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틸 앨리스> 스틸컷

<스틸 앨리스> 스틸컷 ⓒ 그린나래미디어(주)


기억상실. 한국 드라마 시장에서 '기억상실'은 어느덧 막장 코드의 하나로 자리 잡았다. 좀 더 극적인 상황을 연출하기 위해 남발한 기억상실이라는 소재는 드라마계의 MSG가 되었다. 그러나 우리는 뻔한 소재라고 생각하면서도, 여전히, 속는 셈 치고 본다.

알츠하이머 혹은 치매는 어떤가. 이 질병은 많은 사랑을 받은 소설과 영화에서도 자주 등장한다. <엄마를 부탁해>(신경숙), <살인자의 기억법>(김영하) 등이 그렇다. 심지어 노벨문학상을 받은 <어두운 상점들의 거리>(파트릭 모디아노) 역시 기억상실증에 걸린 주인공의 이야기다. <내 머리 속의 지우개>는 멜로영화의 새 역사를 썼다.

우리가 기억을 다룬 이야기들을 좋아하는 이유는, 역설적이게도 기억을 잃는 것에 대한 두려움 때문일 것이다. 기억을 잃는다는 것은 곧, 자기 자신을 잃어버리는 것과 같다는 것을 우리가 매우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기억을 잃은 사람들이 어떻게 살아갈지에 대해 본능적으로 호기심이 생긴다.

<스틸 앨리스>의 개봉 소식을 듣고서, 역시나 뻔한 이야기겠지 했다. 하지만 궁금했다. 더군다나 무려, 줄리안 무어다. 그녀는 이 영화로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받았다.

"I am not suffering, I am struggling"

 <스틸 앨리스>의 스틸컷

<스틸 앨리스>의 스틸컷 ⓒ 그린나래미디어(주)


<스틸 앨리스>는 세상에서 가장 똑똑한 여자(앨리스, 줄리안 무어 분)가 알츠하이머를 앓게 되면서 세상에서 가장 멍청한 여자가 되어가는 과정을 그린 영화다. 그녀가 처참히 무너지는 과정에서 가족들의 따뜻한 사랑 혹은 갈등을 그릴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 얼마나 오만방자한 지레짐작이었던가.

물론, 영화는 그녀의 곁을 따뜻하게 지키는 가족들의 모습을 인상 깊게 그린다. 그러나 나는 영화를 보며 가족애를 느꼈다기보다는 나 자신에게 부끄러움을 느꼈다. 치매에 걸린 사람들을 보면 언제나 동정의 눈길을 보내곤 했다. 정신이 죽은 육체는 그저 껍데기일 뿐이라 생각했다. 저 사람들에게 삶의 의미는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영화를 통해 그런 나의 생각이 얼마나 무례했는지를 알게 되었다.

기억을 잃어버린다는 것. 경험해보지 않았기에, 그 공포감과 두려움이 얼마나 클 지 가늠할 수 없다. 특히 앨리스처럼 지식인으로서 연구성과를 거둔 사람이라면, 지식을 잃어버리는 것, 기억을 잃어버리는 것은 곧 전부를 잃는 것과 같을 것이다. 하지만 영화는 앨리스를 단순히 무기력한 존재로, 불쌍한 존재로 표현하지 않는다.

 <스틸 앨리스>의 스틸컷

<스틸 앨리스>의 스틸컷 ⓒ 그린나래미디어(주)


"저는 살아 있습니다. 정말 사랑하는 사람들도 있죠. 사는 동안 하고 싶은 일도 있습니다. 저는 이런 것들을 기억 못하는 제 자신에게 무척 화가 납니다. 하지만 저는 아직 인생에 행복한 날들과 즐거움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니 부디 제가 고통 받고 있다 생각하지 마세요.

저는 고통 받는 것이 아니라, 싸우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한 것들의 부분이 되려고 하는 거지요. 옛날의 저와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서요. 그래서 '현재에 충실히 살자'라고 저 스스로에게 말합니다. 그리고 너무 많은 것을 바라지도 않아요. 또한 내가 잃는 방법에 대해 통달하는 것을 바라지도 않습니다."

알츠하이머 협회에서 연설을 하는 앨리스의 모습이 마음속 깊이 박혔다. '존재의 숭고함'이란 이런 것일까. 삶을 향한 열망과 의지. 그것을 종종 잊으며 사는 내가 오히려 불쌍한 사람이었다.

 <스틸 앨리스> 스틸컷

<스틸 앨리스> 스틸컷 ⓒ 그린나래미디어(주)


이 영화에서 가장 흥미로웠던 점은 알츠하이머에 걸린 현재, 앨리스가 그동안 잊고 살았던 기억이자 잊고 싶었던 기억인 자신의 어렸을 적 모습을 회상한다는 것이다. 영화에서는 앨리스의 어렸을 적 모습을 플래시백으로 자꾸 보여준다. 남편 존(알렉 볼드윈)이 자식들에게 "마치 뉴햄프셔의 소녀인 것처럼 산다"라고 말할 만큼 앨리스는 엄마와 언니, 아빠와 보냈던 그 시절을 회상하고 그리워한다.

그녀의 엄마와 언니는 그녀가 어렸을 적 사고로 사망했고, 아빠는 알코올 중독에 걸려 사망했다. 그녀는 아빠와 왕래가 거의 없었다고 했다.

철학자 피히테는 "우리는 단순히 불변하는 '나'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과거의 나=현재의 나'가 가능해야만 자신의 존재를 인식할 수 있다는 뜻이다. 그는 "결국 자기의식이란 것은 기억의 능력으로 요약될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앨리스가 기억을 잃어버리고 있는 상태에서, 그동안 상실했던 과거를 그 잃어버린 공간에 채우려는 행위는 상징적인 의미를 갖는다. 이는 그녀가 그녀 자신의 존재를 인식하기 위한 투쟁인 것이다. 그러나 이는 고통이 아니다. 자기 자신과 싸우며 그 과정 속에서 사랑을 얻는다.

결국,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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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틸 앨리스>의 스틸컷 ⓒ 그린나래미디어(주)


"저는 매일 잃는 방법을 배우고 있는 자신을 발견합니다."

앨리스는 연설에서 시인 엘리자베스 비숍의 말을 인용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어떻게 잃는 것이 잘 잃는 것일까. 결국, 사랑이다. 그녀는 그녀가 평생 일궈온 지식을 점차 잃어가고 있지만, 동시에 진정한 사랑을 느끼고 배우고 있다. 잊고 있었던 자신의 지난 어린 날들을 회상하고, 늘 부딪히던 막내딸 리디아(크리스틴 스튜어트)와 화해한다. 잃어버린 지식의 공간을 사랑으로 채운다.

앨리스는 리디아의 낭독을 들은 후, '사랑'이라는 단어를 힘겹게 말한다. 그리고 죽은 언니와 해변을 걸으며 행복해하는 앨리스의 어릴 적 모습을 끝으로 영화는 마무리된다. 영화의 이 마지막 장면은 그 어느 때보다 사랑으로 충만해진 앨리스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 아닐까. 이는 루게릭 병을 앓은 고 리처드 글랫저 감독이 느낀 어느 한 순간이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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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틸 앨리스>의 스틸컷 ⓒ 그린나래미디어(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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