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년대 초반 최고의 스타라면 거쳐가는 필수코스가 있었다. 이경규의 몰래카메라가 그것이었다. 한국의 대표적 배우인 최민식, 최민수, 고현정부터 가요사를 새로 썼던 서태지와 아이들까지 이경규의 몰래카메라 희생양이었다.

이경규 몰카 중 아직도 회자되고 있는 것들이 있다. 가수 이범학은 <퀴즈 아카데미> 프로에 등장 "새발의 피는 무엇인가?"라는 황당한 문제를 출제했다. 고 조경철 박사의 UFO 소동 편도 레전드였다. 외계인과 조우하는 조 박사의 순수한 소년과도 같은 열정과 심성이 몰카를 보는 이들의 마음을 순수하게 만들었다. 베스트셀러 <인간시장>의 작가 김홍신은 자신이 진행하던 '부부만세'라는 프로그램에서 아침에 나갔다 저녁에 들어오는 자녀를 가진 부부의 황당한 사연을 접해야 했다.

<몰래카메라>는 91~92년까지 방송됐고 그 뒤 13년만인 2005년 <돌아온 몰래카메라>가 2007년까지 방송됐다. 사이비 종교에 초대된 박준규 편의 '라메카래몰건이'는 보는 이들의 배꼽을 잡는 마법의 주문이었다.


잠시 시청자들에게서 떠나있던 몰래카메라가 9일 저녁 MBC에서 <몰카 배틀 - 왕좌의 게임(이하 몰카배틀)>이라는 업그레이드 판이 되어 돌아왔다. 몰카배틀은 이경규, 이특, 노홍철이 각각 자신만의 스타일로 몰래카메라를 찍은 후 판정단의 평가를 받아 더 많은 표를 얻는 쪽이 승리하는 포맷을 채택했다.

이특은 혜리를 몰카 대상으로 삼았지만 혜리의 역몰카에 당했고, 노홍철은 예비신부들의 웨딩사진 촬영에 그녀의 아버지들을 깜짝 등장시키는 감동 이벤트 몰카를 선보였다. 이경규는 방송인 전현무를 타겟 삼아 몰카란 무엇인지를 제대로 보여주었다. 이경규는 전현무가 평소에 생각해왔던 중국진출을 키워드로 삼았다. 사전에 철저한 시나리오를 만들었다. 중국의 갑부 회장이 중국판 <우리 결혼했어요(이하 우결)> 시즌 2를 기획하고 있고 거기에 전현무의 출연을 원한다는 내용이었다.

회장의 비서와 관상을 보는 고문, 통역까지 대동되었고, 호텔스위트룸으로 전현무가 초대되었다. 전현무의 옆에서는 가수 채연이 제대로 바람잡이가 되어 그를 부추겼다. 가상 결혼 상대로 중국의 대표 미녀 배우들이 거론되었고, 누구를 골라야 할지 몰라 행복한 고민을 하는 전현무의 모습이 보여졌다. 전현무는 관상을 본다는 고문에 의해 입을 있는 힘껏 벌려야 했다.

출연료를 협상하는 장면은 이날 전현무 몰카의 하이라이트였다. 채연이 타 한류스타의 중국 <우결> 출연료를 예로 들며 전현무를 충동질했다. 전현무는 1억 다음 소심하게 2천만 원을 아주 작은 소리로 말했고, 1억 원을 들은 비서와 고문은 처음 5천만 원을 제의했고 전현무는 8천만 원을 조심스럽게 이야기했다. 잠시 후 다른 방으로 들어간 비서와 고문의 고성이 오가며 전현무는 좌불안석이 되었다.

다시 돌아온 비서와 고문은 이경규인 재벌 회장의 전화를 받고 8천만 원으로 출연료 합의를 보았다. 잠시 후 <복면가왕>의 가면을 쓰고 중국 재벌 이경규가 등장, 계약서류를 찢는등 난동을 부렸다. 전현무는 재벌회장의 가면을 벗기고 난 후 이경규임을 알자 황당함에 소파에 드러눕고 말았다.


판정단의 평가 결과 이경규는 과반수 득표를 얻어 <몰카배틀>의 승자가 되었다. 이경규를 승리로 이끈 전현무 몰카는 '예능의 끝은 다큐멘터리'라는 이경규의 말처럼 한편의 페이크 다큐였다. 몰카 대상자에 대한 사전 조사로 기호에 맞는 먹잇감을 놓아두고 마치 있을 법한 상황을 만든 것이다. 35년 희극 인생과 몰래카메라 원조의 관록이 괜히 있는 것이 아님을 보여주는 한판이었다.

이날 방송된 <몰카배틀>은 설연휴 예능 시청률에서도 1위에 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