜨거운 논쟁거리였다.

▲ <감독이란 무엇인가> 명장 김성근과 김인식이 한국에서 감독하기란 무엇인지를 진지하게 논의한 책 <김성근, 김인식의 감독이란 무엇인가>의 표지이다. 야구에서 감독의 역할은 늘 뜨거운 논쟁거리였다. ⓒ 새잎

팀의 리더는 누구일까? 일본의 경우 감독인 경우가 많다. 미국의 경우 감독은 구단에 분화된 수많은 전문직종, 즉 경기장 안에서 발생하는 일을 통제하는 사람일 뿐이다. 팀의 리더는 구단주다. 리더의 차이가 바로 두 나라 야구의 특징을 드러낸다. 그런데 많은 사람은 메이저리그가 프런트 중심의 야구로 진화하였기 때문에, 감독 중심의 야구보다 프런트 중심의 야구가 더욱 진화한 것으로 생각한다.

하지만 이 같은 견해는 신중할 필요가 있다. 프런트 중심의 야구는 메이저리그가 진화한 결론이다. 메이저리그의 방식이 다른 나라, 문화권에서도 동등하게 적용된다고 볼 수 없다. 직접적인 비교가 될 수는 없지만, 유럽 축구와 같이 규모가 큰 스포츠 시장에서도 감독이 팀의 리더 역할을 하며 구단을 이끌어가는 경우가 있다. 야구 또한 유럽 축구와 같이 감독 중심의 운영체제로 진화할 가능성은 없었을까?

현대 야구는 선수들이 가진 가치를 정확하게 측정하기 위해 고도의 통계를 발전시키고 있다. 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선수의 역할에 대한 것이다. 선수 이외의 요소가 경기에 미치는 영향에 관한 연구는 깊게 발전하지 않았다. 그래서 감독이 승리에 이바지하는 정도를 정확하게 측정할 수 있는 통계지표는 없다. 저명한 미국의 야구 평론가 레너드 코페드는 <야구란 무엇인가?>에서 감독의 역할에 대한 질문을 던지며, 다음과 같이 답한다. 그의 대답은 '알 수 없다'는 것이다. 이게 정확한 답이다. 우리는 감독의 역할에 대한 정답을 갖고 있지 않다. 그렇기에 다양한 해석이 가능할 뿐이다.

메이저리그도 원래는 감독 야구였다

<야구란 무엇인가> (레너드 코페트 지음 / 이종남 옮김 / 황금가지 펴냄 / 2009.02 / 1만8000원)

▲ <야구란 무엇인가> (레너드 코페트 지음 / 이종남 옮김 / 황금가지 펴냄 / 2009.02 / 1만8000원) ⓒ 황금가지

메이저리그에서도 원래 1970년대까지 한국과 일본과 마찬가지로 감독이 야구단을 움직이는 가장 중심적인 존재였다. 일부 소수의 스타 선수들을 제외하면 감독은 선수들보다 연봉도 많이 받았고, 선수들이 자기 뜻대로 움직이지 않을 때는 마이너리그로 보내거나 트레이드를 시키는 등의 권한을 갖고 있었다.

하지만 벤치의 이 같은 풍경은 1970년대 후반에 시행된 FA 제도 이후 바뀐다. 선수들의 몸값이 천문학적으로 뛰기 시작하면서 권력관계가 역전되기 시작한 것이다. 더는 선수들은 감독을 자신의 선수생명을 쥐고 있는 보스로 여기지 않기 시작했다. 구단 또한 연봉이 수백억에 이르는 선수들이 자신의 가치를 증명하길 원했고, 감독의 스타일에 의해 선수들의 가치에 혼선이 생기는 것을 거부했다.

