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록 '괴작' 소리를 듣긴 했지만 KBS 2TV <아이언맨>을 재미있게 시청했다. 기괴한 설정과 달리 동화와도 같은 소박한 이야기가 좋았고, 그 소박함을 등에서 칼이 솟는 기괴함에 잘 버무려 전달한 연출이 좋았다.

등에서 돋는 칼이 안쓰럽고 애잔하게 느껴지게 만든데는 갖가지 장치를 동원하여 시청자들을 설득하기에 진력한 연출의 공이 크다. 단 하나의 장면에서 원래의 이야기보다 더 많은 이야기를 전달해주는 김용수 감독의 연출은, 단지 이것을 다수의 사람과 공유할 수 없음이 안타까울 뿐이었다.

특히나 논두렁에서 두 연인을 따라가는 반딧불이 씬에서는 보는 시청자의 마음마저 정화가 되는 듯한 느낌을 주었다. 2015년 다시 찾아온 KBS 2TV <드라마 스페셜> '바람은 소망하는 곳으로 분다'가 무엇보다 반가웠던 이유는 바로 그 김용수 감독의 예술을 다시 한번 만끽할 수 있는 기회였기 때문이다.

뒤숭숭한 정국 속 사라져 버린 3명의 죄수들

 KBS 2TV <드라마스페셜-바람은 소망하는 곳으로 분다> 주요 장면들

KBS 2TV <드라마스페셜-바람은 소망하는 곳으로 분다> 주요 장면들 ⓒ KBS


아니나 다를까. 2부작으로 끝내기엔 아쉬울 정도의 구도가 잡힌 화면, 그리고 거기에 덧입혀져 극의 분위기를 점층시키기에 충분한 OST. 역시 '김용수 월드'라 할만한 장면들이 '바람은 소망하는 곳으로 분다'를 꽉 채운다. 10.26이 일어나던 해 발생한 대대적인 죄수들의 탈옥 사건은 김용수 PD만의 예술을 펼치기에 손색없는, 역시나 또 한번의 '기괴한 사건'이다.

'바람은 소망하는 곳으로 분다'의 1회는 과거로 돌아가 그 소송차에 탔던, 혹은 탔을 것으로 예상된 죄수들의 이야기로부터 시작된다. 36년이 지난 후 뜻밖에도 그 당시 형사였던 조성기(김영철 분)가 당시 죄수 중 한 명이었던 열쇠 수리공 유원술(박길수 분)을 찾아와 과거의 사건을 들춘다.

36년 동안 그 사건을 집요하게 추적해 왔던 조성기의 말에 따르면 당시 소송차에 탔던 죄수 중 3명이 사라졌고, 그 3명의 죄수는 일제 말 일본 장교 무다구치가 숨겨놓은 보물을 찾으러 갔다는 것이다. 이제와 다시 열쇠 수리공을 찾은 이유는 이제는 노인이 된 열쇠 수리공이 당시 그들을 소송차에 타기 전에 빼돌린 하수인이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36년이 지나서야, 아니 36년이 되도록 그 사건에 집착한 조성기의 열쇠집 방문을 시작으로, 36년 전 교도소의 한 방에 모여든 유재만(이원종 분)-문종대(서현철 분)-방대식(이영훈 분)의 사연이 풀려간다. 조성기의 말대로 그들은 그 방에 함께 지냈던 장기수 우문술(김기천 분)의 숨겨진 금괴를 찾기 위해 탈출을 감행했던 것이다.

하지만 이야기는 반전에 반전을 거듭한다. 알고보니 보물을 찾아나선 사람들은 세 죄수들이지만, 그들을 그렇게 할 수 있도록 열쇠 수리공을 보내는 등의 일을 꾸민 배후의 인물이 따로 있었던 것이다. 어렵사리 탈주해 성공한 죄수들은 보물에 눈이 멀어 '배후' 천상사를 배신한다.

하지만 월남에서 10여 명의 민간인을 학살했다는 '악명'이 자자한 천상사는 문종대의 애인을 잔인하게 살해하며 그들의 흔적을 쫓고, 결국 그들을 따라잡기에 성공한다. 그리고 또 한 사람, 형사 조성기 역시 사라진 그들을 찾고자 하지만 뜻밖에도 10.26이 발목에 잡힌다.
결국 뒤숭숭한 정국 속에 탈주한 죄수들이라는 흉흉한 사건은 당시 사건 기록의 행간 속으로 사라져 버리고 만다.

