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내부자들: 디 오리지널>의 한 장면

영화 <내부자들: 디 오리지널>의 한 장면 ⓒ 쇼박스


견리망의(見利忘義) : 이익을 보고 올바름을 잊어버림.

장기흥행 중인 영화 <내부자들>의 수익배분율, 구체적으로 투자배급사와 극장 사이 1 대 9라는 심각히 편중된 수익배분율이 최근 논란으로 떠올랐습니다. 이 배분율은 과연 눈앞의 이익을 좇다가 의를 저버린 불공정한 행위였는가. 이 논란을 좀더 깊숙히 들여다보려고 합니다.

투자배급사 1 : 극장 9

지난해 11월 19일 개봉한 <내부자들>이 누적 관객 수 910만 7699명(2월 1일 영화진흥위원회 통합전산망 기준, <내부자들>과 감독판 <내부자들: 디 오리지널>의 합)을 기록중입니다. '청소년관람불가영화 중 최고의 흥행', '감독판 최초의 흥행' 등 의미 있는 수식어도 등장했고요.

이런 흥행과 별개로 최근 일부 언론에서 <내부자들>의 투자배급사인 쇼박스와 상영 주체인 극장 간 부율이 1 대 9였음을 알리며, 투자배급사의 과한 욕심이자 한국영화시장을 왜곡하는 행위로 진단했습니다. 엄밀히 말하면 <내부자들> 전체가 아니라 12월 31일 새로 개봉한 확장판 <내부자들 : 디 오리지널>의 전략을 문제 삼은 내용이었습니다.

알려진 대로 통상 한국영화 투자 및 제작사와 극장 간의 수익 배분은 55 대 45(수도권 일부 극장) 혹은 50 대 50(그 외의 극장)입니다. 영화 한 편을 만들어 벌어들인 수익에서 마케팅비용, 배급료 등을 제외한 수익을 해당 비율로 각 주체가 나눠 갖는다는 뜻입니다. 업자 간 일종의 합의된 계약방식인데, <내부자들> 감독판의 흥행을 위해 투자배급사가 이 방식을 깨고 무리하게 극장 수 확대를 유도했다는 게 이번 논란의 핵심입니다. 5 대 5와 1 대 9는 달라도 너무 다르니까요.

일견 타당합니다. 투자배급사가 그렇게 나온다면, 극장 입장에선 별다른 노력 없이도 돈을 많이 벌어들일 조건이니 거절할 이유가 없죠. 다만, 과연 과도한 부율 책정 외에 극장 확보에 영향을 주는 다른 변수는 없는지 살펴볼 필요는 있습니다.

결코 나쁘지 않았던 <내부자들>의 객관적 지표

 영화 <히말라야>와 <내부자들: 디 오리지널>이 2016년 신정 연휴 극장가 흥행 1, 2위를 차지했다.

영화 <히말라야>와 <내부자들: 디 오리지널>이 2016년 신정 연휴 극장가 흥행 1, 2위를 차지했다. ⓒ CJ엔터테인먼트, 쇼박스


CGV, 롯데시네마, 메가박스 등 멀티플렉스 3사를 위시한 극장이 상영관을 배정하는 기준은 해당 작품의 예매율, 좌석점유율 등의 수치입니다. 여기에 각 극장별 프로그램 팀의 방침 내지는 전략도 영향을 미칩니다. 후자의 판단이야 주관적일 수 있다고 치고, 전자가 중요한 건 객관적 기준으로서 극장 측의 입맛에 따라 특정 영화를 일방적으로 지원하진 않는다는 근거가 되기 때문입니다. 일부 대기업이 영화의 투자와 배급을 직접하고 거기에 극장까지 보유한 산업 환경이기에 더더욱 간과할 수 없는 지표죠.

<내부자들> 감독판 개봉 이후 일주일간 좌석점유율과 예매율을 살펴봤습니다. 1월 1일 해당 영화의 좌석점유율은 77.2%로 당시 박스오피스 1위를 기록한 <히말라야>의 58.1%보다 높습니다. 예매율은 13.8%였는데 <히말라야>의 예매율 19%와 비교하면 큰 차이가 나지 않습니다. 오히려 연말 특수를 노린 신작 <조선마술사>(좌석점유율이 41.5%), <몬스터호텔2> (좌석점유율43.7%)이 두 영화에 밀리는 형세였습니다.

이 흐름은 쭉 이어집니다. 1월 2일 <내부자들> 감독판의 좌석점유율은 72.7%, <히말라야> 51%이었고, 1월 3일엔 각각 58.8%와 38.7%였습니다. 새해 신작이 나오며 두 작품의 좌석점유율은 점차 하락세를 보였지만, <내부자들>의 수치는 신작 틈에서도 비슷하거나 오히려 높은 수준이었습니다.

1월 1일부터 7일까지 7일간 <내부자들>의 평균 좌석점유율은 41.9%, <히말라야>는 28.6%. 당시 박스오피스 1위가 <히말라야>였고 2위가 <내부자들>이었는데, 좌석점유율만 놓고 보면 <내부자들>의 상영 조건은 상당히 좋았음을 알 수 있습니다. 굳이 쇼박스가 자신의 부율을 낮추지 않아도 극장 확보가 용이한 상황이었죠. 쇼박스의 결정을 단순히 '부당거래 시도'라고 치부하기에는 고개가 갸웃거려지는 이유입니다.

그렇다면 굳이 왜 쇼박스는 자신의 이익을 상당 부분 포기하는 결정을 했을까요. 이를 두고 영화계에선 다양한 해석이 나옵니다.

