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일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부산국제영화제 미래비전과 쇄신안 마련을 위한 공청회

지난 10일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부산국제영화제 미래비전과 쇄신안 마련을 위한 공청회 ⓒ 츠치다 마키


"부산국제영화제가 공동집행위원장 체제로 가는 것을 반대합니다. 이용관 사퇴 의사 역시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표현의 자유 사수를 위한 범영화인 대책위원회'(이하 '범대위')의 한 관계자는 12일 전화통화에서 최근 부산국제영화제(이하 부산영화제)가 밝힌 공동집행위원장 체제에 대해 용납하기 어렵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영화계의 자존심이 걸린 문제로 부산시의 압박에 굴복하는 처사라는 것이다.

아무 잘못 없는 영화제 쇄신하라는 부산시장이 쇄신 대상

부산영화제의 상황이 갈수록 꼬이고 있다. 지난 25일 정기총회에서 올해 사업안과 예산안이 통과되기는 했지만, 부산영화제가 부산시에 제시했다는 쇄신 방안에 대해 영화계는 부당한 정치적 압박에 굴복해 '표현의 자유' 후퇴를 용인하는 결과라며 반발하고 있다. 

지난 10일 오후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부산국제영화제 미래비전과 쇄신안 마련을 위한 공청회'(이하 공청회)에서도 영화인들의 목소리는 하나로 모아졌다. 이용관 집행위원장의 사퇴가 전제되는 공동집행위원장제는 용납하기 어렵다는 것이었다.

이날 사회를 맡은 이동진 영화평론가는 그릇된 것이나 묵은 것을 버리고 새롭게 간다는 쇄신의 뜻을 언급하며 "그릇된 것과 묵은 것은 무엇이며, 이를 규정하는 사람은 누구인가?"라며 의문을 나타내기도 했다.

참석자들이 직접적으로 지칭하지 않았지만 이날 다양하게 나온 영화인들의 발언은 한마디로 요약된다. "쇄신의 대상은 조직위원장을 맡고 있는 부산시장"이라는 것이다. 지금까지 부산시의 이미지를 높이고 한국영화의 대외 경쟁력을 강화한 공신이 부산영화제인데, 부산시장이 이를 쇄신하라고 요구한 것 자체가 어처구니없다는 것이 이날 영화인들 발언의 요점이었다.

<시> <도희야> 등을 제작한 나우필름 이준동 대표가 영화진흥위원회(이하 영진위)를 다시 서울로 올려야 한다고 주장한 것도 이 같은 영화계의 분위기를 대변하는 것이었다. 이 대표는 "부산영화제 성장 등을 통해 부산시가 한국 영화산업 성장에 기여했기에 영진위의 부산 이전에 동의했던 것이지만 이런 상태에서는 더 이상 불편을 감수할 필요가 없다"고 강조했다.

현재 남양주종합촬영소의 부산 이전 문제 등이 영화계의 주요 현안으로 있는 상태에서 이를 반대하겠다는 뜻을 나타낸 것으로도 볼 수 있다. 서병수 부산시장에 대한 영화계의 반감이 그만큼 커지고 있는 것인데, 부산영화제 사태를 통한 부산시에 불신이 커지면서 남앙주종합촬영소의 이전은 물론 영진위 사옥 신축 등도 상당히 난항을 겪을 것으로 예상된다.

집행위원장 사퇴는 19살 청소년 자살과 마찬가지

 2014년 19회 부산국제영화제 레드카펫 포토월에서 세월호 추모 리본을 달고 포즈를 취하고 있는 민병훈 감독.

2014년 19회 부산국제영화제 레드카펫 포토월에서 세월호 추모 리본을 달고 포즈를 취하고 있는 민병훈 감독. ⓒ 이정민

부산영화제가 부산시의 압박에 굴복할 경우 영화제 참가를 거부해야 한다는 주장도 힘을 얻고 있다. 10일 공청회에서 박찬욱 감독은 사실상 <다이빙벨> 상영에 따른 부산시의 보복에 문제를 제기하며 이용관 위원장의 사퇴 입장도 비판했다.

