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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남기 농민
 백남기 농민
ⓒ 백남기대책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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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백남기다"
"우리가 백남기다" 

그 날 2015년 11월 14일. 민중총궐기 현장에 있었든, 있지 않았든 우리는 지금 모두 같은 구호를 외친다.

과거에도 그러했고 현재에도 우리는 부지런히 밥을 먹고 있으며 미래에도 여전히 밥을 먹을 것이다. 밥 한 숟가락 푹 퍼서 입에 넣는 순간의 따뜻함과 구수함에 행복해 하는 사람들이다.

따지고 보면 우리 내면은 모두 농부다. 그런 사람들이기에 우리는 쌀을 지키고 우리 밀을 지키고 농사를 지켜야 한다고 외치던 백남기 농민의 쓰러짐 앞에 내 일이 아니라고 무관심하게 돌아서지 못하는 것이다. 농민이 농사지은 쌀을 내 밥상에서 늘 만나야 하는 사람들은 비참하게 무너지는 농업현실을 외면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그의 쓰러짐은 우리의 쓰러짐이고 그가 쓰러짐으로 해서 농업이 쓰러진다면 우리 밥상은 무너진다. 더 나아가 국적을 알지 못할, 안전을 담보하지 못하는 음식들이 내 밥상을 점령하게 될 것이다. 시장과 마트에서 우리가 사는 찬거리들은 이미 원산지 표기를 들여다보기 무섭게 이미 '수입산'이 점령하고 있다. 이래서는 안 되지 하며 탄식할 때 그런 현실을 온 몸으로 헤쳐 나가자고 발버둥치는 사람들이 바로 오늘의 농민들이다.

그런 농민을 정부가 물대포를 쏴서 쓰러뜨린 것이다. 317일을 고통 속에 몰아넣었다가 결국 죽음에 이르게 한 것이다. 정부가 농민을 죽음에 이르게 한 것은 대대로 우리 삶을 이어주는 따뜻한 밥상에 거칠게 물대포를 쏘고 들어 엎어버린 것이나 다름없다.

쌀을 일으키는 사랑

백남기 농민 장례식장에서 유문철 씨는 유기농 햅쌀 1톤을 페이스북을 통해 판매해 500만원 전액을 백남기투쟁본부에 전달했다.
▲ 백남기 농민 장례식장에서 유문철 씨는 유기농 햅쌀 1톤을 페이스북을 통해 판매해 500만원 전액을 백남기투쟁본부에 전달했다.
ⓒ 권말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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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기운을 차려 논밭을 둘러보았습니다. 제가 아홉 해 농사지으며 올해처럼 벼농사가 잘된 적이 없습니다. 쌀값 대폭락으로 농민들의 절규와 분노가 하늘을 찌르고 있지만 어쨌든 황금들녘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본능적으로 마음이 밝고 환해집니다."

지난 10월 2일 백남기 농민 장례식장에서 8일 만에 돌아온 젊은 농부 유문철씨는 많이 지친 모습이다. 도시에서 직장 다니다 그만두고 시골로 내려가 아홉 해 째 유기농으로 농사를 짓는 그는 최대 풍작을 이룬 유기농 논에 서서 황금들녘을 바라본다.

이웃 농민들이 폭락한 쌀값에 대한 한숨 내쉬는 걸 동병상련하는 그다. 그럼에도 근심은 뒤로 하고 그저 풍년든 황금들녘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환해진다. 그런데 황금들녘을 바라보는 그에게는 특별한 다른 생각이 있었다.

"백남기 농민이 사망하던 날 농사일을 멈추고 서울대 장례식장을 찾았습니다. 그곳에서 8일간 노숙하며 언제 닥칠지 모르는 경찰의 부검시도를 우려해 시신을 지켰습니다. 하지만 농사를 짓는 입장에서 투쟁의 현장에 계속 있을 수 없어 그 속상함을 어떻게 풀까 고민했어요."

그는 지난해 11월 물대포 사건이 터진 이후에도 민중총궐기에 함께 하지 못하고 백남기 농민의 죽음을 지키지 못했다는 미안함에 쌀, 고추, 마늘, 참깨 판 돈 1백만 원 들고 농성장을 찾았다.

그리고 겨우 내내 차디찬 아스팔트 바닥에서 노숙을 하며 농성장을 지켰다. 지난 1월말에도 백남기 농민 대책위 운영 기금 마련 쌀 판매해서 번 돈 60만 원 남짓도 투쟁기금으로 내놓았다. (관련 기사: 백남기 선생 쾌유 농성장에 백만 원 들고 갔습니다)

농사를 짓는 그가 현재 투쟁을 하는 현장이란 바로 백남기 농민 장례식장이다. 대한민국에 살며 상식을 가진 대다수 사람들도 그러하겠지만, 특히 농민들에게는 분노감과 한스러움이 훨씬 더하다. 경찰이 백남기 농민을 물대포 조준살수한 것과 그로 인해 사경을 헤매게 되고 결국 죽음을 맞은 후 지금 검찰이 끊임없이 부검을 하겠다고 덤비는 모습을 차마 보고만 있을 수 없다.