FA 제도가 시행되기 이전에 메이저리그의 선수들의 몸값은 확장된 시장 규모보다 억눌려 있었다고 볼 수 있다. 이 모순이 급속도로 해소되면서, 메이저리그는 새로운 운영 시스템으로 옷을 갈아입었다. 이 같은 메이저리그의 시스템 진화의 과정에서 감독 중심의 야구는 프런트 중심의 야구와 치열한 체제 경쟁 끝에 자연 도태되었다고 보기 어렵다. 메이저리그에서 선수들의 몸값이 야구 시장 규모의 확장과 발맞춰 차분하게 성장했다면, 그리고 감독 중심의 야구가 이 속도에 맞춰 함께 진화하여 나갔다면, 지금 메이저리그의 야구단이 감독 중심의 야구를 유지할 수 있었을까?

이에 대해 '모른다'로 대답하는 것이 가장 적절할 것이다. 프런트 중심의 야구가 우월한 야구 체제일 수도 있고, 시장 규모에 따라 감독 중심의 야구와 프런트 중심의 야구가 다른 효율을 가질 수도 있으며, 문화권에 따라서 효율이 다를 가능성도 있으며, 감독 중심의 야구가 더욱 뛰어날 수도 있다. 역사에 가정은 없다지만, 2016년 현대 우리에게 위의 질문은 중요하다. 왜냐하면, 근래의 한국 야구에서 감독 중심의 야구와 프런트 중심의 야구가 격렬히 체제 경쟁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감독 야구와 프런트 야구의 체제경쟁

그동안 한국에서 성공한 팀은 감독이 중심이 되어 선수단을 운영한 경우가 많았다. 오랫동안 야구계를 호령했던 해태 타이거즈의 김응용 감독은 삼성라이온즈로 옮긴 이후 또다시 팀을 우승으로 이끌면서 야구는 감독이 하는 것이라고 호령하듯 했다. 김인식, 조범현, 김경문 등 명장으로 평가받은 많은 감독 또한 팀의 리더로서 성공적인 리그를 보내왔다.

이 같은 감독 중심의 야구는 김성근이라는 거장을 낳았다. 그는 스카우트, 선수 육성, 재활 및 부상관리, 작전 구상 등 야구와 관련된 거의 모든 영역의 최고 전문가다. 밥 먹는 것보다 야구를 더 좋아할지도 모른다. 지금까지 하위권 팀의 성적을 리그 최상위 수준으로 끌어올렸으며, 2006년부터 맡은 SK 와이번스를 3번이나 우승시키며 야신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감독 중심 야구의 대표주자는 두말할 나위 없이 김성근이라 할 수 있다. 이처럼 지금까지 한국야구는 적지 않은 스타감독을 낳았다. 하지만 프런트의 역할이 감독보다 주목받은 경우는 많지 않았다.

넥센 이장석 대표와 염경엽 감독 지난 2014년 10월 31일 서울 잠실야구장에서 열린 프로야구 플레이오프 4차전에서 LG에 승리한 넥센 염경엽 감독이 이장석 대표와 악수하고 있다.

▲ 넥센 이장석 대표와 염경엽 감독 지난 2014년 10월 31일 서울 잠실야구장에서 열린 프로야구 플레이오프 4차전에서 LG에 승리한 넥센 염경엽 감독이 이장석 대표와 악수하고 있다. ⓒ 연합뉴스


메이저리그 방식의 프런트 야구가 한국에서도 가능하다는 것은 최초로 입증된 것은 넥센 히어로즈의 성공에서부터였다. 넥센은 그야말로 야구계의 이단아다. 넥센과 함께 한국 프로야구는 많은 것이 바뀌었다. 넥센은 한국에서 불가능하다고 생각된 여러 편견을 깨고 메이저리그 방식을 전면적으로 활용했다. 결과적으로 그들은 비즈니스에서도, 성적에서도 성공을 거뒀다. 넥센 이후 한국 야구는 두 가지 질적으로 다른 변화를 겪고 있다. 하나는 프런트 중심의 구단 운영에 성공하였고, 야구가 훌륭한 사업 모델이 될 수 있다는 것이 증명된 것이다.

