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전도연.

배우 전도연 ⓒ 롯데엔터테인먼트


영화 개봉을 앞둔 보통 배우라면 적절히 홍보성 발언을 하면서도 영화 속 자신의 부족한 모습은 숨기기 십상이다. 하지만 전도연은 달랐다. 13일 개봉하는 <협녀, 칼의 기억>(이하 <협녀>)에 대해 그가 가장 먼저 꺼낸 말은 "당황스러웠다"였다.

11일 오후 서울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전도연을 만났다. 당황스러웠던 이유의 상당 부분은 자신 때문이었다.

전도연은 극 중 자신을 버리고 대의를 저버린 한 사내에 대한 복수를 꿈꾸며 18년의 세월을 견딘 검객 월소 역을 맡았다. 역할 소화를 위해 촬영 전 6개월 간 가장 먼저 액션 연습에 들어갔고, 무술 동작을 자연스럽게 소화하기 위해 고전무용도 함께 배웠다. "사실 하루 이틀 더 준비한다고 완벽해지는 게 아니잖나"라면서도 전도연은 "어떻게든 내가 안되는 부분은 타협하면서 했는데 그 과정에서 내 단점이 더 부각된 거 같다"고 말했다.

- 촬영이 끝나고(2014년 2월 21일 크랭크업) 1년 반 정도가 지나 개봉하게 됐다. 영화 공개 직후 본인 연기의 아쉬움부터 말하니 그만큼 기대가 컸던 작품인 듯하다. 액션과 맹인 연기, 모성 연기까지 보여줄 것도 참 많았다.
"언론 시사(8월 5일) 직후 박흥식 감독님이 내 반응이 궁금해서 물었는데, 아무 대꾸도 할 수 없었다. 어쨌든 출연 영화를 보면 우선 내 모습부터 보게 되는데, 현장에서 걱정했던 것들이 크게 나타났더라. 맹인 연기 때는 눈 깜빡임을 참기 어려웠고, 이쑤시개로 찌르는 거 같은 고통을 참으며 촬영하곤 했다. 근데 그게 영화에 다 티가 났다."

그는 이 대답을 하면서 다소 울상을 지었다.

무협으로 찾아온 전도연... 액션-맹인-모성 연기까지

 영화 <협녀, 칼의 기억>의 한 장면.

영화 <협녀, 칼의 기억>의 한 장면. ⓒ 롯데엔터테인먼트


- 한동안 관객에게 생소했던 무협이다. 역시 전도연이 또 새로운 도전을 한다 싶었다.
"도전이기보단 박흥식 감독님과 오래 전에 했던 약속을 지킨 거다. (전도연은 박흥식 감독과 <나도 아내가 있었으면 좋겠다> <인어공주>를 함께 했다-기자 주) <인어공주>(2004) 촬영 때 감독님이 세 여자 협객의 이야기를 하고 싶다며 함께 하자고 했는데 나만 기억했던 거지.(웃음) 오랜 시간이 지났다. 그때 골격과 좀 달라지긴 했지만 개인적으로는 시나리오를 보고 무협이라고 느끼진 않았다. 성향이 무협을 좋아하는 것도 아니었고... 중학생 때 비디오로 몇 번 빌려본 정도였다. 요즘 젊은 관객들이 무협을 잘 모른다고 하는데 그냥 판타지 액션 정도로 생각해 달라고 하고 싶다. "

- 제목의 '협'은 사실 남성의 전유물 같이 느껴질 수 있다. 여기에 여자 '여'가 붙어 더 신선한 느낌을 준다. 촬영 전후로 '협'에 대해 많이 생각했을 거 같다.
"영화의 주요 메시지기도 한데 의협의 협이다. 월소는 사랑하는 사람의 배신으로 인해 자식 홍이(김고은 분)에게 복수를 종용하지 않나. 그 감정을 이해하기 어려워 감독님에게 물었다. 감독님이 '협은 지금도 존재하지만 이걸 지키고 사는 이가 별로 없다'고 하더라. 고지식하지만 지켜야 할 건 지키며 사는 사람이 있는데, 그런 걸 월소를 통해 말하고 싶다고 하셨다. 그 말에 동의했다.

요즘 말로 협은 정의일 수도 있다. 정의란 게 결국 사람마다 입장에 따라 달라질 수도 있잖나. 그래서 협도 정의도 이기적이라고 생각한다. 다만 타협하지 않고 끝까지 밀고 가는 정신이 좋다. 처음 시나리오를 봤을 땐 지독한 사랑 이야기라 좋았다. 복수의 대상이던 유백(이병헌 분)이 결국 월소가 운명의 사랑이라는 걸 인정하며 갑옷을 벗는데, 그 장면에서 많이 슬펐다."

"처음 시나리오를 봤을 땐 지독한 사랑 이야기"

- 그 지점이다. 어떤 장르의 영화든, 어떤 이야기에서든, 전도연은 '사랑'을 기막히게 찾아낸다. 그 '멜로의 심장'이 전도연이라는 배우를 뛰게 하는 엔진 같다.
"내 성향이 그렇다. 이게 사실 장점이자 큰 단점일 수 있다. 내가 했던 작품이 장르가 모두 다르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난 줄곧 사랑을 말하는 작품을 해왔고, 그래서 스스로는 다양성이 없는 배우라고 생각하고 있다. 어떤 이야기에서든 사랑을 찾아다녔으니."