"몸이 참여 못하면 농산물이라도 팔아서 투쟁기금으로 보내는 것이 제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백남기 농민이 칠십 평생 성자처럼 사시고 가시는 길에 꽃을 뿌려드리지 못하는 비참하고 참담한 상황에서 투쟁기금을 마련하는 것이 더욱 의미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구체적 방법으로는 지난해 백남기 농민께서 쓰러지시기 전 밥쌀 수입 중단, 쌀값 21만 원 공약 이행을 외치던 상황과 백남기 농민께서 지으셨던 생명평화 농사의 의미를 되새기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후배 농민이 생명평화 유기농 쌀농사를 이어가겠다는 의지를 알리고 싶었습니다."

그는 결국 1000평에 달하는 유기농 논 두 다랑이의 절반에 달하는 500평에서 소출되는 유기농 햅쌀 1톤을 페이스북을 통해 판매해 그 대금 500만 원을 전액 투쟁기금으로 내놨다. 쌀 1톤은 1만 명이 밥 한 그릇씩 먹을 수 있는 양이다.

이 캠페인에 참여한 시민 83명이 모두 '내가 백남기다'라는 심정으로 힘을 보탰다. 관행농 햅쌀 가격이 16만 원 아래로 떨어지고 산지 가격이 10만 원대로 대폭락한 상황이다. 그럼에도 유기농 햅쌀 40만 원 쌀값에도 판매개시 4시간 만에 매진될 정도로 시민들의 호응이 뜨거웠고 격려의 글이 밀려들었다.

문득 논밭 팔고 소 팔아 서울서 유학하는 자식 뒷바라지 하던 우리네 부모님 모습이 떠오른다. 타국에서 독립운동 하는 이들을 위해 자금을 마련하는 심정이 이러하지 않았을까?

그는 그렇게 자신이 한 해를 고스란히 바쳐 농사지은 쌀이며 농산물들을 팔아 투쟁기금을 보냈다. 물론 그 농산물에 담긴 의미에 공감하며 선뜻 마음을 내어 준 소비자가 있었기에 가능했을 것이다. 그 소비자의 신뢰를 얻기까지 젊은 농민은 9년의 유기농사의 어려움을 견뎌왔으리라.

사랑이다

황금들판의 쌀 농민에게 저 누런 벼들은 얼마나 자랑스럽고 뿌듯할까.
▲ 황금들판의 쌀 농민에게 저 누런 벼들은 얼마나 자랑스럽고 뿌듯할까.
ⓒ 유문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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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쟁기금을 모으겠다는 젊은 농부의 생각도 그 생각에 동조해 선뜻 마음을 모아 준 사람들도 모두 사랑이다. 그 뿐인가, 매일 미사를 드리고 촛불을 밝히는 사람들, 찰이 시신 탈취할 것을 우려해 한뎃잠도 마다하지 않고 장례식장을 지키는 사람들도, 물품이며 반찬들을 보내주는 사람들의 마음도 모두 '사랑'인 것이다. 한 젊은 농부가 보여준 특별한 사랑 앞에 무거운 책임감을 다시금 느끼게 된다.

쌀 먹는 사람들은 다 일어나야 한다. 한 농민의 원통한 죽음을 갚자는 단순한 복수심이 아니다. 부정의한 세력들을 향해 인권도 양심도 없느냐고 따져 묻기 위함만도 아니다. 우리 삶의 근본을 지켜야 하기 때문이다. 그것이 쌀이다. 농업이다. 경찰청장이나 대통령 아니 그 어떤 권력자도 내 밥상을 들러 엎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 그것이 백남기 농민이 아스팔트 위에서 외쳤던 쌀값보장, 밥쌀수입 반대이다.

우리 밥상을 든든히 지키고 나서 그 힘으로 민중이 주인 되는 세상, 민주주의가 꽃처럼 피어나는 세상을 만들어야 한다. 남북이 통일을 이루어 남농사 북농사 나누며 살아야 한다. 이것이 민중, 민주, 통일을 향한 백남기 농민의 염원이며, 70년의 삶을 통해 외쳤던 것이다.

쌀을 살리고 우리를 살릴 때만이 구호는 허공으로 흩어지지 않는다. 우리 자신이 농민 백남기가 되어 그의 부활을 이루게 될 것이다.

곧 그가 쓰러진 '민중총궐기'가 다가온다. 올해는 11월 12일이다. 그 날 광장에는 20만 30만의 '농민 백남기'가 넘쳐날 것이다. 그리고 외칠 것이다.

"우리가 백남기다!"

덧붙이는 글 | 백남기 국가폭력 특검실시 서명운동 : http://baeknamki.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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