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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방제 자체가 한국 사회에서 금기가 되는 시기는 이미 지나갔다. 물론 수구보수 세력들은 '낮은 단계 연방제와 연합제에 공통점이 있다'는 6·15 공동선언 2항 자체를 위헌적이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그것은 일부 극단적 주장일 뿐 연방제 자체는 한국 사회에서 이미 하나의 통일방안으로 수용되어 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합리적으로 실현가능한 통일방안으로서 '연방제 통일방안'을 제시"한 박사학위 논문이 통과된 적이 있다. 2008년 8월 한남대학교 대학원은 김용욱이 작성한 '한반도 연방제 통일실현의 단계와 과정에 관한 연구'라는 제목의 박사학위 논문을 통과시켰다. 새정치민주연합의 김성곤 의원은 한 유력 대선주자의 이름을 언급하며 "남북한이 통일되었을 때 연방제 대통령으로는 최적의 후보"라고 밝히기도 했다(거론된 대선주자의 이름은 본 기사의 취지 상 생략한다).

물론 이들이 말하는 연방제가 북한의 '고려연방제'와 같은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1990년대까지 한국 사회에서 금기어와 마찬가지였던 연방제라는 표현이 정계에서, 학계에서 자유롭게 회자되고 연구될 수 있다는 것은 연방제가 이미 한국사회에서 수용되고 있음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라 할 것이다. 이 같은 변화는 2000년 6·15 공동선언에서 '낮은 단계 연방제와 연합제 방식에 공통점이 있다'고 발표한 결과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민주노동당과 통합진보당(아래 진보당)이 주장한 연방제 방식의 통일은 헌법재판소(헌재)가 위헌 판결을 내린 중요한 근거로 채택됐다. 진보당이 주장하는 연방제 통일이 북한의 '민족해방 민주주의변혁론'과 상당히 유사하다는 것이다.

'앞서 본 바와 같이 피청구인의 우리 사회에 대한 인식, 변혁을 위한 강령적 과제와 순위, 변혁의 주체 및 주권의 소재와 그 범위, 변혁의 대상, 변혁의 전술적 방법, 변혁의 목표, 연방제 통일방안 등에서 북한의 민족해방 민주주의변혁론의 그것과 전체적으로 같거나 매우 유사하다. 이러한 동질성 내지 유사성은 단편적 또는 부분적 범주를 넘어서는 것이다.(102쪽)'

과연 진보당의 연방제 통일은 북한의 연방제와 같거나 매우 유사한가?

진보당의 연방제, 북한 연방제보다는 연합제에 더 가까워

북한의 연방제는, 그것이 낮은 단계의 연방제가 되었건, 높은 단계의 연방제가 되었건 통일정부로서 중앙정부의 존재를 의미한다. 그리고 그 중앙정부는 남과 북의 지역정부와 별도의 조직으로 구성된다. 연방중앙정부로서 '연방상설위원회'가 존재하고, 의회격인 '최고민족연방회의'가 존재한다.

진보당 역시 중앙정부의 존재를 인정한다. 아니 모든 연방제는 지역정부와는 별도인 중앙정부의 존재를 전제로 한다. 중앙정부가 없다면 연방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진보당의 연방제는 중앙정부의 형태에서 북한의 연방제와 차이를 갖는다. 진보당의 연방제에서 제시한 중앙정부는 남북협의기구적인 성격을 갖는다. 남과 북의 정부 구성원들, 즉 총리와 각료들을 중심으로 하여 중앙정부를 구성한다고 설계돼 있다. 여기에 국회대표, 정당대표, 시민사회대표들도 참여한다. 남북총리를 공동위원장으로 하는 이 중앙정부의 형태는 사실상 연방제보다는 연합제와 가깝다고 할 수 있다.

2012년 대선공약 정책 자료집에서 발췌.
▲ 진보당의 민족통일기구 구성 예시도 2012년 대선공약 정책 자료집에서 발췌.
ⓒ 장창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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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그림은 통합진보당의 제18대 대선공약자료집에 나와 있는 민족통일기구 구성방안 예시도이다. 'COREA위원회'로 명명되어 있는 것이 진보당의 연방제가 제시하는 '통일중앙정부'이다.

진보당의 중앙정부는 그 기능과 역할 그리고 위상에서도 북한의 연방제와 차이를 갖는다. 북한의 연방제에 따르면 중앙정부인 '연방상설위원회'는 10대 시정방침을 집행한다.

10대 시정방침은 ① 자주국가 견지 ② 민주주의 실시 ③ 남북의 경제합작과 교류 실시 및 민족경제의 자립적 발전 ④ 과학, 문화, 교육 분야에서의 교류와 협조 ⑤ 전국적 범위에서 교통, 체신 수단의 자유로운 이동 ⑥ 전체인민의 생활안정 복리증진 ⑦ 군사적 대치상태 해소와 민족연합군 조직 ⑧ 해외동포들의 민족적 권리와 이익 옹호 및 보호 ⑨ 두 지역정부의 대외활동의 통일적 조절 ⑩ 평화애호적인 대외정책 실시 등이 그것이다.

