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종신이 지난달 발매한 앨범 '멜로디즈 온 필름'

윤종신이 지난달 발매한 앨범 '멜로디즈 온 필름' ⓒ 미스틱엔터테인먼트


지난달 온라인 음원 사이트를 통해 공개된 <멜로디즈 온 필름>(Melodies On Film)은 지난 2002~2003년 사이 가수 윤종신이 음악감독으로 참여했던 3편의 영화 <라이터를 켜라> <불어라 봄바람> <봄날의 곰을 좋아하세요>의 주요 수록곡을 발췌한 음반이다.

윤종신에게 이 시기는 '팥빙수'를 히트시켰던 정규 9집 <그늘>(2001년) 이후 자신 이름으로 된 음반 작업 대신, 현재의 전방위적 활동의 밑거름이 된 '외도'에 주력하던 때였다. 그래서 그의 음악을 아끼던 팬들 입장에선 서운함이 들 수 있는 상황이었지만 이때 발표된 OST들은 그의 정규작 못잖은 완성도를 지녔었다. 여기에 가수 본인의 목소리 대신 객원 가수를 적극 활용하는 방식은 지금의 <월간 윤종신>의 초기 버전이라 봐도 좋을 만큼 신선함이 넘쳤다.

하지만 <라이터를 켜라>를 제외한 나머지 영화들은 흥행 실패를 맛본 탓에 당시 윤종신의 작업물 역시 크게 빛을 보지 못했고 결국 그의 영화 음악 작업은 여기서 중단되고 말았다.

 영화 <라이터를 켜라> 포스터

영화 <라이터를 켜라> 포스터 ⓒ 시네마서비스

<라이터를 켜라> (2002)

01. 담배 한 모금
02. 서울역 – 김광진, 유희열, 하림
03. 밤차
04. 어느 예비군의 편지 – 윤종신, 유희열

이범 앨범의 전반부를 채우는 영화 <라이터를 켜라>는 윤종신과 오랜 시간 우정을 나눈 장항준 감독의 2002년 데뷔작이다.

이 영화는 부산행 열차라는 좁디 좁은 공간 속에서 지능이 모자란 '백수 예비군' 허봉구(김승우 분)와 '조폭' 양철곤(차승원 분)의 연기 맞대결이 인상적이었던 코미디였다.

노래방에도 없을 만큼 알려지지 않은 곡이지만 윤종신 마니아들에겐 숨은 명곡 대접을 받는 엔딩곡 '담배 한모금'. 그리고 '1대 음악노예' 유희열의 어눌한 보컬과 '2대 음악노예' 하림의 하모니카 연주로 명곡 '이등병의 편지'를 절묘하게 오마주(?)한 '예비군의 편지'는 코믹한 영화의 분위기와는 대조되는, 사못 진지하면서도 고난한 하루를 살아가는 청년의 마음을 반영한 가사가 돋보인 곡들이다.

'서울역'은 당초 이 영화 속 서울역 장면에서 사용될 예정이었지만 통편집으로 인해 극장에선 들을 수 없었던 곡이다. 김광진(더 클래식), 유희열, 하림이 보컬로 참여했다. 여기에 과거 이은하의 히트곡을 브라스 연주가 곁들여진 하드 록으로 재해석한 '밤차'까지 총 4곡이 <멜로디즈 온 필름>에 선택되었다.

 영화 <불어라 봄바람> 포스터

영화 <불어라 봄바람> 포스터 ⓒ 시네마서비스

<불어라 봄바람> (2003)

05. 불어라 봄바람 – 손성훈
06. 국가대표 – 하림
07. With You – 김광진
08. 똑바로 살아라 (*)

장항준 감독의 두번째 연출작 <불어라 봄바람>에선 3곡이 선택되었다. 전작 <라이터를 켜라>에 이어 김승우가 '찌질한 감성'을 지닌 3류 작가 선국으로, 김정은이 다방 여종업원 화정으로 출연하여 알콩달콩한 로맨스를 벌인다. 

