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자꾸 '그놈'이 생각나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놈'은 2011년 3월 엄마를 죽였습니다. '서울대 가라'는 엄마를 흉기로 찔러 죽이고 8개월간 방안에 방치한 '그놈'은 고3이었습니다. '그놈'은 자신의 모의고사 성적표를 '전국 62등'으로 조작해 엄마에게 보여줬습니다.

엄마가 학교를 방문한다는 말을 듣고 혹시나 자신이 조작한 성적표가 들통날까봐 엄마를 죽였습니다. '그놈'은 5년 전부터 남편과 별거하며 아들 하나에 매달려 살던 헬리콥터 맘을 죽였습니다. 시체가 놓인 방문은 공업용 본드로 막았지만 집을 찾아 온 아버지에 의해 발견되었습니다.

'그놈'은 두려웠습니다. 엄마가 두려웠습니다. 엄마는 전국 62등(조작이지만)의 성적에도  불구하고 '정신무장'을 강조하며 야구배트로 때렸습니다. 심지어는 홍두깨, 골프채 등으로 아들을 폭행했습니다. 엄마의 목표는 오직 아들 잘 되는 거(?)였습니다. 서울대 가는 게 지상 과제였습니다.

엄마는 남편에게 채우지 못한 사랑을 아들에게 쏟다가 결국 폭력행사의 경지까지 이른 것입니다. 결국 죽을 때까지 갔습니다. 공부 때문에 아들을 살인자로 만든 어머니, 공부 때문에 어머니를 죽인 아들. 2011년 3월에 일어난 사건입니다. 우리는 이런 류의 비극적 사태를 그럭저럭 잘 감내하는 법을 터득한 지 오랩니다. '공부의 신'에 들린 한국이니까요.

영조, 사도세자 공부 안 한다고 뒤주에 가둬 죽여

 영화 <사도> 포스터

영화 <사도> 포스터 ⓒ 쇼박스


실은 '그놈'도 무섭지만 '그 엄마'가 더 무섭습니다. 그런데 이런 이야기가 영화에도 있습니다. 지난 16일 개봉되어 흥행가도를 부리나케 달리고 있는 <사도>(이준익 감독)가 그것입니다. 24일 현재 점유율 50.60%로 박스오피스 1위를 달리고 있습니다.

영진위 영화관입장권 통합전산망 집계에 따르면 23일 하루만도 전국 1137개의 상영관을 통해 14만 481명의 관객을 끌어 모았습니다. 개봉 일주일 만에 누적 관객수가 224만 5962명으로 흥행 돌풍을 일으키고 있습니다. 개봉 4일 만에 100만 관객을 돌파하더니 일주일 내내 박스오피스 1위를 지키고 있습니다.

영화는 대한민국 사람이면 다 아는 자신의 아들을 뒤주에 가둬 죽인 조선 21대 왕 영조와 그 불행의 당사자 사도세자의 이야기입니다. 영조는 배다른 형(경종)을 독살하고(의심스럽게 보았던 사도세자와 소론의 주장) 왕이 되었다는 세간의 눈총에 자유롭지 못했고, 공노비 출신 숙빈 최씨의 소생이라는 근본에 대한 압박 때문에 '온전한 왕 콤플렉스'를 겪습니다.

영조는 노론을 등에 업고 자신의 취약함을 견뎌나갔지만 아들은 소론과 함께 생각의 궤를 달리합니다. 당파의 간극을 좁히지 못하던 당시 영조는 아들 사도세자가 완전한 왕이 되어 악랄한 신하들 사이에서 승리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세자가 왕 수업을 게을리 하는 걸 봐줄 수가 없습니다.

영조의 완벽주의는 도리어 아들 세자의 숨통을 조입니다. '어떤 순간에도 왕이어야 했던 아버지 영조', 네 맞습니다. 그런 아버지와 '단 한 순간이라도 아들이고 싶었던 세자', 그들의 충돌이 빚은 비극이 오롯이 낱개의 신(scene)을 차곡차곡 쌓아 비극의 시퀀스를 만듭니다. 오금이 저릴 정도입니다.

부모는 자식으로 완성될 수 있을까?

 영화 <사도> 스틸컷, 영조가 사도세자의 위퍠를 쓰고 있다.

영화 <사도> 스틸컷, 영조가 사도세자의 위퍠를 쓰고 있다. ⓒ 쇼박스


헬리콥터 맘이 모범생 '그놈'을 그르쳤습니다. 영조는 헬리콥터 파파를 자처했습니다. 영조는 아들이 완전한 왕이 되는 길이 공부라고 믿었습니다. 밤을 세워가며 아들 공부를 위해 교과서를 집필할 정도였으니까요. 아, '그놈'의 존속살인의 근원적 뿌리가 벌써 수백 년 전이라는 게 가슴 아픕니다.

