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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2014년 12월 19일자로 해산된 통합진보당(진보당)의 당원이었다. 일반 당원도 아니고, 대의원이었다. 게다가 진보당 부설 진보정책연구원의 연구위원이었다. 정당해산 판결문 요지를 접하는 순간 나는 구속을 예상했다.

그렇지 않은가? 헌재의 판결문대로 한다면 진보당은 대한민국 헌법을 부정하고, 대한민국의 정치체제를 폭력으로 전복시키려 한 조직이다. 진보당은 형법상의 '내란음모단체'이고, 국가보안법 상의 '반국가단체' 혹은 적어도 '이적단체'이다. 헌재의 논리라면 이정희 대표를 포함한 지도부는 말할 것도 없고, 최소한 중앙위원, 대의원, 중앙당 당직자, 정책연구원, 의원실의 보좌관들은 '내란음모단체, 반국가단체 혹은 이적단체의 핵심구성원들'은 구속되어야 마땅하다. 그게 법리상 맞다. 그런데도 나는 여전히 자유롭게 활보하고 있다. 이정희 대표도, 오병윤 원내대표도 구속되었다는 소식을 듣지 못했다.

검찰이 이적단체 규정 여부에 대한 법리검토에 들어갔다는 소식이 전해진다. 이건 무슨 말인가? 대한민국 헌정 질서를 붕괴하려는 '숨은 목적'을 갖고 있는 정당인데, 무슨 법리검토가 필요하단 말인가? 검찰은 법리 검토가 아니라 사법처리를 하면 된다.

나는 검찰이 당장 진보당을 이적단체로 규정하고, 모든 구성원을 즉각 구속할 것을 주장한다. 박근혜 정권과 검찰에게 요구한다. 나를 구속하라. 나도 구속하라. 모든 진보당 핵심 당원들을 구속하고, 일반 당원들도 사법처리하라. 헌재의 판결이 맞다면 검찰은 그렇게 하는 것이 마땅하다.

그렇다고 해서 헌재의 판결을 인정하는 것은 아니다. 나는 헌재의 판결을 정면으로 거부한다. 아마 대다수의 당원들이 그럴 것이고, 대다수의 깨어 있는 시민들이 그럴 것이다. 다만, 헌재의 결정을 뒤엎을 수 있는 권력이 없는 진보당의 당원인 나로서는 나를 구속하라는 주장 외에는 항변할 수 있는 방법이 없는 것이다.

많은 법률가들이, 많은 지성인들이, 많은 깨어있는 시민들이 헌재 판결의 부당성을 말하고 있다. 그러나 정작 당사자인 진보당 당원들의 목소리는 생각보다 많지 않다. 이 글이 모든 당원들의 입장을 대변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이 글이 해산된 진보당 당원들이 자기의 목소리를 내는 계기가 되기를 희망한다. - 기자 말

19일 오전 서울 종로구 헌밥재판소에서 진행된 통합진보당에 대한 정당해산심판을 위해 재판관들이 입장해 있다.
▲ 헌법재판소 '통합진보당 해산' 결정 19일 오전 서울 종로구 헌밥재판소에서 진행된 통합진보당에 대한 정당해산심판을 위해 재판관들이 입장해 있다.
ⓒ 사진공동취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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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란의 여지가 없지 않지만, 필자는 진보적 민주주의는 통합진보당의 이념이라고 생각한다. 법무부의 정당해산 심판 청구서에도, 헌재 재판 과정에서도, 헌재 판결문에서도 진보적 민주주의가 가장 큰 영역을 차지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진보적 민주주의에 대한 헌재의 판결은 "진보적 민주주의는 강령상 문언에서 드러나는 의미와 피청구인 주도세력이 진정으로 추구하고 의도하고 있는 내용과는 사뭇 다르다"(판결문 89~90쪽)는 대목에서 정확히 드러난다. '숨은 목적'이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8인 재판관의 정당 해산 인용 판결문에는 '숨은 목적'이라는 표현은 등장하지 않는다. 다만 "만약 정당의 진정한 목적이 숨겨진 상태라면 공식 강령은 이른바 허울이나 장식에 불과할 것이고, 이 경우에는 강령 이외의 자료를 통해 진정한 목적을 파악해야 한다"(13쪽)고 하여 '진정한 목적이 숨겨진 상태'라는 표현을 사용했다. 아마도 '은폐된 목적'이 있다는 법무부의 심판청구서를 그대로 베낀 것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의도적 작문일 것이다.

헌법재판관 8인은 21세기 궁예?

