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스틸 앨리스> 포스터

영화 <스틸 앨리스> 포스터 ⓒ 그린나래미디어㈜


영화를 평가하는 기준 중 개인적으로 가장 중시하는 것은 '독창성'이다. 영화의 독창성이란 어떤 영화가 꼭 그 영화여야만 하는 이유, 혹은 그 영화만이 가지고 있는 특성이다. 독창성은 다양한 층위에서 실현될 수 있다. 서사의 전개, 몰입도, 긴장감, 연기, 음악 등 영화의 내용적인 요소들에서는 물론이고 카메라, 편집, 조명, 미쟝센 등 형식적인 요소들에서도 마찬가지다.

서사만 봤을 때, <스틸 앨리스>에서 독창성을 찾기란 쉽지 않다. '알츠하이머' 하면 떠오르는 이야기는 무엇인가. 기억이 점차 희미해져가는 과정, 그 와중에 묘사되는 섬세한 변화들. 어쩐지 불안한 병의 징후들, 그리고 점차 확산하여가는 증상들. 그 와중에서의 미묘한 갈등, 그리고 사랑. <스틸 앨리스>는 이 같은 전형적 이야기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말하자면, 뻔하다. 

오히려 <스틸 앨리스>의 서사는 때로 너무나 완벽해 '과잉'이라는 인상을 주기도 한다. 예를 들어 앨리스(줄리언 무어 분)가 굉장히 똑똑하고 현명한 언어학자였다는 설정이 그렇다. 이후 진행되는 서사는 굉장히 잘 맞아떨어진다. 누구보다 언어에 천착했고, 뛰어난 능력을 보였던 학자가 언어를 점차 잃는다. 언어에 대한 결벽증은 언어 장애로 이어진다.

영화 중간,  앨리스가 알츠하이머 환자를 대표하여 연설하는 장면도 그렇다. 이 장면에서 앨리스는 마련된 자리에서 '대놓고' 자신의 처지와 심정에 대해 말할 기회를 얻는다. 이런 장치는 어떤 면에서 굉장히 용이하다. 감독이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직접적으로, 하지만 어디까지 영화의 서사 속에서 녹아나는 형태로 드러낼 수 있기 때문이다. 가까운 예로 영화 <변호인>(2013)에서 송우석(송강호 분)의 법정 장면이 그랬다. 그런 의미에서 <스틸 앨리스>는 구조적으로도 전략적으로도 흠이 없어 보인다.

하지만 영화는 수학이나 과학, 철학이 아니다. 투입한 양 꼭 그만큼 배출된다는 '열역학 제1 법칙'은 진리일 것이나, 영화도 진리를 다룰 필요는 없다는 뜻이다. 차라리 영화는 현상을 다뤄야 한다. 진리와 달리 완전무결하지 않으며 흠과 결점이 종종 발견되는 현상, 그것이 바로 다른 어떤 예술 장르보다 '일상'에 가까운 영화가 표현해야 하는 지점이다.

관객을 압도하는 '스틸 앨리스' 줄리안 무어의 연기

 <스틸 앨리스>의 한 장면

<스틸 앨리스>의 한 장면 ⓒ 그린나래미디어㈜


그렇다고 <스틸 앨리스>가 독창적이지 않다거나, 마냥 과잉된 서사로만 점철되어 있다는 것은 아니다. 서사에서의 아쉬움은 뒤로 하고, <스틸 앨리스>는 다른 층위에서 이 영화가 왜 다른 영화가 아닌 <스틸 앨리스>여야만 하는지를 보여줬다.

우선,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에 빛나는 줄리언 무어의 연기는 관객을 압도하기에 충분했다. 사실 앨리스의 입장을 이해하고 함께하는 것이 그리 어렵다고 할 순 없다. 누구나 최악의 상황을 상상할 때가 있었을 것이고, 영화에서 전개되는 양상들도 그 상상대로 흘러가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줄리언 무어의 연기는 앨리스 그 자체가 되지 않았다면 못했을 감정적 울림을 표현했다. 비록 서사적으로는 과잉되어 있었지만 위에서 언급한 연설 장면에서의 줄리언 무어의 대사와 표정, 몸짓은 최고였다. 줄리언 무어는 단지 앨리스의 정서나 감정뿐만 아니라, 그녀의 존재를 어우르는 생애를 모조리 체화한 듯이 보였다.

다른 하나는 시간의 중층적인 구조다. <스틸 앨리스>에서 시간은 크게 세 부분으로 나뉜다. 우선, 조악한 캠코더 화질로 찍힌 일종의 대과거 씬이 있다. 명확히 드러나진 않지만, 영상 속 앨리스는 어린 자식들과 함께 있다. 나머지 두 부분은 영화의 전개와 더불어 자연스레 이어진다.

즉, 앨리스는 알츠하이머 진단을 받은 후 점차 증상이 심해지지만 영화는 여러 장치를 통해 그의 앞선 시간을 불러온다. 이를테면, 상태가 악화되기 이전의 앨리스가 악화된 이후의 앨리스에게 보내는 영상 편지가 그렇다. 거기다 영화 중간마다 위에서 말한 대과거가 삽입된다.

종합하면, 영화는 기억을 잃어가는 앨리스의 현재가 진행되는 와중에 과거와 대과거를 삽입함으로써 세 층위의 시점을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한 구조 속에서 현재의 앨리스는 얼핏 초라해지기도 하지만, 어쩌면 그런 불가피한 방식으로나마 영화는 앨리스의 존재를 가까스로 떠받치고 있는 건 아닐까.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김벼리 시민기자가 활동하는 팀블로그(http://byulnight.tistory.com/198)에도 함께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스틸 앨리스 줄리안 무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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