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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를 헝그리(Hungry)하게 키우지 못한 50대 학부모입니다. 삶의 목표를 잡지 못해 표류하는 아이와, 은퇴 후 삶을 어떻게 보내야 할 지가 현실적인 문제가 된 저의 처지는 일응 비슷한 면이 있습니다. 지구 반대편 먼 이국땅에서 새로운 인생을 만들어 가는 아이의 모습을 지켜 보면서, 점점 심각해지는 청년 실업문제와 베이비 부머들의 2막 인생에 대해 같이 고민해보는 시간을 가졌으면 합니다. - 기자 말

-지상에서 운행된다는 점이 좋았다
▲ ▲ 멜버른 시내를 달리는 트램 -지상에서 운행된다는 점이 좋았다
ⓒ 정성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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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애는 우리가 9시 20분 도착 예정이니까, 11시까지 미리 예약해둔 민박집에 가서 먼저 짐을 푸는 것으로 약속을 잡았다고 했다. 그런데 입국 수속에 의외로 많은 시간이 소요되어서 우리가 만난 것은 11시가 넘어서였다. 민박집 주인은 멜버른에서 레스토랑을 하는 사람인데, 중간에 다른 일이 있는지 더 이상 우리를 기다릴 수 없다고 했다.

할 수 없이 시내관광을 먼저 하고 민박집에는 주인이 돌아 오면 가는 것으로 스케줄을 변경하였다. 한국과는 달리 좌측통행을 하는 자동차에 다소 어색해 하면서 우리의 맬버른 여행 첫 날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멜버른 중앙 상업지구에 어렵게 주차를 하고 걸어서 시내관광을 시작했다. 국제화 된 도시답게 동서양인들이 다양하게 섞여 있는 멜버른 시내를 우리는 활기차게 돌아 다녔다. 처음 내 눈길 끈 것은 '트램'이라 불리는 지상을 달리는 전철이었다.

우리나라의 경전철과 비슷한, 객차와 전동차 합쳐서 3량이 이어진 구조이다. 승용차, 버스와 섞여서 같은 도로를 이용한다. 교통신호등을 만나면 붉은 색에 정차하고, 푸른색이면 통과하는 것이 일반 차량과 차이가 없다.

요금은 시내 중심가에서는 무료이다. 멜버른에 처음 관광을 오면 시티 서클 트램을 타보는 것도 괜찮다. 무료이고 시내 한 바퀴를 도는데 30분 정도 소요된다. 시내 중심가를 벗어나면 요금을 내야 한다. 한번 타는데 우리 돈으로 3500원 정도이고, 한번 트램을 끊으면 두 시간 동안 그 효력이 유지된다. 두 번을 끊으면 하루 종일 추가적인 요금 없이 트램을 이용할 수 있다.

트램을 자주 이용해야 할 경우 부담이 되지 않도록 하는 나름 합리적인 제도인 것 같다. 이외에도 교통카드를 사용하다가 충전된 금액이 트램 1회 요금보다 부족한 금액이 남아 있어도, 남은 돈만으로 마지막 한번은 승차가 가능하다. 교통카드에 1불이라도 남아 있으면 한번 더 탈 수 있다는 의미이다

예전 서울지하철에도 이와 비슷한 형태의 서비스가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예를 들면 정기권을 끊으면 하루에 몇 번을 이용해도 추가적인 요금이 부과되지 않았다. 당시 나는 이곳 저곳 옮겨 다니며 일을 해야 하는 아르바이트를 했는데, 부담 없이 이용하던 정기권이 어느 날 갑자기 폐지되는 바람에 당황했던 기억이 있다.

학생들이 가는 저렴한 일식집

보기보다 맛이 괜찮았다.
▲ ▲ 차이나 타운에서 먹었던 만두 보기보다 맛이 괜찮았다.
ⓒ 정성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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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애는 자기가 사는 모습을 보여준다며 학생들이 가는 저렴한 일식집으로 우리를 데리고 갔다. 골목길 안쪽에 위치한 선술집 형태의 식당은 한눈에도 가난한 유학생들이 모이는 장소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값이 비싸지 않은 우동 비슷한 면을 시켰는데, 큰애의 예상과는 달리, 여행기간 동안 향이 강한 동남아 음식과 패스트푸드에 질린 우리는 맛있게 먹었다.

대학 졸업 후 15년 정도 경과한 후에 다시 대학 근처에서 친구들을 만난 적이 있다. IMF사태로 회사가 문을 닫게 되어, 본의 아니게 퇴직하였다가 중국 기업에 취직이 되어 떠나는 친구를 환송하는 자리도 겸했던 것 같다. 삼겹살을 안주로 술을 한잔 했는데, 내 평생 그렇게 맛이 없는 삼겹살은 처음 먹어본 것 같다. 엄청나게 저렴한 가격이 이해가 되었다.