그런데 헌재 8인의 재판관은 '진정한 목적이 숨겨진 상태'를 파악하지 못했다. 이들은 수십 페이지에 걸쳐 진보적 민주주의가 민주노동당과 진보당에 도입된 과정을 상세하게 서술하고 있지만, 진보적 민주주의의 '숨겨진 목적'을 찾아내지 못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내린 결론은 다음과 같다.

피청구인 주도세력은 모든 국민에게 주권이 있다는 국민주권원리와는 달리, 한 사회의 구성원을 특권적 지배계급과 계급적 개념인 민중으로 구분한 다음, 각기의 주권은 적대적으로 대립한다고 보고, 진보적 민주주의는 낡은 기득권 세력인 특권적 지배계급과는 공존할 수 없으므로 그들이 장악한 권력을 빼앗아 민중에게 돌려준다는 것이다. 즉, 주권자의 범위를 민중에 한정하고 민중에 대비되는 일부 특정 집단에 대해 적대적인 관계로 설정하고 있으므로, 피청구인 주도세력이 내세우는 민중주권주의는 일반적 의미로서의 국민을 주권자로 보는 국민주권주의와 다르다고 할 것이다.(70쪽)

위 인용문에는 난데없이 '피청구인 주도세력'이라는 표현이 등장한다. 주도세력이란 "진보적 민주주의의 실현을 추구하는 경기동부연합과 광주전남연합, 부산울산연합의 주요 구성원 및 이들과 이념적 지향점을 같이하는 당원들"이라고 규정되어 있다. 이들은 "당직자 결정 등 주요사안을 결정하면서 당을 주도"한 세력들이다.(42쪽)

헌재 판결문 논리에서 '주도세력'은 진보당의 목적과 활동의 위헌성을 연결하는 핵심고리이다. 헌재 재판관 8인은 '주도세력' 개념을 갖고 논리 비약에 나선다. 첫째, '주도세력'이 진보적 민주주의를 당에 도입했다는 것이다. 둘째, 이들 '주도세력'의 "형성과정, 대북자세 및 활동상황, 활동경력, 이념적 지향점 등"을 살펴본 결과 진보적 민주주의에 대해 위와 같은 결론을 내린 것이다. 한 마디로 말하자면 다음과 같은 4단논법이다.

- 진보당은 주도세력들이 좌지우지한다.
- 주도세력은 대한민국 체제를 전복시키라는 북한의 지령에 의해 움직인다.
- 그같은 지령을 드러내기 어려운 관계로 주도세력은 진보적 민주주의를 내세웠다.
- 따라서 진보적 민주주의는 북한의 사회주의 혁명 이념을 의미하며, 진보당은 북한식 사회주의 폭력혁명을 꿈꾼다.

한 마디로 말해 '(북한식 사회주의 혁명을 꿈꾸는) 주도세력'이 곧 통합진보당이라는 것이다. 이런 논법에 기초해 헌재 8인은 10만에 달하는 진보당 당원들을 허수아비로 만들어 버렸다. 14년의 '민주노동당-통합진보당'의 역사에서 수십 차례 넘게 개최되었던 당대회-중앙위원회 등의 회의는 그야말로 요식행위가 되어 버렸다. 민주노동당과 통합진보당을 지지한 유권자들은 '주도세력의 북한 사회주의 혁명 노선'에 동조한 꼴이 되었다.

헌재가 증거주의를 버리고 관심법을 택한 결과다. 재판관 8인은 법무부의 주장을, 법무부측 증인의 주장을 그대로 수용했고, 진보당 측 변호사의 변론과 증언은 모조리 배척했다. '증거는 없으나 내가 관심법으로 보니 너희들은 위헌정당이다'라는 것이다.

과거 후삼국시대 미륵을 자처했던 궁예가 사용하던 바로 그 관심법이다. 다음은 한 방송사의 드라마였던 <태조 왕건>에 나오는, 궁예의 대사 중 일부이다. 궁예는 자신의 말을 제대로 집행하지 않는 신하들을 모아놓고 관심법을 쓰기 위해 눈을 감았다. 모두를 긴장하고 숨죽이고 있는데, 어느 구석에서 마른 기침 소리가 나왔다. 궁예가 눈을 뜨며 말한다.

