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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창군청을 출발하는 도보순례단 눈발이 날리고 바람이 몰아치는 아침, 고창군청을 출발하여 정읍을 향하고 있다.
▲ 고창군청을 출발하는 도보순례단 눈발이 날리고 바람이 몰아치는 아침, 고창군청을 출발하여 정읍을 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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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 폭력 책임자 처벌과 민주주의 회복, 백남기 농민 살려내라 도보순례 5일차인 17일, 녹두장군 전봉준의 고향 전라북도 고창을 거쳐 갑오농민전쟁의 불길이 타오른 정읍에 들어섰다.

2015년 11월 14일, 백남기 농민이 경찰의 물대포에 맞아 쓰러지기 전에 참가한 전국농민대회에서는 쌀값 폭락 대책 마련을 요구하며 밥쌀용 쌀 수입 중단을 요구했다. 백남기 농민이 쓰러지는 순간까지 지키고자 아글타글 애태웠던 농업이 위기에 처해 있다.

그 중에서도 쌀이 그렇다. 국민의 생명이자 주권인 쌀. 밥이 보약이라고 떠들지만 정작 정부는 쌀 농사를 버리고 있는 건 아닌지 의심마저 든다. 고창에서 정읍으로, 정읍에서 다시 김제로 넘어가는 길옆으로 이제 곧 풍년을 기원하며 모내기를 맞이할 논들이 쓸쓸하게 펼쳐져 있다.

이번 도보순례 기간에 만난 쌀 농사를 짓는 농민들의 목소리를 담았다.

"발 뻗고 엉엉 울었어"... 농민은 봄이 두렵다

두 노인의 맞잡은 손  힘에 겨워도 함께 걷자! 함께 가자! 이 길을. 백남기 농민이 즐겨 불렀다던 노래의 가사가 두 노인의 맞잡은 손을 통해 들리는 듯하다.
▲ 두 노인의 맞잡은 손 힘에 겨워도 함께 걷자! 함께 가자! 이 길을. 백남기 농민이 즐겨 불렀다던 노래의 가사가 두 노인의 맞잡은 손을 통해 들리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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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는 농사를 지어서 얼마만큼 저금을 해야겠다, 그러면서 봄에는 희망을 가지지만 농약 값, 비료값 등 다 외상으로 갖다 쓰고, 겨울에 한꺼번에 갚으니까 돈이 하나도 없는 거야. 농사를 지어서 빚 갚는 걸 되풀이하는 거야... 농사지어서 펑펑 울기를 해 본 것이 처음이야. 진짜 엉엉 울어 봤어. 그렇게 울음이 나오더라고. 우는 것도, 내가 서러우니까, 막 나도 모르게 소리가... 발 뻗고 울어봤어."

전북 정읍시 정우면에서 200마지기 쌀 농사를 짓고 있는 여성농민 김완숙님의 말이다. 그는 25년 동안 농사를 지어왔다.

"지금 현 상태에서는 우리 일반쌀도 힘들다. 나는 10년 동안 흑미를 지었는데, 흑미도 힘들다. 작목반 회원들이 올해 눈물 흘리며 수매했다. 일반쌀보다 싸게 수매했다. 복잡한 생각을 많이 하고 있다."

두승산님은 영원면에 귀농 16년차 농민이다. 처음에 3년 정도는 옆의 형님들을 보면서 농사를 배웠고, 본격적인 농사를 지은 것은 12년 정도 된다. 3만 평에 농사를 짓고 있으며 일반쌀이 아니라 특수미로 흑미나 빨간쌀을 지으며 농민회 회원들이랑 작목반을 이뤄서 농사를 짓고 있다.

이제 곧 다가올 봄이 두려운 농민들이 있다. 쌀값 21만 원을 보장하기로 공언했던 박근혜 정권의 공약이 이제는 절대 지켜질 거라 믿을 수 없어서다. 이미 수십 년 공을 들여 보살펴 왔던 삶의 터전이자 일터인 논에서 쫓겨나는 것 같다.

