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2회 한국방송대상에서 대상을 받은 MBC <무한도전> 김태호 PD와 출연진.

제42회 한국방송대상에서 대상을 받은 MBC <무한도전> 김태호 PD와 출연진. ⓒ MBC


"'유재석은 그렇다 치고, 박명수, 정준하, 노홍철, 정형돈 이런 애들 데리고 되겠니'라는 이야기를 들은지 딱 10년이 된 9월인데요. 아직까지 <무한도전>은 잘 진행되고 있습니다. (중략)

사실 한 주 한 주가 무섭고, 두렵고, 도망가고 싶은 중압감을 부정할 순 없는데요. 항상 우리 멤버들과 함께 가는 스태프들이 있기 때문에 믿고 목요일 녹화장에 나올 수 있거든요. 대한민국 예능프로그램들의 퀄리티가 여러분들이 알고 있는 것보다 훨씬 더 성장했고요. 그러면서 걱정되는 건 선후배분들, 예능 하는 분들은 몸도 잘 챙기고, 올해 여름 휴가도 꼭 갔으면 좋겠다는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

지난 3일 MBC서 생중계된 제42회 한국방송대상에서 대상을 받은 <무한도전> 김태호 PD의 수상 소감이다. <무한도전>의 대상 수상이 방송 10주년의 노고를 치하하는 것이라는 분석도 없진 않았지만, 올해 역시 <무한도전>의 활약과 성과는 독보적이다.

올 초 '토요일 토요일은 가수다' 특집으로 화제 몰이에 성공한 <무한도전>은 10주년 프로젝트를 차곡차곡 정산해 나갔다. 방송가 전체에서 <무한도전>의 영향력을 입증한 '식스맨 프로젝트' 특집을 거쳐 '해외 극한알바' 특집으로 국제적인 사이즈를 재확인했으며, '영동고속도로 가요제' 특집 역시 숱한 화제와 족적을 남겼다.

"대상을 받았습니다, 상만 주나요"라는 박명수의 2행시가 더 화제가 되긴 했지만, 김태호 PD의 수상소감은 자타 공인 한국 대표 예능 프로그램이 되어버린 <무한도전>의 위상과 중압감, 그리고 영향력을 감지할 수 있는 것이 아닐 수 없었다. 그리고, <무한도전>은 다시 '배달의 무도' 특집을 통해 한국의 방송 지형에서 자신이 점하고 있는 위치와 존재 이유를 다시금 역설하는 중이다.

'배달의 무도'가 보여준 <무한도전>의 철학

결국 창작자들에겐 '철학'이, '세계관'이 팔 할이다. '배달의 무도' 특집 역시 <무한도전> 제작진의 철학과 세계관을 반영한 것이다. 각 대륙에 퍼진 가족과 친지들에게 '집밥'을 전해주자는 기획은 전제고 전략이었다고 치자. 철학과 세계관은 결국 결과물의 디테일을 이끄는 원동력이 된다.

지난 방송에서 유재석과 제작진은 미국으로 입양된 선영씨의 사연과 가족과의 상봉을 다뤘다. 예능에서 쉽사리 볼 수 없는, 진한 눈물을 끌어낼 만한 자리를 자연스레 마련한 것이다. 심지어 제작진은 선영씨의 친부모와 언니를 비롯해 양아버지와 선영씨의 남편, 아들이 모두 한자리에 모이는 의미 있는 순간을 연출했다.     

 지난 8월 29일 방영된 <무한도전> '배달의 무도' 특집의 한 장면.

지난 8월 29일 방영된 <무한도전> '배달의 무도' 특집의 한 장면. ⓒ MBC


거기서 그쳤다면 굳이 '디테일'을 들먹이지 않았을 터. 제작진은 인근 한국 입양 아동 교육 기관을 찾아 아이들의 순수한 얼굴 속에 묻은 그늘을 직시했다. 한 여자아이가 한국의 친부모를 만나고 싶다고 말할 때, 백인 엄마에게 미안해하던 모습을 놓치지 않은 것이다.

여기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무한도전>은 더 많은 해외 입양인들에게 한국의 부모와 가족을 찾기 위한 길을 열어줬다. 이제는 성인이 된 입양 외국인들의 사연을 모집해 방송을 통해 직접 자신을 소개할 기회를 준 것이다. <무한도전>만의 철학과 세심한 배려란 이런 것이 아닐까.

