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메이즈 러너 : 스코치 트라이얼> 세계는 플레어라는 신종 바이러스에 의해 죽어가고 있다. 바이러스에 감염된 사람들은 좀비(크랭크)로 변한다. 위키드에서는 바이러스에 면역력이 있는 아이들을 대상으로 실험을 하는데...

▲ 영화 <메이즈 러너 : 스코치 트라이얼> 세계는 플레어라는 신종 바이러스에 의해 죽어가고 있다. 바이러스에 감염된 사람들은 좀비(크랭크)로 변한다. 위키드에서는 바이러스에 면역력이 있는 아이들을 대상으로 실험을 하는데... ⓒ 20세기 폭스 코리아

딱 일 년여 만에 속편이 상영되었습니다. <메이즈 러너>의 후속편 <스코치 트라이얼>입니다. 보통 속편의 제작을 결정하기까지는 전편의 흥행 여부를 타진한 후부터입니다.

그러나 <메이즈 러너>의 경우엔 시사회 반응만 보고서 속편을 제작하기 시작했다니 굉장한 모험입니다. 참고로 <메이즈 러너>는 한국에서 280만 명의 관객을 동원하며 미국 외 상영 국가 중 가장 큰 흥행을 거두었다고 합니다.

YA(Young adult)라고 불리는 영화들은, 스타성이 보장된 기성 배우가 아닌 10대 중후반의 청소년들이 출연합니다. 관객에게 낯선 만큼 모험적일 수밖에 없어 제작사와 투자자들은 위험부담이 큽니다. 그러나 전작 <메이즈 러너>와 <다이버젼트> 같은 영화들의 흥행에 힘입어 당분간은 YA 영화들이 지속해서 만들어질 것으로 보입니다.

미치도록 보고 싶다, '밀라 요보비치'

상영관에 앉아 팸플릿에 적힌 내용을 꼼꼼히 읽어보았습니다. '좀비'(크랭크)가 등장합니다. 크랭크는 플레어라는 바이러스에 감염되어 좀비가 된 사람들입니다. 태양풍의 이상 활동으로 대지는 메말라가고 신종 바이러스가 등장한 것입니다. 다른 좀비 영화와 마찬가지로 좀비에게 물린 사람은 좀비로 변합니다. 대신 주인공들(토마스를 비롯한 러너)은 면역력이 있어서 좀비로 변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실험 대상으로 관찰됩니다. 그들을 관찰하는 이들은 '위키드'라고 불리는 단체입니다.

위키드들도 처음엔 인류를 바이러스의 위험에서 구하고자 연구를 시작하였으나, 점점 그 방법이 인간성을 무너뜨리는 잔혹한 방법으로 변질하여 갑니다. 그리고 신체와 심리적인 극한의 조건을 테스트합니다. 토마스와 러너들은 위키드에서 탈출에 성공한 후, 그들에 대항하는 또 다른 무리를 만납니다. 바로 '오른팔 조직'입니다. 실체가 모호했던 오른팔 조직을 직접 만난 그들은 위키드를 피해 보금자리를 옮기려는 계획을 세웁니다. 그리고 해가 지는 평화로운 장면 뒤로 위키드의 비행체가 날아오고 이어지는 총격전!

잡힐듯하면서도 요리조리 잘 도망 다니는 러너들을 보며 안타까운 건, 그들이 너무 나약하다는 것입니다. <레지던트 이블>의 밀라 요보비치 같은 전사가 그립습니다. 기관총을 양손에 들고 정예 군인들과 홀로 전쟁을 벌이는가 하면, 라이플총에 총탄 대신 수백 개의 동전을 넣어 좀비를 일망타진하던 그녀의 용맹함은 가히 현재까지 개봉된 좀비 영화의 최고봉이 아닐까요? 강력한 이단 옆차기를 구사하며, 맨몸으로 총을 지닌 수십 명의 군인을 제압하는 장면은 남성을 위한 카타르시스입니다.

왼쪽부터 영화 <메이즈 러너 : 스코치 트라이얼>, <레지던트 이블> 시리즈 2000년대 들어 좀비 영화의 최고봉은 단연코 <레지던트 이블>시리즈라 생각한다. 요즘엔 좀비가 등장하지 않는 스릴러 영화는 없을 정도다. 그만큼 인간세상의 비합리적이고 불평등한 구조를 잘 표현한 것이 없어서 일까?

▲ 왼쪽부터 영화 <메이즈 러너 : 스코치 트라이얼>, <레지던트 이블> 시리즈 2000년대 들어 좀비 영화의 최고봉은 단연코 <레지던트 이블>시리즈라 생각한다. 요즘엔 좀비가 등장하지 않는 스릴러 영화는 없을 정도다. 그만큼 인간세상의 비합리적이고 불평등한 구조를 잘 표현한 것이 없어서 일까? ⓒ 20세기 폭스 코리아


섹시코드로 남성들의 성적 욕망을 자극하던 밀라 요보비치는 <레지던트 이블> 5편까지 충분히 제 역할을 해주었습니다. 그러나 <메이즈 러너>의 토마스와 러너는 크랭크와 위키드에 비해 너무 순진하고 약해빠졌습니다. 이들을 데리고 2시간이 넘는 옴니버스 플롯을 구성하기에는 무리가 있습니다. 적당히 치고 빠지는 밀라 요보비치의 초인적 능력을 러너들에게 조금만 부어주었다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있습니다.

