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배성우가 15일 오후 서울 종로구 한 카페에서 <오마이스타>와의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배성우는 영화 <더 폰>에서 권력가의 사주를 받고 변호사 고동호(손현주 분)의 아내(엄지원 분)을 죽이는 악역 연기를 펼쳤다.

배우 배성우. 단순히 다작 배우로 눙칠 수는 없다. 낯을 가리는 성격이면서도 카메라 앞에선 돌변하는 그다. 코믹 연기에서 악역까지 그의 연기 스펙트럼이 매우 넓다. 22일 개봉인 영화 <더 폰>과 <특종: 량첸살인기>에 모두 출연할 만큼 현재 영화계에서 가장 바쁜 배우기도 하다. ⓒ 유성호


우선 그에게 사과부터 했다. 2년 6개월 전 배성우에게 했던 질문 때문이다.

당시 배성우에게 "같은 극단(배성우는 극단 학전출신이다) 출신 배우, 그리고 연극 <지하철 1호선> 출신 배우들(김윤석, 설경구, 조승우 등)은 대부분 부상했는데 그간 주목 받은 작품이 적어 초조함은 없는지" 물었던 적이 있다. 우문이었다. 지난 19일 서울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다시 만난 그에게 "보기 좋게 그때 질문을 깨버렸다"고 상기시키니 웃는다. "초조함이 없었겠나, 다만 그걸로 날 압박하진 않았다"며 나지막이 그가 말했다. (예전 인터뷰 보기 : 연기-춤-노래까지 마스터...배성우, 알고 보면 만능 연기꾼!)

그때 인터뷰 이후 그는 3편의 주연작을 포함해 스무 편이 넘는 작품에 출연했다. 왕성한 활동 덕에 국내 최고 다작 배우로 꼽히는 이경영과 비교될 정도다.

공교롭게도 22일 개봉하는 두 편의 한국 영화에 모두 배성우가 출연한다. <더 폰>과 <특종:량첸살인기>(이하 <특종>)다. 촬영 시기는 달랐지만 각 배급사 사정으로 같은 시기에 개봉하게 된 것에 그는 멋쩍어했다. 두 작품에서 그는 모두 형사로 분하는데, <더 폰>에선 타락한 전직 형사라면, <특종>은 무던하게 사건을 파는 현직 형사다. 배성우의 팬에게는 서로 다른 그의 모습을 볼 수 있는 좋은 기회다.

뜨는 나쁜놈

 영화 <더 폰>의 한 장면. 배성우는 극중 변호사 고동희(손현주 분)의 아내(엄지원 분)를 죽이는 전직 형사 도재현 역할을 맡았다.

영화 <더 폰>의 한 장면. 배성우는 극중 변호사 고동희(손현주 분)의 아내(엄지원 분)를 죽이는 전직 형사 도재현 역할을 맡았다. ⓒ NEW

배성우의 진가는 악역에서 드러나고 있다. 본인은 "밝고 웃기는 역을 더 많이 했다"며 '악역 전문'이라는 타이틀을 부정하지만, 촬영 분량이 상대적으로 많았고 관객들에게 그를 어필한 건 분명 흔히 말하는 '나쁜 놈' 역할로다. 특히 <김복남 살인사건의 전말>(2010)의 성폭행범, <몬스터>(2014)의 사이코패스, <오피스>(2014)의 연쇄살인 직장인 역으로 그는 강렬한 인상을 심어줬다.

<더 폰>에서 그 면모가 분명히 드러났다. 권력가의 사주를 받고 변호사 고동호(손현주 분)의 아내(엄지원 분)을 죽이는 설정에 배성우는 "다른 작품의 캐릭터보다 분명 악한인 건 맞다"고 인정했다. 그러면서도 그는 "(가슴으로) 이해받거나 동정 받을 캐릭터는 아니지만, (머리로는) 이해 가능한 캐릭터"라고 설명했다.

 영화 <특종:량첸살인기>의 한 장면

영화 <특종:량첸살인기>의 한 장면. 이 영화에서 배성우가 맡은 역할은 악역은 아니다. 그런데 우연찮게도 같은 날 개봉하는 <더 폰>과 같이 형사 역할이다. <더 폰>에서는 타락한 전직 형사라면, <특종>은 무던하게 사건을 파는 현직 형사다. 배성우의 팬에게는 서로 다른 그의 모습을 볼 수 있는 좋은 기회다. ⓒ 롯데엔터테인먼트

"다른 스릴러에선 절대악이라든가 사이코 패스가 주로 등장하는데, 이 사람은 어찌 보면 생활형 범죄자다. 그게 신선했다. 사실 영화마다 악함의 정도는 다르다. 사람이 본래 여러 모습을 가지고 있잖나. 내 입장에선 작품마다 캐릭터보단 거기에 어울렸던 한 사람으로 기억되는 게 좋다. 물론 일단 이야기가 원하는 긴장감을 만들어내는 게 궁극적 목표다. 여기에 내가 맡은 역할의 성격이 실감나고 설득력까지 갖추면 더 좋지."

악역의 철학

그가 말한 설득력은 작품 내 주어진 이야기 안에서 작동돼야 했다. 종종 배우들이 자기 배역을 이해하기 위해 시나리오 외의 이야기를 덧붙이는 등 '전사(前史)'를 만들곤 하는데, 배성우는 이에 대해 회의적이었다. 그는 대본 분석에 상대적으로 시간을 많이 할애하진 않는다. 자칫 영화가 달려가야 할 본질에서 벗어날 수도 있다는 이유였다.

