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SBS 스폐셜>-'장윤주의 가슴 이야기'의 한 장면.

< SBS 스폐셜>-'장윤주의 가슴 이야기'의 한 장면. ⓒ sbs


지난 5일 방영된 <SBS 스페셜>은 여성들의 가슴에 대해 이야기를 했다. 이게 무슨 대단한 일이냐고 할 수도 있지만, 사실 가슴은 여성들의 신체 일부임에도 여성들의 것이기 보다는 남성들 '음담패설'의 전용물인 양 소비돼왔다. 미국의 유명 전도사가 설교를 들으러 온 여성들에게 다리를 꼬고 앉으라고 하고는 '이제 비로소 지옥의 문이 닫혔다'라고 운을 띄웠다는 이야기에서도 알 수 있듯이 여성들의 몸은 '성 문화의 상징'으로 터부시되거나, 음란한 상징의 대상으로만 전용되어 온 경우가 다수였다.

그렇게 여성들 스스로도 자신의 신체를 이야기하기  부끄러워하는 이 시대에 <SBS 스페셜>은 과감하게 '가슴'에 대해 말문을 열었다. 부제는 장윤주의 가슴 이야기이다. 내레이션을 맡은 장윤주는 그저 이야기 전달자의 역할에서 벗어나 과감하게 자신과 주변 사람들의 가슴 이야기를 전달하는 사람으로 다큐를 풀어간다.

장윤주가 머리를 하는 동안 주변 지인들과 자연스레 가슴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본다. 마치 남성들이 자신들의 성기 이야기를 하면 자연스레 그 크기와 성적 기능으로 이야기가 풀어져 가듯이 장윤주 동년배들의 가슴에 대한 이야기는 여성성의 상징으로서 가슴, 그 사이즈에 대한 이야기로 흘러 들어간다.

정신분석학자 수지 오바크의 말대로 이 시대 우리 몸은 이제 더 이상 타고난 본래의 몸이 별 의미를 지닐 수 없듯이 미디어에 의해 생성된 이미지로서의 몸에 상당수의 사람들은 자신을 맞추고자 고민한다. 그래서 가슴 확대 수술이 여성들 대화에서 생소하지 않은 소재로 등장하게 된 것이다. 제대로 된 '브래지어' 착용법을 배워도 여전히 여성들은 사이즈에 고민하는 시대다.

이런 현실적 고민을 방송은 인문학적으로 풀어간다. 동물 중에서 유일하게 인간이 가슴을 갖게된 이유가 무엇일까. 동물학자들은 그 이유를 원숭이의 엉덩이에서 찾는다. 발정기가 되면 부풀어 오르는 엉덩이, 수컷은 그것을 보고 암컷을 찾아드는데 직립 보행을 하기 시작하고 거기에 옷까지 입으면서 엉덩이를 가리기 시작한 인간은 더 이상 '발정'의 증거를 널리 알릴 수 없게 되었고, 그 증거물을 대신하기 위해 가슴이 부풀어 오르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성적인 역할 이상의 의미를 지닌 여성의 가슴
 < SBS 스폐셜>-'장윤주의 가슴 이야기'의 한 장면.

< SBS 스폐셜>-'장윤주의 가슴 이야기'의 한 장면. ⓒ sbs


어쨌든 요즘 시대에서 가슴의 역할은 그저 성적인 부분에 국한되지 않는다. 방송은 이 지점을 지적하며 가슴의 의미를 짚는다. 자신의 아이에게 젖을 먹일 때 '창조주'의 심정을 경험하게 되는 '수유'의 행복이 그 예다. 하지만 영국 호텔에서도 가슴 노출이 심한 여성에게는 입장을 허용하면서, 모유 수유를 하는 여성에게는 가리라고 하듯 가슴에 대한 인식이 여전히 차별적이라는 것을 놓치지 않는다.

또한 다큐는 여성들의 가슴이 오염된 환경에 노출되기 쉬운 존재임을 증명한다. 미국과 유럽은 물론, 우리나라 엄마들 모유에서 검출되는 각종 환경오염 물질을 통해 건강한 모유 수유의 환경이 중요하다는 걸 역설한다.

큰 가슴을 선호하는 사회 풍조든, 아이에게 젖을 주는 창조적 활동이든 그것도 가슴이 있을 때의 이야기이다. 무차별적인 '암'의 공격은 가슴이라고 예외가 아니다. 다른 암과 달리 가슴을 도려내어야 하는 유방암의 예후는 병적 고통 외에 여성성의 상실이라는 또 다른 고통을 준다는 점을 지적한다. 크건 작건 그 존재만으로도 소중한 가슴으로의 귀결이다.

여성주의에 대한 여러 접근 중 자신의 성기를 스스로 그려보게 하는 방법이 있다. 이런 이야기를 들으면 대다수의 여성들은 질색을 한다. 어떻게 자신의 성기를 스스로 들여다보느냐는 것이다. 수없이 되풀이 되어 공연되는 여성 연극 '버자이너 모놀로그'는 그래서 그저 여성들의 성기 담론이 아니다. 자신의 것을 자신의 것으로 직시하는 자기 정체성의 확인이 된다. <SBS 스페셜>도 마찬가지다. 가슴을 통해 여성 자신을 말하고자 한다.

비록 가슴에 대한 이야기를 풍부하게 다루려다 보니 다소 그 내용이 번잡스러워 졌지만, '가슴학개론' 입장에서 본다면 그 고민이 잘 전달된 시간이었다. 이렇게 개괄적으로 다루었던 여성의 가슴이 다음에 좀 더 각론적으로 접근된 깊이 있는 각론이 나오길 기대해본다.  특히 미디어에 의해 생성된 이미지에 노예가 된 이 시대의 가슴에 대해서는 좀 더 생각해 볼 여지가 많아 보인다. 내 것인데 내 것 같지 않은,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의 일부인 가슴. 그 개론인 장윤주의 가슴이야기는 여성에 대해 말문을 여는 뜻 깊은 시간이었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이정희 시민기자의 개인블로그(http://5252-jh.tistory.com/)와 미디어스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게재를 허용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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