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김여진.

배우 김여진. ⓒ NXT인터내셔널


오십 번 넘게 오디션에 떨어지면서도 연기를 포기 못한 배우가 있다. "단 한 작품으로라도 무대에 서고 싶었다"는 생각은 집념이 됐고, 데뷔한지 7년(2008년 데뷔)이 지나며 어느새 대극장 무대에 오르는 배우가 돼 있다.

뮤지컬 <잭 더 리퍼> <삼총사> <로빈훗>으로 관객과 만나온 배우 김여진 이야기다. 최근 소속사에 들어가며 한 단계 더 도약을 노리는 그녀를 지난 13일 서울 강남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친구 따라 꿈이 된 뮤지컬 배우..."가수로 데뷔할 뻔"

김여진은 흔히 말하는 스타 코스를 밟진 않았다. 뮤지컬 <오! 당신이 잠든 사이>로 스물다섯에 뮤지컬 배역을 따왔다. 늦다면 늦을 수 있는 나이다. 오디션에서도 이미 고배를 수십 번 마신 뒤 얻은 그 기회가 마중물이 됐다. 점차 배역을 키워가던 김여진은 <잭 더 리퍼>를 통해 대극장 무대를 밟고, 현재까지 작품마다 주요 배역을 소화하며 관객과 소통 중이다.  

"(데뷔작인) <오! 당신이 잠든 사이>의 최종 오디션이 대학교 졸업식과 겹쳤어요. 당연히 오디션을 보러 갔죠. 학생 역할이었기에 진짜 교복을 입고 머리도 묶고 갔습니다. 연기를 끝냈는데 연출님이 자기 눈을 한 번 보라고 해서 봤더니 고개를 끄덕이더라고요. '아, 내가 붙었구나' 직감했습니다. 나중에 들었는데 눈빛을 보고 뽑으신 거였어요. 진짜 절실함이 필요한 거구나 다시 한 번 느꼈습니다."

자신도 인지하지 못했던 절박함이었다. 사실 김여진은 애초에 연기보다는 노래에 재능 있던 학생이었다. 단국대학교에서 뮤지컬을 전공하기 전까지 동아방송예술대학교 실용음악학과를 다녔다. 2007년엔 대학가요제에 학교 대표로 나가기도 했다. 이 모든 게 친구 때문에 시작됐다. 고향 마산에서 청소년기를 보낸 김여진은 음악을 좋아하던 친구의 부탁에 밴드 활동을 시작했고, 코러스를 넣으며 어울리다 지역에서 주목받게 된다. "원래 노래도 좋아하진 않았다"며 김여진은 "그 친구의 꿈이 뮤지컬 배우였고, 그게 내 꿈이 된 셈이다"이라고 말했다. 

 뮤지컬 <조로> 공연 당시 모습. 김여진은 루이사 역을 맡아 열연했다.

뮤지컬 <조로> 공연 당시 모습. 김여진은 루이사 역을 맡아 열연했다. ⓒ 프레인


"(고등학생 땐) 오페라 성악이 뮤지컬인 줄 알았어요. 음악에 대한 엄청난 열정을 가진 친구에겐 미안했지만 그땐 그랬어요. 사실 동네에선 친 언니가 유명했어요. 얼굴도 예쁘고 공부도 잘해서 사람들에게 주목받았죠. 집에선 제게 '넌 커서 뭐 될래?' 잔소리도 했고, 뭐라도 해야겠다는 마음에 서울예대에 입학한 선배를 수소문해서 매주 레슨 받으러 다녔습니다. 기차나 버스를 타고 올라가면서 '내게 어울리는 노래는 뭘까' 등을 생각하며 진지해진 것 같아요. 그래서 실용음악과에 들어갔고, 뮤지컬이란 것도 그때 제대로 알게 됐어요.

갈림길이 물론 있었죠. 고등학교 졸업 무렵에 아이돌 연습생이 될 뻔했습니다. 계약서에 도장 찍으러 만났는데 가족이나 친구도 만날 수 없다는 말에 안 내키더라고요. '아이돌이 되려면 내 젊은 시절을 내놔야 하는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무대에서 '자유' 만끽하는 쾌감..."앞으로도 떠나지 못할 것"

그렇게 자신도 모르게 뮤지컬 연기가 꿈으로 자리 잡았다. 김여진은 "당시 교수님도 제게 금방 성공하는 게 아닌 나중에 잘 될 아이라면서 힘을 주셨다"며 "나 역시 조금만 더 버티면 원하는 걸 잡을 수 있다는 믿음을 품고 있었다"고 당시를 떠올렸다.

'자유로움'. 김여진이 뮤지컬을 하면서 느끼는 가장 큰 즐거움이다. 명확하게 정해진 정답이 없는 만큼 배우의 해석에 따라 연출에 따라 작품은 크게 달라진다. 이 지점에 김여진은 일종의 쾌감을 느낀다고 한다. "어떤 연기를 해도 행복하다. 무대 위에 있으면 관객의 감정이 고스란히 느껴진다"며 "그것 때문에 무대를 떠나지 못하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 말했다.

7년 넘게 무대를 오르면서 경력 또한 풍부해졌다. 현재까지도 대학로에서 인기 공연으로  꼽히는 연극 <옥탑방 고양이>가 있다. 김여진이 바로 해당 공연의 초연 멤버다. 자신이 참여한 작품이 지금까지 여러 배우를 배출하며 장수하고 있다는 사실에 그녀는 감사해 하고 있었다.

 배우 김여진.

배우 김여진. ⓒ NXT인터내셔널


"<옥탑방 고양이>에서 제가 경상도 여자 역을 맡았거든요. 그 배역을 그때 함께 만들어갔어요. 제가 넣은 대사들과 아이디어들이 지금도 나오는 게 뿌듯하더라고요. 큰 선물이죠. 연극에서 소극장 뮤지컬, 이어서 대극장 무대에 진출하는 게 흔치 않은 경우래요. 좋게 봐주신 분들 덕이죠. 감사한 사람들에 대한 의리는 평생 지킬 겁니다."

다시 강조하지만 순식간에 스타가 된 배우는 아니다. 김여진은 "무대 청소와 선배들 분장 첩 빨래부터 해 온 사람"이라고 자신을 설명했다. "그렇기에 천천히 멀리 보는 배우가 되고 싶다"고 각오를 전했다. 당연히 드라마와 영화에서도 모습을 드러내길 그녀도 원하고 있다. 다만 김여진에게는 "작품과 함께 출연하는 배우들을 빛나게 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분명한 철학이 있었다.

김여진 오! 당신이 잠든 사이에 조로 옥탑방 고양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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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메가3같은 글을 쓰고 싶다. 될까? 결국 세상을 바꾸는 건 보통의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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