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4일, 강정호가 미국으로 출국하면서 피츠버그와의 최종 협상을 위한 과정에 돌입했다. 4년간 1600만 달러를 받을 것이라는 현지 언론의 추측이 나오고 있는 가운데 그런 그를 떠나보내는 넥센은 하나의 고민에 빠졌다. 지난해부터 '포스트 강정호'에 대한 고민이 시작됐다. 강정호의 메이저리그 진출이 확실시되는 현시점에선 당장 이 부분을 풀어야하는 상황에 놓였다.

​염경엽 감독은 차기 주전 유격수를 놓고 윤석민의 이름을 거론하면서도 김하성 등 젊은 선수들에게도 기회를 부여하겠다고 언급한 바가 있다. 실제로 지난해 시즌 후반기, 몇몇 내야수들은 코치들의 지도 아래에서 유격수 훈련을 실시하기도 했다. 당시는 가능성만 테스트했지만, 본격적인 주전 경쟁은 사실상 이번 스프링캠프가 기점이 될 것으로 보인다.

​야구에서 센터 라인, 포수와 키스톤 콤비(유격수-2루수) 그리고 중견수 네 포지션은 가장 중요하다고 이야기한다. 넥센의 경우 2루는 서건창이, 안방은 허도환-박동원 체제로 돌아가면서 나름대로 만족스런 성과를 거뒀다. 다만 강정호가 빠짐으로써 서건창과 호흡을 맞출 주인공이 바뀌는 만큼 윤석민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

우여곡절, 백업에서 '주전 유격수'로 주목받다

윤석민 동점 적시타 5일 오후 서울 잠실구장에서 열린 2014 프로야구 LG 트윈스와 넥센 히어로즈의 경기. 9회초 1사 주자 3루 때 넥센 윤석민이 동점 좌익수 앞 1루타를 치고 있다.

▲ 윤석민 동점 적시타 지난 2014년 10월 5일 오후 서울 잠실구장에서 열린 2014 프로야구 LG 트윈스와 넥센 히어로즈의 경기. 9회초 1사 주자 3루 때 넥센 윤석민이 동점 좌익수 앞 1루타를 치고 있다. ⓒ 연합뉴스


윤석민은 두산 시절 1루와 3루를 오가면서 '포스트 김동주'를 꿈꿨던 선수로 유명하다. 어려운 타구도 곧잘 잡아냈고 체격에 비해 유연성도 뛰어나서 타구 처리 능력은 나쁘지 않았다. 다만 2012년 2할9푼1리의 타율을 기록하며 두 자릿수 홈런을 기록했던 해에는 주로 1루수로 나서면서 최준석(현 롯데 자이언츠)과 바통을 주고받았다. 유틸리티 플레이어인 오재원도 1루수 미트를 껴보는 등 팀 내에선 1루 자리를 놓고 경쟁이 전개됐다.

윤석민의 가장 큰 메리트라면 역시 타격이다. 잠실에서도 홈런을 많이 치면서 펀치력은 입증된 지 오래이다. 변화구 대처에 의문부호가 아직 붙어있긴 해도 정확한 임팩트에서 나오는 타격은 일품이었다. 김진욱 전 두산 감독도 "향후 두산의 중심타선 한 축을 담당할 수 있을 것"이라며 기대감을 드러냈다.

​그러나 2013시즌 종료 후 스토브리그가 한창 시작될 즈음, '깜짝 1:1 트레이드'가 성사되면서 넥센 유니폼을 입는다. 2012년에 비해 활약이 미미했던 건 사실이지만 두산팬들은 여전히 그를 믿고 있었다. 최준석도 롯데로 이적하면서 팀 내의 우타 거포라고는 홍성흔이 전부였기에 그에게 거는 기대는 굉장히 컸다.

게다가 두산이 선택한 카드는 장민석으로, 그 해 준플레이오프 3차전에서 '총검술 타격'이라는 불명예를 떠안은 이였다. 기본적인 수비 센스나 주루 능력은 두산의 팀 컬러에 맞다고 볼 수도 있겠지만 팀 전력에 막대한 영향을 끼칠 정도는 아니었다. 김현수, 정수빈, 민병헌 세 선수만 봐도 비집고 들어갈 틈은 없다고 봐도 무방했다.

