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손님>에서 미숙 역의 배우 천우희가 8일 오후 서울 팔판동의 한 카페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영화 <손님>에서 미숙 역의 배우 천우희가 8일 오후 서울 팔판동의 한 카페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 이정민


최근 3년간 대한민국 내 그 어떤 배우보다 '드라마' 같은 시간을 보냈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불과 영화 <써니>(2011) 직후만 해도 '본드 불던 소녀'라고들 기억했던 대중과 연예 관계자들이 그녀의 진가를 확인하고 주목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주위의 선입견 내지 편견에도 천우희는 무던하게 밀고 갔다. 이 말에 "저, 워낙 긍정의 왕이에요"라며 웃어 보였지만, 스스로 천우희가 이겨내야 했던 안팎의 갈등이 분명 있었다. 결국 천우희는 자신의 장기를 <한공주>(2013)와 <우아한 거짓말>(2014) 등에서 증명하고 있다. 집단 폭행 피해자인 여고생과 소녀 가장으로 동생을 돌보는 연기에 관객들은 감응했고, 평단 역시 천우희에게 각종 상을 수여하며 공을 인정했다. 

최근 개봉(9일)한 영화 <손님>으로 천우희는 관객과 만나는 중이다. 작품의 일부에서 절반 이상을 책임지는 배우로 부상하기까지 견디고 이끌어 왔던 그녀의 비결이 궁금했다. 지난 8일 서울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천우희에게 자세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써니> 이후 1년 6개월..."스스로에 대한 의심이 생겼다"

영화 <한공주>는 천우희에게 첫 여우주연상을 안긴 작품이다. 2004년 <신부수업>으로 데뷔한 이후 10년 동안 단역에서 조연, 조연에서 주연까지 거쳐온 경험이 켜켜이 쌓여 있었다. 그때 감정이 복받친 듯 천우희는 지난해 청룡영화제 수상 당시 눈물을 흘리며 수상소감을 말했고, 당시 사회를 봤던 김혜수가 "실력으로 무장한 배우다"라고 격려하며 화제가 되기도 했다.

천우희의 그때 발언을 복기하다 보니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눠볼 수 있었다. "유명하지도 않은 제가 이렇게 큰 상을 받다니"와 "이 상을 주신 게 포기하지 말라는 뜻인 것 같다. 앞으로도 배우하면서 의심하지 않고 정말 자신감 갖고 열심히 배우 하겠다"였다. <한공주>를 연출한 이수진 감독과 함께 고생한 스태프들, 그리고 가족에 대한 감사도 잊지 않았지만 배우로서 천우희가 속으로만 쌓아왔을 고민들이 느껴지는 발언이라 더 큰 먹먹함을 줬다.

영화 <써니> 직후 1년 6개월간 방황했다. 스스로도 "좌절을 잘 하지 않고, 좌절하더라도 모든 걸 좋게 생각하는 주의"였다지만 여러 영화 오디션에 차례로 낙방하며 본인도 모를 의심이 생겼던 시기였다.

 영화 <손님>에서 미숙 역의 배우 천우희가 8일 오후 서울 팔판동의 한 카페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 이정민


"본래 오디션에서 떨어지든, 어떤 어려운 일이 생기든 '내 인생이 더 잘 되려하나 보다' 생각하곤 했어요. 그런데 어떤 한 분야에서 연속해서 고배를 마시니 저에 대한 의심이 들 때가 있더라고요. 그 순간 구렁텅이에 빠졌어요. 연기 외의 것을 생각해 본 적이 없었는데 내가 믿고 있던 게 착각이었나 의심하게 됐죠. 불안증이 생겼는데 그걸 애써 감추려 하진 않았어요. 물론 부모님에겐 말 못했죠. 딸의 일거수일투족이 걱정이시니 일 얘기는 집에서 잘 안하는 편이에요.

친구들에게 편하게 얘기했어요. '잠도 못 자고 요즘 그런다, 불길한 사고가 내게 혹은 내 주변 사람들에게 일어날 것만 같다'고 하니 대부분은 치료받으라고 하더라고요. 그런데 한 친구가 '난 그래도 너 걱정 안 해. 불안감이 크다는 건 살고자 하는 마음이 강하다는 거야!' 이랬어요. 그 순간 제 고민이 한 방에 날아가더라고요. 사람에겐 잠재력이 있고, 그게 사실이라면 모든 건 마음먹기에 달려있다고 다잡게 됐어요."

