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함정>에서 준식 역의 배우 조한선이 2일 오전 서울 논현동의 한 카페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영화<함정>에서 준식 역의 배우 조한선이 2일 오전 서울 논현동의 한 카페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 이정민


영화 <늑대의 유혹> 이후 2년, 그리고 <무적자> 이후 2년. 조한선은 두 번의 공백을 겪었다. 한 번의 공백이라도 배우에겐 큰 두려움이기 마련인데 그는 자신이 남긴 두 번의 백지를 가슴 한편에 품고 있었다. 청춘스타가 작품 활동이 뜸해지면서 어느새 대중에게도 잊혔다. "아, 나란 존재를 내가 잘못 알고 있었구나"라며 "그때부터... 현실적인 내 위치를 생각하게 됐다"고 조한선이 낮은 목소리로 고백했다.

오는 10일 개봉하는 영화 <함정>에서 조한선은 마동석과 함께 주연을 맡았다. 의미를 부여하자면 2012년 소집 해제 후 첫 주연이자 <주유소 습격사건2>(2010) 이후 5년 만의 주연이다. 하지만 지난 3일 서울 강남의 한 카페에서 만난 그는 "다시 시작하는 마음, 다시 출발선에 선 느낌으로 임했다"고 말했다.

두 번의 공백

 영화<함정>에서 준식 역의 배우 조한선이 2일 오전 서울 논현동의 한 카페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영화<함정>에서 준식 역의 배우 조한선이 2일 오전 서울 논현동의 한 카페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 이정민


마동석이 <함정>에서 식당을 찾는 손님을 노리는 절대 악한(성철 역)으로 등장했다면, 조한선은 그 위기에 빠진 신혼 초의 가장 준식을 맡았다. 장소는 전라도의 외딴 섬 - 이 닫힌 공간에서 조한선은 감정을 내지를 수도, 그렇다고 마냥 숨길 수도 없었다.

"처음 시나리오를 접했을 땐 그 완성도가 너무 떨어져 있었다. 사실 감독님이 성철 역을 주실 줄 알았다.(웃음) 내심 속으로 '그래, 이쯤에서 살인마를 맡아도 괜찮지' 생각하고 있었다. 이야기를 쥐었다 폈다 하는 인물이잖나. 근데 준식을 주실 줄은 몰랐다. 지금보다 분량이 절반 이상 적었다. 거절하려고 감독님을 만났는데, 감독님은 나와 만나서 그 분량을 함께 늘려가고 싶었다고 하시더라. 믿음이 갔고, 이 작품에 날 쏟아부을 수 있겠다 싶었다."

조한선은 철저히 준식이 됐다. 실제로 결혼 5년 차인 그에게 신혼을 맞은 남편은 잘 맞는 옷이기도 했다. 다만, 스릴러 장르라는 게 과제였다. 유산의 트라우마를 겪고 난 후 맹목적으로 아이를 갖고 싶어하는 감정을 표현해야 했고, 외진 식당에서 마주친 의문의 여성 민희(지안 분)에게 욕정을 품어야 했다. 예민한 감정선을 위해 조한선은 준식을 준비할 때 키와 발 크기, 좋아하는 음식을 적어두는 등 자세하게 파고들었다.

 영화 <함정>의 한 장면.

영화 <함정>의 한 장면. ⓒ 데이드림 엔터테인먼트


"사이코패스 같은 강렬함은 줄 수 없지만 과하거나 모자라지도 않는 중간 감정에 대해 많이 생각했다. 사랑하는 아내(김민경 분)를 두고 다른 여자를 범하는 설정도 고민 많이 했다. 대화나 소통이 부족한 부부라고 이해했다. 또 영화 제목처럼 아내가 날 이런 상황에 의도적으로 놓아두려고 했다는 느낌을 잡고 가려 했다.

(살인마 역을 한) 동석이 형도 힘들었겠지만, 피해자 입장인 나도 참 힘들었다. 긴장감을 잘 유지해야 했으니. 물론 관객 입장에선 내가 참 편한 인물을 맡았고, 나 아닌 다른 배우가 충분히 할 수 있을 역할이라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지금의 준식은 발끝 모양새 하나까지 나와 감독님이 상의해서 만든 인물이다. 그의 미세한 감정을 표현하기 위해 그만큼 최선을 다했다."

성숙의 시간

앞서 언급한 캐릭터 연구 방법, 그러니까 자세한 인물 정보를 만드는 건 조한선이 <열혈남아>(2006)에 설경구와 함께 출연했을 때부터 들인 습관이다. 당시 풋내기 조직폭력배 치국을 위해 조한선이 A4 용지 네 장 분량의 인물 해설지를 만든 건 이젠 유명한 일화다. 