극장을 소유하지 않은 쇼박스의 저자세 전략

우선 한국 영화 산업의 생태계를 어지럽히는 왜곡 행위라는 주장이 강합니다. 한 제작사 대표는 "CGV나 롯데시네마와 달리 극장이 없는 쇼박스가 부율을 조정하는 걸로 약점을 극복한다면 큰 문제"라며 "연말에 다들 극장 얻기가 힘든 때에 독과점을 시도한 것"이라 비판했습니다.

다른 영화 관계자는 "기록에 대한 집착"으로 진단했습니다. 이 기사의 서두에서 언급한 화려한 수식어를 얻고, 나아가 천만 관객을 노린 전략이라는 겁니다. 이 관계자는 "사실 배급 전략이기에 법에 위배가 되지 않는다면 그것까지 뭐라 할 순 없고, 다만 <내부자들>이 당시 연말 대작으로 흥행이 예상된 <대호>나 <히말라야> 등에 지레 겁을 먹은 거 같다"고 말했습니다.

한 중소배급사 대표는 한 발 더 나아갔습니다. "당초 목표를 달성한 뒤 극장에게 일종의 선물을 준 셈"이라며 이 관계자는 "어쩌면 쇼박스의 차기작을 위해 <내부자들>의 이익을 포기하면서 모종의 거래를 했을 수도 있다, 일종의 보험"이라고 주장했습니다. 다음 영화의 극장 수 확보를 위해 이미 흥행한 영화로 극장의 수익에 도움을 준다는 겁니다.

여기서 또 다른 맥락을 읽을 필요가 있습니다. 바로 이 논란의 주체인 극장의 힘이죠. 단순히 쇼박스의 저자세만 질타하고 끝났다면 보다 중요한 핵심을 놓치고 가는 것입니다.

다시 수치를 언급해보겠습니다. 1월 1일 <히말라야>는 953개 스크린을 확보했고 4671회 상영됐습니다. <내부자들>은 822개 스크린에서 2088회 상영됐고요. 2일을 볼까요? <히말라야>는 839개 스크린에서 3898회 상영, <내부자들>은 837개 스크린에서 2076회 상영이었습니다. 3일 <히말라야>는 809개 스크린에서 3686회 상영, <내부자들>은 838개 스크린에서 2105회 상영됐습니다.

앞서 언급한 좌석점유율과 예매율은 <내부자들>이 <히말라야>보다 높았음에도 실제 스크린 수와 상영회수는 오히려 낮습니다. <히말라야>는 CJ E&M이 투자배급했고, CGV 역시 CJ그룹 계열사입니다. 객관적 수치 지표가 높았고, 쇼박스가 부율마저 포기했음에도 <내부자들>의 실질 혜택은 <히말라야>보다 후순위였다는 점입니다.

이게 극장의 힘이고, 오늘날 한국 영화 산업의 단면입니다.

뒤에서 빙긋이 웃고 있는 독과점의 주체

 상영차별 논란을 빚은 <또 하나의 약속>과 <개를 훔치는 완벽한 방법>

영화 <또 하나의 약속>과 <개를 훔치는 완벽한 방법>의 포스터. 두 작품 모두 개봉 당시 대기업 멀티플렉스 극장의 차별 상영으로 어려움을 겪었다. ⓒ 삼거리픽쳐스, 에이트볼픽쳐스


<내부자들>의 부율을 업계 관행에 맞지 않게 상당히 낮춘 쇼박스의 행동은 물론 동종 업계 중소규모 배급사와 제작사 관계자들을 위축시키는 행동임은 맞습니다. 하지만 때가 묻은 손가락을 넘어 그 손가락이 가리키는 하늘을 볼 필요가 있습니다.

우린 그간 객관적 지표가 높았음에도 상영 조건에서 차별을 받아왔던 여러 영화를 알고 있습니다. 2000년대 초반까진 그 차별의 대상이 외화 강세 속의 한국영화 전체였다면, 이젠 대기업 투자배급영화의 밀어붙이기 속 중소규모영화가 됐습니다. 영화의 만듦새를 떠나 극장을 보유한 대기업투자배급사들은 자사 영화의 할인권 남발, 퐁당퐁당 상영(한 관을 온전히 내주지 않고 프라임 시간대와 일반 시간대에 서로 다른 영화를 배정하는 식), 예매권 사재기 등으로 유리한 상영 조건을 만들어왔습니다.

개봉 영화는 많은 것 같은데 볼 영화가 없다는 생각, 한번쯤은 해보셨죠? 이쯤에서 한 제작사 PD의 말을 소개합니다. 이 PD는 제게 "극장이 살아야 영화가 사는 게 아니다. 영화가 살아야 극장이 산다"는 말을 전했습니다. 쇼박스 부율 문제는 이미 절대 갑이 된 극장, 특히 한국영화산업의 독과점 문제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사건입니다.

다시 이 기사의 처음으로 돌아가겠습니다. 견리망의(見利忘義) - 이익을 보고 올바름을 잊어버림. 과연 올바름을 잊어버린 것은 극장을 소유하지 않은 투자배급사 쇼박스일까요, 아니면 독과점 체제를 확고히 구축한 극장 측일까요, 아니면 둘 다일까요. 이런 질문도 가능하겠습니다. 과연 누가 먼저, 더 많이, 더 적극적으로 대놓고, 이익을 보고 올바름을 잊어버렸을까요.

내부자들 이병헌 CJ 쇼박스 롯데시네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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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메가3같은 글을 쓰고 싶다. 될까? 결국 세상을 바꾸는 건 보통의 사람들.

오마이뉴스 선임기자. 정신차리고 보니 기자 생활 20년이 훌쩍 넘었다. 언제쯤 세상이 좀 수월해질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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