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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아이와 소통하는 방법을 여전히 알 지 못하는 50대 학부모입니다. 삶의 목표를 잡지 못해 표류하는 큰애와, 은퇴 후 삶을 어떻게 보내야 할 지가 현실적인 문제가 된 저의 처지는 다소 비슷한 면이 있습니다. 지구 반대편 먼 이국땅에서 새로운 인생을 만들어 가는 아이의 모습을 지켜 보면서, 점점 심각해지는 청년 실업문제와 베이비 부머들의 2막 인생에 대해 같이 고민해보는 시간을 가졌으면 합니다. 아울러 제 마음을 아이들에게 보여줄 수 있는 기회가 되기를 기대합니다. - 기자말

큰애의 얼굴이 아기 피부처럼 뽀얗고 깨끗해졌다

스테로이드 재제의 효능은 놀라웠다. 큰애가 약을 복용한 후 피부가 눈에 띄게 좋아졌다. 몇 주 후인지 정확히 기억은 나지 않지만, 아침을 먹으면서 바라 본 큰애의 얼굴은 아기 피부처럼 뽀얗고 깨끗해졌고, 등이나 팔·다리도 거의 일반인의 피부와 비슷한 수준이 됐다. 강력한 약의 효능에 더해 젊음, 정상적인 식사, 운동, 충분한 수면시간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면도 있는 것 같다. 내게는 경이로움 그 자체였다.

- 심한 부위에만 바르는데, 일시적이기는 하지만 효능이 놀라웠다.
▲ 큰애가 사용했던 스테로이드 연고 - 심한 부위에만 바르는데, 일시적이기는 하지만 효능이 놀라웠다.
ⓒ 정성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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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큰애가 집에 들어 왔을 때에는 우리는 아침마다 진공청소기를 돌리고 며칠에 한 번씩 이불빨래를 해야 했다. 더운 것을 못 참는 큰애는 거실에서 잠을 잤는데, 내가 아침 운동을 하고 집에 오면 큰애의 잠자리 주변에는 밤새 몸에서 떨어져 나온 각질이 눈처럼 쌓여 있었다. 그 상태에서 화장실에 간다 던지 하면서 그 근처를 부주의하게 돌아 다니면 온 집안에 각질이 뿌려진다. 그걸 진공청소기로 큰애나 내가 청소하는 것이다. 그러다가 어느 날부터 청소기 돌아 가는 소리가 잦아 들었다.

"이제 각질이 별로 안 떨어지네. 좋아지는 게 느껴져?"
"응. 병원에 다니면서 너무 좋았어. 몸이 점점 나아 가는 것이 느껴지고, 각질이 많이 안 떨어 질 때 정말 기분이 좋았어."

전남대병원에는 2주에 한 번씩 가서 진료와 처방을 받는데, 첫 2주가 지난 후 다시 병원을 방문했을 때 빠른 회복 속도에 의사도 놀랐다고 한다. 그러나 스테로이드는 장기간 복용할 수 없는 약이다. 간에 손상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상태가 나아지자 바로 투여량을 줄였고, 나중에는 일상적으로 먹지 않고 상태가 심한 경우에만 먹고 바르는 것으로 처방을 받았다.

스테로이드 투여 중단은 정체상태와 같은 것이었다

스테로이드 투여가 중단되자 바로 아토피의 반격이 있었다. 신기한 마음에 틈날 때마다 만져 보았던 뽀얀 얼굴 피부색이 다시 흐려졌고, 잠자면서 가려움에 습관적으로 긁는 어깨날개와 다리에는 아토피 증상이 눈으로 식별할 수 있을 정도로 나타났다. 예전 같이 심하지는 않았지만 깔끔하게 나아지지는 않는 상태가 지속됐다.

지금 생각해보니 스테로이드 투여 중단은 격렬한 전투 후에 찾아 오는 정체상태와 같은 것이었다. 일방적으로 밀리다가 스테로이드라고 하는 지원군의 도움을 받아 실지를 회복했지만 지원군은 자기 임무를 다하고 철수를 해버렸다. 지금부터는 스스로의 힘으로 싸워야 한다. 지원군이 빠지면서 약간 밀리긴 했지만 예전 같이 형편없이 무너지지는 않는다.