이 지점에서 그의 공백을 얘기하지 않을 수 없었다. 첫 주연작 <늑대의 유혹>(2004)으로 스타덤에 올랐지만 연기를 진지하게 여기지 못했고, '강동원의 친구'라는 비교의식에 스스로를 괴롭혔던 때였다. "나름 유명세를 탔고 시나리오들이 잘 들어왔지만, 다 거절하곤 했다"며 그가 조심스럽게 운을 뗐다. 

"개인적인 집안 문제도 있었다. 아버지가 병환으로 돌아가셨다. 아버지 때문에 돈을 벌고 싶었는데, 연기를 해야 할 이유를 잃었다고 생각했다. (조한선은 대학 때 축구선수로 활동했다. 그러다 돈을 많이 벌고 싶어서 모델로 데뷔했다고 밝혀왔다 - 기자 주)

2년 쉬고 마음을 다시 잡고 시작한 게 <열혈남아>였다. 그 사이 <연리지>라는 작품도 했는데 현장서 소통이 잘 안 돼 힘들었다. 내가 많이 부족하더라. 그걸 반면교사 삼아서 접한 <열혈남아>는 진짜 열심히 준비했다. 전라도 사투리 대사를 녹음해놓고 노래처럼 듣고 다녔다. 그때 연기가 재밌다는 걸 처음 알았다."   

그리고 두 번째 공백, 공익근무 요원으로 근무할 당시(2010년부터 2012년) 조한선은 다시 한 번 혼란을 겪었다. 일반인을 상대로 일하면서 자신의 모습이 어느새 대중에게 자연스럽게 잊혔다는 걸 알았기 때문. 그는 "'강동원과 영화에 출연한 애'로 불리거나, 혹은 아예 못 알아보는 분도 많았다"며 "매니저와 친한 친구들만 만나다가 접한 냉혹한 현실이었다, 그때 이후 내 자세가 바뀌기 시작했다"고 전했다.

"<열혈남아> 이후 연기 잘한다는 소리를 듣는 게 목표였는데, 내가 처한 현실을 직시하면서 꾸준하게 작품을 하는 배우가 되자고 다짐했다. 1등이 되고 싶진 않고, 2등 혹은 3등으로 진실한 연기를 꾸준히 하자는 거다. 내 인생에서 공백이 또 올 수도 있다는 걸 뼈저리게 느끼고 있다. 그렇게 공백을 겪었지만 잘 넘기는 해법은 못 찾았다. 다만 단단해지긴 했다. 어떤 해법을 찾기보단 그때마다 잘 견디고 넘기는 게 좋은 거 같다.

그래서 (스타성을 다시 찾아야 한다는 등의) 조급함은 사라진 지 오래다. 한 가정의 가장이 됐고, 아이도 생겼다. 이 일은 내가 하고 싶다고 계속할 수 있는 게 아니라는 걸 체감하고 있다. <열혈남아> 이후 연기의 재미를 느꼈다면, 이제 연기는 쉽게 놓을 수 없는 무언가다. 내겐 가정을 지킬 원동력이기도 하다. 그래서 촬영의 시작부터 끝까지 신경 쓰게 되고 다양한 각도를 생각하게 되더라. 그렇게 최선을 다하다 보면 명예와 부는 자동으로 따라오지 않을까."

가장이자 비정규직 : 조한선이 정의하는 자신

그 많던 팬도 잦아들었고, 팬 카페 역시 유명무실해진 지 오래다. 좌절하지 않고 조한선은 다시 일어나기를 택했다. 최근 들어 직접 SNS를 통해 팬들과 소통하기도 한다. "이렇게라도 팬들과 생각을 나누는 게 너무 좋다"며 그가 웃어 보였다.

가장이자 비정규직. 조한선이 자신을 정의하는 단어다. 아내와 아이에게 부끄럽지 않은 아빠가 그의 지상 목표가 됐다. 단순히 좋은 배우나 좋은 연기로 눙칠 수 없는 숭고함이 느껴졌다. 그래서일까. <함정>을 두고 그는 당당했다. "굳이 <함정>을 꼭 보라고 하고 싶진 않다, 끌리면 보시라"며 "냉정하게 보시고 쓴소리 할 게 있으면 꼭 해 달라, 그래야 나도 더 성숙해질 수 있다"고 말했다.

그리고 덧붙인 그의 한 마디가 머리에 남는다.

"그럼에도 <함정>에 참여한 나 스스로에게 한 표를 주고 싶다, 나머진 관객들의 몫이다."

어느새 자신을 온전하게 관객에게 던지는 법을 조한선은 익히고 있었다.

 영화<함정>에서 준식 역의 배우 조한선이 2일 오전 서울 논현동의 한 카페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영화<함정>에서 준식 역의 배우 조한선이 2일 오전 서울 논현동의 한 카페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 이정민



조한선 함정 마동석 강동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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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메가3같은 글을 쓰고 싶다. 될까? 결국 세상을 바꾸는 건 보통의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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