두 번째는 트레이닝 혁명을 통해 선수들, 특히 타자들의 기량을 비약적으로 향상하는데 성공했다. 선구자로 이지풍 트레이너가 언급되는데, 그의 웨이트 트레이닝 방식은 전 구단으로 확장되어 최근 한국의 타자들은 유행처럼 근육을 만들고 있다. 넥센이 이끈 이 변화들은 구단의 운영 시스템을 근본적으로 다시 생각하게 하였다. 프로야구의 판도는 크게 술렁이고 있다. 최근의 타고투저 현상은 한국 타자들의 진화가 투수들의 진화를 크게 앞지르면서 생겨났을 가능성이 크다. 내년 공인구 통일 이후에야 보다 확실하게 증명되겠지만, 최근 메이저리그에 연달아 타자들이 진출하는 모습만 봐도 타자를 중심으로 한 우리의 야구가 크게 진화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넥센의 성공으로 지금 한국 야구는 격변기에 있다.

다양성이 야구 생태계의 진화를 부른다

훈련중인 김성근 감독 김성근은 감독 야구의 거장이다. 많은 훈련량을 바탕으로 한 선수 육성에 능하다. 지옥의 펑고는 그의 트레이드 마크다.

▲ 훈련중인 김성근 감독 김성근은 감독 야구의 거장이다. 많은 훈련량을 바탕으로 한 선수 육성에 능하다. 지옥의 펑고는 그의 트레이드 마크다. ⓒ 한화 이글스


감독중심의 야구가 오래된 한국야구 방식이라면, 프런트중심의 야구는 새롭게 주목받고 있는 흐름이라 할 수 있다. 한화와 넥센은 이 운영 방식의 양극단에 있는데, 비록 리그 최강 팀이 아니지만, 그 극단적인 운영방식의 차이에는 주목할 필요가 있다. 물론 이 두 팀의 개성만이 강하다는 것을 말하는 건 아니다. 삼성, 엔씨, 두산 등 강호들은 나름의 방식으로 팀 색깔을 잡아나가고 있으며, 하위권에 배치된 팀들도 경쟁에서 도태되지 않기 위해 경쟁적으로 검증된 야구단 운영 방식을 빌리고 있다.

물론 극단적인 실험이나 영향력을 많이 행사한 실험의 결과가 꼭 팀을 우승으로 이끄는 것은 아니다. 그런데도 한화와 넥센의 실험은 한국 야구의 최전선을 보여주며, 상반된 두 타입의 체제 경쟁이 우리 야구의 정체성을 형성하는 데 중요한 이바지를 하리라 확신한다.

장인정신의 김성근, 타고난 비즈니스맨 이장석, 안정적인 운영의 대가 류중일, 신생팀을 짧은 시간에 우승후보로 만든 NC와 김경문, 전통의 강호 두산 등 실험적 운영과 안정적 운영이 조화를 이루고 있는 지금의 한국 프로야구계는 어느덧 '다양성'을 확보하여 진화하고 있다. 한 사람의 야구팬으로서, 건강한 경쟁을 주고받으며 성장하는 야구계를 바라보면 기쁘지 아니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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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야구란 무엇인가>(레너드 코페트 지음 / 이종남 옮김 / 황금가지 펴냄 / 2009.02 / 1만8000원)
<김성근, 김인식의 감독이란 무엇인가>(김성근·김인식·손윤·유효상 지음 / 새잎 펴냄 / 2012.10 / 2만5000원)
야구 감독 김성근 이장석 한화이글스 넥센히어로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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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와 문화를 통한 사회운동에 관심이 많습니다. 글로써 많은 교류를 하고 싶습니다.

2014년 5월 공채 7기로 입사하여 편집부(2014.8), 오마이스타(2015.10), 기동팀(2018.1)을 거쳐 정치부 국회팀(2018.7)에 왔습니다. 정치적으로 공연을 읽고, 문화적으로 사회를 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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