이런 정체상태를 타개하는 방법은 어느 한 쪽이 상대방을 압도해야 하는데 그렇게 되지는 않았다. 불가에서 말하는 불퇴전의 각오로 아토피를 압도할 수 있는 생활습관을 지키는 것도 아니고, 예전과 같이 엉망으로 관리하는 것도 아닌 어정쩡한 상태가 이어지는 것으로 보였다. 그것이 나를 답답하게 했다.

나는 이번 기회에 큰애가 아토피를 압도할 수 있는 체력과 상시적인 방어가 가능한 생활습관을 가지기를 바랐다. 여기에 더해 복학에 대비해 영어공부까지 욕심을 냈다. 그러나 큰애는 나의 이런 압박을 비켜가면서, 예전 같이 심하지는 않지만 패스트 푸드를 여전히 먹고 있었고, 피트니스 센터에서 운동은 하지만, 내가 원하는 '땀으로 운동복이 흠뻑 젖은 상태'까지 가는 것은 아니었다. 영어공부도 하기는 하는 것 같은데 영 성에 차지 않는 것이다.

- 포스코가 잘 나가던(?) 시절에 직원복지를 위해 건립한 3층규모의 체육관이다. 다양한 운동시설을 갖추고 있으며, 국내 최대 규모를 자랑한다.
▲ 큰애가 주로 운동했던 피트니스 센터 - 포스코가 잘 나가던(?) 시절에 직원복지를 위해 건립한 3층규모의 체육관이다. 다양한 운동시설을 갖추고 있으며, 국내 최대 규모를 자랑한다.
ⓒ 정성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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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실망하고 안달하는 모습을 보고 아내는 큰애가 나름대로 최선을 다하고 있으니 너무 몰아 붙이지 말라고 그랬다. 나의 압박을 우회적으로 말린 것이다.

"중독성이 있는 패스트 푸드를 매일 식사 대용으로 먹다가 며칠에 한 번씩 먹는 것 자체가 많이 참는 아니에요? 운동도 매일 하고…, 영어공부도 사실상 호주에서 처음 시작한 셈인데 그만하면 참을성 있게 하는 것이고, 국선도 수련하는 데에도 잘 따라오고. 사범님이 몸이 아주 유연하다고 칭찬했어요. 요리학원에서도 잘 한다고 하고."

그러고 보니 그 말도 틀린 것은 아닌 것 같고, 큰애도 나름의 장점을 가지고 있다. 예를 들면 붙임성이 좋다. 사랑을 받아 들일 줄 안다. 여섯 살 때인가 친구부부와 함께 근처 유원지에 놀러 간 적이 있다. 유원지를 산책하다가 쉬고 있는데 큰애와 동갑내기 친구 아들이 아이스크림을 입에 물고 나타났다.

"아이스크림 누가 사준 거야?"
"저기 아저씨가 줬어."
"처음 보는 너에게 왜 아이스크림을 줘?"
"응 내가 아이스크림 먹고 있는 것 쳐다 보니까 하나 줬어."
"네 친구는?"
"내가 하나 더 주실 수 있냐고 물어봤어."

내막은 이렇다. 한 가족이 놀러 와서 아이스크림을 먹고 있는데 큰애가 그 걸 보고 먹고 싶은 기색을 내비쳤고, 마음씨 좋은 아저씨가 하나 주니까 내친김에 자기 친구 것도 같이 챙긴 것이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평소에 큰애를 보면 이런 모든 과정이 물 흐르듯 자연스럽다는 것이다.

이야기가 길어지지만 이러한 캐릭터는 직장생활에서 아주 중요하다. 회사도 사람이 사는 곳이어서 바닥에는 '정(情)'이 흐른다. 직장 동료는 가장 많은 시간을 같이 하는 사람들이다. 새로운 시작을 준비하는 큰애나 작은 애에게 30여 년의 직장생활을 하면서 느낀 점 가운데 이 말은 꼭 해주고 싶다.

