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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날의 일기예보대로 화순군청에서 출발하는 둘째 날, 비가 내렸다. 지역에서 준비해주신 비닐 장화와 바지로 중무장했다. 비옷도 입고 몸자보를 두르고 걸으니 춥지도 않았고 비가 내리는지도 몰랐다. 든든했다. 비바람을 뚫고 어디든 갈 수 있을 것 같았다.

너릿재공원에 내리는 비, 영령들의 눈물인가

도보순례 2일차, 비가 내리는 가운데 화순군청 앞에서 결의를 다졌다. 백남기 농민이 일어나 고향 보성의 밀밭으로 돌아가는 날 우리 사회 정의는 바로 설 수 있을 것이다.
▲ 도보순례 2일차, 화순에서 결의다지기 도보순례 2일차, 비가 내리는 가운데 화순군청 앞에서 결의를 다졌다. 백남기 농민이 일어나 고향 보성의 밀밭으로 돌아가는 날 우리 사회 정의는 바로 설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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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릿재공원에 도착할 즈음 보니 비닐 장화는 바닥에 긁혀 조금씩 찢어지고 있었다. 하지만 신발에 물이 들거나 하지는 않았다. 지역 농민께서 너릿재의 역사에 관해 이야기해 주셨는데 빗소리 때문에 전달이 약해 잘 들리지 않았다.

후에 검색해 보니 '1946년 8.15 광복 1주년 광주 기념식'에 참가하여 재를 넘어가던 화순 탄광 노동자들이 미군에 의해 학살당한 곳이다. 1980년대 5.18 광주 민주화 운동 때에는 화순과 광주를 오가던 시민군들이 공수부대의 총격으로 사망한 역사적으로 가슴 아픈 사건을 겪은 곳이다.

그러고 보니 너릿재를 지나며 우리가 맞은 비는 아마도 해방과 민주를 위해 싸우다 스러져간 영령들의 눈물인가 싶었다. 70년 넘도록 해방을 맞지 못해 아직도 고난의 길을 걷는 후대들이 안타까워 흘리는 눈물이리라.

광주에 도착해서도 비는 그치지 않고 거세졌다 잠잠해지기를 반복하며 내렸다. 광주거리 곳곳에서 만나는 '5.18'이라는 이름에서 광주의 아픔이 다시 밀려왔다. 광주! 이를 꽉 물며 울음을 삼키지 않고는 떠올릴 수 없는 이름 중 하나.

민중항쟁의 피맺힌 절규와 함성. 오늘날에는 세월호 광장, 고공 농성장, 길거리 천막농성, 송전탑 투쟁, 강정 투쟁, 미군기지 투쟁 등 곳곳에서 이어지고 있다. '해방 후 친일잔재를 청산 못해서 아직도 이 모양 이 꼴이여!'라던 어느 어르신 말씀이 귀에 울린다.

유인물을 나눠드리고 피켓을 들기도 하며 터미널 일대에서 선전전을 시작했다. 전교조 선생님 한 분과 대형피켓을 들기로 했다. 그런데 화장실이 급해 선생님께만 맡기고 뛰어갔다. 화장실에서 한참 후 나왔더니 모두 사라지고 없었다!

상황실에 연락을 취해 차량에 타기로 하고 기다렸다. 한 학생이 몸자보를 입은 나에게 다가와 함께 걷고 싶다고 했다. 학교 선생님과 연락이 되어 5.18교육관에서 만나기로 했단다. 걸으며 선생님 이야기와 집회에 참석했던 이야기 등도 잠깐 나누었다. 누구라도 이야기 나누었으면 아마도 '친절하고 의식이 있는 참한 학생'이라고 생각했으리라.

대주교님도 도보행진단을 응원해주다

광주터미널에서 만나는 시민들께 피켓과 유인물을 나누어 주었다. 백남기 농민의 쾌유기원과 국가폭력을 알리는 선전전을 진행하였다.
▲ 광주터미널앞에서 선전전 광주터미널에서 만나는 시민들께 피켓과 유인물을 나누어 주었다. 백남기 농민의 쾌유기원과 국가폭력을 알리는 선전전을 진행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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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후 또 어디선가 일행 몇 분이 나타나는 덕분에 차량탑승은 취소했다. 6명이서 광주시청까지 도란도란 얘기 나누며 걷게 되었다. 학교 다닐 때도 공부 못해서 '나머지 공부'를 했는데 행진 때도 낙오되었다는 일행의 우스개에 웃음이 터졌다.

뒤처진 만큼 빠르게 걸어 시청에 도착하니 따끈한 차와 떡, 과일이 기다리고 있었다. 시청에서 멀지 않은 곳에 목적지인 5.18교육관이 있다. 그곳에서 광주시민들과 도보순례단이 함께한 단결의 밤을 가졌다. 터미널에서부터 함께 걸었던 학생은 선생님을 만났고, 순례단도 둘째 날의 일정을 마감했다.