두산도 그렇지만 넥센 역시 박병호, 강정호와 더불어 팀의 화력을 책임질 수 있는 우타 거포 자원에 관심이 많았다. 즉시전력감이면 더 좋겠지만, 한 두 시즌은 백업이더라도 장기적인 안목에서 팀을 짊어질 선수를 눈여겨본 이장석 대표의 레이더망에 윤석민이 딱 들어온 것이었다.

2014시즌 윤석민은 주전보단 백업으로 나서면서 99경기에 출장해 타율 2할6푼7리를 기록했다. 10홈런 43타점, 어쨌든 완성형에는 조금 모자란 감이 없잖아 있지만 두 자릿수 홈런을 기록해 절반의 성공을 거뒀다.

지난 2012년 준플레이오프 4차전 롯데와의 원정 경기에서 홈런을 기록했던 그는 2년 뒤 넥센 유니폼을 입고 선 포스트시즌 무대에서 다시 사고를 친다. 플레이오프 1차전 LG와의 맞대결에서 6회 말 대타로 출장, 역전 3점포를 쏘아 올리며 시리즈 전체 분위기를 넥센쪽으로 몰고 왔다.

한 순간이었지만 많은 넥센팬들의 기억 속에는 오랫동안 남아있는 장면이다. 윤석민의 가능성을 다시금 보여주기도 했고 차기 강정호를 대신할 주전 유격수가 자신이라는 것을 입증한 홈런포였다. 꿈만 같은 시간을 뒤로 하고 이제 진짜 도전을 해야 하는 그는 타격보다도 수비 안정감에 초점을 맞추지 않을까 예상된다.​

남아 있는 숙제, ​강정호의 안정감을 따라갈 수 있을까

​타율을 조금만 끌어올린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시나리오를 쓸 수 있다. 그러나 그보다 더 중요한 건 수비이다. 선발 유격수로 낙점을 받고 시즌을 준비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고 윤석민을 제외하면 마땅한 선발 유격수감이 안 보인다. 민첩성과 주루 능력이 괜찮다는 김하성은 경험 면에서 채워야 할 부분을 해결하는 게 우선이다.

​안정적인 수비로 스카우터들을 홀린 강정호, 초보 유격수인 윤석민에겐 버거울 수밖에 없는 대목이다. 어느 선수에게나 실수도 나올 수 있는 법이고 염경엽 감독도 팀의 사정을 잘 알기에 기대보다는 육성에 무게를 두었다. 비유를 하자면 퍼즐조각을 맞춰나가는 목표를 가진 것이라고 해야 할까.

본인만의 장기를 살리는 게 중요하다. 강정호만큼은 어려우나 평소 풋워크 능력이 좋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정도로 느린 타구를 처리하는 데에 있어서 후한 평가를 받았다. 지난 6일 구단 시무식을 마친 후 염 감독은 개인 면담에서도 이런 점들을 언급하며 오히려 수비에 대한 걱정을 표현하지 않았다.

다만 우타 거포이다보니, 염 감독은 체중이 좀 초과된다는 경고의(?) 메시지를 전달하면서 스프링캠프 기간 동안 체중 감량을 지시했다. 유격수 수비를 위해서라면 어쩔 수 없이 선수 본인이 감당해야 한다. 타격 동작에서도 더 부드러워질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염경엽 감독은 선수 시절 그 자체로 평범했지만 내야수 출신이라는 점에서 윤석민에게 더 많은 관심을 쏟는 듯하다.

1루와 3루에서 윤석민의 수비는 두산에서도 경쟁력이 있었다. 오재원과 최준석 등을 위협하는 선수로 떠올랐고 무거운 체구임에도 점프 캐치도 몇 차례 선보였다. 문제는 숏바운드 캐치, 본인 앞에서 바운드가 튈 때면 자꾸 피하려는 경향이 있어 종종 타구가 뒤로 빠져나갔다. 라인 선상 수비에서도 캐칭 능력에 아쉬움을 남겼다.

결론적으로 윤석민의 올 시즌은 타격보다도 안정감 있는 수비가 좌우한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수비 불안감은 곧 타격으로도 이어지고 심적인 압박감으로 다가올 가능성이 농후하다. 팬들은 완벽한 모습보단 그가 성장해가는 과정을 보길 바란다. 2015년 1월, 이제 그는 선수생활의 새로운 전환점을 돌기 위한 채비에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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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유준상 시민기자의 네이버 블로그 <뚝심의 The TIme>(blog.naver.com/dbwnstkd16), <매일경제> BIGS에도 함께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프로야구 넥센 히어로즈 윤석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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