이렇게 1부가 과거 죄수들의 탈주 사건의 경과를 자세하게 풀어갔다면 2부는 현재의 시점에서 36년 전과 똑같은 수법으로 다시 벌어진 연쇄 살인 사건으로 시작된다. 주인공은 '힙합 비둘기' 데프콘이 연기한 형사 양구병. 경찰대를 수석으로 졸업했지만 오래 살기 위해 운동을 하느니, 좋아하는 도넛을 맘껏 먹으며 덜 살겠다는 소신을 가진 양구병은 현재의 사건 속에서 과거 죄수들의 탈주 사건을 길어 올린다. 그리고, 36년이 지난 지금에도 여전히 그 사건을 추적하는 조성기 형사까지 그 흔적을 찾아내려 한다.

'반전'에 희생된 주제 의식...그럼에도 반갑다

 KBS 2TV <드라마스페셜-바람은 소망하는 곳으로 분다> 촬영 스틸컷

KBS 2TV <드라마스페셜-바람은 소망하는 곳으로 분다> 촬영 스틸컷 ⓒ KBS


현재 사건과 과거 사건 간의 퍼즐은 2부 중반을 흐르면서 하나하나 맞춰지기 시작한다. 이제는 목사가 된 문종대에 이어 열쇠 수리공이 살해되고, 방대식을 찾아간 양구병과 동료는 함께 불 속에 갇히는 사건을 겪는다. 또한 과거의 보물로 인해 상당한 부를 축적한 듯이 보이는 유재만 앞에 과거의 천상사가 등장하여 도끼를 휘둘러 댄다.

이렇게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던 사건은 조성기의 집을 찾아간 양구병 형사가 조성기 형사가 천상사와 쌍둥이 형제였음을 확인하고, 불구자라던 천상사의 외모를 빼어닮은 그의 아들(임윤호 분)과 혈투를 벌이며 명확해진다. 결국 이 모든 것이, 형 조성기마저 죽이고 조성인 채 살아오며 과거의 탈주했던 3인을 쫓은 천상사의 보복극이었음이 마지막 유재만과 조성기의 독대에서 드러난다.

'반전에 반전'을 숨기고 있는 작품들의 맹점 중 하나는 자신들이 하고자 하는 술래잡기 놀이의 묘미를 한껏 배가하기 위해, 애초에 말하고자 하는 주제 의식마저 숨기는 것이다. '바람은 소망하는 곳으로 분다'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죄수들의 탈주극으로 시작하여, 양구병 형사의 범죄 수사극으로 이어진 이 드라마 역시 반전에 반전이라는 함정에 빠져들었다.

그러다 보니 죄수들의 보물 찾기에 빠져들다, 다시 양구병 형사의 범죄 수사극에 집중하다, 뜻밖에도 마지막에 조성기 형사의 변신과 그 예상 외의 결말을 조우한 뒤에는 허무한 느낌만이 남았다. 제작진은 등 뒤에 숨겨놓았던 결말을 내어 놓고 '놀랐지' 하는데, '뭥미?'라는 느낌을 받는 달까? '소망하는 곳으로 불 수 없는 바람'의 아이러니는 만끽할 수 없었다.

물론 제작진은 종종 힌트를 남겨 주긴 했다. 민간인을 학살했다는 천상사의 이야기에서 과도하게 감정을 이입한 조성기의 모습이라든지, 장면 장면 등장한 당시 사건들을 다룬 신문 기사들에서, 수많은 힌트들이 등장했다. 하지만 2부작을 다 보고 나서도, <바람은 소망하는 곳으로 분다>라는 제목에 고개를 갸웃할 만큼 극은 이리저리 시청자들을 데리고 '반전'을 향한 숨바꼭질에만 치중했다.

그러다 보니 '복수'를 향한 천상사의 일념에는 충분한 설명이 부족해졌고, 1부에서 주인공처럼 등장한 죄수들의 최후 역시 해명 한 마디 없이 마무리되고 말았다. 궁금한 것은 멋들어지게 도넛을 한 입 베어불고 던지는 양구병 형사의 폼나는 모습이 아니라, 탈주 이후 살아온 죄수 3인 각자의 삶이었는데 말이다. 정작 할 이야기를 다 듣지 못한 미진함 때문일까, 그래서 분명 모든 이야기를 다 풀어 놓았음에도 '용두사미'의 느낌을 지울 수 없다.

그래도 일요일에서 월요일로 넘어가는 외진 자리밖에 차지할 수 없었던 <드라마 스페셜>이 이제 금요일 오후로 자리를 옮겼다. 이 자리조차 얼마나 보전할는지 기약할 길이 없는 데다가, 그나마 사라지지 않은 걸 감사해야 하는 건지 입맛이 씁쓸하다. 그래서일까. 용두사미이든, 기괴하든, 여전히 거뜬하게 등장한 단막극이 우선은 반갑다. 기존 드라마들에서 볼 수 없는 이야기들을 보는 맛은 그 미완의 결말에도 불구하고 색다른 별미다.

드라마스페셜 바람은 소망하는 곳으로 분다 데프콘 김영철 김용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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