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히말라야>의 한 장면.

영화 <히말라야>의 한 장면. ⓒ CJ 엔터테인먼트


산 사람과 고인 사이 26년간 쌓여왔던 이야기가 영화로 나왔다. 산에 남겨진 동료의 시신을 수습하려 했던 엄홍길과 그의 원정대의 실화다. 7일 오후 서울 왕십리 CGV에서 언론에 공개된 영화 <히말라야>는 동료에 대한 약속과 우정을 지키려 한 사람들의 진심으로 정의할 수 있었다.

이미 어느 정도 익숙한 이야기다. 2004년 히말라야 에베레스트 등정에 올랐다가 하산 길에 사망한 고 박무택 대원과 그의 시신을 수습하려 모인 '휴먼원정대' 사연은 이미 지난 2005년 MBC에서 <아! 에베레스트>라는 제목의 다큐멘터리로 소개된 바 있다. 2부작으로 구성된 이 다큐멘터리는 당시 전국 시청률 기준 12.5%(닐슨코리아 집계)를 기록하며 화제가 되기도 했다.

"산악인들에게 인정받아야겠다는 마음이 컸다"

'히말라야' 황정민-정우, 산악인들의 의리와 우정 7일 오후 서울 왕십리CGV에서 열린 영화 <히말라야> 시사회에서 엄홍길 역의 배우 황정민이 박무택 역의 배우 정우를 격려하고 있다.  <히말라야>는 2005년 히말라야 등반 중 생을 마감한 동료의 시신을 찾기 위해 기록도, 명예도, 보상도 없는 여정을 떠나는 엄홍길 대장(황정민 분)과 휴먼원정대의 실화를 바탕으로 한 작품이다. 12월 16일 개봉.

▲ '히말라야' 황정민-정우, 산악인들의 의리와 우정 7일 오후 서울 왕십리CGV에서 열린 영화 <히말라야> 시사회에서 엄홍길 역의 배우 황정민이 박무택 역의 배우 정우를 격려하고 있다. <히말라야>는 2005년 히말라야 등반 중 생을 마감한 동료의 시신을 찾기 위해 기록도, 명예도, 보상도 없는 여정을 떠나는 엄홍길 대장(황정민 분)과 휴먼원정대의 실화를 바탕으로 한 작품이다. 12월 16일 개봉. ⓒ 이정민


지난해 11월 14일 첫 촬영을 시작한 <히말라야>에선 실존 인물들의 관계를 재정리하고 가상의 인물과 이야기를 삽입했다. 휴먼원정대 일원인 전배수 등과 박무택의 아내 최수영(정유미 분)에 대한 내용도 이런 재구성에 해당한다.

기존 사실에 새로운 요소를 넣고 그것들을 직조하는 과정을 통해 영화는 필연적으로 2015년 이맘때 왜 이들의 희생정신을 등장시켰는지에 답해야 할 운명이었다. 이 대답을 진정성 있게 그리고 충실히 했느냐 그렇지 않았느냐에 따라 영화의 성패가 갈릴 것으로 보인다.

각색 및 연출을 맡은 이석훈 감독도 이를 염두에 놓은 듯 언론 시사 직후 "일단 산악인들에게 인정받아야겠다는 마음이 컸다"고 말했다. 기존에 등장한 산악 영화들이 실제와 많이 동떨어져 있다는 세간의 평을 의식한 것이다. 실재와 허구 사이의 틈을 좁히기 위해 <히말라야> 제작진은 구은수, 김미곤 대장과 같은 전문산악인에게 실질적인 조언을 구했다.

영화가 그린 대원들의 등반 여정과 갈등 해소 과정만 놓고 보면 고개를 끄덕일만하다. 배우들이 직접 등반 장비를 사용하고 능숙하게 등정하는 모습을 묘사함으로써 사실성을 어느 정도 확보했다.

다만 영화가 보편적 공감으로까지 나아갈 수 있을지에 대해선 의문이다. "박무택이었다면 우릴 버리고 가지 않았을 것"이라는 대사 등을 통해 휴먼원정대의 동기에 필연성을 부여하려 하지만, 다소 힘이 약해 보인다. 이 지점에선 관객 개개인의 성향과 취향을 탈 여지가 크다.

