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에게나 자기만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하지만 연예인들의 그런 이야기는 잘 알려지지 않습니다. 주로 우리는 간접적으로, 대중매체를 통해 그들을 만납니다. 그러기에 오해도 많고 가끔은 그들도 나와 같은 사람임을 잊기 쉽습니다. 동시대 예인들이 직접 쓰는 자신의 이야기, '오마이 스토리'를 선보입니다. [편집자말]
무대작업자로 살아간다는 것은 천형(天刑)입니다. 현실 너머를 엿본 자는 현실에 발붙일 수도, 현실을 외면할 수도 없습니다. 그렇게 영원히 저공비행하며 살아가야 합니다. 너무 높이 날면 태양에 날개가 녹을 것이고, 발을 땅에 대는 순간 유랑은 끝이 납니다.

28살에 회사를 때려치우고 우연히 시작한 연극은 20년이 넘는 시간을 함께 하며 제 삶의 필연이 되었습니다. 길거리 포스터 부착부터 연기, 연출, 극작까지 다양한 작업 속에서 연극의 눈으로 세상을 새롭게 읽게 되었습니다. 객석에서 무대를 보지 않고, 무대에서 객석을 바라보는 저공비행의 풍경을 여러분과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배우 김경익 드림>

연기는 무대 위에서만 하는 게 아니다.

세상 속에서 우리는 이미 다양한 연기를 하면서 살고 있다. 나는 누군가의 아들이고, 누군가의 남편이고, 동시에 누군가의 친구다. 친구를 만나듯 부모를 만나거나, 조카를 만나듯 직장 동료를 만나진 않는다. 관계와 상황이 바뀌면 우리는 '나'를 변형시키며 '연기'하고 살아간다. "인생은 연극 세상은 무대"라는 셰익스피어의 말처럼 어쩌면 우리는 매일 분칠을 하고 다양한 역할을 해내야 하는 어릿광대인 것이다.

그렇다면 나는 세상 속에서 어떤 배역을 맡아 어떤 연기를 하고 사는 광대일까? 주연일까? 조연일까? 아니면 보조출연자일까?

당신이 세상에서 해야 할 연기의 핵심은...

 배우 김경익

배우 김경익 ⓒ 김경익 제공


내가 세상이란 무대에 올라가서 말하고 행동하면 주변의 관객들은 내 연기에 어떤 반응을 보이는가? 나의 말과 행동에 재미와 감동을 느끼며 더욱 긴 시간을 함께 하고 싶어하는가? 아니면 억지 박수를 끝내고 빨리 극장 밖으로 나가고 싶어 하나? 그것도 아니라면 눈도 마주치기 싫어서 딴 곳을 바라보는가? 무대에 선 누구라도 관객의 열정적인 반응과 환호를 기대할 것이다.

그럼 우리가 관객이 되었을 때는 어떤 사람의 말과 행동에 재미와 감동과 흥미를 느끼는가? 입장을 바꿔 생각해보면 이것이 바로 '나'라는 광대가 주변의 관객들에게 해야 할 연기(acting)의 핵심이다. 남의 눈치를 보며 아양떨며 살자는 게 아니다. 세상 속 나의 역할을 냉정히 파악하고 뜨겁게 살자는 것이다. 이 역할 인식이 불분명하면 세상은 난장판이 된다.

어느 회식 날. 맥주잔이 작고 아담한 소주잔이 부러워 소주잔 역할을 했다. 그 날 참석한 여러 사람들을 골로 보냈다. 또 어느 날 소주잔은 밑바닥에서 헌신하는 요강이 부러워 요강 역할을 했다. 여러 사람이...많이...불편했다. 같은 유리지만 서로 역할이 달랐다.

그러나 인간의 역할은 소주잔이나 맥주잔과는 달리 자신의 노력과 의지를 통해 변화될 수 있다. 유한한 인간이 꿈꿀 수 있는 그 무한한 가능성이 인간이 가장 인간다워지게 만드는 매력이다.

무대에 처음 서면 누구나 낯설고 어색하다

 김경익은 영화 <타짜>에서 정 마담(김혜수 분)을 지키는 금이빨 보디가드 빨찌산 역을 맡았다

김경익은 영화 <타짜>에서 정 마담(김혜수 분)을 지키는 금이빨 보디가드 빨찌산 역을 맡았다 ⓒ 싸이더스 픽쳐스


태어날 때부터 우리가 사는 모습을 누군가 카메라로 찍고 있다고 가정해 보자. 내가 있는 모든 장면에 '나'는 항상 출연한다. 바로 내가 주인공이다. 역할이 작던 크던 화려하던 비루하든 우린 모두 자기 삶의 주인공이다.

영화 속 주인공이 대충대충 눈치 보며 낙엽처럼 흔들거리며 늙어 가는 영화를 보고 싶은가? 아닐 것이다. 자신의 한계를 극복하려 노력하고, 설령 실패하더라도 희망과 사랑을 가슴에 안고 사는 주인공을 보고 싶어 할 것이다. 그게 오늘 내가 해야 할 '연기'다.

지금 이 순간, 바로 여기서 세상 속 내 역할을 해내기 위한 작은 용기와 변화의 한 걸음. 그것이 내 시간을 감동과 행복을 만들어 가는 연기의 시작이다. 시작은 조금 낯설고 어색할 수 있다. 하지만 무대에선 누구나 그렇다. 모두 그렇다면 나만 겁낼 일이 아니다. 넘을 수 있는 벽은 더 이상 벽이 아니고, 열 수 있는 문은 더 이상 문이 아니다.

자!~ 세상 속 바보 광대여! 내 삶의 주인공은 바로 '나'다. 어깨를 펴고 허리를 세우고 고개를 들자. 주인공으로 관객을 위해 감동의 '연기'를 해보자. 오늘도 감사하게도 새벽의 막이 열리고 태양의 색 온도가 높아진다.

스탠바이...액션!

* 배우 김경익의 '무대에서 저공비행' 2편으로 이어집니다.

 뮤지컬 <도솔가>에 출연했을 당시 모습

뮤지컬 <도솔가>에 출연했을 당시 모습 ⓒ 김경익 제공


'오마이스타'들이 직접 쓰는 나의 이야기 - 오마이스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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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배우 김경익, 한국의 대표적인 햄릿 배우. 거목 이윤택의 연희단거리패에서 12년 동안 다양한 작품을 통해 내공을 쌓았다. 영화 <처녀들의 저녁식사> <박하사탕> <남극일기> <헨젤과 그레텔> 등에 출연했다. 영화 <타짜>에서 정 마담(김혜수 분)을 지키는 금이빨 보디가드, 빨찌산 역으로 친숙한 얼굴이기도 하다. 현재 극단 <진일보> 대표로 연극 <봄날은 간다> <바보 햄릿> <아리랑 랩소디> 등을 연출하는 등 배우 겸 연출가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연극 연기 연출 김경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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