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검은 사제들>의 배우 김윤석이 30일 오후 서울 팔판동의 한 카페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 헌신적이지만 자애롭지 않은 신부 영화 <검은 사제들>에서 김윤석이 맡은 김 신부는 이름도 없이 어떤 보상도 없이 악령을 퇴치하는데 삶을 바친 인물이다. ⓒ 이정민


어딜 가나 외골수는 집단의 환영을 받지 못하는 법. 무슨 이유에서든 이런 '마이웨이형 인간'을 대부분 피곤해한다. 만약 이런 사람이 실은 세상을 구할 유일한 인물이라면? 영화 <검은 사제들>에 나오는 김 신부가 딱 그런 존재다.

김윤석이 맡은 김 신부는 비밀조직인 장미십자회 소속으로 가톨릭 교단에서도 피하는 대상이다. 악마 들린 소녀를 구해야 한다며 막무가내로 지원을 요청하고, 반대하는 이들을 무시한다. 이런 김 신부를 두고 영화 속 인물들은 '제발 뜬구름 잡지 말고, 현실을 직시하라'며 타박한다.

"악마와 싸우는 게 바로 신부의 현실이지!"

지난 30일 서울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만난 김윤석, 아니 김 신부가 일갈했다. 애써 불편한 진실을 외면하는 영화 속 인물들과 달리 김 신부는 그 안으로 걸어 들어갔고, 그래서 처절하게 외로워야 했다.

보통 사람들의 희생 기억하기

 영화 <검은 사제들>의 배우 김윤석이 30일 오후 서울 팔판동의 한 카페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 되돌아볼 줄 아는 배우 "나를 바라보는 시간이 필요한 때인 거 같다" 인터뷰 중 김윤석이 강조했던 말 중 하나다. 기도든 명상이든 일기를 쓰든 타인이 아닌 자신의 삶을 바라볼 줄 알아야 성장할 수 있다는 지론이다. ⓒ 이정민


평소 오컬트, 즉 신비주의에 관심이 많았던 그다. "UFO(미확인 비행체), 잉카 제국, 마야 문명, 버뮤다 삼각지대 등등" 신비주의라는 말을 꺼내자마자 김윤석이 줄줄 읊는다. "고대 유적과 종교가 결합해 있고, 따지고 보면 연극 또한 종교적 제의가 발전해서 나온 거 아니냐"며 그가 눈을 밝혔다. 신비성 혹은 종교성이 각 예술 분야가 품은 공통분모라는 게 그의 생각이었다.

같은 맥락에서 <검은 사제들>은 판타지의 탈을 썼지만, 충분히 현시점에서 설득력을 가질 수 있었다.

"김 신부의 역할이 바로 영화의 현실감을 깔아주는 거였다. 관객은 김 신부를 돕는 최 부제(강동원 분)를 따라가면 된다. 최 부제의 불안정한 모습에 관객은 감정 이입할 수 있다. 반면, 김 신부는 기복 없는 모습으로 외로움을 감내하면서 자기 일을 해나가야 했다. 가톨릭의 틀을 가지고 왔지만, 결국 영화는 우리 사회를 이야기하고 있다. 개인적으론 평범한 여고생의 희생을 통해 우리 사회에 필요한 마음을 다루는 작품으로 이해했다.

그래서 김 신부가 단순 몽상가가 아니라는 거다. 악마를 쫓아야 하는 현실과 싸워서 이겨야 하는 인물이다. 다만 전형적인 신부처럼 보이지 않아야 했다. 최 부제가 오기 전까지 얼마나 많은 부제가 그를 돕다가 못 버티고 떠났겠나. 조폭 같은 모습도 있어야 했다. 오히려 김 신부가 자애로운 사람이었다면 현실감이 떨어졌을 거다."

분명 비주류다. 귀신을 쫓는다고 세상이 알아주는 것도 아니다. 김윤석은 영화의 메시지가 그 지점에 있다고 강조했다. 김윤석은 "상위 1%가 아닌 무시당하는 비주류가 세상을 구한다, 그들의 소중함을 느끼자는 게 작품의 메시지"라고 말했다.

