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고 싶은 야콥

죽고 싶은 야콥 ⓒ ㈜블룸즈베리리소시스리미티드


사람은 누구나 꿀 같은 사랑, 연애를 꿈꾼다. 그다음 순서는 행복한 결혼 정도 되겠다. 그 모든 생의 여정을 거치면 언젠가는 잘 죽는 법(?)에도 관심이 쏠리는 순간을 맞이하게 될 터이다.

야콥은 억만장자 금수저로 태어났다. 대저택에서 윤택한 삶을 누리지만 네 살 때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로 웃는 법과 화내는 법을 잃어버린 채 어른이 된다. 그러던 어느 날 어머니마저 세상을 등지자 자살을 택한다. 살아야 할 이유가 그에게는 없었던 것일까.

대저택 관리상 도우미가 너무 많아 그 넓은 공간에서의 자살도 쉽지 않다. 죽음마저 '내 마음대로 안되다니...' 낙담하다 우연히 죽음여행 상품을 택할 수 있는 여행사 '엘리시움'과 조우하게 된다. 야콥은 수많은 여행 상품 중 언제 어느 때 죽을지 모르는 '서프라이즈'를 선택했다.

삶과 죽음은 진정 하나일까? 일단 계약하게 되면 절대 미루거나 파기할 수 없다는 데 과연 주인공은 어떻게 될지 걱정이 되었다. 하루에도 수십 번 바뀌는 게 사람의 마음이거늘 중간에 안 죽고 싶어지면 어쩌나 싶었다. 역시 내 예상은 빗나가지 않았다. 야콥은 안나를 만나 사랑에 빠지자 죽고 싶지 않아졌다. 살아야 할 이유가 생긴 것이다.

야콥은 웃음을 찾고 화를 낼 수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여행사를 찾아가 죽음을 미루고 싶다고 얘기하자 여행사 직원들은 그를 죽이기에 혈안이 된다. 언제 어느 때 죽을지 죽음의 순간을 기다리기 지루했던 과거와는 달리 야콥은 살아남기 위해 필사적으로 바뀐다.

 야콥의 연인 '안나'

야콥의 연인 '안나' ⓒ ㈜블룸즈베리리소시스리미티드


영화를 보고 있는 순간만큼은 영화관 밖의 삶과는 유리되어 오직 영화에 집중할 수 있어서 좋다. 이 순간만큼은 누구에게도 방해받지 않아도 되니 얼마나 좋은가. 영화의 소재가 죽음이기에, 이 순간 살아있음에 감사한 마음도 들었다.

생이 얼마나 따분하고 지루하면 스스로 죽음을 택하는 걸까. 100세 시대에는 잘 죽는 법도 큰 과제다. 골골하지 않고 사는 동안 행복하게 삶을 향유하다 마지막 가는 길을 선택해서 가는 것도 나쁘지 않을 법하다.

야콥처럼 살아갈 시간이 많이 남아있는데 스스로 끊는 목숨은 너무 아까울 수 있다. 그러나 살 만큼(?)살고 누릴 만큼 누려 이 정도 살았으면 가도 된다는, 미련이 남지 않는 순간이 온다면 자신이 원하는 방법을 (가령 사랑하는 사람 곁에서 마지막을 맞고 싶다) 선택해 세상과 안녕할 수 있다면, 그것도 괜찮은 세상 하직법이 되리라.

죽는 순간까지 누군가에게 짐이 되어 괴로움을 안겨주는 것보다 훨씬 나은 방법이 될 것 같다. 병들어 아픈 몸으로 죽음보다 못한 삶을 사느니 안락하게 죽는 법이 낫다는 말씀. 마지막 가는 길도 여행이라 여겨 그 길을 선택해 죽을 수 있는 미래는 어떨까?

결혼 후 두 번째로 찾은 예술영화전용관, 아쉬움을 뒤로 한 채 영화관을 나섰다. 입춘이 지나서인지 날은 포근하기 그지없었고, 명절 끝이라 쏟아져 나온 인파와 만나는 것도 참으로 오랜만의 일이었다. 올망졸망 꼬맹이들과 지내다 모처럼 맞은 자유에 어안이 벙벙할 정도였다. 옛날 같았으면 보행이 어려울 만큼 사람이 많은 장소가 번잡스럽고 싫었을 텐데, 생경한 거리의 풍경이 고단을 잊게 하였다. 언제 이곳이 이렇게 변해버렸는지….

누구에게나 주어진 소중한 삶이다. 아름다운 시간을 의미 없이 아깝게 흘려보내지 말고 '가슴이 뛰는 삶'을 살아보자. 그런 의미에서 이 영화는 죽음의 방법을 통해 지금의 삶을 더 잘살아 보자고 낮게 읊조리고 있는 듯하다. 영화 중간중간 아름답게 울려 퍼지는 피아노곡과 웅장하고 멋진 저택의 모습은 우리의 눈과 귀를 호강시키기에 충분했다. 삶이 지루한 모두에게 추천하는 좋은 영화였다.

 <킬 미 달링>의 포스터

<킬 미 달링>의 포스터 ⓒ ㈜블룸즈베리리소시스리미티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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