(단 '똑바로 살아라'는 이 영화와는 무관한, SBS 동명 시트콤 주제곡이다. 당시 OST의 보너스/히든 트랙으로 삽입됐다- 기자 주) 

시나위 출신의 보컬리스트 손성훈이 허스키한 목소리로 소화한 타이틀 곡 '불어라 봄바람', 백수 총각의 자신감 넘치는 희망가 '국가대표'(하림 노래), 김광진이 특유의 미성으로 불러준 발라드 '위드 유'(With You)는 각기 다른 장르의 노래들이지만 윤종신 특유의 정서만큼은 고스란히 남아 있다.

 영화 <봄날의 곰을 좋아하세요?> 포스터

영화 <봄날의 곰을 좋아하세요?> 포스터 ⓒ 이손필름

<봄날의 곰을 좋아하세요?> (2003)

09. 우리 이제 연인인가요
10. 트레이닝 데이(Training Day) – 하림
11. 원더우먼 – 조원선
12. 수줍은 사람 – 김연우
13. 고백남녀 – 포스티노, 원현정
14. 상상 – 이규호
15. 기다리는 사람 – 이주원
16. 느끼한 환생 – 유희열
17. 러브 플랜(Love Plan) – 이가희
18. 원더우먼 (세인트바이너리 초자연 믹스) – 조원선

이 영화는 뮤직비디오 감독으로 명성을 얻었던 용이의 극 영화 연출 데뷔작이다. 배두나(정현채 역)와 당시 신예스타로 주목받았던 김남진(이동하 역)이 주연을 맡았고, 음악감독 윤종신도 직접 출연해 나름 명연기(?)를 펼쳤다.

<봄날의 곰을 좋아하세요?>에선 총 10곡이 선택되어 이번 앨범에선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한다. 이는 윤종신의 이 작품에 대한 애정을 간접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지표이기도 하다. 이 곡들은 당시 그가 진행을 맡았던 MBC FM <2시의 데이트 윤종신입니다>를 통해서 제법 많이 전파를 타고 소개되기도 했다.

OST는 로맨틱 코미디에 잘 어울리는 윤종신표 발라드들과 신나는 리듬의 템포감 넘치는 곡들이 적절히 안배되어 단순한 OST 이상의 완성도를 지녔지만, 영화는 상업적으로 별 재미를 보진 못했다. 그럼에도 롤러코스터의 보컬 조원선이 참여한 '원더우먼', 포스티노 & 원현정이 빼어난 호흡으로 소화한 발라드 '고백남녀', 원작자 유희열이 버터 느낌(?) 가득한 목소리로 리메이크한 '느끼한 환생' 등은 감히 '그냥 묻히기엔 아까운 곡들'이라고 말하고 싶다.

윤종신 음악의 중심에는 20~30대 남자들이 지닌 '찌질함'(?)도 제법 큰 비중을 차지한다. 얼핏 제 3자의 눈에는 밉상으로 보이겠지만, 이 시기를 거쳐본 사람이라면 충분히 공감이 가능한 감성이다. 특히 이 같은 감성은 실제 영화 속 등장 인물들의 캐릭터와도 맥을 같이 하는 것들이었다.

발표된지 10여 년 이상이 흐른 지금에 와서 되돌아 보면 <라이터를 켜라>의 백수 예비군 허봉구, <불어라 봄바람>의 궁상떠는 집주인+자칭 소설가 선국, <봄날의 곰을 좋아하세요?>의 짝사랑에 마음 아파하는 청년 이동하는 모두 작곡가 윤종신의 또 다른 모습이자 자화상이 아니었을까.

비록 신곡 하나 없는 컴필레이션 앨범이지만, 가볍게 흘려 보내기엔 못내 아쉬운 음반이다. 기회가 닿는다면 이들 노래가 삽입된 3편의 영화도 꼭 한 번 접해보길 권한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김상화 시민기자의 개인 블로그(http://blog.naver.com/jazzkid)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게재를 허용합니다.
윤종신 멜로디즈 온 필름 라이터를 켜라 불어라 봄바람 봄날의 곰을 좋아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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