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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取중眞담]은 <오마이뉴스> 상근기자들이 취재과정에서 겪은 후일담이나 비화, 에피소드 등을 자유로운 방식으로 돌아가면서 쓰는 코너입니다. [편집자말]
지난 5월 동대문디자인플라자에서 열린 SBS 서울디지털포럼(왼쪽)과 지난 24, 25일 여의도 KBS 신관 공개홀에서 열린 KBS 미래포럼 명찰
 지난 5월 동대문디자인플라자에서 열린 SBS 서울디지털포럼(왼쪽)과 지난 24, 25일 여의도 KBS 신관 공개홀에서 열린 KBS 미래포럼 명찰
ⓒ 김시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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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언론사치고 국제컨퍼런스 없는 곳이 드뭅니다. SBS '서울디지털포럼(SDF)'과 매경 '세계지식포럼'이 대표적이고 <오마이뉴스>도 지난 2010년까지 '세계시민기자포럼'을 개최했죠.

특히 지난 2004년부터 매년 열리는 서울디지털포럼 기조연설만큼은 거의 빠뜨리지 않고 취재하고 있습니다. 지난 2010년 3D 영화 <아바타>를 만든 제임스 캐머런 감독부터 지난 5월 영화 <인터스텔라> 제작에 참여한 물리학자 킵 손 박사까지 늘 가장 뜨거운 연사들이 참석하기 때문이죠(관련기사: <인터스텔라> 만든 킵 손 "스티븐 호킹과 차기작 준비").

KBS 미래포럼은 '방송용', 포럼 참석자는 '방청객'?

올해는 국내 대표 공영방송사인 KBS도 뛰어들었습니다. 바로 지난 24일, 25일 이틀 동안 광복 70주년 특별기획으로 열린 'KBS 미래포럼'입니다. 행사 규모가 SDF에는 못 미치지지만 1996년 노벨 평화상 수상자인 라모스 호르타 전 동티모르 대통령을 비롯해 <죽은 경제학자의 살아있는 아이디어>로 많이 알려진 미국 경제학자 토드 부크홀츠, '창조경제' 주창자인 존 호킨스 등이 참석해 관심을 끌었습니다.

기대가 너무 컸을까요? 행사 이틀째인 25일 오전에 찾은 여의도 KBS 신관 공개홀은 국제컨퍼런스 행사장이 아니라 방송 프로그램 녹화장이었습니다. 무대 주변에 임시로 설치한 수백 석만 가득 채웠을 뿐 기존 고정 객석은 그냥 놀리고 있었습니다. 그나마 가운데 절반은 대형 모니터에 가려 무대를 볼 수조차 없었습니다.

KBS도 포럼에 앞서 사전 참가 신청을 받았는데 이날 행사장엔 자신의 이름이 들어간 명찰을 찬 일반 참가자보다는 소속을 알 수 없는 '단체 참가자'들이 더 많아 보였습니다. 그나마 이들 상당수는 1부 강연이 끝나자 행사장을 빠져나갔고, 2부 토론회 때는 제작진이 앞쪽 빈자리부터 채운다고 곤욕을 치렀습니다. '녹화 중계 한다'는 이유였죠.

한국말을 잘 알아듣지 못하는 외국인 참가자나 '프레스' 명찰을 달고 취재차 간 저도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결국 3시간 가까이 자리에서 꼼짝도 못하고 토론회를 '방청'해야 했습니다. 카메라 크레인이 머리카락을 스치고 지나가는 아찔한 순간에도 찍소리도 못했습니다. 그나마 생방송이 아닌 게 다행이었을까요?