"내 경험에 의하면 직장인들의 업무 능력은 별 차이가 없다. 필요하면 조직에 의해 보완이 된다. 회사 생활은 하루이틀 하는 것이 아니고 수십 년간 이어지는 장기 레이스다. 승진을 하고 임원이 되는 사람은 '사랑을 받아 들일 줄 아는 사람, 인간적인 정(情)을 쌓을 수 있는 사람'이더라."

사랑을 받아 들일 수 있는 것도 재능이다. 자원봉사와 같이 사람들은 남에게 뭘 줄 때에 더 큰 희열을 느낀다. 그 희열을 자연스럽게 느끼게 해주면 그 사람은 후원자가 된다. 물론 노력한다고 모두 가질 수 있는 캐릭터인지는 모르겠다. 큰애는 그런 점은 타고 난 것 같다. 이외에도 여러 가지 장점이 있는데 큰애를 격려한다는 의미에서 나중에 틈틈이 사례와 함께 소개하겠다.

나의 압박이 별로 효과가 없는 것 같고, 당시 나도 많이 바빴기 때문에 이후 나는 큰애 생활에서 한 발 물러나서 관찰하고 격려하는 것으로 포지션을 변경했다. 아내와 큰애가 꾸려 나가는, 내가 보기에는 많이 부족한, 큰애나 아내 생각에는 최선을 다하는 '아토피 치료'와 '유학 준비' 프로세스가 계속됐다.

[요리과정 5단계] '애피타이저, 샐러드 만들기'

윌리엄 앵글리스 1학기 요리과정에 대한 소개를 계속하겠다. 1단계는 '장비사용법'이고, 2단계는 액체를 매개로 한 'Wet Method', 3단계는 요리재료에 직접 열을 가하는 "Dry Method",  4단계는 요리의 기본재료인 '소스와 육수 만들기'였다.

5단계에서는 애피타이저(Appetizers)와 샐러드(Salads)를 만든다. 애피타이저의 의미는 모두 알고 있겠지만 사전에 나온 내용을 그대로 적어 보면, '식사 전 미각을 자극하여 입맛을 돋우고, 그 날 식사의 전체적인 분위기와 요리의 수준을 가늠'하게 하는 역할을 한다. 큰애 말에 의하면 상당히 종류가 많고, 섬세한 손길을 필요로 하는 어려운 과정이라 한다.

1일차: 샐러드(Salads) 만들기 :  4종류의 샐러드를 만든다.

▲ 로켓 샐러드(Rocket Salad): 로켓(Roquette)은 지중해지역이 원산지인 십자화과 식물로 약간 씁쓸하고 향긋한 정통 이탈리아 채소다. 베이비 로켓을 잘 씻어서 채에 담아 물을 뺀다. 여기에 파마산(Parmesan) 치즈를 적당한 크기로 썰어 넣고, 발사믹(Balsamic) 식초를 뿌려서 버무리면 된다.

▲ 시저 샐러드(Caesar Salad): 고급 샐러드에 속하며, 빵을 큐브 사이즈로 잘라서 버터에 살짝 튀기고, 베이컨은 바싹하게 굽고, 달걀을 깨트려 반숙으로 익힌 수란을 올린 화려한 샐러드다.

▲ 코코넛 포치드 치킨 샐러드(Coconut Poached Chicken Salad): 닭 가슴살을 코코넛 밀크가 끓기 직전까지 가열해서 삶아서 샐러드에 넣는다. 라임즙, 망고, 아보카도, 칠리, 양파로 드래싱을 하는 식사 대용까지 가능한 샐러드다.

▲ 샐러드 니수아즈(Salad Nicoise): 감자가 추가되는 샐러드로, 참치, 반숙한 계란, 토마토, 올리브, 콩 등을 올려서 나가는 건강식이다.

2일차: 애피타이저(Appetizers) 만들기 : 3종류의 애피타이저를 만든다.

