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엘리펀트>의 포스터

영화 <엘리펀트>의 포스터 ⓒ HBO Films


거스 반 산트의 영화 <엘리펀트>(Elephant, 2003)는 1999년 미국 컬럼바인 고등학교 총기 난사 사건을 소재로 삼은 영화입니다. 영화는 동일한 사건을 여러 명의 시각으로 바라보는 구성을 사용합니다. 이를 통해 총기 난사 사건 한 가운데 있었던 학생들의 일상에 귀를 기울임과 동시에 사건 전체를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데 성공합니다. 작품성을 인정받아 2003년에는 칸영화제 황금종려상과 감독상을 수상하기도 했습니다.

영화 <엘리펀트>는 사건의 희생자들뿐만 아니라 가해자들의 이야기도 다루고 있습니다. 그러나 영화는 알렉스와 에릭이라는 이름의 두 가해자들을 괴물로 묘사하지 않습니다. 이들이 왜 학생들과 교사들에게 총을 겨누게 되었는지 이유도 구체적으로 설명하지 않습니다. 두 친구가 총기 난사라는 자신들만의 계획을 세우고 그 계획을 실행하기 위해 차근차근 준비를 하는 과정을 보여줄 뿐입니다.

영화는 알렉스와 에릭의 일상도 보여줍니다. 이 둘은 알렉스의 집에서 자주 어울립니다. 알렉스는 피아노 앞에 앉아 베토벤의 <엘리제를 위하여>와 <월광>을 아름답게 연주합니다. 알렉스가 피아노를 연주하는 동안 에릭은 곁에서 컴퓨터 게임을 합니다. 알렉스의 피아노 연주는 거의 5분 동안 이어집니다. 알렉스가 실수를 거듭하다가 마침내 연주를 끝마치기 전까지 말입니다.

여기에서 관객들은 모순을 느끼게 됩니다. 알렉스와 에릭이 우리의 주변에서 쉽게 볼 수 있는 평범한 고등학생들과 크게 다를 바가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되기 때문입니다. 방과 후에 피아노 연주를 즐기고, 친구의 집에 놀러가 컴퓨터 게임을 하던 고등학교 학생들이 수많은 사상자를 낸 총기 난사 사건을 일으킬 것이라고 누가 상상할 수 있었겠습니까?

영화의 소재가 된 1999년 컬럼바인 고등학교 총기 난사 사건 이후로도 미국의 학교에서는 유사한 사건이 계속 발생하고 있습니다. 2007년 버지나아 공과대학, 2012년 코네티컷 주 샌디 후크 초등학교, 2015년 오리건 주 대학교가 그 예입니다. 총기 난사 사건이 일어날 때마다 언론은 용의자의 범죄 동기에 대해서 집요하게 파고듭니다.

하지만 거스 반 산트는 알렉스의 피아노 연주 장면을 통해서 끔찍한 범죄를 저지른 이들은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평범한 십대 소년들 중의 일부였으며, 그 누구도 그들이 왜 범죄를 저지르게 되었는지 확실하고도 분명한 이유를 알 수 없다는 사실을 이야기합니다. 슬프지만 부정할 수 없는 진실이 베토벤의 음악에 실려 귓가에 들려오는 순간입니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하상미 시민기자의 개인 블로그(http://on-movie-monday.blogspot.kr)에도 실렸습니다.
영화 엘리펀트 거스 반 산트 총기 난사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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