- 동의할 수 없다. 그런 전도연의 성향 덕에 결국 <밀양> 같은 절망적 상황 속 인물에게 관객들은 어렴풋이 희망을 느낄 수 있었다. 전도연이 표현한 인물은 비록 어둠의 영역에 있더라도 시선은 빛의 영역을 향하고 있었다. 다른 배우들이 표현할 수 없는 장점 같다.
"딱 한 사람에게 그 비슷한 말을 들었는데 너무 감사하다. 결국 나는 사랑 없이는 살 수 없는 사람이다. 어떤 이야기든 어떤 인물이든 결국 사람과 사랑에 대한 이야기에 끌리는 거 같다. 삶의 본질이 그렇지 않나. 그렇다고 깊고 어두운 이야기만 찾는 건 아니다. 명백하게 드러나 있는 것보다는 좀 더 숨어있는 이야기에 호기심이 생긴다. 

얼마 전 내가 출연했던 <접속>(1997)을 다시 봤다. 가볍고 발랄해 보이지만 단정적인 감정은 아니었다. 밝은 이야기로 포장됐을 뿐이지 뭔가 다른 감정을 말하고 있다 여기고 촬영했었다. <접속>도 그렇지만 <너는 내 운명> <내 마음의 풍금> 같은 작품은 지금 다시 하자고 해도 할 거 같다."

- 1990년 광고 모델로 데뷔 후 25년이 지났는데 공백은 영화 <카운트다운>(2011)년 직후 단 2년뿐이었다. 꾸준함의 비결이 있다면?
"전도연이라는 배우에 대한 믿음인 거 같다. 그렇지 않으면 (제작사, 투자사가) 날 쉽게 택하지 못할 거 같다. 세월도 흘렀고, 어느새 현장에서 스태프들에게 내가 어려운 존재가 돼 있더라. 그럼에도 함께 하고 싶은 배우라는 게 큰 힘이 된다. 나 역시 연기할 땐 고통스럽지만 그것조차 즐겁고 사랑할 수 있는 애정이 있다. 그 지점에서 지치면 슬럼프가 온다. 분명 내게도 슬럼프가 있었지만, 깊은 애정으로 이겨낸 거 같다."

"김고은, 지치거나 상처받지 않고 잘 성장하길"

- 데뷔 직후 꾸준히 현모양처가 꿈이라고 하지 않았나. 오히려 배우에 대한 미련이 없다는 게 롱런의 비결 같다.
"사실 그 말이 정확하다. 배우가 내 꿈도 목표도 아니었다. 김고은씨처럼 전문적으로 공부한 것도 아니었고, 일 욕심을 갖고 시작하지도 않았다. 하다 보니까 애정이 생긴 거지. 그래서 잘 안 지치는 거 같기도 하다. 고은씨가 선택하는 작품을 보면 대부분 쉽지 않은 것들이다. 어린 나이라 예뻐 보이고 싶을텐데, 이야기를 쫓으며 작품을 해간다. 나와 비슷한 부분이다. 부디 그가 연기하면서 지치지 않고 상처받지 않길 바란다. 고은씨 나이 때 난 아무 생각 없이 일했다. 뒤늦은 애정이 생겨서 이제 박차를 가하는 거지.(웃음)"

- 집에선 엄한 엄마라고 들었다. 김고은과 <협녀>에서 딸과 엄마로 호흡을 맞춘 만큼 실제 엄마의 마음도 담기지 않았을까.
"내 성격이 보통 여성들이 수다 떨듯 말을 잘 못 한다. 표현도 서툴다고 할 수 있고, 인간관계 역시 익숙한 사람 빼고는 편안함을 못 느낀다. 나답게 표현하면 사람들이 좀 어려워하더라. 이건 시간이 지나면 해결될 일 같다. 사실 누구보다 마음이 여린데.

그리고 아무리 딸이라고 해도 아닌 건 아니더라. 물론 아직 아이니까 이해해줄 법한데 그래서 미안함도 있다. 딸이 지금 7살인데 5살 때 하늘을 보면서 엄마가 착한 엄마가 되길 빌었다고 하더라. 고맙고도 미안하다. 딸이 나중에 배우를 하고 싶다 하면? 일단 말릴 거다. 배우는 혼자 버티고 견뎌야 하는 시간이 있는데 아이가 굳이 그런 시간을 겪어야 할까. 다른 걸 통해 세상을 넓게 보고, 다양한 사람을 만났으면 한다."

[<협녀> 인터뷰 ②] 김고은 "<협녀>는 최고 수위 고통 준 작품"

전도연 협녀, 칼의 기억 김고은 이병헌 박흥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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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메가3같은 글을 쓰고 싶다. 될까? 결국 세상을 바꾸는 건 보통의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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