줄타기

'히말라야' 산악인들의 의리와 우정 7일 오후 서울 왕십리CGV에서 열린 영화 <히말라야> 시사회에서 이석훈 감독(가운데)과 배우 황정민, 정우, 김인권, 조성하가 파이팅을 외치고 있다. <히말라야>는 2005년 히말라야 등반 중 생을 마감한 동료의 시신을 찾기 위해 기록도, 명예도, 보상도 없는 여정을 떠나는 엄홍길 대장(황정민 분)과 휴먼원정대의 실화를 바탕으로 한 작품이다. 12월 16일 개봉.

▲ '히말라야' 산악인들의 의리와 우정 7일 오후 서울 왕십리CGV에서 열린 영화 <히말라야> 시사회에서 이석훈 감독(가운데)과 배우 황정민, 정우, 김인권, 조성하가 파이팅을 외치고 있다. <히말라야>는 2005년 히말라야 등반 중 생을 마감한 동료의 시신을 찾기 위해 기록도, 명예도, 보상도 없는 여정을 떠나는 엄홍길 대장(황정민 분)과 휴먼원정대의 실화를 바탕으로 한 작품이다. 12월 16일 개봉. ⓒ 이정민


영화는 산악인들의 진심을 조명하며 지금 이 순간 자신의 한계를 깨려 하는 이들에게 묻는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고된 일을 왜 하려 하냐고 말이다. 아마 십중팔구 돌아오는 대답은 '좋아서'일 것이다. <히말라야> 속 등장인물들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이 담백한 대답은 너무 단순해서 심심해 보인다. 하지만 그 자체로 진심이다. 뛰어난 업적을 보이는 사람들이 어떤 거창한 목표 의식이나 특별한 사명감이 있다 생각하기 쉽지만, 현실은 뜻밖에 단순한 법이다. 사람들은 어쩌면 지극히 개인적이고 보편적인 이유로 자기 자신을 온전히 던질 준비가 된 존재인지도 모른다.

엄홍길 대장 역을 맡은 황정민도 이를 인식한 듯 보인다. 시사 직후 기자간담회 자리에서 그는 "(영화에 도움을 주신) 대장님에게 왜 산에 오르는지 물었더니 좋아서 한다는 대답이 돌아왔다"며 "누군가 내게 배우를 왜 하느냐 물으면 좋아서, 미쳐서 한다고 하는데 아마 그런 감정이지 않을까, 그 이후 그 질문은 절대 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석훈 감독 역시 "다큐멘터리를 봤을 때 사람들이 감동하고 눈물을 흘린 건 아마 누군가가 목숨을 걸고 산 사람이 아닌 시신이라도 찾겠다는 그 마음 때문이 아니었을까"라며 "내가 그런 상황일 때 과연 구하러 올 사람이 있을까, 너무나 치열한 경쟁사회에 우리가 살고 있지만, 과거 우리가 잊고 있었던 사람과 동료의 소중함에 대해 생각할 필요가 있을 거 같다"고 속내를 밝혔다.

사실 감독의 말이 곧 영화 <히말라야>가 집중해야 할 기둥이었다. 그간 등장했던 각종 재난 영화와의 차별성 역시 그 기둥의 튼튼함을 통해 확보될 법했다. 어려운 숙제다. 휴머니즘에만 집중하면 다큐멘터리가 되고, 재미에만 집중하면 진정성이 떨어진다. 그 사이의 줄타기가 상업영화의 묘미 아니던가.

이 영화를 제작한 JK필름은 그런 점에서 장기가 분명하다. 세련미는 떨어지더라도 휴머니즘을 재미라는 큰 틀 안에서 영리하게 활용하며 관객의 마음을 얻어왔다. <해운대> <국제시장> 등이 그 증거다. <히말라야> 역시 큰 틀에선 다르지 않아 보인다. 관객의 선택이 자못 궁금해진다.

○ 편집ㅣ곽우신 기자


덧붙이는 글 영화 <히말라야> 정보

제작 : JK필름
공동제작 : CJ 엔터테인먼트
제공, 배급 : CJ엔터테인먼트
관람등급 : 12세 이상 관람가
러닝타임 : 125분
개봉 : 2015년 12월 16일
히말라야 황정민 정우 조성하 네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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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메가3같은 글을 쓰고 싶다. 될까? 결국 세상을 바꾸는 건 보통의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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