묘하게 빠져든다.

알 수 없는 외국말을 늘어놓거나 대놓고 외모를 놓고 면박을 줘도, 권력의 편에 서서 마음껏 전횡을 일삼아도, 어쩐지 그들에게는 특별한 매력이 있다. 이들은 바로 최근 방영 중인 드라마 SBS <육룡이 나르샤>의 길태미(박혁권 분), MBC <그녀는 예뻤다>의 김라라(황석정 분)다. 이들의 공통점은 화려한 치장으로 자신을 감싸고 있다는 것, 그리고 남다른 존재감으로 드라마의 신 스틸러 역할을 톡톡히 해내고 있다는 것이다.

참, 잠깐이지만 180도 다른 모습으로 등장했다는 점도 빼놓을 수 없다. 박혁권은 길태미의 쌍둥이 형이자 은둔한 검의 고수 길선미로, 황석정은 넉살 좋은 고깃집 사장으로 등장해 1인 2역을 소화했다.

어르신, 길태미의 눈을 보셔요

 SBS <육룡이 나르샤>에서 길태미 역을 맡은 배우 박혁권

SBS <육룡이 나르샤>에서 길태미 역을 맡은 배우 박혁권 ⓒ SBS


<육룡이 나르샤> 제작발표회에서 공개됐던 하이라이트 영상을 기억한다. 김영현-박상연 작가의 전작 <뿌리 깊은 나무>(2011)에서 근엄한 선비 정인지로 분했던 박혁권과는 또 다른 박혁권, 길태미의 모습이 영상 안에 있었다. 어딘가 권태로운 표정에 한 눈에 보기에도 '빡센' 눈화장을 한 그의 모습을 보고 '이따금 사극에 등장하는 책사 캐릭터겠거니' 지레짐작했다. MBC <주몽>(2006)에서도 긴 머리에 여성적 분위기를 풍기는 책사 사용(배수빈 분)이 등장하지 않았던가.

그러나 첫 방송에서부터 기대(?)는 산산이 깨어졌다. 새침하게 젓가락질을 하고, 손톱을 다듬으며 나쁜 짓을 모의하는 길태미는 알고 보니 고려의 제일가는 검사였다! 이런 캐릭터 상의 '괴리감'은 곧 시청자들이 길태미에 빠지게 되는 입구가 됐다. 첫 방송부터 심상치 않았던 반응은 그가 한껏 꼬리를 뺀 아이라인에 밝은 파랑, 보라, 녹색 아이섀도우를 옷 색깔과 맞춰 꼼꼼히 그러데이션하고 나타날 때마다 배가 됐다. 이제는 그가 등장할 때마다 환호하는 이들이 길태미를 위한 그림을 그리고 캡쳐 화면을 공유한다. '길태미 메이크업'이라는 연관검색어까지 생겼을 정도다.

<육룡이 나르샤> 측은 뜻밖이라는 반응이다. 한 관계자는 "팩션 사극인 만큼 틀에 박혀 있지 않고 과감하게, 자유롭게 설정해보자는 게 제작진의 의견이었다"며 "그래도 사실 혹평을 들을까봐 걱정을 많이 한 게 사실인데, 반응이 좋다 보니 이제는 '앞으로 무슨 색을 쓸까'가 분장팀 스태프의 최대 고민이 됐다"고 말했다. 이어 이 관계자는 "처음엔 배우(박혁권) 본인도 다소 걱정했지만, 최근 부쩍 현장에 일찍 오는 눈치다"라고 전했다.

박혁권의 소속사인 가족액터스 관계자도 <오마이스타>에 "남자 배우는 보통 사극 분장에 한 시간 정도가 걸리는데, 길태미의 경우 기본 한 시간 반에서 두 시간이 걸린다, 지우는 것도 배로 시간이 든다"고 귀띔했다. 박혁권 본인은 2G폰을 쓰는 터라 직접 반응을 확인하지는 못하지만, 지인들과 스태프들이 지금의 뜨거운 분위기를 속속 전하고 있다고. 관계자는 "아직도 조금 어색해 하긴 하지만, (반응이 좋다 보니) 앞으로도 잘 해야 할 것 같다고 하더라"고 덧붙였다.

그대여, 좀 더 '모스트스럽게'

 MBC <그녀는 예뻤다>에서 김라라 역을 맡은 배우 황석정

MBC <그녀는 예뻤다>에서 김라라 역을 맡은 배우 황석정 ⓒ MBC


그런 길태미를 두고 한 누리꾼은 이렇게 댓글을 달았다. '모스트스럽다.' 대체 무슨 말일까. <그녀는 예뻤다> 속 배경인 잡지사 모스트 코리아를 빗댄 말이다. 모스트 코리아는 아름다웠던 과거에서 역변한 김혜진(황정음 분)과 사춘기 전까지 찌질 그 자체였다가 환골탈태의 기적을 이룬 지성준(박서준 분)이 성인이 되어 재회하는 곳으로, 이들의 직장이기도 하다.