땀 흘려 지은 쌀 한 가마니가 21만 원은커녕 13만원 대로 추락하고 있다는 소식도 들린다. 쌀을 내다 팔 수가 없다. 쌀을 팔아서 한 해를 살아야 하지만 기계값에, 비료값에 들인 생산비도 건지기도 어렵다. 한 해 동안 흘린 노동의 대가는 없다. 통장에는 마이너스가 찍힌다. 쉬지 않고 농번기에는 새벽 밤낮없이 논둑 사이로 뛰어다녔건만 왜 아무것도 남지 않는지 속상하다.

쌀을 사료로 쓴다는 정부

정읍 시내 선전전 정읍 지역의 전교조와 민주노총에서도 함께 한 가운데 정읍 시내에 모인 시민들에게 백남기 농민의 문제를 알려내는 선전물을 전하고 있다.
▲ 정읍 시내 선전전 정읍 지역의 전교조와 민주노총에서도 함께 한 가운데 정읍 시내에 모인 시민들에게 백남기 농민의 문제를 알려내는 선전물을 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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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에서는 지난해 12월 쌀 특별재고관리대책을 발표했다. 2012년 산 9만9천 톤을 사료용으로 공급하기로 했다. 최근 한국사료협회, 농협중앙회, 한국단미사료협회사료협회에 쌀을 나누어 배정했다. 공급가격은 1kg에 200원이다. 터무니없는 가격이다. 재고관리 대책이라 하지만 더 좋은 방법은 없나 하는 소리가 당장 나온다.

"이거는 우리가 식량주권을 외치고 국민들의 식량을 지어야 하는데, 우리가 사료농사 짓는다고 생각했어. 국민의 식량을 짓는 것이 아니라 논에다가 사료를 짓는 것이라고. 너무 화가 나드라고. 어떻게 다른 대책을 내야지." (김완숙, 정읍시 정우면)

한국의 노인빈곤율이 OECD 국가 중 1위라는 발표가 있었다. 빈곤한 이들을 위한 방법으로 쓸 수는 없는 것일까? 이맘때쯤이면 나오는 얘기가 또 있다. 연일 방송에서 북한은 쌀이 부족하다는 소식이 들린다.

그러니 당연 농민들의 입에서는 이런 이야기가 나온다. 예전처럼 남는 재고를 사람을 살리는 식용으로, 북에 보내면 안 되느냐는 것이다. 쌀 재고를 처리하여 농민들의 쌀값을 보장해 줄 수 있고, 북의 부족한 식량을 지원하면서 평화로운 한반도의 관계가 만들어질 수 있다. 일석이조가 아닌가.

뿐만 아니다. 여의도 100배 면적의 논을 줄인다는 이야기도 들린다. 지난해 12월 30일 농식품부는 '중장기 쌀 수급 안정 대책'을 발표했다. 쌀 적정 생산, 쌀 수요 확대, 재고 관리 방안을 내용으로 하고 있다.

다시 말하면 적절한 수준의 재배면적을 강조하면서, 지속적으로 벼 재배면적을 줄여 나가는 방향을 제시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농업진흥지역 일부 해제와 행위 제한 완화 등을 통해 농지 면적을 지속적으로 감소시키고자 한다.

또한 쌀 직불제 개선 방안을 마련한다고 하면서 쌀 생산농가에 지급되는 변동직불금이 쌀 생산 확대를 유발한다는 학계의 의견을 고려하여 직불금마저 감소시킬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나 지난해 4월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이 발표한 '농림수산식품 기후변화 영향 분석 및 영향 평가 모델 구축'에서 기후변화가 지금 속도로 진행된다면 2010년 기준 83.1%의 쌀 자급률이 점점 낮아져 2050년에는 47.3%까지 떨어질 것이라는 의견을 제시한 바 있다.