 영화 <오피스> 한 장면

영화 <오피스> 한 장면. 여기서 그는 직장내 왕따의 피해자이자 연쇄살인범의 범인으로 열연했다. ⓒ 리틀빅픽쳐스

"물론 연기를 위해 맡은 인물의 뒷이야기가 필요하긴 하지만, 거기에 많이 의존하진 않는다. 영화는 곧 삶의 엑기스이지 삶 자체는 아니잖나. 두 시간동안 누군가의 삶을 보는 재미가 있어야 한다. 삶 전체를 담으려 한다면 지루함만 들 수 있다는 얘기다. 관객이 돈을 주고 영화를 보는 건 결국 그 엑기스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과하게 인물의 뒷이야기를 만들다보면 대본의 본질을 벗어나기도 하더라. 물론 무술이나 춤 등 기술적으로 뭔가 배워야 할 땐 그만큼의 시간을 할애하는 게 맞고."

그래서일까. 그가 맡은 역할이 기능적으로는 비슷해 보일지라도 그의 연기 자체가 지루하게 느껴지진 않는다. 악역마다 차별성을 두고 연기해서? "변신을 의도하는 건 스스로 꼴 보기 싫다고 생각한다"는 답이 돌아왔다.

"영화마다 서로 다른 몰입이 필요하다. 교과서 같은 이야기지만, 내가 맡은 인물이 다른 영화와 차별화되려고 생긴 게 아니라 그 자체로 존재하듯, 그냥 그 작품 안에서 살아가려 한다. 물론 순간순간 표현법이 겹치지 않도록 노력하는 건 있다. 촬영 전 내가 분석한 것도 중요하지만 촬영 때 그 인물을 느끼려고 한다. 관객 분들은 작품을 보러오는 거지 메소드 연기(실제로 해당 배역이 된 듯한 연기)를 보러오는 건 아니니까."

권선징악 또는 분명한 선악구도 설정은 구식이 된지 오래다. 치밀한 이야기일수록 선악구분은 모호해지기 십상이고, 이는 곧 이야기의 사실성과 연결된다. 배성우가 추구하는 연기 역시 선-악의 구분이 아닌 진짜 사람을 표현하는 것에 있었다. "그 이야기 안에서 자기 역할을 하는 인물, 영화의 질적 향상에 도움이 되는 연기를 하고 싶다"고 그가 설명했다.

악역에서 벗어나기

 배우 배성우가 15일 오후 서울 종로구 한 카페에서 <오마이스타>와의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배성우는 영화 <더 폰>에서 권력가의 사주를 받고 변호사 고동호(손현주 분)의 아내(엄지원 분)을 죽이는 악역 연기를 펼쳤다.

영화 <더 폰>에 함께 출연한 손현주는 <오마이스타>와 인터뷰 중 나온 배성우 이야기에 "모든 걸 담아낼 수 있는 얼굴"이라 전하기도 했다. 그 의미를 되묻자, "묘한 얼굴, 어떤 역할이든 자기 걸로 소화할 수 있는 배우"라고 설명했다. ⓒ 유성호


흔히 배우들이 악역에 몰입한 나머지 촬영 직후 거기서 빠져나오는 데 고통을 느끼곤 하는데, 배성우는 "거기서 좀 자유로운 편"이라 말했다. "악역일수록 산뜻하고 편하게 풀어야 한다"는 그의 지론이 비법이었다.

"결국 사람은 입체적이니까. 어두운 역할이라고 마음까지 무거워지면 뭔가 잘못하고 있는 거라고 생각한다. 인물을 연구하고 연습할 땐 고통스러울 수 있지만 결국 표현은 가장 간단명료하게 하는 게 좋다는 걸 연극 공연을 통해 느껴왔다. 물리적이든 화학적이든 내가 가장 편하게 표현할 방법을 찾는 거다.

태어나서 힘들기 위해 사는 사람이 과연 있을까. 살다 보니 힘들고 괴로운 거지. 그래서 아무리 복잡한 감정 연기라고 해도 내게 맞게 소화하려 한다. (관객이) 가슴으로 인물을 느끼게 하려면 불편한 캐릭터일수록 편하게 연기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근데 이게 어렵지(웃음). 하지만 본질 같다."

악역 이야기에서 악역을 빼니 이야기가 남는다. 최근 꾸준하게 한국형 스릴러가 다루는 이야기를 그 역시 주목하고 있었다. 인물이 처하는 위기 상황들이 대부분 사회구조 문제와 연관돼 있음을 배성우도 인정했다. 그는 "치열하게 살아가는 인물들 외에 그 주변에서 손도 안대고 이득을 취하는 사람들이 분명 있다"며 "비단 한국 사회 문제만은 아니겠지만 점점 상식이 통하지 않는 사회가 되는 것 같다"고 조심스럽게 말했다.

그의 질주는 계속될 예정이다. <열정 같은 소리하고 있네>, <엽기적인 두 번째 그녀> 등 개봉을 기다리는 작품이 여럿 있다. 분명한 건 지금이 바로 그를 진가를 가늠할 호우시절이라는 사실이다.


배성우 더 폰 손현주 조정석 특종 : 량첸살인기
댓글1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오메가3같은 글을 쓰고 싶다. 될까? 결국 세상을 바꾸는 건 보통의 사람들.

오마이뉴스 사진기자. 진심의 무게처럼 묵직한 카메라로 담는 한 컷 한 컷이 외로운 섬처럼 떠 있는 사람들 사이에 징검다리가 되길 바라며 오늘도 묵묵히 셔터를 누릅니다.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