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산은 전통적으로 좌타 거포에 대한 고민이 많은 팀이었다. 2008년 김현수가 등장했지만 홈런을 많이 때릴 수 있는 타자라기보단 안타 생산에 능한 타자다. 2010년 펀치력 증강을 목표로 과감하게 홈런에 초점을 맞췄으나 결과적으로 원하는 결과를 얻지 못했다. 오히려 변화가 가져온 역풍으로 한때 부진에 빠지기도 했다.

2000년대 중반, '한 방'으로 주목을 받은 유재웅은 꾸준하게 자기 페이스를 유지하지 못하며 주전 경쟁에서도 밀려났다. 백업 그리고 2군 생활을 전전했고 SK로 이적한 뒤 쓸쓸하게 선수 생활을 마감했다. 결론적으로 두산에서 좌타 거포는 '서울에서 김 서방 찾기'나 다름이 없었다.

그러나 올해는 상황이 달라졌다. 정규시즌 개막전부터 김재환이 홈런포를 쏘아 올리더니 유민상, 오재일 등 연속해서 좌타 거포들이 장타를 터뜨리고 있다. 외국인타자 잭 루츠가 방출된 이후 데이빈슨 로메로가 6월 초 합류하면서 타선이 한층 강력해졌는데, 그 가운데서도 좌타 거포들의 성장세가 돋보였다.

'만년 유망주' 김재환과 오재일의 폭발

인터뷰 중인 두산 유민상 15일 경기에서 결승포를 때린 이후 중계방송사 인터뷰에 임하고 있다.

▲ 인터뷰 중인 두산 유민상 15일 경기에서 결승포를 때린 이후 중계방송사 인터뷰에 임하고 있다. ⓒ 박중길


사실 만족스러운 단계는 아니다. 특히 김재환은 14일 1군 엔트리에서 말소되는 등 최근 타격 부진에 대한 어려움을 겪고 있다. 그러나 시즌 초반 그가 보여줬던 활약은 오랫동안 팬들 기억 속에 남아있다.

5월에만 홈런 다섯 개를 몰아치며 힘을 과시했고 5월 9일 잠실 한화전에서는 프로 데뷔 첫 끝내기 안타를 때려내며 짜릿함을 맛봤다. 홈에서의 타율이 2할 7푼 1리로 원정(1할 9푼 1리)보다 훨씬 높았고, 홈런 또한 5개나 터뜨려 잠실구장이 김재환에게 크게 부담스럽지 않다.

김태형 감독은 일찌감치 스프링캠프부터 김재환을 눈여겨봤고, 잭 루츠가 빠졌을 당시에도 선발로 나서는 등 코치진의 관심을 한몸에 받는 중이다. 1군에 오랫동안 머무르지 못하고 2군을 왔다 갔다 하면서 아직은 유망주 꼬리표를 떼어내지 못했다. 역시 선구안이 과제다.

김재환의 페이스가 조금씩 떨어지던 찰나에 '구세주' 오재일이 홈런포 가동을 시작했다. 후반기에 돌입하자 박건우와 함께 기회를 잡았고, 후반기 첫 시리즈였던 인천 SK전을 시작으로 8월 8일 잠실 LG전까지 총 8개의 홈런을 뽑아냈다. 3~4경기에 한 번꼴로 홈런을 친 셈이다.

아쉽게도 지금은 2군에 내려간 상태다. 타격감도 좋고 컨디션도 괜찮지만, 몸 상태가 완전하지 못하다. 옆구리 부상을 호소하며 9일 LG전에서 출장하지 못했고 결국 이튿날 유희관과 1군 엔트리에서 말소됐다. 통증이 비교적 가벼울 때 선수를 보호하겠다는 김태형 감독의 뜻이 담긴 결정이었다.

그만큼 오재일은 올 시즌 후반기 팀에서 전력의 핵심으로 자리를 잡았고, 없어선 안 될 선수가 됐다. 부상에서 돌아온 이후에도 벤치에 있는 시간은 그렇게 많지 않을 전망이다. 넥센에서 트레이드될 때만 하더라도 부정적인 평이 대부분이었지만, 그것을 뒤집어버리고 있는 오재일의 발걸음은 계속된다.

끝이 보이고 있는 좌타 거포 고민

두 타자의 등장에서 멈추지 않았다. 상무에서 복귀한 정진호가 입대 전보다 타격 능력이 전반적으로 좋아졌고, '퓨처스리그 타점왕 출신' 유민상도 김 감독의 레이더망에 포착됐다. 유민상은 15일 인천 SK전에서 8회 초 윤길현을 상대로 솔로포를 터뜨려 데뷔 첫 홈런포를 팀의 역전으로 연결했다. 유민상으로서는 2015년 8월 15일은 최고의 날이었다.

심지어는 올해 퓨처스리그를 점령한 박세혁(상무)까지 군 문제를 해결, 내년부터 두산 안방 경쟁에 뛰어든다. 입대 전에도 강렬한 충격을 보여줬던 만큼 기대는 당연히 클 수밖에 없다.

유민상, 박세혁 이 두 선수는 공교롭게도 아버지가 모두 야구선수 출신이다. 유민상은 유승안 감독(경찰청)의 아들이자 유원상(LG)과 형제 관계이고, 박세혁은 박철우 코치(두산)의 아들이다. 박세혁의 경우 더그아웃에서 아버지를 마주칠 가능성이 커졌다. 단, 박 코치가 1군 타격코치를 맡고 있으니 주전 경쟁에서 살아남아야만 아버지를 볼 수 있다.

웬만한 타자들은 군 문제를 해결했다는 점이 매우 고무적이다. 김재환, 오재일은 물론이고 정진호, 유민상, 박세혁 등에게도 야구에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됐다. 백업이 많은 팀에겐 흔한, 그러나 모든 팀이 할 수 있는 것은 아닌 행복한 고민이다.

올 시즌 두산은 외국인 선수 세 명 중에서 시즌을 풀타임으로 보낸 선수가 단 한 명도 없다. 니퍼트는 부상으로 두 달여의 공백기를 가졌고, 스와잭은 6월 중순에 합류했다. 또 로메로도 팀에 합류한 뒤 한동안 타격 부진에 발목이 잡히는 등 두산의 올 시즌 상위권 유지는 토종 선수들의 몫이 컸다.

행복한 고민을 이어가는 두산, 좌타자 거포들이 남은 후반기와 포스트시즌에서 '히든카드'가 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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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유준상 시민기자의 네이버 블로그 <유준상의 뚝심마니Baseball>(blog.naver.com/dbwnstkd16)에도 함께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프로야구 두산베어스 김태형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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