반면 진보당이 제시한 'COREA위원회'는 10·4 선언을 이행하는 역할을 수행한다. COREA위원회의 '정치, 경제, 군사, 사회문화 각 위원회'가 그것을 담당한다. 10·4 선언에서 합의한 '서해평화협력특별지대'의 중요성을 감안하여 이 사업을 주관하는 위원회는 별도의 체계로 독립시켰다.

한편 'COREA위원회'는 남북정상회담의 지시를 받는다. 'COREA위원회'는 만장일치로 의결하며, 이렇게 의결된 사업은 남북정상회담에서 수용 여부를 결정한다. 남북정상회담에서 수용하면, 남북 총리의 책임 아래 분야별 추진위원회가 세부 사업을 집행해 나가는 것이다.

진보당의 연방제는 오히려 연합제와 더 유사성을 갖는다. 연합제는 "회원국들이 각기 자기의 주권을 보유하면서도 조약에 의해 기구를 창설하고 그 기구를 위해 자신의 주권의 전적이고 배타적인 행사를 제한하는 것을 수용하는 국가들의 결합"으로 정의된다. 따라서 연합제는 '공동의 기구'(연합기구)에 주권의 일부를 이양하는 특징을 갖는다.(정성장, "연합제와 연방제의 공통점과 차이점은 무엇인가", <민족21> 136호)

남북연합은 최고의사 결정기구로서 남북정상회담을, 집행기구로서 남북각료회의를, 대의기구로서 남북 동수로 구성되는 남북평의회를 주요 기구로 한다. 진보당의 'COREA위원회'의 기능과 역할은 남북각료회의와 남북평의회를 하나로 결합시킨 기구와 유사하다.

남과 북의 총리와 각료를 중심으로 하여 구성되며, 10·4 선언을 집행하는 것을 역할로 한다는 점에서 남북각료기구와 유사하다. 정당, 국회, 시민사회단체 등 남과 북의 비정부 대표들을 'COREA위원회'에 포함 시켜 정부와 각료들의 이해관계만이 아니라 남북 주민들의 의사들이 반영될 수 있도록 했다는 점에서 남북평의회와 유사하다.

연방제 표현은 진보정당으로서의 정체성 표현

그럼에도 불구하고 '연방제'라는 용어를 사용한 것은 진보정당으로서의 자기 정체성을 확고히 해야 한다는 정치적 판단 때문이었다. 연합제는 궁극적으로 '체제통합'을 지향하는 통일방안으로 설계된 것이다. 따라서 연합제의 '체제통합 지향적 시각'을 진보정당에서 수용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는 정치적 판단이었다.

둘째, 연합제는 두 개 이상의 주권국가의 결합을 의미한다. 따라서 우리의 통일 논의에서 수용하기에는 다소 거리가 있다는 정치적 판단이었다. 이미 1991년 남북기본합의서에서 "남북관계는 국가와 국가 사이의 관계가 아니"라는 것을 분명히 했다. 남과 북은 "통일을 지향하는 과정에서 형성된 특수한 관계"인 것이다. 이 같은 특수성을 감안하면 비록 내용적으로는 연합제와 더 가깝다 하더라도, 진보당(민주노동당 포함)의 통일방안은 '연합제'가 아닌 '연방제'가 되어야 했다.

비록 '연방제'라는 명칭을 사용함으로써 대중적 지지를 받는 데 제약이 따른다고 하더라도, 그 제약을 극복하는 것 역시 진보정당의 정치적, 사회적, 역사적 과제로 판단했던 것이다.

다른 진보정당들 역시 연합제와는 거리가 있는 통일정책을 표방하고 있다.

노동당은 강령에서 "남북한 민중의 삶을 개선하고 남한과 북한의 양 체제를 모두 지양하는 진보적 통일을 추구"한다고 명시하였다. 정의당 역시 "6·15선언, 10·4선언 이행 등 통일을 위한 상호 협력"을 명시했다. 노동당과 정의당이, 비록 진보당처럼 연방제를 명시적으로 주장하고 있지는 않지만, 남과 북 어느 한쪽으로의 체제 통일을 거부하고 있다는 점에서 진보당의 접근법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할 것이다.

통일방안으로 '연방제'라는 표현을 사용한 것에 대한 정치적 책임은 오롯이 진보당에게 있다. 그러나 진보당이 연방제를 주장했다는 사실이 정당 해산의 근거가 되는 것은 이해될 수도, 용납될 수도 없는 일이다.

개인이 되었건, 정당이 되었건, 대한민국 헌법이 명시하고 있는 표현의 자유는 '연방제 통일'에도 적용되어야 한다. 표현의 자유를 보장하고 있는 헌정 체계 하에서 '연방제 통일' 주장이 위헌이라는 판결을 받는다면, 헌법이 잘못되었거나 판결이 잘못되었거나 둘 중 하나이다.

덧붙이는 글 | 통일뉴스에 동시 게재됩니다.



태그:#통합진보당, #정당 해산, #헌법재판소, #연방제, #COREA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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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신대학교 글로벌피스연구원 특임교수 겨레하나 평화연구센터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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