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두리 '마지막 대표팀 경기 마친 소감은' 2015 호주 아시안컵 준우승을 차지한 한국축구대표팀의 차두리가 1일 오후 인천공항 밀레니엄홀에서 열린 환영식에서 소감을 말하고 있다.

▲ 차두리 '마지막 대표팀 경기 마친 소감은' 2015 호주 아시안컵 준우승을 차지한 한국축구대표팀의 차두리가 1일 오후 인천공항 밀레니엄홀에서 열린 환영식에서 소감을 말하고 있다. ⓒ 연합뉴스


'차미네이터' 차두리가 대표팀 공식 은퇴식을 통하여 14년간의 태극마크 경력을 마무리할 예정이다. 한국 축구 대표팀은 오는 3월 27일 우즈베키스탄, 31일에는 뉴질랜드와 국내에서 평가전이 예정되어 있다. 대한축구협회는 이 두 경기 중 한 경기에서 하프타임에 차두리의 은퇴식을 열어줄 계획이다.

차두리의 은퇴, 2002세대의 피날레

차두리의 은퇴는 많은 이들에게 아쉬움을 준다. 차두리는 지난 아시안컵에서 슈틸리케호의 주전풀백으로 활약하며 35세의 나이에도 녹슬지 않은 기량을 과시했다. 하지만 그보다 더 진정한 차두리의 가치는, 베테랑으로서 후배들을 아우르는 그라운드 위의 정신적 지주 역할이었다.

차두리는 오랜 대표팀 경험과 풍부한 관록을 바탕으로 국내파-해외파를 가리지 않고 많은 후배 선수들의 두터운 신망을 받았다. 밝고 긍정적인 이미지와 투지 넘치는 경기력으로 축구팬들 사이에서도 보기 드물게 안티팬이 거의 없는 선수였다.

한편으로 차두리의 대표팀 은퇴가 가지는 또 다른 역사적 의미가 있다. 바로 한국축구의 황금세대로 꼽히는 2002세대가 마침내 막을 내렸다는 점이다. 차두리는 2002 한일월드컵이 남긴 마지막 태극전사다. 물론 아직 현역에서 뛰고 있는 선수들도 있지만, 2015년까지도 대표팀에서 활약한 멤버는 차두리가 유일했다.

2002세대가 한국축구사에 남긴 업적은 매우 크다. 한국축구 최고의 순간으로 꼽히는 한일월드컵 4강을 비롯하여 2006년 독일월드컵 토고전에서 사상 첫 원정 승리, 2010 남아공월드컵에서는 마침내 원정 16강의 역사를 개척했다. 아시아의 변방에 그쳤던 한국축구가 세계무대의 중심을 향하여 그 위상이 높아지던 순간이었다.

박지성, 설기현, 안정환, 이영표, 차두리 등은 유럽무대에 진출하여 국제적으로 인정받는 선수로 성장했다. 그 뒤를 이어 수많은 '한일월드컵 키즈'들의 해외진출이 활성화되는 물꼬를 트였다.

한일월드컵 세대는 차두리를 끝으로 국가대표팀에서 더 이상 볼 수 없게 됐다. 하지만 지금도 현역 선수는 물론, 지도자·해설가·축구행정 등 다방면에서 활약하며 한국축구계에 큰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2002 한일월드컵 당시의 엔트리 23명 가운데 지금도 현역으로 뛰고 있는 선수는 모두 6명이다. 차두리, 이천수-설기현(이상 인천), 김남일(교토), 김병지-현영민(이상 전남) 등이다. 황선홍(포항), 최용수(서울), 유상철(울산대), 홍명보(전 국가대표팀), 최진철(U-17 대표팀) 등 12명은 은퇴 후 벌써 지도자로 자리 잡아 감독과 코치 등으로 활발하게 활약 중이다.

안정환, 이영표, 송종국은 축구해설과 예능 출연 등으로 방송계에서 활동하고 있다. 비교적 최근에 은퇴한 박지성은 자신의 이름을 건 축구 재단을 운영하며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앰버서더로 활동하는 등, 축구 행정가로서 제 2의 인생을 설계중이다.

세대교체 된 대표팀, 베테랑이 아직 필요하다

축구대표팀은 최근 반년 사이에 치른 두 번의 큰 국제대회를 통하여 베테랑의 가치를 절감했다. 2002세대의 아이콘이라 할 수 있는 박지성-이영표의 동반 은퇴 이후 경험과 실력을 겸비한 고참급 선수들의 부재는 한동안 대표팀의 고질적인 약점이 됐다.

최근 1년 사이에 치른 두 번의 메이저대회에서 한국축구의 베테랑 활용법은 극과 극의 차이를 보였다. 홍명보가 이끌던 브라질월드컵에서는 베테랑의 역할을 과소평가했다가 쓴 맛을 봤고, 슈틸리케 감독은 아시안컵에서 베테랑의 활약으로 큰 재미를 봤다.

