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영화감독과 배우들은 쿠엔틴 타란티노의 신작 <헤이트풀 8>에 찬사를 던졌다.

한국의 영화감독과 배우들은 쿠엔틴 타란티노의 신작 <헤이트풀 8>에 찬사를 던졌다. ⓒ 영화 홈페이지


믿기 싫겠지만, 역사가 시작된 이래 인간이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가장 많이 죽어나가야 했던 이유는 종교와 인종이 야기한 갈등 때문이었다. 멀리 가톨릭과 이슬람이 서로를 잔인한 방법으로 죽이는 것을 경쟁하던 중세로 갈 것까지도 없다. 1990년대 초반 '유럽의 화약고'로 불리던 발칸반도에서 벌어진 학살과 전쟁, 현재진행형인 IS(이슬람국가)의 테러 등은 모두가 종교의 다름을 이유로 자행되는 반인륜적 행위다.

나치의 총수 히틀러가 일으킨 2차대전은 종교와는 다른 이유로 수백만 명의 목숨이 사라진 사례다. 콧수염을 기른 오스트리아 태생의 조그만 독일 사내는 인종적 배타성을 정치적 헤게모니를 얻는데 사용했고, 아리안족이 아닌 열등한 인종을 독가스로 학살하는데 거리낌이 없었다. 모두가 알다시피 유대인이 가장 큰 피해를 입었다.

2차대전 이전, 인종차별이 비극적 현실로 첨예화돼 나타난 것이 미국의 남북전쟁 (1861~1865)이다. 이 전쟁의 이유는 대단히 복잡하고 복합적인 것이었으나,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는 '흑인 노예의 현재 신분을 앞으로는 어떤 방식으로 결정할 것인가'였다.

노동집약적인 산업이 주류를 이루던 미국 남부는 저임금(혹은 무임금)을 주면서도 수월하게 다룰 수 있는 흑인 노예가 현재처럼 유지되길 원했고, 반면 공업생산 기반이 발전일로에 있던 미국 북부는 '노예 해방'이란 휴머니즘을 지지하는 쪽이 많았다.

피가 솟구치고 살점이 터지는 <헤이트풀8>의 출발점은 인종 갈등

 <헤이트풀 8>에서 전직 북부군 병사로 출연한 사무엘 잭슨.

<헤이트풀 8>에서 전직 북부군 병사로 출연한 사무엘 잭슨. ⓒ 영화 홈페이지


<저수지의 개들>과 <펄프 픽션>으로 시작해 <장고 : 분노의 추적자>까지 20년 이상을 달려 이제는 중진 감독의 대열에 오른 쿠엔틴 타란티노의 신작 <헤이트풀8>이 공개됐다. 이전 영화들에서 보여준 끔찍한 유머와 피와 살점이 튀는 잔인한 연출은 이번에도 변함이 없다. 그러나, <헤이트풀8>은 쿠엔틴의 전작들과의 뭔가 다르다. 뭐가 다를까?

영화의 도입부. 카메라는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의 목조각을 지나치게 오랫동안 비춘다. 저 멀리 그 조각상의 뒤편에서 설원을 달리는 마차. 거기엔 자신이 인식하건 그렇지 않건 인종적 편견으로 가득 찬 '백인' 악당들이 타고 있다.

이어 등장하는 화면은 '흑인' 현상금 사냥꾼(사무엘 잭슨 분)이 '교수형 집행자'로 불리는 백인 현상금 사냥꾼(커트 러셀 분)의 마차를 얻어 타는 장면이다. 흑인 현상금 사냥꾼은 남북전쟁 당시 북군의 용장(勇將)으로, 남군의 교도소를 탈출하면서 백인 병사 수십 명을 불태워 죽인 것으로 악명이 높다.

백인 악당들과 이들 두 현상금 사냥꾼이 우연히(혹은 우연으로 가장된 필연으로) 만나는 곳은 눈보라 치는 허허벌판의 조그만 숙소 겸 식당. 그런데 이게 무슨 일? 거기엔 북군 흑인병사 수백 명을 재판 없이 총살한 남부군의 전직 장교(브루스 던 분)가 앉아 있다.

쿠엔틴 타란티노의 진화

 <헤이트풀 8>에서 전직 남부군 장군으로 출연한 브루스 던.

<헤이트풀 8>에서 전직 남부군 장군으로 출연한 브루스 던. ⓒ 영화 홈페이지


더 이상 줄거리를 읊어대는 건 향후 영화를 볼 관객들에게 불쾌함을 줄 수도 있을 것 같다. 그러니, 이쯤에서 그만하고.

<헤이트풀8>은 이전 쿠엔틴 타란티노의 영화가 보여준 바 있는 시간과 시점을 무시로 넘나드는 재기발랄한 연출에 더해 '잔인함 속의 폭소'라는 불협화음(?)이 능수능란하게 변주되는 수작이다. '재밌는 영화가 뭔지 아는' 감독이 지휘하는 감각적 즐거움 속에서 관객들은 깔깔댄다. 2시간 48분이라는 긴 상영시간이 전혀 지루하지 않을 정도다.

여기에 하나 더. 쿠엔틴은 이번 영화를 통해 자신에게 덧씌워진 '철학이 부재한 천방지축' 이미지를 불식시키려 노력하고 있다. 미국의 가장 악질적인 고질병의 하나인 '흑백갈등 문제'를 진지하고 은유적으로 제기함으로써.

영화에선 "신은 흑인의 편도, 백인의 편도 아니다"라는 목소리가 들린다. 여기에선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 특유의 장황하고 우스꽝스런 어감이 느껴지지 않는다. 영화 도입부, 지루했던 '예수상을 비추던 장면'도 이해가 된다.

<헤이트풀8>은 자칫 너나 할 것 없이 일생 나쁜 일만을 저질러온 이들의 피 튀기는 복수극으로 단순하게 해석될 위험이 있다. 그러나 과연 그럴까?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선 죽음을 눈앞에 둔 백인우월주의자와 흑인우월주의자가 나란히 누워 누군가의 편지를 소리 내 읽는다. 그 '누군가'는 과연 누구였을까? 그 편지는 어떤 내용을 담고 있었을까? 이 장면은 '이전' 쿠엔틴 타란티노 영화와 '향후' 그의 영화를 구별할 수 있는 키워드로 읽힌다.

헤이트풀 8 쿠엔틴 타란티노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아버지꽃> <한국문학을 인터뷰하다> <내겐 너무 이쁜 그녀> <처음 흔들렸다> <안철수냐 문재인이냐>(공저) <서라벌 꽃비 내리던 날> <신라 여자> <아름다운 서약 풍류도와 화랑> <천년왕국 신라 서라벌의 보물들>등의 저자. 경북매일 특집기획부장으로 일하고 있다.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