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 2TV 월화드라마 <너를 기억해> 포스터

KBS 2TV 월화드라마 <너를 기억해> 포스터 ⓒ KBS


최근 종영한 KBS 2TV 월화드라마 <너를 기억해>를 단순한 수사물로 본다면 어째서 연쇄 살인범인 이준영(최원영 분)은 다시 세상 속으로 숨고, 정선호라는 이름으로 살아가던 이현(서인국 분)의 동생 이민(박보검 분)은 살인에 대한 처벌도 받지 않은 채 싱겁게 끝난 것이냐고 물을 수도 있겠다.

이준영의 살인을 시작으로 이준영을 쫓기 위한 여정을 담은 드라마치곤 아이러니한 결말일 수도 있다. 하지만 깊이 들여다보면 이 드라마가 단지 살인자 이준영이 아닌, 어른들의 가혹한 폭력이 아이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 지에 대한 진지한 물음을 던지고 있다.

최근 가정과 사회의 보살핌을 받지 못한 16세인 미혼모가 17개월밖에 안 된 딸을 숨지게 만든 사건과 2011년 엄마의 가혹한 학대를 견디다 못해 엄마를 살해한 고3 아들의 사건은 학대에 극단적인 폭력으로 저항한 인간의 모습을 고스란히 드러내고 있다. ​작년을 기준으로 아동학대 신고 사례 중 실제로 혐의가 있다고 판정된 건수가 1만 건이 넘었다고 하니 그 심각성을 짐작할 만하다.

<너를 기억해> 속에도 가정폭력에 노출된 아이들이 등장한다. 성폭행을 당해 낳은 제 아들을 골방에 가두고 학대한 이준영의 모친, 이현이 괴한을 향해 총을 쏜 이후 자기 아들을 괴물로 여기고 지하실에 가둔 이현의 부친 이중민(전광렬 분), 엄마와 괴한이 총에 맞아 피를 흘린 채 쓰러져 있는 상황에 충격을 받고도 관심과 보살핌을 받지 못한 이현의 동생 이민.

그밖에 학대하는 부모로부터 이준영이 구원한 아이들도 있다. 그중 한 명이었던 경찰 최은복(손승원 분)은 이준영의 지문기록을 빼내기 위해 상사인 수사기획관 현지수(임지은 분)를 살해하기에 이른다. 어린 시절 자신을 학대하던 부모를 죽이고 자신을 구원한 이준영을 지키기 위해서 말이다.

연쇄살인범 이준영,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KBS 2TV <너를 기억해>의 이준영(도경수, 최원영 분)

KBS 2TV <너를 기억해>의 이준영(도경수, 최원영 분) ⓒ KBS


여기에서 예외적인 인물이 바로 차지안(장나라 분)이다. 이준영의 탈옥을 도왔다는 누명을 쓴 교도관의 딸인 차지안에겐 폭력에의 기억이 없다. 차지안의 아빠는 수감자인 이준영에겐 폭력을 행사했으나, 딸에게는 한없이 자상하고 좋은 사람이었던 것이다. 이준영으로 인해 아빠를 잃고 외롭게 자랐으나 폭력의 경험이 없는 차지안만이 유일하게 이준영에게 말한다. 과거의 어린 시절이 불쌍하다고 해서 살인과 폭력을 정당화할 수는 없다고 말이다.

하지만 어린 시절 학대로 인해 살인을 저지르게 된 것이 과연 이준영 개인만의 잘못일까? 어린 이준영을 학대로부터 지키고 보호했어야 할 가정과 사회의 책임을 배제할 수 있을까?

이준호 법의관이 이준영인 줄 알면서도, 그를 뻔히 눈앞에 두고도 그를 잡을 수 없는 것은 증거가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이현은 이준영을 잡으려고 하지 않는다. 자신으로부터 동생 이민을 데려가 살인마로 만든 이준영을 증오하는 눈빛을 보이거나 이준영을 이해하지도 용서하지도 않겠다는 독백을 남겼음에도, 그의 감정은 증오와 연민이 교차하는 듯 불안해 보인다. 이준영과 같은 얼굴을 하고 있는 이민을 보면서 느꼈던 것과 비슷한 감정이었을까. 어쩌면 이현 또한 이준영이 구원한 다른 아이들처럼 그에게 구원받았다고 느꼈을 지도 모른다.