아시안컵에서 맹활약한 차두리와 곽태휘는 홍명보호에서는 별로 중용되지 않았던 선수들이었다. 이들은 사실 대표팀 부동의 주전이었다기보다는 감독의 성향에 따라 기용도의 편차가 큰 선수들이었다. 차두리는 월드컵 최종엔트리에서 탈락했고 곽태휘는 발탁은 됐지만 월드컵에서는 1분도 출전하지 못했다. 어려울 때 구심점이 되어줄 노련한 리더가 없었던 어린 선수들은 예상치 못한 위기를 만나자 자멸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반면 아시안컵은 그야말로 월드컵에서 찬밥 취급을 받았던 베테랑들의 한풀이 무대였다. 주장은 기성용이었지만, 기성용은 출중한 개인 기량을 바탕으로 주로 기능적인 역할에 전념했다. 실제로 팀 분위기를 리드하며 후배들의 버팀목 역할을 해준 것이 차두리와 곽태휘 같은 고참급 선수들이다. 물론 실력 면에서도 당당히 주전으로 뛰며 젊은 선수들 못지않은 역할을 해낼 만큼 나무랄 데 없는 모범을 보여줬다.

차두리가 은퇴를 선언하던 시점부터 많은 이들이 차두리의 부재를 걱정하고 있다. 실력과 성품면에서 아직 충분히 대표팀에서 통할 수 있기 때문이다. 모처럼 정상궤도로 돌아온 대표팀에서 차두리만큼의 존재감을 이어갈만한 베테랑이 부족한 현실이다.

차두리를 끝으로 마지막 2002세대까지 모두 대표팀에서 물러난다. 현재 30대 이상의 주축 선수는 곽태휘와 이근호 정도만이 남았다. 차두리보다 한 살 아래인 곽태휘 역시 적지 않은 나이인 만큼 아시안컵 이후 대표팀 내 거취 변화를 예상한 이들도 있었다. 정작 곽태휘는 대표팀 은퇴 가능성에 단호하게 선을 그었다. 대표팀에서도 탁월한 제공권과 노하우를 갖춘 곽태휘가 아직은 후배들을 이끌어줘야 할 역할이 크다.

부상으로 아시안컵 출전이 불발됐지만 공격수 이동국도 향후 월드컵 예선에서는 슈틸리케호에 복귀할 가능성이 있는 베테랑급 선수로 평가된다. 최근 중동에서의 생활을 정리하고 또다시 무적 선수 신분이 된 박주영의 대표팀 재합류는 당분간 불투명해졌다.

현재 대표팀은 주축이라고 할 수 있는 20대 초중반의 해외파와 이동국-곽태휘 등 30대 베테랑간의 허리 역할을 해줄 수 있는 중간 세대가 다소 부족한 실정이다. 2006년 독일월드컵 세대라고 할 수 있는 김진규, 이호, 김동진같은 선수들이나, 2010 남아공월드컵 때까지 주축으로 활약했던 이정수, 조용형, 김정우가 대표적인 예시다. 주로 1980년대 초중반생 선수들 중 대표팀에서 자리잡지 못하고 어느 순간 갑자기 사라진 선수들은 꽤 많다.

2011년 박지성과 이영표의 은퇴 이후 급격하게 흔들린 데는, 남아공-브라질월드컵 사이 세대 간 가교 역할을 해줘야할 중간 세대가 자리를 잡지 못하고 사라져버린 영향도 크다.

과거 허정무 감독은 월드컵 본선을 앞두고, 김남일, 안정환, 설기현, 이운재 등 전성기가 지났다고 평가받는 베테랑 선수들을 점검했고 이들을 최종엔트리까지 승선시켰다. 지역예선에서 공헌한 것 없이 갑자기 대표팀에 승선한 것을 두고 좋지 않은 반응도 있었다.

하지만 이들에게 기대했던 것은 처음부터 주전이 아니더라도 벤치에서 후배들의 중심을 잡아줄 수 있는 리더의 역할이었다. 젊은 선수들만 테스트할 것이 아니라, 아직 대표팀에서 활용가치가 있다고 판단되는 선수들이라면 다시 한 번 점검해보는 작업도 필요하다.

다가오는 2018 러시아 월드컵에는 현재 대표팀의 주축인 기성용, 이청용, 구자철, 김영권 등이 어느덧 전성기에 접어들 나이다. 앞으로 대표팀은 자연히 이들을 중심으로 재편될 수밖에 없다. 지난 브라질 월드컵에서는 아직 젊은 선수들이었지만 러시아 월드컵즈음에는 베테랑이라고 해도 손색이 없을 시기가 된다.

러시아 월드컵까지는 아직 3년이라는 긴 시간이 남아있다. 꼭 본선만을 염두에 두지 않더라도 팀을 만들어가는 과정에서 베테랑의 역할은 매우 중요하다. 제2의 차두리나 곽태휘 역할을 해줄 수 있는 선수들이 필요한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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