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찬아, 너가 나갈 차례다 지난 26일 오후(현지시간) 카타르 도하 알 사드 스포츠클럽에서 열린 2016 아시아축구연맹(AFC) U-23 챔피언십 4강 카타르 대 대한민국 경기. 신태용 한국 감독이 황희찬에게 작전지시를 하고 있다.

▲ 희찬아, 너가 나갈 차례다 지난 26일 오후(현지시간) 카타르 도하 알 사드 스포츠클럽에서 열린 2016 아시아축구연맹(AFC) U-23 챔피언십 4강 카타르 대 대한민국 경기. 신태용 한국 감독이 황희찬에게 작전지시를 하고 있다. ⓒ 연합뉴스


올림픽축구대표팀 한·일전을 앞두고 한국 올림픽팀 공격수 황희찬(잘츠부르크)의 '위안부 언급'이 화제가 되고 있다.

황희찬은 2016 AFC(아시아축구연맹) U-23 챔피언십 결승전에서 일본과의 대진이 확정되자 "최근 위안부 할머니의 이야기도 많이 나오고 역사적인 부분이 있다, 그러므로 한일전은 무조건 이긴다"고 당찬 포부를 드러냈다. 하지만 황희찬은 준결승전이 끝나고 한국의 올림픽 본선행이 확정되면서 소속팀으로 복귀하여 정작 한일전에서는 뛰지 못하게 됐다.

황희찬의 발언은 오히려 국내에서보다 일본에서 더 민감하게 반응하는 분위기다. 일본 스포츠 전문매체 <데일리 스포츠> 등 주요 일본 언론들은 지난 28일 '한국 올림픽팀 선수가 위안부 문제를 언급했다'는 제목의 기사를 게재했다. 한국 선수들이 스포츠와 무관한 역사 문제를 거론했다는 비판적인 논지의 보도였다.

황희찬 발언에 알러지 보이는 일본, 겉과 속 다르다?

박종우 '독도 세리머니' 파장  한국 축구가 올림픽 사상 첫 메달을 수확하는 기쁨의 순간 박종우(부산 아이파크)의 '독도 세리머니'는 메달 수여 보류라는 파장을 불러왔다. FIFA는 박종우의 세리머니가 의도된 기획이 아닌 우발적인 행동이었다고 보고 2경기 출전정지에 벌금 3천500 스위스프랑 제재를 내렸다. IOC도 FIFA의 징계를 참고로 메달 박탈과 같은 중징계를 내리지는 않을 것이라는 관측이 조심스럽게 나오고 있다. 사진은 지난 2012년 8월 10일 런던올림픽 3-4위전에서 박종우가 일본에 승리한 뒤 '독다는 우리 땅' 플래카드를 펼쳐보이는 모습.

▲ 박종우 '독도 세리머니' 파장 한국 축구가 올림픽 사상 첫 메달을 수확하는 기쁨의 순간 박종우(부산 아이파크)의 '독도 세리머니'는 메달 수여 보류라는 파장을 불러왔다. FIFA는 박종우의 세리머니가 의도된 기획이 아닌 우발적인 행동이었다고 보고 2경기 출전정지에 벌금 3천500 스위스프랑 제재를 내렸다. IOC도 FIFA의 징계를 참고로 메달 박탈과 같은 중징계를 내리지는 않을 것이라는 관측이 조심스럽게 나오고 있다. 사진은 지난 2012년 8월 10일 런던올림픽 3-4위전에서 박종우가 일본에 승리한 뒤 '독다는 우리 땅' 플래카드를 펼쳐보이는 모습. ⓒ 연합뉴스


일본이 유독 민감하게 반응하는 데는 이유가 있다. 지난 2012년 런던올림픽 3~4위 결정전 당시 한국은 일본에 2-0으로 승리하고 사상 첫 동메달을 목에 걸었다. 하지만 경기 후 한국 올림픽팀의 미드필더 박종우가 '독도 세리머니'를 벌인 것이 문제가 됐다.

박종우가 경기 후 관중석에서 '독도는 우리 땅'이라고 한글로 적혀있는 종이를 던져준 것을 들고 세리머니를 한 것을 두고, 당시 일본 측은 강하게 반발하며 이의를 제기했다. IOC 역시 정치적인 언급을 해서는 안 되는 올림픽의 룰을 위반했다는 이유로 박종우의 동메달 수여가 잠시 보류되기도 했다. 박종우는 훗날 이 사건을 일임받은 FIFA의 조사 결과, 동메달 자격은 유지하되 A매치 2경기 출장정지와 벌금으로 징계를 받는 선에서 마무리됐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정치적 표현의 한계와 형평성을 두고 한일 양국 간의 치열한 신경전이 펼쳐졌다.

황희찬의 발언을 문제 삼은 일본 측 언론에서도 이 사례를 거론하며 불편한 심기를 내비치고 있다. 이번 한일전에서 이와 유사한 시비가 발생할 경우 황희찬의 발언을 다시 이슈화시켜서 발목을 잡을 수 있다는 경고의 의미이기도 하다. 해당 기사를 접한 일본 누리꾼들도 반한-혐한 감정을 드러내는 반응들이 적지 않다.