광주에서 장성으로 가는 셋째 날은 아침에 잠시 비가 내렸다가 맑게 갰다. 초등학생 형제가 아빠의 훈수를 들으며 깃발을 들고 맨 앞에서 걸었다. 무거워서 끙끙대면서도 무겁냐고 물어보면 아니라고 한다. 듬직하고 귀엽고 안쓰럽다. 부산에서 수녀님들 여섯 분이 오셔서 같이 걸으신다. 웃는 모습은 누구라도 예쁘지만 검은 수녀복을 사이로 핀 하얀 미소가 더욱 눈부시다.

깃발을 든 초등학생 두 명은 형제다. 부모와 누나와 함께 도보순례에 참가했다. 깃발이 무겁지 않다며 씩씩하게 걷는다.
▲ 초등학생 형제기수 깃발을 든 초등학생 두 명은 형제다. 부모와 누나와 함께 도보순례에 참가했다. 깃발이 무겁지 않다며 씩씩하게 걷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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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심을 먹으러 천주교 비아동 성당에 들어섰더니 지역분들과 천주교 신자들이 박수를 보내며 맞아주신다. 한국 천주교 주교회의 의장이신 김희중 대주교께서는 '법과 정의가 바로 서는 사회와 국가를 이룰 수 있도록 조그만 도움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행진을) 계속하기를 바란다'고 했다.

백남기 농민의 병문안 중에도 얘기했다. 하지만 전후 사정을 떠나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람의 생명이다, 생명을 귀하게 여기지 않았기 때문에 백남기 농민 문제가 발생했다. 대주교께서는 '생명을 소중하게 존중하는 생명문화를 진작시키는데 우리 모두 동참하여야겠다'라며 도보행진단의 발걸음을 응원해 주셨다.

농민 스스로 희생을 당연히 여기는 현실

생명을 소중하게 생각하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노력합시다.
▲ 한국천주교 주교회의 의장 김희중 대주교 생명을 소중하게 생각하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노력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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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에서 장성까지는 시골길이었다. 한적한 시골길을 걸으며 전국농민회 총연맹 조병옥 사무총장으로부터 개방농정이 어떻게 농민에게 희생을 강요해왔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정부의 정책에 이끌려 농민 스스로 희생을 당연하다고 여기게 되는 기현상까지 생기게 되었다는 한탄의 목소리에 가슴이 아팠다.

밥 한 공기 200원이 비싸다고 쌀값을 자꾸만 내리지 못해 안달인 정부를 어떻게 봐줘야 할까. 한때 신토불이라 하여 우리 땅에서 난 우리 농산물이 최고라며 치켜세우더니 이젠 우리 쌀을 개, 돼지 사료로 던져주고 사람이 먹을 쌀은 외국에서 수입하고 있다. 그러니 이렇게 거꾸로 가는 정책을 어찌 가만둘 수 있겠는가. 그것을 고치자고 얘기하는 농민들에게 물대포를 쏘는 정부를 어찌 또 용서할 수 있겠는가.

어둑해져 장성군청에 도착한 후 버스로 숙소까지 이동했다. 따뜻한 방에 몸을 누이니 다리 곳곳에 머물렀던 근육통들이 아우성이다. 발바닥에 물집도 잡혀있었지만 다행히 터지진 않았다. 개방농정에 지친 농업 현실처럼 다리도 무거워진 저녁이었다. 구들장에 몸을 쉬고 나면 내일은 가뿐해지겠지. 그처럼 우리 농업현실도 개방농정 물리치고 해방농사를 짓게 되기를 바라며 하루를 마감했다.

이번 도보순례에는 여성농민들도 지역별로 매일 결합하고 있다. 이 날은 전국여성농민회 총연합의 전남, 경남 회원들이 함께 했다.
▲ 농민해방을 위해 투쟁! 이번 도보순례에는 여성농민들도 지역별로 매일 결합하고 있다. 이 날은 전국여성농민회 총연합의 전남, 경남 회원들이 함께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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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보순례 4일차인 2월 14일, 눈이 내리는 언덕길을 오르며 전남 장성에서 전북을 향해 걷고 있다.
▲ 언덕길을 오르며 도보순례 4일차인 2월 14일, 눈이 내리는 언덕길을 오르며 전남 장성에서 전북을 향해 걷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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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째 날은 사람들과의 만남이 오래 기억에 남을 하루였다. 16박 17일의 도보순례 전 일정을 함께 걷겠다는 81세의 최종대 어르신. 그와 전남과 전북의 경계인 솔재고개를 넘어가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어르신은 세월호 도보순례 때도 20일을 걸었다고 하신다.