밥쌀 수입으로 인한 정부 정책에 대한 문제점은 드러내지 않고 쌀 생산 농가와 농지면적을 줄이는 방법은 식량 자급의 안정적 기반을 무너뜨리고 결과적으로 쌀 농가들의 생존을 위협하는 직불제의 문제로 이어질 수 있다.

"쌀 농사 직불금을 줄이면 그 사람들이 어디로 가겠어요? 직불금이 많이 나오는 게 아닌데 이 농민들이 그것 가지고 생활비를 한다고 하는데... 젊은 사람 중에는 시골에 남아 있는 사람들이 없을 거예요. 농사지어서 도지세(임대료) 내고 기계값 내면 남는 것이 없어요. 직불금 가지고 일 년 생활을 하는 것인데. 귀농하는 사람들 자체가 없을 거예요." (두승산, 정읍시 영원면)

최소한의 버팀목마저도...

정읍지역간담회 하루 종일 걷고 피곤함이 가시기도 전에 백남기 농민의 이야기를 들으면 눈물부터 차오른다. 2월 27일 범국민대회에 함께 해 달라는 호소와 함께 소중한 이야기들이 오간다.
▲ 정읍지역간담회 하루 종일 걷고 피곤함이 가시기도 전에 백남기 농민의 이야기를 들으면 눈물부터 차오른다. 2월 27일 범국민대회에 함께 해 달라는 호소와 함께 소중한 이야기들이 오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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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사람들도, 나이든 농민들도, 한해살이를 버티게 해준 직불금이 없다면 더 이상 농사를 지을 수 없는 현실이다. 최소한의 생존을 위한 버팀목마저도 부러뜨리려는 정부의 대책에 한숨만 나올 뿐이다.

그러면서도 같이 먹고 살아야 하는 사람들이 걱정이다. 식량자급의 기반인 논, 논에서 생산되는 쌀이 없는 미래는 감히 상상하기 무섭다. 그야말로 밥이 없는 밥상이고 주권 없는 식량 앞에 "식량전쟁"의 끔찍한 미래가 겹쳐진다.

쓰러진 백남기 농민이 기적처럼 일어났으면 좋겠지만 쉽지 않은 상황이다. 경찰의 물대포는 그야말로 살인적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적이 일어났으면 하는 마음으로 하루 종일 들과 논을 스치며 걷는다. 고된 농사일로 허리가 아프고 다리가 아파도 걷고 또 걷는다. 이 걸음이 '살림'의 걸음이길 바라면서 말이다.

고창을 출발, 정읍과 김제, 전주로 가는 길목마다 122년 전 갑오농민전쟁을 통해 조선 봉건 사회의 부정과 부패를 몰아내고 새로운 사회를 꿈꿨던 이들의 염원이 서려 있었다. 그 길을 걸으며 쓰러진 백남기 농민을 생각한다. 그리고 생명을 살리는 밥상 위에 놓인 쌀 한 톨에 담긴 농민들의 땀과 눈물을 생각한다.

오늘 하루 당신의 밥상에 놓인 쌀 한 톨에 담긴 농민들의 수고로움을 생각하며 백남기 농민을 잊지 않아 주길 바란다. 그래서 부디 생명의 밀밭으로, 생명을 살리는 농업을 지키는 길에 함께 했으면 더 바랄 것이 없다.

이후 도보순례는 전북을 지나 대전과 충남 지역으로 이어집니다. 많은 관심과 참여 바랍니다.

김제에 도착한 도보순례단 122년 전 동학농민혁명, 원평집강소에 들렀다. 과거와 현재가 이어지고 있음을 마음으로 느끼고 생각하게 되는 시간이었다.
▲ 김제에 도착한 도보순례단 122년 전 동학농민혁명, 원평집강소에 들렀다. 과거와 현재가 이어지고 있음을 마음으로 느끼고 생각하게 되는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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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 "백남기 농민의 아픔이 곧 우리 아픔" 비 맞으며 걷다
② '백남기 순례단' 호위한 경찰, 이게 본분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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