표면적으로 일본의 태도는 '스포츠에 정치적 이슈를 개입시키지 말라'는 원칙을 강조하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한 꺼풀 벗겨보면 이는 지나친 생트집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국내 팬들은 '스포츠의 순수성을 논하기 전에 전범기 문제부터 자중하라'며 싸늘한 반응이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제국주의의 광기를 의미하던 일본의 욱일승천기는 거듭된 비판 여론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종종 경기장에 등장한다. 최근 급격히 우경화, 극우화 되는 일본의 정치적-사회적 분위기와 맞물려 자국 스포츠 대표팀의 유니폼에도 전범기 디자인이 버젓이 포함된 경우가 적지 않을 정도다.

이는 일본의 역사적 죄악으로 상처받았던 아시아와 세계의 수많은 피해자를 철저하게 무시하고 기만하는 행위다. 박종우의 독도 세리머니 파문 당시 국내 팬들이 FIFA와 IOC의 정치적 공정성에 분노했던 이유도 여기에 있었다.

일본의 언행불일치 그리고 FIFA의 이중잣대

축구장에 등장한 욱일승천기 한국 20세 이하(U-20) 여자축구대표팀이 지난 2012년 8월 30일 '숙명의 라이벌' 일본과 도쿄 국립경기장에서 2012 국제축구연맹(FIFA) U-20 여자월드컵 8강전을 벌였다. 일본 응원단이 경기중 욱일승천기를 흔들고 있다.

▲ 축구장에 등장한 욱일승천기 한국 20세 이하(U-20) 여자축구대표팀이 지난 2012년 8월 30일 '숙명의 라이벌' 일본과 도쿄 국립경기장에서 2012 국제축구연맹(FIFA) U-20 여자월드컵 8강전을 벌였다. 일본 응원단이 경기중 욱일승천기를 흔들고 있다. ⓒ 연합뉴스


이번 결승전에서도 관중석에서 전범기가 등장하지 않는다고 장담할 수 없다. 이는 유럽 한복판에서 나치 깃발을 올리는 것과 다를 바가 없다. 그런데도 정작 일본의 전범기에는 이상하리만큼 관대한 이중잣대를 보인 것이 그간 FIFA의 행태였다. 일본이 한국 선수들의 발언으로 정치적이라고 문제 삼는 적반하장식의 태도를 보인다면, 우리 측에서 더 적극적으로 대처해야 할 필요가 있는 이유다.

물론 황희찬에게도 아쉬운 부분은 있다. 축구선수이기 이전에 한국인으로서 역사적 현안에 대한 소신이 있는 것, 국민의 감정을 대변할 수 있는 용기는 가상하다. 하지만 좋은 의도가 꼭 좋은 결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한일전의 의미와 특수성은 굳이 일일이 언급하지 않아도 국내 팬들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다. 황희찬의 공개적인 발언은 자연인으로서는 아무런 문제가 없는 용기 있는 발언일지 몰라도, 축구경기 특히 국가 간 대항전에서는 오히려 불필요한 긴장감만 조성하는 부작용이 될 수도 있다. 그라운드에서 지나친 감정에 휩쓸리다 보면 함정에 빠질 수 있다. 공교롭게도 정작 황희찬은 한일전에 나서지 못한다. 공연히 동료들에게 한일전 필승에 대한 부담을 안겨준 측면도 있다.

사실 이미 올림픽 본선진출이라는 목표를 달성한 상황에서 한일전은 굳이 승부에 집착하며 지나치게 많은 의미를 부여할 필요가 없는 경기다. 올림픽팀 선수들은 한일전 결과와 상관없이 이미 승자이고, 충분히 결승전을 즐길 자격이 있다.

한편으로, 이런 상황에서 황희찬의 발언이 많은 공감대를 얻는 것은 그만큼 국가와 정치가 국민의 가려운 속을 긁어주지 못하는 데 대한 반작용 때문이다. 최근 위안부 졸속 합의에서 보듯, 피해자인데도 피해자의 목소리를 반영하지 못하는 우리 정부, 반성하지 않는 가해자의 뻔뻔한 적반하장에 대한 분노가 더해졌다. 정치와 상관없는 축구에서라도, 어린 선수의 겁 없는 패기에서라도 통쾌함과 위안을 찾아야 하는 현실이, 우리 국민의 감정을 더욱 복잡하게 만든다.


☞ 관점이 있는 스포츠 뉴스, '오마이스포츠' 페이스북 바로가기

축구
댓글2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2014년 5월 공채 7기로 입사하여 편집부(2014.8), 오마이스타(2015.10), 기동팀(2018.1)을 거쳐 정치부 국회팀(2018.7)에 왔습니다. 정치적으로 공연을 읽고, 문화적으로 사회를 보려 합니다.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