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신데렐라>의 한 장면. 신데렐라(안시하 분)에게 청혼하는 크리스토퍼 왕자(엄기준 분).

뮤지컬 <신데렐라>의 한 장면. 신데렐라(안시하 분)에게 청혼하는 크리스토퍼 왕자(엄기준 분). ⓒ ㈜엠뮤지컬아트


눈뜬장님이 된 듯했다. 분명히 눈을 뜨고 무대를 바라보고 있는데, 어색할 새도 없이 의상이 바뀌어버려서였다. 누더기를 입은 신데렐라는 이내 하얀색 드레스 차림이 되었고, 계모에게 뜯긴 의상은 잠깐 조명이 어두워진 사이 황금빛 드레스로 탈바꿈했다. 아무리 예상치 못한 타이밍이라고 해도, 의상이 여러 번 바뀌는 동안 한 번도 못 볼 수는 없었다. 집중 또 집중했지만, 신데렐라 의상의 비밀은 끝내 풀지 못했다. 다만 비교적 난이도가 낮은 요정 마리의 변신 방법만 알아챌 수 있었다.

이번에 국내 무대에서 만나게 된 뮤지컬 <신데렐라>는 2013년 미국 브로드웨이에서 첫선을 보인 뮤지컬이다. <신데렐라> 하면, 누구나 다 아는 이야기 아니던가. 계모와 두 언니에게 학대당하다시피 하던 재투성이 신데렐라가 요정의 도움을 받아 호박 마차를 타고 왕자님의 무도회에 간다는 내용. 신데렐라는 자정까지밖에 지속되지 않는 마법의 효력 탓에 무도회장을 급히 빠져나오느라 구두 한 짝을 잃어버리고, 그 구두를 통해 왕자와 다시 만나 사랑을 이룬다. 뻔한 이 이야기를 흥미롭게 이끌어가려면 어떤 장치가 필요할까?

 뮤지컬 <신데렐라>의 한 장면. 빼앗긴 집과 땅을 찾으려는 장 미쉘(박진우 분)과 마을 사람들.

빼앗긴 집과 땅을 찾으려는 장 미쉘(박진우 분)과 마을 사람들. ⓒ ㈜엠뮤지컬아트


뮤지컬로 재탄생한 <신데렐라>는 이야기의 변주를 택했다.

우선 첫 번째는 숲에 살던 미친 마녀가 알고 보니 요정이었다는 설정이다. 칙칙한 누더기를 뒤집어쓴 마리(서지영 분)는 신데렐라(안시하 분)가 무도회에 가고 싶어 하던 순간, 분홍빛 드레스를 입고 등장해 주문을 외운다. 마리는 초반부부터 신데렐라의 곁을 맴도는 인물이다. 평소 한없이 긍정적인 신데렐라는 다들 본체만체하는 마리에게 진심을 다했고, 마리는 신데렐라에게 꼭 필요한 존재가 되었다.

두 번째는 신데렐라가 그리 호락호락하게 유리구두를 벗어던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우리가 아는 원작 속 신데렐라는 단번에 유리구두를 남기고 사라지지만, 뮤지컬 속 신데렐라는 그렇지 않다. 잠시 고민하긴 하지만 아무런 흔적도 남기지 않은 탓에 크리스토퍼 왕자(엄기준 분)는 더욱 애가 탄다. 그 결과 무도회에 이어 또 한 번 연회가 열린다. 이곳에 다시 나타난 신데렐라는 혁명가 장 미쉘(박진우 분), 마을 사람들과 크리스토퍼 왕자를 만나게 하고는 다시 사라진다. 이번엔 구두 한 짝을 과감히 남겨두고서.

마지막 차별점은 착한 언니다. 원래 계모 마담(이경미 분)의 두 딸은 엄마 못지않게 심술궂은 인물로 그려졌지만, 큰언니인 가브리엘(가희 분)은 다르다. 가브리엘은 신데렐라가 왕자의 무도회에 나타난 바로 그 여자라는 것을 일찌감치 알고, 그의 든든한 조력자가 된다. 아울러 가브리엘은 자신을 왕자와 결혼시키려는 엄마의 뜻을 거스르고 줄기차게 자신에게 호감을 표현한 장 미쉘을 택한다. 장 미쉘은 왕자 대신 정책을 펼치는 세바스찬(장대웅 분)이 백성들의 집과 땅을 빼앗으려고 하자 이를 바로잡으려는 인물이다.

결론은 예의 그것과 같다. 그래서 왕자와 신데렐라는 행복한 미래를 맞이한다. 그러나, 또 다르다.

 뮤지컬 <신데렐라>의 한 장면. 무도회에서 왈츠를 추는 크리스토퍼 왕자(엄기준 분)와 신데렐라(안시하 분).

무도회에서 왈츠를 추는 크리스토퍼 왕자(엄기준 분)와 신데렐라(안시하 분). ⓒ ㈜엠뮤지컬아트


결론으로 향하는 과정에서 신데렐라는 "여기 나만의 작은 의자에 앉으면 나는 뭐든지 될 수가 있다"고 노래하고, 이를 현실로 이뤄간다. 즉위를 앞둔 왕자는 이상과 현실 사이에서 자신이 해야 할 일을 고민하고, 신데렐라는 그런 그가 앞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돕는다. 뮤지컬에서는 두 남녀의 사랑 이전에 각자의 존재 자체를 되짚는다. 왕자가 신데렐라에게 청혼하기 전,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수상을 투표제로 선출하기로 선포한 것이 대표적인 예다.

비록 리프팅 동작이 많은 무도회 장면에서는 다소 버거워 보였지만, 엄기준과 안시하의 호흡은 전반적으로 매끄러웠다. 마리 역을 맡은 서지영은 등이 굽은 마녀에서 요정으로 거듭나는 과정을 드라마틱하게 보여줬다. 요정을 와이어에 태우고, 호박 모양의 드론을 날리고, 거대한 크기의 마차를 무대에 올리는 등 <신데렐라>는 무대 장치를 통해 관객에게 풍성한 볼거리를 제공했다. 색색의 반짝이는 드레스는 덤이었다.

2시간의 공연은 마치 놀이동산에서 퍼레이드를 본 것 같은 기분을 전해줬다. 유치하지 않을까 싶었지만, 전혀 그렇지 않은.

지난 9월 12일 막을 올린 뮤지컬 <신데렐라>는 오는 11월 8일까지 서울 충무아트홀 대극장에서 만날 수 있다. 신데렐라 역에는 안시하 외에도 서현진, 윤하, 백아연이 캐스팅됐으며, 크리스토퍼 왕자 역은 엄기준과 양요섭(비스트), 산들(B1A4), 켄(빅스)이 함께 맡는다.

신데렐라 엄기준 안시하 양요섭 서현진
댓글1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