MBC 시사보도 프로그램보다 나은 <무한도전>?

그리고 우토로 마을. 잊고 있던 이들이 많았을 것이다. 참여정부 시절 성금 모집 운동이 일기도 했고, 매체들도 앞다퉈 조명했던 그 우토로 마을의 기구하고 아픈 사연 말이다. 개인적으론 다큐멘터리 <60만번의 트라이> 박사유 감독이 우토로 마을의 근황을 전해준 것이 2014년이었다.

그 우토로 마을 주민들과 일제 강점기에 자행된 강제 징용의 아픈 역사를 되새긴 것만으로도 <무한도전>은 어느 시사교양 프로그램 못지않은 '광복 70주년' 특별 기획의 성과를 이끌어냈다고 할 수 있다. 아마도, 다시 보지 못할지도 모르는 1세대 주민 강경남 할머니를 뒤로하고 차 안에서 마을 주민들이 싸준 도시락을 먹는 유재석의 먹먹한 얼굴은 대한민국 예능사의 한 장면으로 기록될 것이다.

시각을 확장해 봐도, '배달의 무도' 특집은 확실히 의미심장하다. 칠레로 간 라면집 사장님도, 일본의 강제 징용 노동자들도, 독일로 갔던 광부와 간호사들도 결국은 이주노동자다. 또 해외 입양을 비롯해 외국으로 간 노동자의 사례들은 한국 근현대사가 남긴 식민과 가난의 기억이기도 하다. 다음 주 예고된 일본의 하시마 섬 이야기를 포함하면, 그 의미는 더 선명해진다.

 MBC <무한도전> '배달의 무도' 특집에서 일본 우토로 마을의 강경남 할머니와 헤어지기 전에 눈물을 흘리는 하하와 그 이후 차안에서 눈물을 훔치는 유재석.

MBC <무한도전> '배달의 무도' 특집에서 일본 우토로 마을의 강경남 할머니와 헤어지기 전에 눈물을 흘리는 하하와 그 이후 차안에서 눈물을 훔치는 유재석. ⓒ MBC


이를 통해 '배달의 무도' 특집이 역설하는 것은 '광복 70년'이 결국 올바른 기억에서 출발해야 한다는 것이다. 흔히 방송에서 써먹는 '자랑스러운 한국인' 코드에서 완벽하게 탈피한 것으로 모자라 역사를 환기하는 동시에 다시 (세종기지 근무자들과 그 가족의) 미래를 보듬었다. 마치 일본 정부에 향하는 듯한 "남의 것 훔쳐 가지고 먹고, 나쁜 소리 하고 그러면 안 된다"는 강경남 할머니의 당부도 잊지 않은 채로.

안광한 사장은 '배달의 무도'를 봤을까

그리고 다시 한국방송대상 시상식. 하필, 아니 의도적이게도 대상 시상자는 안광한 한국방송협회장이자 MBC 사장이었다. 김태호 PD의 수상소감보다 더 주저리주저리 축사를 늘어놓은 안광한 사장. 그가 만약 '배달의 무도' 특집을 봤다면 과연 무슨 생각을 했을까. 

'배달의 무도' 특집을 두고 "어느 MBC 시사보도 프로그램보다 <무한도전>이 더 낫다"는 반응들이 주를 이루고 있다. 실제로, 오랜 시간 MBC를 대표하던 시사보도 프로그램 <PD수첩>은 최근 몇 달간 '센세이셔널리즘'과 철학의 무지를 드러내며 '성폭력'과 '성희롱', '여성혐오' 문제 등에 올인하는 중이다. 정치적 사안을 무시하는 것은 둘째 치더라도, 시사보도 프로그램이 지녀야 할 균형감마저 잃었다는 평가마저 나오고 있다.

이를 대신해, 이미지나 광고 모두에서 실질적으로 MBC를 먹여 살린다는 <무한도전>이 나선 듯하다. '배달의 무도' 특집이 던져 준 이중의 씁쓸함을 안고, 하시마 섬과 독일, 그리고 아프리카를 찾아가는 다음 편을 기다리도록 하자.  

무한도전 우토로 마을 유재석 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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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작업 의뢰 woodyh@hanmail.net, 전 무비스트, FLIM2.0, Korean Cinema Today, 오마이뉴스 등 취재기자, 영화 대중문화 칼럼니스트, 시나리오 작가, 각본, '4.3과 친구들 영화제' 기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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