친구들 모두 비슷한 생각을 한 듯, 대학시절 먹었던 술안주 이야기가 화제로 올랐다. 당시 군대를 제대한 복학생들은 취직이 잘 되어서 4학년이 되었을 때에는 그야말로 여유가 있었다. 아르바이트를 해야 하는 나를 제외하고는 모두 적당히 공부하고, 적당히 당구장에서 시간을 보냈다. 그러다가 밤 9시쯤 돈을 모아서 술 한잔 하고 각자 집으로 헤어졌는데 그 때 안주로 먹은 두부김치가 그렇게 맛이 있었다.

삼겹살, 돼지갈비 같은 것은 정말로 특별한 경우에 먹는 별미였다. 그런데 직장에 들어 가서, 회식이라는 것을 하면서 좋은 음식을 먹다가 다시 찾아간 대학가 음식은 참혹한 수준이었다. 큰애는 우리도 그렇게 반응하리라 생각했던 모양이다.

큰애의 호주 생활을 듣다

일식집에서 적당히 배를 채운 후, 차이나 타운을 구경했다. 멜버른 차이나타운은 빅토리아주 의회 의사당에 면해 있는 여섯 개의 블록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리틀 보크 스트리트 북쪽 끝에 있다. 1850년대 골드러쉬에 그 기원을 두고 있다고 한다. 400여 개의 점포에서 중국풍의 잡화점, 한의원, 식당 등이 영업하고 있다.

차이나 타운의 입구를 지나 가자 거리 모습이 완전히 달라졌다. 우리는 울긋불긋한 깃발들이 휘날리는 거리를 갑자기 많아진 중국인들과 함께 거닐었다. 간판의 글자가 한자로 바뀌었고, 가게에 진열된 상품도 달라졌다. 이곳 저곳을 기웃기웃 하다가 큰애가 자주 가는 차이나 타운의 맛 집에서 만두와 찐빵을 시켜 먹었는데 역시 맛이 있었다.

점심을 완전히 해결한 후에는 핸드폰을 현지용으로 바꾸었다. 일주일 정도 체류해야 하니까, 하루 만원씩 지불해야 하는 로밍 비용 보다는 현지에서 임시로 가입해서 사용하는 선불 폰이 더 저렴하기 때문이다. 자세한 내역은 정확하게 기억이 나지 않는데, Data 1.5GB, 호주 통화 무제한, 국제통화 200분 해서 우리 돈으로 3만 원 정도 들었던 것 같다.

거리를 걸으면서 큰애의 호주 생활에 대해 들을 수 있었다. "너 영어도 제대로 못하는데 어떻게 여기서 생활하냐?"라고 놀렸더니 "영어 잘 못해도 여기서 살아 가는데 아무 문제없어"라며 큰애는 호주 생활 요령에 대해 이야기 했다. 짐작대로 역시 인터넷이었다.

호주의 주요 도시에는 모두 교민 사이트가 개설되어 있어 여기에서 필요한 정보를 얻을 수 있다. 예를 들면 멜버른은 '호주바다', 브리즈번은 '썬브리즈번' 같은 사이트에서 한국에서 온 사람들이 필요한 온갖 잡다한 정보를 제공한다. 간단한 식사나 교통 이외에, 유학원, 거주할 집, 중고가구 등과 같은 중요한 거래는 한국인들 사이에서 또는 한국인을 매개로 이루어지는 것이다. 여기에서 정보를 얻고 현지 답사를 하면 된다.

큰애가 다녔던 육우가공공장에 대한 취직 정보도 여기에서 얻을 수 있다. 우리의 상식으로는 잘 이해가 되지 않지만, 공장을 소개해주고 소개비를 받는 것이 여기에서는 당연시 된다. 같은 워홀러 간에 소개를 하는 경우에는 소개비가 일시불이 되고, 직업소개소에서 낸 광고를 이용하면 주급을 받을 때마다 공장에서 급여의 일정 부분을 소개소에 지불하는 것이다.

늘 미덥지 않게 보였던 큰애가 다시 보였다. 헝그리하게 아이를 키우지 못한 것이 항상 마음에 걸렸는데, 제 앞가림은 하는 것처럼 보였던 것이다. 먼 이국 땅에서 아토피라고 하는, 어찌 보면 치명적인 병을 가지고 잘 버티고 있는 것이다.

아토피 문제만 해결된다면 이제 그만 혼자 가게 두어도 괜찮지 않을까? 아이들을 따라 멜버른 시내을 구경하는 동안, 어떻게 답해야 할지 모르는 질문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면서 나를 어지럽게 했다.


태그:#워킹 홀리데이, #멜버른, #차이나타운, #청년실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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