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에서 반드시 필요한 것은 바로 '라이벌'이다. 건강한 라이벌의 존재는 서로의 목표 의식과 승부욕을 자극하는 동기부여가 되고, 팬들 입장에서도 더욱 흥미로운 볼거리를 제공한다.

최근 프로야구는 명실공히 '삼성 천하'다. 무려 4년 연속 통합 우승을 차지할 동안 삼성을 견제할 만한 적수는 정규시즌에도 포스트시즌에도 나오지 않았다. 삼성은 2015 시즌도 여전히 강력한 우승 후보로 거론되고 있다. 과연 어느 팀이 다음 시즌 삼성의 대항마가 될 수 있을까.

다음 시즌 의외의 빅매치로 주목받는 것이 바로 '삼성vs.한화'다. 지난 시즌 준우승팀 넥센이나, 정규시즌 상대 전적에서 유일하게 삼성에 우위를 점한 두산(10승 6패)을 제치고, 3년 연속 꼴찌에 그친 한화가 주목받는 것은 다소 생뚱맞아 보일 수도 있다.

삼성 vs. 한화, 빅매치 가능할까

 김성근 한화이글스 신임 감독이 5일 오후 충남 서산시 한화이글스 2군 경기장에서 진행한 오마이뉴스 팟캐스트 <장윤선의 팟짱> 인터뷰에서 장윤선 오마이뉴스 기자의 질문을 듣고 있다.

돌아온 야신 김성근, 한화 재건할 수 있을까. ⓒ 강신우


팀순위뿐만 아니라 상대 전적에서도 한화는 지난 시즌까지 삼성과 상극이었다. 한화는 4승 1무 11패로 삼성에 철저히 밀렸다. 2012년에는 6승 13패, 2013년에도 4승 12패로 열세였다. 알고 보면 삼성의 4년 연속 통합 우승에 가장 많이 기여한 희생양이 바로 한화였다. 어딜 봐도 라이벌이라기보다는 천적 관계에 가까운 기록이다.

하지만 한화가 올 시즌 새롭게 주목받고 있는 것은 바로 '야신' 김성근 감독의 등장 때문이다. 김성근 감독이 SK 사령탑으로 있던 시절, 프로야구는 그야말로 '야신 천하'였다. 김성근 감독은 2007년부터 4년간 3차례의 한국시리즈 우승과 1회의 준우승을 차지하며 천하를 호령했다. 2010년에는 당시 선동열 감독이 이끌던 삼성을 한국시리즈에서 4전 전승으로 스윕하기도 했다.

김성근 감독의 SK 왕조가 쇠퇴할 무렵부터 약진한 것이 바로 지금의 삼성 왕조다. 류중일 감독이 삼성 지휘봉을 잡은 첫 해였던 2011년 8월, 당시 2위를 달리던 SK는 김성근 감독이 구단과의 불화로 갑작스럽게 경질되면서 두 감독의 포스트시즌 맞대결은 성사되지 않았다. SK는 그해 이만수 감독 대행 체제로 한국시리즈에 진출했지만, 삼성의 벽을 넘지 못했다.

김성근 감독이 SK 지휘봉을 잡고 있던 시절, 삼성과의 상대 전적은 46승 2무 39패로 앞선다. 류중일 감독과의 맞대결만 놓고 보면 2011년 해임 직전까지 13차례 만나 6승 7패로 거의 박빙에 가까웠다. 김성근 감독은 SK 사령탑에서 물러난 이후에도 "한국시리즈에서 삼성을 잡을 비책을 준비해놓고 있었다"며 못다 한 대결에 대한 승부욕을 드러내기도 했다.

돌아온 야신 김성근-건재한 삼성 왕조... 흥미진진

4년의 세월이 흘러 이제는 상황이 바뀌었다. 한화 사령탑으로 부임한 김성근 감독이 이제 류중일 감독과 삼성에 대한 '도전자'의 입장이 됐다. 통산 1234승에 빛나는 김성근 감독이 프로야구 역대 최고의 명장으로 꼽힌다면, 통합 4연패와 아시안게임 우승에 빛나는 류중일 감독은 현재 최고의 주가를 달리고 있는 감독이다.

행가레 받는 류중일 감독 한국 야구 대표팀이 28일 오후 인천 문학구장에서 열린 '2014 인천아시아경기대회' 야구 결승 대만과의 경기에서 6대 3으로 승리한 금메달을 획득하자, 선수들이 류중일 감을 행가레치고 있다.

▲ 행가레 받는 류중일 감독 한국 야구 대표팀이 지난 9월 28일 오후 인천 문학구장에서 열린 '2014 인천아시아경기대회' 야구 결승 대만과의 경기에서 6대 3으로 승리한 금메달을 획득하자, 선수들이 류중일 감독을 행가레하고 있다. ⓒ 유성호


김성근 감독은 암흑기를 보내고 있는 한화를 구원해줄 구세주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 73세의 최고령 사령탑이자 강도 높은 훈련과 관리 야구의 신봉자인 김 감독은, 현대 야구에서 이제 몇 안 남은 '올드스쿨형' 지도자의 대명사이기도 하다.

철저한 분업화와 소통에 기반을 둔 류중일 감독의 리더십과 대조되는 김성근 식 야구가 2015년 현재에도 여전히 통할 수 있을지가 최대 관전 포인트다. 확고한 야구관과 연륜을 바탕으로 존재 자체만으로도 이슈를 몰고다니는 김성근 리더십이, 몇 년째 꼴찌에 머물고있는 한화를 재건한다는 외인구단스러운 '스토리텔링' 만으로도 팬들의 흥미를 끌기 충분하다.

객관적으로 한화가 당장 우승권이나 포스트 시즌을 노릴 정도의 전력은 아니다. 하지만 팀대 팀 간 맞대결은 엄연히 상황이 다르다. 삼성을 만날 때마다 동네북을 면치 못했던 한화가 다음 시즌 김성근 효과를 등에 업고 과연 삼성전에서 몇 승을 따낼 수 있을지에 따라, 다음 시즌 전체적인 프로야구 판도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삼성은 현재 국내 야구계에서 가장 선진화된 '시스템 야구'를 바탕으로 스포츠 구단 운영의 모범 사례로 꼽히고 있다. 주전과 백업의 전력 차가 적고, 내부에서 꾸준히 새로운 선수를 육성할 수 있는 체계가 잘 갖춰있다. 김성근 감독도 삼성의 강점으로 높이 평가한 부분이다.

한편, 삼성의 이런 탄탄한 시스템은 상대적으로 류중일 감독의 리더십이 과소평가되는 원인이 되기도 한다. 김성근 감독도 이루지 못한 한국시리즈 4연패라는 업적에도 류중일 감독을 따라다니는 대표적 편견이 '좋은 선수들과 구단의 지원을 등에 업고 쉽게 성적을 냈다'는 오해다.

김성근 감독과의 맞대결은 류중일 감독도 진정한 명장으로 인정받기 위한 통과 의례일 수밖에 없다. 김성근 감독은 '승부는 이기기 위한 것'이라고 강조할 만큼 승리에 대한 집요한 열정을 미덕으로 여기는 지도자다. 삼성과 류중일 감독은 바로 지금 현재 야구계에서 가장 '이기는 야구'에 강한 팀이다. 승부의 맛을 아는 고수들의 대결이 치열해질수록 경기의 수준도 높아진다. 다음 시즌 한화와 삼성의 팀 순위를 떠나, 두 팀의 대결 자체만으로도 뜨거운 승부가 기대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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