▲ 티안(Tian of Seafood Cocktail): 3층 탑으로 쌓아 올린 모양의 음식으로, ①삶은 새우와 마요, ② 아보카도, 토마토, ③ 양상추가 들어간다. 파이프 통 안에 재료를 넣어서 모양을 잡은 후 파이프를 제거해서 마무리한다. 보기도 좋고 맛도 있다.

▲ 토마토 바질 브루스케타(Tomato & Basil Bruschetta): 토마토와 브로콜리가 주가 되며, 여기에 바질 페퍼를 섞어서 재료를 만든 후, 바게트 빵을 구워서 그 위에 재료를 올린다. 드레싱으로는 발사믹 소스를 사용한다. 빵이 있어서 포만감을 느낄 수 있다.
▲ 버섯 카푸치노(Cappuccino of Mushrooms served in a demi-tasse): 양파와 버섯을 육수에 푹 삶아서 갈아서 죽 같이 만든다. 건더기로 감자와 리크 셀러리(Leek Celery)가 들어가며, 크림, 우유를 넣는다. 마지막에 버터를 넣어 맛을 더한다.

3일차: 핑거 푸드(Finger Food) 만들기 : : 핑거푸드는 부페나 파티 같은 곳에서 많이 나오는 것으로 들고 다니며 가볍게 먹을 수 있는 음식이다. 짭잘한 맛의 세이버리(Savouries) 2종류와 한 입에 넣고 먹을 수 있는 카나페(Canapes) 3종류를 만든다.

▲ 세이버리(Savouries)
- 페타치즈(Spinach & Feta Cheese Triangles): 페타치즈, 시금치, 양파가 주된 재료이며, 중국요리의 스프링롤과 비슷하다. 시금치, 양파를 페타 치즈와 섞어서 속재료를 만든다. 베이스로는 베이킹 시트를 만두피처럼 이용하며, 시트에 버터를 발라서 속재료를 넣고 돌돌 말아서 오븐에서 익힌다.
 - 치킨 주키니 바이츠: (Chicken & Zucchini bites): 계란말이와 비슷한 모양으로, 치킨과 애호박을 살짝 익혀서 베이컨으로 말아서 고정시켜 준 후 팬에서 겉을 바삭하게 굽고, 오븐에서 나머지 속을 완전하게 익힌다.

▲ 카나페(Canapes)
- 오이선(Tartar of Salmon on Cucumber): 오이를 두툼하게 썰고, 그 위에 연어, 레몬즙, 샬롯, 케이퍼, 올리브 오일, 딜(dill)을 잘 버무려서 올린 것으로 쌍큼한 한입 음식이다.
- 후무스(Hummus piped on Melba Toast): 빵을 구워 그 위에 속재료를 파이핑백으로 쌓은 후 마무리로 초리조(chorizo) 소시지를 위에 올린다. 속재료는 병아리콩, 갈릭, 레몬즙, 타이니를 갈아서 만든다.
- 월도프 샐러드 컵(Waldorf Salad Cup): 사과, 견과류, 샐러리, 치커리를 다이스 컷 한 후에 마요네즈에 버무려서 배추에 올려서 나가는 요리이다.

전반기 요리 7단계 중에서 이제 5단계가 끝났다. 어찌 보면 어려운 것 같고, 어찌 보면 쉬운 것 같기도 하다. 요리의 이름과 재료명을 암기하는 데에는 시간이 좀 걸릴 것 같다.

덧붙이는 글 | 아이와 소통하는 방법을 여전히 알 지 못하는 50대 학부모입니다. 삶의 목표를 잡지 못해 표류하는 큰애와, 은퇴 후 삶을 어떻게 보내야 할 지가 현실적인 문제가 된 저의 처지는 다소 비슷한 면이 있습니다. 지구 반대편 먼 이국땅에서 새로운 인생을 만들어 가는 아이의 모습을 지켜 보면서, 점점 심각해지는 청년 실업문제와 베이비 부머들의 2막 인생에 대해 같이 고민해보는 시간을 가졌으면 합니다. 아울러 제 마음을 아이들에게 보여줄 수 있는 기회가 되기를 기대합니다.



태그:#쉐프, #호주, #맬버른, #아토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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