1762년(임오년) 7월 4일, 헬리콥터 파파 영조는 공부 안 하는 아들을 뒤주에 가둬 죽였습니다. 이른 바 '임오화변(壬午禍變)'입니다. 2011년 3월 13일, 헬리콥터 맘은 '공부 열심히 하라'는 말에 스트레스를 받은 아들에게 죽임을 당했습니다. 이들의 살인을 타고 흐르는 한 줄기, '공부'라는 게 뭘까요?

현실에서 만나는 헬리콥터 맘과 역사에서 만나는 헬리콥터 파파는 너무나 판박이입니다. 수백 년이 지났지만 그 상황이 바뀌지 않았음에 놀라게 됩니다. 둘 다 그저 가족사입니다. 그러나 가족사만이 아니어서 더 괴롭습니다. 영화를 보며 너무 답답해 울었습니다. 나이 먹은 나는 영조와 동일시되어야 마땅한데 그게 아니라 세자와 동일시되었습니다.

상황과 환경이야 많이 다르지만 그 '공부'의 이유가 다르지 않습니다. 영화는 '좋은 왕'이 목표입니다. 현실은 '서울대'가 목표입니다. 목적을 다그치다 과정이 상실됐습니다. 미래를 외치다 현재를 망가뜨렸습니다. 나라와 사회공헌을 주장하다 가정을 파괴했습니다. '잘살아야' 한다는 미래를 들이밀고 '잘사는' 지금을 날려버렸습니다.

"그게 다 공부 때문이다"라는 말은 맞지 않습니다. 둘 다 공부 때문에 빚어진 갈등이 죽음이라는 나락까지 가긴 했지만 공부 때문은 아닙니다. '나와 너의 동일시' 때문입니다. 영조는 완전한 왕을 꿈꿉니다. '그놈'의 엄마는 아들의 완전한 출세를 꿈꿉니다. 둘에게는 트라우마가 있습니다.

영조는 왕이 되었어도 '형을 죽게 만든 이'이고, '공노비의 아들'일 뿐입니다. 엄마는 이혼하고 아들에게서 자신을 보상받으려는 트라우마가 있습니다. 이 부모들에게 아들은 자식이 아니라 또 다른 자아였습니다. 자신이 이루지 못한 것을 이루고, 자신의 모자란 부분을 메워주는 '껌 딱지'였습니다.

아버지와 아들, 어긋나는 그들의 언어

아버지 영조는 말합니다.

"잘 하거라. 자식이 잘해야 아비가 산다."
"너는 장차 나라를 책임질 세자가 아니더냐."
"공부 열심히 하거라."
"너 자체가 역모다."

아들 사도세자는 말합니다.

"언제부터 나를 세자로 생각하고, 또 자식으로 생각했소?"
"당신이 강요한 방식은 숨이 막혀서 도저히 견딜 수가 없었소."​
"공부가 그리 중요하오? 공부나 예법이 사람보다 먼저요 사람이 먼저요?"
"내가 바라는 것은 아버지의 따뜻한 눈길 한 번, 다정한 말 한 마디였소."

​결국 아버지와 아들은 그 간극을 좁히지 못합니다. 아들이고 싶어 몸부림치는 세자는 더욱 망나니가 되어 갑니다. 아들을 왕을 만들고 싶었던 아버지는 더욱 폭군이 되어 갑니다. 왕조(王朝)나 역사에 머물러 있던 영조와 사도세자를 가족사로 끌어들여 짚어낸 영화는 둘의 불꽃 튀는 대립에 성공합니다.

사도세자가 뒤주에 넣어진 채로 진행된 7일 간의 기록은 오롯이 과거의 장면들을 끌어내어 오버랩시키며 독자의 눈물샘을 자극합니다. 아들이기에 울고, 아버지이기에 울라고 감독은 진수성찬을 마련한 모양입니다.

그러나 나는 영조가 아버지 아닌 아버지여서 울었습니다. 엄마 아닌 엄마가 아들을 살인자로 만들었듯. 아버지 아닌 아버지가 자식을 뒤주에 가둬 죽였습니다. '그놈'에게 엄마가 없었듯 영화에서 아버지는 없었습니다. 영화를 보고 나오며 이리 말했습니다.

"지금 영조가 살아있다면 '아버지학교'에 가면 되는데. 그러면 사도세자가 저리 죽진 않았을 텐데."

덧붙이는 글 <사도> 감독 이준익 / 출연 송강호, 유아인, 문근영 / 제작·배급 타이거픽쳐스·(주)쇼박스 / 상영시간 125분 / 개봉일 2015-09-16
사도 이준익 감독 개봉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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