천우희 연기 방식은 곧 '뺄셈의 미학'

<한공주>를 만나게 된 걸 천우희는 천운이라 표현했다. 현실의 벽에 막혔던 순간, 친구의 말로 마음을 잡자마자 만난 작품이었기 때문이다. 사실 이 말에 적극 동의할 수는 없었다. 단번에 주연을 맡은 것도 아니고, 말 그대로 한 단계씩 성장해오지 않았나. 주연과 조연 여부가 물론 해당 배우의 연기 수준을 의미하진 않지만, 10여 편의 작품을 거치며 천우희는 표현의 너비와 깊이를 확장해왔다. 운으로는 결코 이룰 수 없는 성과다.

다른 말로 천우희의 연기 방식을 '뺄셈의 미학'으로 표현하고 싶다. 하수일수록 욕심을 내다가 군더더기를 붙이는 법이다. <손님>을 예로 들어본다. 선무당 미숙 역을 맡은 천우희는 각종 다큐멘터리와 문헌 등을 참고하면서 무당을 연구했다. 굿의 종류와 쓰임도 빠뜨리지 않고 공부했다. 기존 무당과 다른 모습을 보이기 위해서였다.  

"본래 주문을 외운다는 설정, 접신하는 설정도 있었는데 제가 그렇게 해버리면 관객의 시선을 너무 뺏어버릴 거 같아서 다른 식으로 해보고 싶다고 감독님에게 말씀드렸어요. 새롭게 표현하기 위해서는 많이 알아야 하잖아요. 그래야 표현 방법도 넓어질 수 있고, 빼고 또 빼면서 연기를 잡아갈 수 있고요. <한공주> 때는 자료조사보다는 상상을 많이 했어요. 여고생으로서 그런 비극에 몰린다면 어떻게 행동하게 될지 등이요.

작품마다 대입 방식은 다르겠지만 공통적인 건 준비를 많이 하려고 해요. 답은 절대 내리진 않아요. 현장에서 새로운 상황이 생길 수 있으니까 경우의 수를 하나씩 생각해 보고 그런 상황에 놓였다고 가정해보기도 하죠. 유독 절 좋아해주시는 분들 중에 배우 지망생이 많아요. 단역부터 제가 시작한 만큼 절 보며 힘 얻는다는데 전 꼭 현장에서 다시 만나자고 하거든요. 그분들 봐서라도 진짜 열심히 해야겠다고 결심하곤 해요."

무당이 된 천우희의 <손님> 제대로 감상하기

 영화 <손님>에서 미숙 역의 배우 천우희가 8일 오후 서울 팔판동의 한 카페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 이정민


 영화 <손님>에서 미숙 역의 배우 천우희가 8일 오후 서울 팔판동의 한 카페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 이정민


다시 영화 <손님>을  살펴보자. 사실 다른 작품에 비해 <손님>에서 천우희는 많은 걸 가리고 눌러야 했다. 영화는 독일 중세시대 마을 하멜른의 <피리 부는 사나이>를 원작으로 공간적 배경을 한국 전쟁 직후로 바꿔 놨다. 고립된 마을에 우연히 신세를 지게 된 우룡(류승룡 분)과 그 아들 영남(구승현 분)이 겪는 괴이한 사건이 이야기의 핵심. 여기서 선무당 미숙은 끔찍한 마을의 비밀을 감추려는 사람들과 우룡 사이에서 갈등하는 인물이다.

연출을 맡은 김광태 감독은 약속에 대한 영화라고 강조했지만 천우희는 좀 더 보태 본능과 두려움 등 인간 본성에 대한 작품으로 이해하고 있었다. 마을에 들끓는 쥐를 쫓아내 주면 사례하겠다던 사람들이 어떤 계기 때문에 서로를 의심하고 급기야 손님인 우룡 부자마저 위협한다.

"두려움의 대상이 여러 가지잖아요. 쥐일 수도 있고, 낯선 사람일 수도 있고, 무속신앙일 수도 있어요. 영화를 보면 '살고자 저지른 악행은 죄를 받지 않는다'는 촌장(이성민 분)의 대사가 있지만 그건 결국 자신에 대한 타협이자 합리화죠. 인간 본연의 이기심에 대해 생각하게 한 작품이에요."

타협에 있어서 천우희는 엄격하다. 타인의 관계에 있어선 융통성을 발휘하지만 사람의 도리나 불의에 있어선 타협하지 않으려 한단다. 연기도 마찬가지다. 자기 연기에서 부족함이 보이면 그게 그렇게 힘들다고 하는데, 조금은 마음을 편히 먹어도 되지 않을까 조심스레 권했다. <손님> 이후 천우희는 <뷰티 인사이드> <해어화> <곡성> 등을 통해 꾸준히 관객을 찾는다. 내년까지 즐거운 마음으로 그녀의 다양한 모습을 기다려보자.

○ 편집ㅣ이현진 기자


천우희 손님 류승룡 이준 한국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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