"너는 네가 원하는 대로 될 수 있어. 너는 나 같은 사람이 될 수도 있고 나와는 정반대인 그런 사람이 될 수도 있어. 문은 하나가 아니거든. 앞문으로 나갈 수도 뒷문으로 나갈 수도 있는 거야."

이현의 아버지를 죽인 후 그를 향해 이준영이 건넨 말이다. 이현은 이준영의 말대로 괴물이 되지 않는 쪽을 스스로 택했고, 프로파일러가 됐다.

만약 이현이 자신을 괴물이라 여기는 아버지의 훈육 아래 지하실에 갇혀 자랐다면 현재와 같은 모습으로 성장할 수 있었을까? 이현과 이민 두 아이를 떼어놓는 것이 그들을 위하는 일이라 여겼던 이준영은 자신이 꿈꾸었던 모습으로 자란 이현의 눈에 담긴 증오심을 보고, 자기를 죽이려는 자신과 똑 닮은 분신 같던 이민을 찌르면서 무슨 생각을 했을까? 자기 아이를 학대하며 훈육하는 것이 올바르다고 믿는 부모처럼 그 역시 학대받는 아이들을 위한다는 미명 아래 자신의 폭력과 살인 등의 행위를 정당화해 온 것은 아닐까.

태어날 때부터 살인자였던 사람은 없다

 KBS 2TV <너를 기억해> 마지막회 주요 장면

KBS 2TV <너를 기억해> 마지막회 주요 장면 ⓒ KBS


드라마 말미, 이준영은 유유히 거리 한복판을 활보하며 이현과 차지안의 곁을 스쳐 지나간다. 하지만 그 장면이 영화 <살인의 추억>의 마지막 장면처럼 섬뜩하게 느껴지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준영의 나지막한 독백 "포기하지 말고, 나를 찾아줘"는 잡히지 않기 위해 도망치는 범죄자가 아닌, 아무도 기억해주지 않는 자신을 현이 기억하고 찾아주길 바라는 그의 외로운 마음이 담긴 메시지로 읽히기도 한다. 이준영은 모든 사람이 자신을 경멸하거나 두려워했는데 자신을 '남들과 다른 사람'이라고 했던 어린 이현의 말을 통해 처음으로 이해받는 느낌이 들었다고 했다. 어쩌면 이준영도 모친을 비롯해 가족 중 누구라도 자신을 인간답게 바라보는 사람이 있었다면 살인자가 되지 않을 수 있었을까.

감옥에 갇혔던 어린 이준영이 어린 이현을 향해 했던 말은 그래서 의미심장하다.

"모든 동물한테는 결정적 시기라는 게 있어. 뇌가 성장하고 완성되는 시기. 그 시기에 보고, 듣고, 알고, 느낀 건 쉽게 안 바뀌거든. 그리고 나는 그걸 영혼이 만들어지는 시기라고 불러. 나보다 네 결정적 시기는 어떠니? 내 생각엔 너도 남들과 다른 사람일 것 같은데. 힘들진 않니? 사람들이 널 이해해줘? 아빠는, 널 믿니?

태어날 때부터 예쁜 아이가 있었고 누군가 참 예쁘다 예쁘다 해서 예뻐지는 아이가 있어. 태어날 때부터 바보였던 사람이 있고 누군가가 바보로 불러서 바보가 된 사람도 있지. 그리고 또 태어날 때부터 괴물이었던 사람이 있고 누군가가 괴물로 바라보고 괴물로 불러서 괴물이 된 사람도 있단다. 아빠는 너를 어떻게 부르니? 어떤 눈으로 봐?"

작가는 결국 이준영의 입을 빌려 시청자들에게 말하고 싶었던 게 아닐까? '태어날 때부터 살인자였던 사람은 없다'고 말이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조진주 시민기자의 블로그(http://blog.naver.com/chongah7)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게재를 허용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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