박 감독은 "인적쇄신을 이해 못한다면서 물러나는 것은 어폐"라며 이용관 위원장이 사퇴하겠다는 것은 "부당한 압박을 인정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또한 "문제가 되는 영화가 걸러지는 영화제에 초청되는 것 자체가 모욕"이라며 "프로그래밍 간섭을 용인할 경우 출품하지 않겠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사실상 부산영화제를 거부하겠다는 의미였다.

지난 1월 "이용관 위원장이 사퇴할 경우 나우필름에서 제작하는 영화를 부산영화제에서 볼 수 없을 것"이라고 공개적으로 천명했던 이준동 대표는 여전히 같은 입장이라고 확인했다. 이 대표는 12일 "일단 이용관 위원장의 이야기를 더 들어봐야겠지만 부산시의 부당한 압력과 정치적 압박에 굴복하는 것이라면 1월에 밝힌 뜻은 계속 유효하다"고 강조했다.

<터치>의 민병훈 감독도 마찬가지였다. 민 감독은 지난 1월 "부산국제영화제를 건드리는 건 마지막 남은 영화인의 자존심과 영화를 짓밟는 행동"이라며 "집행위원장 사퇴시 부산영화제 출품이나 참석을 거부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민 감독은 15일 "여전히 같은 생각"이라면서 "자진사퇴는 지금이 박정희 정권이라고 해도 하지 말아야할 일인데 뭔가 잘못 돌아가고 있다. 이용관 집행위원장이 판단을 잘못하고 있는 것 같다"고 지적했다. 그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압박에 굴복해 이 위원장이 사퇴한다면 부산영화제는 19살 청소년이 자살로 생을 마감하는 것과 같다"고 비판했다. 영화제가 생명력을 잃는 것과 다름없다는 것이다.

독립성이 훼손당한 영화제는 가치를 상실한 것이나 다름없다는 것이 영화인들의 인식으로 이용관 집행위원장의 사퇴는 이를 상징하는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오동진 영화평론가는 "지금이 평시라면 이해한다. 하지만 전시 상황과 다를 바 없는데, 여기서 이용관 위원장이 물러난다는 것은 안 된다"며 사퇴 반대에 힘을 실었다.

"정치적 논란에 생길 때마다 당당한 대응 못한 게 압박 자초"

부산영화제가 영화계와의 논의 없이 부산시의 쇄신 요구를 받아들인 것에 대한 비판도 크다. 10일 공청회에서 명필름 심재명 대표는 "영화계에서 받아들이기 어렵다"고 말했고, 박찬욱 감독 역시 "영화감독조합이 지지하기 힘들다"고 감독들의 정서를 전달했다.

그간 정치적 논란이 있을 때마다 분명하게 대응하기 보다는 적당하게 타협해서 넘어가려 했던 것이 이번과 같은 압박을 자초했다는 지적도 나온다. 한 영화계 인사는 "지난 2010년 이명박 정권 당시 부산영화제를 좌파라고 공격할 때 단호히 대응하지 않고 적당한 타협으로 넘어갔고 비슷한 일이 생길 때마다 같은 방식을 취했던 게 지금과 같은 상황을 만든 원인"이라고 말했다.

이용관 위원장은 10일 공청회가 끝난 후 "오늘 영화인들의 분위기를 보니 내가 물러나도 부산영화제가 흔들리지 않을 것 같다"고 말했지만, 영화계의 비판이 강했던 탓에 내내 굳은 표정을 풀지 못했다. 

'영화인 범대위'는 이번 주 논의를 통해 향후 대응방안을 마련할 것으로 알려졌는데, 영화계 분위기가 강경하게 흘러가고 있어 올해 부산영화제가 순탄하게 치러지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표현의 자유'는 영화계가 가장 예민하게 생각하는 문제라는 적당히 타협할 수 있는 여지가 없기 때문이다.

부산영화제에 대한 독립성 보장과 함게 평지풍파를 일으킨 부산시장이 당연직 조직위원장에서 사퇴해야 한다는 요구도 강해지는 모습이어서 부산시와 서병수 시장이 어떤 모습을 보일지 주목된다. 영화계의 입장 발표 요구에 부산시는 아무런 답변을 내놓지 않고 있다.


부산국제영화제 부산시장 이용관 표현의 자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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