궁예 : 누구인가? 지금 누가 기침 소리를 내었어?
관료1 : 신... 신이옵니다, 폐하. (다시 마른 기침)
궁예 : (한참 뚫어져라 보다가) 참으로 딱하구나. 지금 짐이 관심법을 하고 있는데, 어찌 기침을 할 수가 있느냐, 이 미련한 것아?
관료1 : 소...송구하옵니다, 폐하. 용서하시어 주시오소서.
궁예 : 내가 가만히 보니, 네 놈 머리 속에는 마군이가 가득 차 있구나.

그리고 궁예는 군사들에게 명령한다.

궁예 : 저 자의 머리속에는 마군이가 가득하다. 그 마군이를 때려 죽여라.

궁예의 발언은 재판관 8인의 판결과 정확하게 일치한다. 기침을 내뱉은 '관료'는 '진보당'이며, 그 관료의 머릿속에 가득 차 있다는 '마군'은 '주도세력'이다. 궁예가 눈을 감고 관심법으로 관료의 마군을 발견했던 것처럼, 헌재 재판관 8인 역시 눈을 감고 진보당의 '주도세력' 혹은 '진보적 민주주의'를 보았다. 궁예가 기침 소리를 갖고 마군의 존재로 '확신'했던 것처럼, 재판관 8인의 관심법은 진보적 민주주의를 갖고 '주도세력의 당권 장악'으로 '확신'했다.

궁예가 마군의 실체를 밝히지 않고 관료를 처형했던 것처럼, 재판관 8인은 주도세력의 실체를 밝히지 않고, 주도세력과 진보적 민주주의 그리고 진보당과의 관계를 규명하지 않은 채 진보당을 해산했다.

지난 19일 오후 서울 중구 서울시청광장에서 열린 '박근혜 2년 못살겠다! 다 모여라! 국민촛불' 집회에서 이정희 통합진보당 대표와 참석자들이 통합진보당 해산과 소속 의원들의 의원직을 박탈한 헌법재판소의 결정에 대해 "박근혜 정권의 보복정치이며 민주주의 파괴, 독재로 회귀하고 있다"고 규탄하고 있다.
▲ "박근혜 정권이 대한민국 민주주의 과거로 회귀시켰다" 지난 19일 오후 서울 중구 서울시청광장에서 열린 '박근혜 2년 못살겠다! 다 모여라! 국민촛불' 집회에서 이정희 통합진보당 대표와 참석자들이 통합진보당 해산과 소속 의원들의 의원직을 박탈한 헌법재판소의 결정에 대해 "박근혜 정권의 보복정치이며 민주주의 파괴, 독재로 회귀하고 있다"고 규탄하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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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은 처음부터 끝까지 같은 재판에 참여해, 같은 서류를 함께 검토하고, 같은 증언을 함께 청취했던 김이수 재판관의 반대 의견 중 일부이다.

(통합진보당의 진보적 민주주의 – 필자 주) 주장은, 국민의 정치적 의사결정과정에 주도적으로 참여하고자 하는 정당으로서의 민주주의 지향에 관한 주장일 뿐, 이미 제도화된 수준에서의 민주주의의 가치를 폄훼하고, 부인하는 것은 아니라고 할 것이다.(202쪽)

(진보적 민주주의 이념은 – 필자 주) 우리가 일반적으로 민주적 기본질서에 위배된다고 보는 개념요소들, 예컨대 폭력혁명이나 일정한 계급, 계층의 주권적 권리나 기본권의 박탈(계급독재), 1당(1인) 독재 등을 내용으로 하고 있지 않으며, 이 사건에서 청구인이 주로 문제삼고 있는 '북한식 사회주의'가 내포하고 있는 인민주권, 생산수단의 사적 소유와 경제활동의 자유의 박탈, 수령을 중심으로 한 일당 독재의 추구를 위한 전제조건으로서 '진보적 민주주의'가 도입되었다고 보기 어렵다.(245쪽)

강태운 사건이나 일심회 사건, 왕재산 사건 등 간첩사건에 의하여 민주노동당이나 피청구인의 의사결정이 영향을 받았다거나, 북한의 지휘, 조종, 영향을 받았다고 할 수 없다. 그 밖에 피칭구인과 북한의 직접적인 연계는 전혀 입증되지 아니하였다.(278쪽)

이석기 등의 그와 같은 발언은 피청구인의 기본노선과 현저하게 다르고, 이 사건 모임 참석자들이 피청구인 전체를 장악하였다고 할 수 없으며, 나아가 피청구인이 이 사건 모임 또는 모임에서의 발언을 승인하였다고 볼 수도 없으므로, 이 사건 모임이나 그 모임에서 이루어진 구체적 활동으로 인한 민주적 기본질서 위배의 문제를 피청구인 정당 전체의 책임으로 볼 수는 없다.(301쪽)