"진정한 자신을 마주해보길"

 영화 <검은 사제들>의 배우 김윤석이 30일 오후 서울 팔판동의 한 카페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 "인생을 즐겨라" 인터뷰 중 혹시 좋아하는 성경구절이 있는지 물으니 난색을 표하기도 했다. 대신 그는 "즐기자. 즐기는 자는 당하지 못한다"고 말했다. ⓒ 이정민


그의 아내를 비롯해 가족이 대부분 천주교 신자다. 정작 본인은 독실한 신자가 아님을 밝히면서 그는 "영화를 본 관객들이 기도의 중요성을 느꼈으면 좋겠다"는 속내를 전했다. "기도라는 게 결국 자신을 만나는 시간이기 때문"이란 게 이유였다.

"나란 존재가 얼마나 나약한 존재인지, 못난 존재인지 바라보고 스스로 극복할 줄 알아야 한다. 자기를 가꾸고 영혼을 달래는 시간을 가지라는 거다. 예전엔 일기라도 다들 썼는데 요즘은 잘 안 쓰잖나. 트위터나 페이스북 등 SNS를 통해 남에게 보여주는 일기는 쓰지. 또 타인의 마음을 건드리고 긁는 댓글을 달기도 하고. 이게 모두 자기를 천박하게 만드는 일이다. 남을 바라볼 시간에 자기를 보자는 거다. 생각보다 우린 너무도 자주 남을 비웃고, 무시한다."

<검은 사제들>의 언론 시사 직후 "배우는 구도자와 같다"고 말한 이유도 같은 맥락이었다. 인간을 표현하는 직업이기에 매번 자신을 비우고 채우길 반복한다. 그 과정이 지난하고 힘들며 쉽사리 인정받을 수도 없다는 걸 김윤석은 경험을 통해 잘 알고 있었다. "지금도 어려운 여건에서 연기하는 선배들이 많다"라며 "자기 인기를 믿고 까불지 말고, 겸손하게 접근해야 한다"고 그가 강조했다.

물론 매번 자신을 내치고 깎는 채찍만이 능사는 아니다. 그는 최선을 다했으면 그에 맞는 상도 스스로 줘야 한다는 주의였다. "나도 그렇고, 다들 힘들게 사는데 만날 채찍만 맞을 순 없잖나!"라며 그가 호탕하게 웃어 보였다.

이런 인간미가 배우 김윤석의 힘이었다. "애써 꾸미지 않는다, 뭔가 설득하려고 의도를 보이는 순간 신빙성은 없어진다"며 그는 "그런 마음으로 자연스럽게 오래 일하고 싶다"고 일찌감치 품고 있던 목표를 드러냈다.

"부를 쌓기보단 나이가 들어도 좋아하는 일을 해야 한다. 그래야 사람을 만날 수 있고, 외롭지 않다. 이건 사실 한대수 선생의 말이다. 돈이 억만금 있으면 뭘 하겠나. 말년엔 다 소용없다!"

이 간결한 말에 그의 철학이 오롯이 담겨 있었다. 좋아하는 일을 통해 인정받기. 이미 인정받았다고 남들은 생각하겠지만, 여전히 그에겐 진행형이었다.

"<검은 사제들>이 낯설게 보일 수도 있지만, 이런 새로운 시도가 한국 영화의 질적 향상에 이바지할 거다. 영화는 곧 다양성이 힘이잖나. 앞으로도 새로운 시도가 꾸준히 나올 수 있는 환경 마련에 이 작품이 조금이나마 기여할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난 만족할 수 있다."

 영화 <검은 사제들>의 배우 김윤석이 30일 오후 서울 팔판동의 한 카페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 신부가 된 배우 영화 <검은 사제들>에서 귀신을 쫓는 김 신부 역의 김윤석. 김 신부는 거친 행동과 입담으로 사람들에게 진정성을 의심받지만 누구보다도 자신의 의무에 대해 치열하게 반응하는 인물이다. ⓒ 이정민



○ 편집ㅣ곽우신 기자


김윤석 검은 사제들 강동원 카톨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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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메가3같은 글을 쓰고 싶다. 될까? 결국 세상을 바꾸는 건 보통의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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