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c <내 딸, 금사월>(이하 <금사월>)은 <왔다! 장보리>(이하 <장보리>)의 시즌 2라고 불려도 좋을만큼 유사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같은 작가가 집필했다는 것을 염두해 두더라도 출생의 비밀, 뒤바뀐 운명, 악녀, 복수 등 소재의 유사성이 강하다고 할 수 있다.

<장보리>처럼 <금사월>도 일단 승승장구를 이어가고 있다. 자극적인 소재를 풀어나가는 능력이 남다른 김순옥 작가의 극본은 대놓고 '막장'을 추구하지만, 눈을 뗄 수 없게 만드는 전개를 보이며 시청자를 사로잡는다. 그러나 <장보리>와 다른 결정적인 부분이 하나 있는데, 그것은 바로 악녀의 존재감이다.

<장보리>는 악역 연민정(이유리 분)을 위한 드라마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연민정은 모든 사건의 갈등을 일으켰고 모든 문제의 중심에 섰다. 답답한 주인공 장보리(오연서 분)에 비해 자신의 감정을 여과없이 분출해내는 연민정은 시청자에게 카타르시스를 선사했고, 결국 이유리는 압도적인 지지율로 연말 연기대상서 대상을 거머쥐었다. 이는 연민정의 캐릭터 자체가 강력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개연성 없는 캐릭터를 설득력있게 연기한 배우 이유리의 내공이 빛을 발한 덕분이기도 했다.


김순옥 작가의 극본 속에서 악역의 악행은 특별한 이유가 없다. 못되게 타고났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남의 것을 탐내고, 질투하며 자신의 행동을 정당화한다. 때문에 이 악역에 매력을 더하는 것은 온전히 연기자의 몫이다. 잘못하면 단순히 드라마의 긴장감을 높이는 도구로만 이용될 가능성도 있다. 연기자가 어떻게 연기하느냐에 따라 악역으로 스타가 되느냐, 단순히 악랄한 역할을 맡았다는 필모그래피 한줄이 더해지느냐가 결정되는 것이다.

주인공을 위협할 정도의 위력을 과시했던 연민정과 달리, <금사월>의 악역인 오혜상(박세영 분)은 점점 더해가는 악행의 수위에도 불구하고 존재감이 돋보이지 않는다. 최초로 악역을 맡은 배우 박세영의 내공이 이유리의 그것보다 부족한 탓도 있을 것이다.

금사월의 친부모는 왜 비호감이 됐나

그래서 연민정 하나만으로도 드라마의 모든 갈등구조를 형성할 수 있었던 <장보리>와 달리, <금사월>에는 다른 악역들이 존재한다. 대표적인 인물이 바로 강만후(손창민 분)다. 자신의 목적을 위해 사기도 서슴지 않고 신득예(전인화 분)와 결혼해 그의 인생마저 뒤흔들어 놓은 장본인인 강만후는 드디어 악녀 오혜상과 손을 잡고 주인공 금사월(백진희 분)죽이기에 나서 시청자의 분노를 일으키고 있다.

그러나 그보다 더 큰 분노를 일으키는 인물은 따로 있다. 바로 금사월의 친부인 오민호(박상원)다. 그는 오혜상의 계략으로 오혜상을 친딸로 알고 살아가며, 진짜 친딸인 금사월을 대놓고 차별하는 인물이다. 강만후는 한눈에도 악인이지만, 오민호는 훌륭한 인품을 가진 것으로 스스로를 포장했지만 누구보다 천박한 감정을 드러내는 모습을 보인다.

특히 오민호가 200년 된 소나무가 없어진 것에 대해 다짜고짜 금사월을 의심하다가도, 금사월이 소나무를 찾아오자 어깨를 감싸안으며 칭찬하는 장면은 이 인물의 이중성을 소름끼치게 보여주는 장면이 아닐 수 없었다. 또한 아무리 계략에 빠졌다고는 하나, 소나무 사건이 금사월의 자작극이라고 믿어버리는 모습은 순진하다 못해 멍청해 보이기까지 한다. 자신이 친딸이라고 믿고 있는 오혜상의 잘못에는 관대하지만, 20년간 착한 딸의 역할을 다 해온 금사월에게는 색안경부터 끼고 보는 이중성은 이 인물에 대한 동정의 여지마저 앗아간다.


복수를 다짐한 금사월의 친모 신득예 역시 인품으로만 따지면 악인 못지 않은 인물이다. 금사월이 자신의 친딸임을 알지 못했을 때는 그를 살아남았다는 이유만으로 미워하며 증오의 눈빛을 숨기지 않더니, 친딸이라는 이유만으로 갑자기 태도를 바꾼다. 이는 강만후처럼 자신이 가진 것 이외에 나머지는 어떻게 돼도 좋다는 이기적인 태도에 다름 아니다.

당초 <금사월>은 오민호를 '가정에서도 바깥에서도 따뜻한 인품을 지닌 존경할 만한 사람'으로, 신득예는 '아름다운 외모만큼이나 온화하고 반듯한 성격의 소유자'라고 설정했다. 그러나 지금의 <금사월> 속 오민호와 신득예에게서는 이 같은 설정을 느끼기가 어렵다. 그저 오민호의 인품은 위선으로, 신득예의 따뜻한 본성은 자기만 아는 이기심으로만 보이기 때문이다.

이는 작가가 그들이 변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설득력있게 그려내지 못했다는 방증이다. 다행히 이야기 전개 구조가 흥미로운 탓에 시청자의 시선은 고정되어 있지만, 주인공 금사월을 제외하고는 도저히 이해하기 힘든 캐릭터의 변화는 드라마의 전체적인 완성도에 흠집을 내고 있다. '어쨌든 재밌으면 된다'는 시청률 지상주의 때문일까, 가슴 한 편에 아쉬움을 지울 수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