그 곳에서 단연 돋보이는 존재는 편집장 김라라다. 이탈리아에서 생활했다는 설정 탓에 한국말 반 이탈리아 말 반을 섞어 쓰고, 왠지 낯간지러운 말투로 상대방을 '그대여'라고 불러도, 모회사 회장의 동생이라는 이유로 낙하산 편집장이 되고도 그걸 당당하게 밝혀도, 미워 보이지만은 않는 건 '모스트스럽다'는 허세 속에서도 감출 수 없는 코믹함 덕분이다. 여기에 레이디 가가, 메릴 스트립, 샤론 스톤 등을 모방한 화려한 패션은 덤이다.

황석정의 활약은 그가 고정 출연하고 있는 예능 프로그램 MBC <나 혼자 산다>에서부터 일찌감치 예고됐다. 민낯으로 등장해 평소 로션조차 잘 바르지 않는다며 우려 섞인 모습을 보였던 황석정은 변신이 끝나자마자 박서준이 어금니를 꽉 깨물고 웃음을 참으며 연기를 이어갈 정도로 낯선 모습을 선사했다. 당시 촬영 중이던 정대윤 PD마저 "시간이 많아서 잘라야 하는데 선배님 장면은 편집할 수가 없다, 너무 재미있다"며 웃음을 보이기도 했다.

<그녀는 예뻤다> 측은 <오마이스타>에 "김라라의 화려한 모습은 정대윤 PD가 (김라라가) 변화무쌍한 캐릭터가 되었으면 좋겠다고 해서 만들어진 것"이라며 "처음 황석정이 촬영장에 등장했을 때 현장의 모두가 '빵' 터졌다"고 전했다. 이어 <그녀는 예뻤다> 측은 "황석정이 스타일리스트와 상의도 하지만 거의 직접 아이디어를 내서 의상을 준비하고 있다"며 "특이하고 특별한 시도를 하는 것에 대해 굉장히 즐거워하고, 본인도 기쁘게 촬영을 진행하고 있다"고 밝혔다.

기다려라, '아가씨'가 간다

 SBS <마을-아치아라의 비밀>에서 아가씨 역을 맡은 배우 최재웅

SBS <마을-아치아라의 비밀>에서 아가씨 역을 맡은 배우 최재웅 ⓒ SBS


길태미와 김라라에 이어 또 하나, 화제를 모으리라 기대할 만한 캐릭터가 등장할 전망이다. SBS <마을-아치아라의 비밀>(이하 <마을>)의 '아가씨'다. 배우 최재웅이 맡은 이 역할은 지난 8일 방송 말미 예고편에 잠깐 등장했다.

<마을> 측에 따르면 아가씨는 14일 방영되는 3회부터 본격적으로 출연한다. '아가씨'는 마을의 유명한 복장도착증 환자로, 악명에 어울리지 않는 선한 인상을 가진 인물로 알려졌다. 제작진은 "'아가씨' 역시 비밀을 간직한 인물"이라며 "그가 어떤 비밀을 감추고 있고, 그것이 밝혀지는 순간 마을에 어떤 파장을 불러일으킬지 기대해 달라"고 전하기도 했다.

최재웅은 어쩌면 이 역할에 가장 적합한 배우일지도 모른다. 2011년과 2014년 뮤지컬 <헤드윅>에서 주인공이자 자유를 위해 남성성을 포기한 트렌스젠더 록 가수인 헤드윅 역을 맡은 바 있기 때문이다. <마을> 측 관계자는 "이용석 PD가 대본리딩 당시 최재웅의 <헤드윅> 경험을 언급했다"며 "캐스팅 당시에도 <헤드윅>을 했다는 것이 영향을 준 것으로 알고 있다"고 전했다.

최재웅의 생각은 어떨까. 그는 <오마이스타>에 "경험이 있어 (다시 여장을 하는 것이) 낯설지는 않았다"며 "드라마에서는 그리 흔하지 않은 인물 유형이라 조심스럽고 재미있게 촬영하고 있다"고 소감을 밝혔다. 이어 촬영장에서의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로 "여장한 채로 남자화장실에 가야할 때 눈치가 보이는 정도"라고 답한 최재웅은 "세상에는 다양한 사람들이 정말 많다, '아가씨' 역시 그 중 일부라고 생각하고 상황에 충실하게 연기하려 노력하고 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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