그리고 영화 <메이즈 러너 : 스코치 트라이얼>은 최근 좀비 영화의 상징이 되어버린 <레지던트 이블>과 모든 것이 흡사합니다. 줄거리 구성부터 각 에피소드의 연결과정까지 그대로 가져왔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습니다. 요즘은 신종 바이러스로 인해 인간성을 잃어버린 '좀비'가 등장하지 않으면 공포 스릴러 영화로 흥행할 수 없는 걸까요? 언제부턴가 '좀비'는 공포 영화에서 단골 소재가 되었습니다.

'좀비' 그 끝없는 진화

<새벽의 저주>, <28일 후>, <나는 전설이다>, <이블 데드> 등 살아 있는 것 같으면서도 죽어있고, 죽어 있는 것 같으면서도 살아 있는 것 같은…. 어쩌면 냉전의 양극이 종식되고 자본에 의탁한 권력이 득세하는 걸 지켜보는 사람들은, 좀 더 명확하게 세상의 종말을 표현하기 위해 '좀비'가 필요했던 것은 아닌지 생각해 봅니다.

부두교의 의식에서 태어난 좀비가 '조지 로메로'라는 B급 영화감독에 의해 세상에 공개되었을 때 사람들은 열광했습니다. 물론 좀비 영화의 원작은 1932년 제작된 <화이트 좀비>가 정설로 받아들여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대중화된 것은 <살아있는 시체들의 밤>을 제작한 '조지 로메로'의 공입니다. 핵발전소 폭발 사고로 인해 죽은 사람들이 일어나 움직이며 산 사람들을 마구잡이로 죽인다는 설정은 새로운 공포물의 탄생을 알렸습니다.

1, 2차 세계대전 이후 냉전이 가져온 매카시즘과 실체 없는 불안감은 좀비라는 인격을 만들었습니다. 명분도 없이 젊은이들이 죽어 나가는 베트남 전쟁은 인간의 추악한 면을 그대로 드러냈습니다. 미국과 소련 간 경쟁적인 과학기술의 발전으로 아폴로 달 탐사라는 기념비적 역사를 세웠으나, 각국의 핵무기 개발과 계속되는 국지전은 사상적 혼돈을 가져와 좀비들을 양산했습니다. 80년대 이후 디지털로 재편된 최첨단 IT 기술 역시 좀비의 진화를 막지 못했습니다. ​

영화 <레지던트 이블> 시리즈 <레지던트 이블>은 현재 5편까지 개봉되었다. 곧 6편이 개봉될 것이라는 얘기도 있다. 게임으로도 유명한 영화. 좀비의 진화는 어디까지 일까? 그리고 앨리스의 최후는 어떻게 될까?

▲ 영화 <레지던트 이블> 시리즈 <레지던트 이블>은 현재 5편까지 개봉되었다. 곧 6편이 개봉될 것이라는 얘기도 있다. 게임으로도 유명한 영화. 좀비의 진화는 어디까지 일까? 그리고 앨리스의 최후는 어떻게 될까? ⓒ 스튜디오 2.0


이후 좀비들이 어떻게 진화해 왔는지 짚어보겠습니다.

▲ 좀비는 반사신경이 뛰어나며 상당히 빠른 달리기를 구사한다. ▲ 집단으로 움직이며 때로는 가족에 대한 희미한 기억을 갖고 있다. ▲ 지능이 있는 좀비가 다른 좀비들의 우두머리가 된다. ▲ 좀비에게 상처를 입은 사람은 머지않아 좀비로 변한다. ▲ 동물들도 좀비가 될 수 있다. ▲ 영하의 날씨에 노출된 좀비는 피부가 하얗고 두껍게 변한다. ▲ 입이나 상처 부위에서 괴상한 물체가 튀어나와 사람을 죽인다. ▲ 밤에만 활동하는 좀비도 있지만, 밤낮을 가리지 않는 좀비가 더 많다. ▲ 대부분 좀비는 머리에 총을 맞으면 죽지만, 머리를 제외한 채 나머지 부위만 살아서 움직이는 좀비도 있다. ​

좀비의 탄생은 인간 때문이었다고 말한다면 지나친 생각일까요? 앞서 언급했던 본격적인 좀비 영화의 시초인 <살아있는 시체들의 밤>에서 핵발전소 폭발사고가 좀비를 탄생시켰다고 한 거로 봐서는, 하루가 다르게 발전하는 과학기술을 통제하지 못한 인간의 과욕이 원인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한편으론, 여성이 드러내기 어려운 성적 판타지를 '드라큘라'를 통해 대리만족했던 것처럼 좀비 역시 여성의 억눌렸던 성적 카타르시스를 대변한다는 이론도 있습니다. 혹은 동아시아의 '강시'는 서구의 좀비와 비견되며 종종 주술적 의미에서 연구되곤 합니다. ​

좀비에 여러 가지 의미를 덧붙이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비평가들의 입방아일 수도 있습니다. 수준 떨어지는 좀비 영화가 득세하는 요즘, 좀비는 코믹 영화와 에로 영화에도 등장합니다. 100년 남짓한 영화 역사상 좀비처럼 다양한 스펙트럼을 통해 장르에 도전하는 존재도 드물 겁니다. 어쨌든 확실한 건 영화에서의 '좀비'는 인간이 가지는 두려움과 시기를 알 수 없는 불안감에 대한 표현인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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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음악, 종교학 쪽에 관심이 많은 그저그런 사람입니다. '인간은 악한 모습 그대로 선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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