25일 오전 여의도 KBS 신관 공개홀에서 KBS 미래포럼 두번째 세션 '경제 재도약의 길' 2부 토론이 열리고 있다.
 25일 오전 여의도 KBS 신관 공개홀에서 KBS 미래포럼 두번째 세션 '경제 재도약의 길' 2부 토론이 열리고 있다.
ⓒ 김시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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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생방송이든 녹화방송이든 방송사에서 촬영하는 건 당연합니다. SBS도 서울디지털포럼 행사 전 과정을 촬영하고, 기조연설 등 주요 강연은 생방송으로 내보냅니다. 하지만 적어도 중심은 포럼이고 이를 방송으로 내보낼 뿐이지, KBS처럼 '방송 프로그램 제작'을 위해 포럼을 여는 건 아닙니다.

이 같은 '방송용 포럼'에선 기자든 전문가든 일반인이든 참가자의 역할도 '방청객'으로 국한됩니다. 제작자의 신호에 맞춰 요란한 박수나 환호를 보낼 뿐, 연사에게 적극적으로 질문하거나, 강연이 끝난 뒤 인사를 나누는 모습은 상상하기 어렵습니다.

연사나 토론자들 역시 청중보다는 카메라를 더 의식합니다. 표정도 잔뜩 굳어있는 데다, 무대 맞은편 대형 모니터에 뜨는 방송 대본 읽기 바빠, 청중들과 눈 맞출 여유도 없습니다.

토론자나 참가자의 돌발적인 발언이나 행동도 용납되지 않습니다. 프로그램은 미리 짜인 각본에 따라 치밀하게 전개되고, 자신의 차례가 되면 나와서 발표하고, 자기들끼리 미리 준비한 질문을 주고받습니다.

대기업 횡포-재벌 개혁 문제 제기는 '신선'

세계적 이론 물리학자이자 영화 <인터스텔라> 책임 제작자인 킵 손 박사(오른쪽)와 한국천문연구원에서 박사 과정을 밟고 있는 송유근씨와 20일 오전 서울 동대문디자인플라자에서 열린 서울디지털포럼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세계적 이론 물리학자이자 영화 <인터스텔라> 책임 제작자인 킵 손 박사(오른쪽)와 한국천문연구원에서 박사 과정을 밟고 있는 송유근씨와 20일 오전 서울 동대문디자인플라자에서 열린 서울디지털포럼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 서울디지털포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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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포럼은 '대한민국 재창조의 길을 묻다'라는 주제로 ▲ 사회통합의 길 ▲ 경제 재도약의 길 ▲ 통일 한국의 길 등 3가지 세션이 이틀에 걸쳐 진행됐습니다.

적어도 제가 '방청'한 경제 분야 강연과 토론 내용만큼은 훌륭했습니다. 주로 현 정부의 '창조경제'에 초점을 맞추긴 했지만, 한국에서 중소기업, 벤처기업 창업과 재창업이 어려운 이유, 대기업의 온갖 횡포와 경제민주화, 실리콘밸리의 기업가 정신 등에 대한 깊이 있는 토론이 이어졌습니다.

특히 신광식 연세대 경제대학원 겸임교수가 제안한 집단소송제와 징벌적 손해배상제 같은 재벌 개혁 방안은 그동안 KBS 뉴스에서는 쉽게 접할 수 없던 내용이라 더 신선했습니다. 제작진도 대기업 횡포나 칸막이식 규제로 인한 중소기업 피해 사례, 재창업을 가로막는 여러 장벽 등 사전 취재한 영상으로 함께 내보냈습니다.    

KBS 미래포럼이 올해 '광복 70주년 특별기획'으로 끝날지, 매년 이어질지는 모르겠습니다. 다만 내년에도 다시 열린다면, 올해처럼 '집안잔치'로만 끝내지는 말고 서울디지털포럼처럼 더 개방적인 행사로 거듭났으면 좋겠습니다. 이 프로그램에도 "시청자 여러분의 소중한 수신료로 제작되었습니다"라는 '수신료 인상용' 자막이 나갈 텐데, 국내외 유명연사를 부르는 데 들어간 수신료가 아까워서야 되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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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KBS, #KBS 미래포럼, #서울디지털포럼, #수신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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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사회부에서 팩트체크를 맡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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