그땐 발에 물집도 안 잡히고 잘 걸었는데 지금은 발에 물집이 잡혀 전날 하루 고생하셨다고 한다. 그런데 어떤 분이 '여성용 스타킹을 먼저 신고 양말을 두 켤레 신으면 발이 편하다'고 알려 주셨다. 그렇게 했더니 정말 발이 아프지 않다시며 적극 권하신다.

관절의 연골이 다 닳아도 이 없으면 잇몸으로 산다고 자꾸 걸으면 아파도 또 걷게 된다고도 하신다. 현실의 처지에 안주하지 않고 개척해 나가는 정신은 이러한가 싶어 경외감도 든다. 아이처럼 순한 웃음을 지닌 이북이 고향인 어르신은 하루 빨리 평화통일이 되어 고향으로 돌아가는 것이 소망이다. 아들의 이름을 '백두산'이라 지은 백남기 어르신의 염원과 닿아있다는 생각이 들어 또 마음이 울컥해졌다.

'백남기 농민의 아픔이 곧 우리의 아픔'

웃는 모습이 소년같은 81세 최종대(세례자 요한) 어르신. 어르신의 소망은 하루 빨리 평화통일을 이루고 황해도 고향에 가는 것이다.
▲ 81세의 나이, 8살의 웃음 웃는 모습이 소년같은 81세 최종대(세례자 요한) 어르신. 어르신의 소망은 하루 빨리 평화통일을 이루고 황해도 고향에 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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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터미널에서 화장실 가느라 일행을 놓친 소동을 앞서 얘기했는데 또 다른 주인공과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피켓을 들었던 전교조 선생님께서 공무원 노조에 계신 분을 소개해 주었다. 장성군청에서 고창을 향해 가는 길은 눈보라가 얼굴을 때렸다. 하지만 함께 걷는 길에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걸으니 몸도 마음도 훈훈하고 기운이 솟았다.

김광열 민주노총 나주지부장(공무원 노조 나주시지부)과 얘기를 나누었다. 전국공무원노동조합 전남지역본부에서 9명이 함께 걷고 있다. 조합차원에서 지역별로 도보순례에 결합하기로 했다. 많은 분은 못 오셨지만 공무원 노조도 함께하겠다는 책임감이 느껴졌다. '백남기 농민의 아픔이 곧 우리 아픔'이므로 함께하기로 했다. 2월 27일 민중총궐기를 공무원 노조에서도 준비하고 있다. 성과급제, 퇴출제와 관련하여 1시에 5000대오 이상이 사전대회를 하기로 했다.

걸어보니 기분이 좋다. 기분이 좋다는 것은 '동참할 수 있어 다행'이라는 점이다. 이 대오가 초라해서는 안 되겠다는 걱정도 들었다. 이 도보순례가 향후 투쟁의 큰 결심을 할 수 있는 밑거름이 될 것이다.

잠시라도 결합하려는 분들에게 드리고 싶은 말씀이 있다. 우리 사회는 머리로 생각만 해서는 결코 변화될 수 없다는 점이다. 잘못된 것은 잘못됐다고 이야기해야 한다. 또 그 잘못을 고치기 위한 몸부림이 있어야 세상이 변한다. '세상이 이러네' 하고 그만 둔다면 백 년이 가도 똑같다는 생각이 든다. 잘못된 것을 바꾸기 위한 행동을 주저하지 않고 열심히 해 나갈 것이고 그런 의지로 여기에 왔다. 많은 분이 이에 동참해 주시면 좋겠다.

머리로 생각만 해서는 잘못된 세상을 바꿀 수 없어요, 행동해야 합니다.
▲ 공무원노조, 전교조 그리고 농민 머리로 생각만 해서는 잘못된 세상을 바꿀 수 없어요, 행동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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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일간의 전남 일정에 함께해 준 전남 지역 노동자, 농민, 청년, 시민들과 2월 27일 4차민중총궐기를 약속하며 아쉬운 작별을 했다. 눈보라와 찬바람을 동행 삼아 다시 길을 나섰다. 122년 전 동학농민운동의 태생인 전북에서 또 다른 도보순례의 동지들을 만날 기대에 설레며 동백꽃 핀 고창에 도착했다.

녹두장군같은 큰 산과 망울을 터트린 동백꽃이 도보순례단을 맞아주고 있었다. 전북이다!
▲ 전라북도 고창에 당도 녹두장군같은 큰 산과 망울을 터트린 동백꽃이 도보순례단을 맞아주고 있었다. 전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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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백남기 농민 쾌유 기원, 국가폭력 책임자 처벌, 민주주의 회복!'을 외치는 도보순례단의 전북 이야기가 이어질 예정입니다. 많은 응원 바랍니다.


태그:#백남기 농민 쾌유 기원, #국가폭력, #책임자처벌, #도보순례, #민중총궐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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