'피청구인 구성원 100명이 민주적 기본질서에 위배되는 사상을 가지고 있으므로, 나머지 구성원도 모두 그러할 것'이라는 가정은 부분에 대하여 말할 수 있는 것을 전체에 부당하게 적용하는 것으로서, 하나를 보면 열을 안다는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에 다름 아니다.(149쪽)

박한철 헌재 소장이 12월 24일 '헌재는 최종심이고 단심이기 때문에, 우리 헌법에 그렇게 규정하고 있기 때문에 불복이 가능하지 않다'고 밝혔던 것처럼, 정당해산의 결과를 뒤로 돌릴 수는 없다.

그렇다면 이후 과정은 명백하고 망설임이 없어야 한다. 진보당의 전 당원을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고발한 보수단체의 행위는 타당하다. 오히려 통합진보당의 이적단체 규정과 당원들의 처벌에 대한 법리 검토를 하고 있는 검찰은 직무유기를 하고 있다.

헌재는 내란관련 활동을 진보당의 활동으로 명확하게 규정했다.

피청구인의 활동 가운데 특히 내란관련 사건은 피청구인의 진정한 목적을 명백하게 드러낸 활동으로 볼 수 있다.(133쪽)

우리나라 형법은 내란과 관련하여 아래와 같이 적시하고 있다.

제87조 (내란)
국토를 참절하거나 국헌을 문란할 목적으로 폭동한 자는 다음의 구별에 의하여 처단한다.
1. 수괴는 사형, 무기징역 또는 무기금고에 처한다.
2. 모의에 참여하거나 지휘하거나 기타 중요한 임무에 종사한 자는 사형, 무기 또는 5년 이상의 징역이나 금고에 처한다. 살상, 파괴 또는 약탈의 행위를 실행한 자도 같다.
3. 부화수행하거나 단순히 폭동에만 관여한 자는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금고에 처한다.

재판관 8인의 판결을 형법에 적용하면 '진보당 주도세력'과 당대표는 '수괴'이다. 진보당의 최고위원, 광역시도당위원장, 중앙위원, 대의원 등은 '모의에 참여하거나 지휘하거나 기타 중요한 임무에 종사한 자'이다. 직책을 맡고 있지 않은 일반 당원은 '부화수행한 자'(부화수행 : 아무런 주관 없이 남의 의견을 맹목적으로 좇아 함께 어울림)이다.

다음은 국가보안법을 보자.

제2조 (정의)
① 이 법에서 "반국가단체"라 함은 정부를 참칭하거나 국가를 변란할 것을 목적으로 하는 국내외의 결사 또는 집단으로서 지휘통솔체제를 갖춘 단체를 말한다. [개정 91·5·31]
제3조 (반국가단체의 구성등)
① 반국가단체를 구성하거나 이에 가입한 자는 다음의 구별에 따라 처벌한다.
  1. 수괴의 임무에 종사한 자는 사형 또는 무기징역에 처한다.
  2. 간부 기타 지도적 임무에 종사한 자는 사형·무기 또는 5년 이상의 징역에 처한다.
  3. 그 이외의 자는 2년 이상의 유기징역에 처한다.
② 타인에게 반국가단체에 가입할 것을 권유한 자는 2년 이상의 유기징역에 처한다.
③ 제1항 및 제2항의 미수범은 처벌한다.
④ 제1항 제1호 및 제2호의 죄를 범할 목적으로 예비 또는 음모한 자는 2년 이상의 유기징역에 처한다.
⑤제1항 제3호의 죄를 범할 목적으로 예비 또는 음모한 자는 10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

재판관 8인의 주장을 국가보안법에 적용하면 진보당의 내란관련 활동은 '국가를 변란할 것을 목적'으로 하는 활동이다. 따라서 진보당은 반국가단체이다. '주도세력'과 당대표는 '수괴의 임무에 종사한 자'이다. 진보당의 최고위원, 광역시도당위원장, 중앙위원, 대의원 등은 '기부 기타 지도적 임무에 종사한 자'이다. 반국가단체인 진보당에 가입한 당원은 '그 외의 자'에 해당한다.

진보당 당원들에 대한 사법 법적 처리가 어찌 이리도 더디단 말인가.

덧붙이는 글 | 통일뉴스에 동시 게재합니다.



태그:#헌법재판소, #통합진보당 해산, #내란죄, #국가보안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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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신대학교 글로벌피스연구원 특임교수 겨레하나 평화연구센터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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