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BS 드라마 <그래, 그런거야> 포스터

SBS 드라마 <그래, 그런거야> 포스터 ⓒ SBS


새벽 동이 틀 무렵, 주택가가 밀집한 골목길을 연신 비추던 카메라는 딱 봐도 엄청난 크기의 집 앞에 멈추어 서더니, 국민체조를 하면서 가족들의 단잠을 깨우는 할아버지 유종철(이순재 분)을 클로즈업한다. 그리고 그 옆에는 그런 할아버지가 못마땅한 할머니 김숙자(강부자 분)이 누워있다.

그 시각, 우렁찬 국민체조 음성에 잠이 깬 며느리 한혜경(김해숙 분)은 일어나자마자 아침 준비부터 집 옆에 있는 남편 유재호(홍요섭 분) 병원 청소까지 말끔하게 해낸다. 그리고 마치 한집에 사는 것처럼 연이어 집에 드나드는 유종철의 아들들과 가족들. 이제는 천연기념물같이 느껴지는 대가족의 일상이 여전히 김수현의 신작, SBS <그래, 그런거야>에서는 자연스러운 일처럼 펼쳐지고 있었다.

김수현 드라마의 전매특허 '대가족 이야기'

언제부터인가 김수현 드라마를 정의하는 요소로 문어체를 활용하는 독특한 대사 톤 외에도, 대가족이 꼽히고 있다. 1995년 KBS에서 방영한 <목욕탕집 남자들> 이후, 김수현은 끊임없이 3대가 어울려 사는 대가족 이야기를 집필했다. 김수현의 대가족 드라마는 언제나 큰 성공을 거두었다. 김수현 드라마 중 이례적으로 종편에서 방영한 JTBC <무자식 상팔자>(2013) 또한 종영 당시 10%에 육박하는, 종편으로서는 높은 시청률을 기록했다는 점을 봤을 때도 김수현의 가족 드라마는 그 자체만으로도 흥행 보증 수표나 다름없었다.

하지만, 지난 13일에 첫 방영한 SBS <그래, 그런거야>는 김수현의 이름값이 무색할 정도로 시청률이 한 자리에 머무는 '이변'을 보여주었다. 그래도 지난 14일에 방영한 2회는 첫 회보다 1.8% 상승한 5.8%(닐슨코리아 기준)을 기록했으나, 시청률의 여왕 김수현이 야심 차게 준비한 새 드라마라는 점을 고려했을 때 꽤 석연치 않게 다가온다.

그러나 <그래, 그런거야>를 보고 있으면, 이 드라마가 기록한 낮은 시청률이 저절로 수긍이 간다. 첫 방송 이전, 지난 11일 있었던 제작발표회에서 이순재를 비롯한 출연 배우들이 입을 모아 강조한 것처럼 <그래, 그런거야>는 막장이 존재하지 않는다.

시아버지와 남편 잃은 며느리가 단둘이서 한집에 산다는 설정, 환갑이 넘은 조카가 가족들 앞에서 자신과 며느리를 둘러싼 이상한 소문을 늘어놓는 이모에게 술김에 침을 뱉는 장면 등이 김수현 드라마에는 있다. 그리고 김수현 드라마에서는 이런 놀라운 상황조차 스스럼없이 흘러가게 한다. 오히려 시청자들에게 그 상황에서는 이런 일이 일어날 수도 있다는 당위성을 설득시킨다. 그것이 여느 막장 드라마와 다르게 느껴지는 김수현 드라마를 지탱하게 하는 힘이며, 자존심이었다.

이제는 '판타지'가 되어 버린 가족의 행복

<그래, 그런거야>가 보여주는 문제점은 눈살 찌푸리게 하는 자극적인 설정도 아니고, '김수현 사단'이라고 불릴 정도로 이번 드라마에서도 어김없이 모습을 드러낸 중견 배우들이 빚어내는 식상함도 아니다. 혹은 드라마 제목만 다를 뿐, 매번 똑같은 작품으로 느껴지는 기시감도 아니다. 더는 핵가족도 옛말이고, 1인 가구가 나날이 증가하고 있는 이 시점에서, 여전히 할아버지, 아버지, 자식이 한 집에 모여 오순도순 살아가는 설정 자체가 시대착오적으로 다가온다.

<그래, 그런거야>에서 보인 몇몇 대사나 장면에서 드러난 것처럼, 칠순을 넘긴 나이에도 최신 트렌드에 발 빠른 감각을 유지하고자 하는 김수현이 이런 현상을 모를 리가 없다. 아니, 대가족 시스템이 붕괴한 것은 그녀의 공전의 히트작 <사랑이 뭐길래>가 방영되기 이전부터 두드러진 현상이다.

하지만 <사랑이 뭐길래> <목욕탕집 남자들>이 방영했을 때만 해도, 예전처럼 많지는 않지만 3대가 모여 사는 집도 종종 있었다. 무엇보다도 그 드라마들이 방영할 당시는 경제 호황기라, 먹고 사는 걱정 대신 자식, 남편, 시부모, 애인 걱정만 하면 되는 주인공들의 이야기에 공감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래, 그런거야>가 방영하고 있는 2016년은 그 어느 때보다 '생존'이 화두인 시대다. 대다수 서민은 더는 오늘보다 더 나은 내일을 꿈꾸지 않고, 그저 지금보다 더 최악의 상황만 맞이하지 않길 간절히 바랄 뿐이다. 이렇게 먹고 사는 것이 보통 사람들의 화두가 된 시대에, 여전히 돈 걱정 없이, 자식들 대부분을 번듯한 정규직으로 취업시키는 데 성공한 중상류층 가족의 투정 어린 행복한 고민은 부럽기도 하면서, 한편으로는 그렇지 못한 삶을 사는 사람들에게 상당한 괴리감을 안겨 준다.

어쩌면, 김수현 작가가 요즘 같은 시대에도 불구하고, 먹고 사는 데 아무런 고민 없는 성공한 아버지와 자식이 주장 강한 유별난 할아버지를 극진히 모시고 살아가는 대가족 이야기를 고집하는 것도 이 때문인지도 모른다. 굳이 삼대가 모여 사는 대가족의 형태는 아니더라도, 지금의 50·60대 이상 세대들이 꿈꾸어왔지만, 이룰 수 없었던 삶을 대신 TV 드라마 시청을 통해 잠시나마 충족시키는 판타지. 자기복제라는 비판 속에서도 꿋꿋이 '마이웨이'를 고집하는 김수현의 가족 드라마는, 어렵다는 것을 알면서도 정작 부모 세대들이 쉽게 놓지 못하는 꿈을 대변하는 행위를 충실히 구현하고 있다. 각자의 사정을 인정할 것을 주문하면서도, 결국은 행복한 가족을 지탱하기 위한 여성들의 희생과 자식들의 노력을 강조한다.

아무리 세상이 변한다고 한들, 자신들이 옳다고 믿어온 가치관을 쉽게 포기할 수 없다는 대다수의 기성세대처럼, 김수현의 가족 드라마는 1990년대에도 2016년에도 변함없이 대가족의 미덕을 내세운다.

 SBS 드라마 <그래, 그런거야> 포스터

SBS 드라마 <그래, 그런거야> 포스터 ⓒ SBS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권진경 시민기자의 개인 블로그(neodol.tistory.com)와 <미디어스>에도 함께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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