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박이 있는가 하면 어김없이 쪽박도 있었다. 아니, 올해는 그 균형추가 심각하게 기울어졌다. 빈익빈 부익부 현상은 더 심각해졌고, 천만 영화가 4편이나 쏟아지는 와중에 전반적인 '하향평준화'가 뚜렷했다. 오죽했으면, 영화평론가 김영진은 <한겨레>에 쓴 칼럼에서 "요즘 영화 재미없다… 그래서, 연말 결산 응하지 않았다"고 했을까.

그럼에도 결산은 결산이다. 굵직한 숫자를 통해 2014년 영화계를 돌아봤다. 누구에게는 풍성하고 누구에게는 아쉬울 숫자들이다. 그리고 2015년엔 박근혜 정부에서 처음으로 출범하는 새 영화진흥위원회 위원장이 활동을 하게 된다. 관객들도, 영화인들도 모두모두, 해피 뉴이어!

# 4(편) : 2014년에 '천만'을 돌파한 작품 수

 2014년 천만을 돌파한 네 편의 영화.

2014년 천만을 돌파한 네 편의 영화. ⓒ NEW, 월트디즈니, CJ, 워너브러더스


<인터스텔라>(28일까지 1006만)가 막차를 끊었다. <변호인>(전체 1137만, 2014년은 568만 명), <겨울왕국>(1029만), <명량>(1761만)으로 이어지는 '천만' 영화 대열에. <변호인>과 <명량>은 문화 현상을 낳았고, '렛잇고(Let it go)' 열풍의 <겨울왕국>은 IPTV 매출 증대로 디지털플랫폼 산업 활성화에 이바지했다. 반면 '스타 감독' 크리스토퍼 놀란의 <인터스텔라>의 '천만' 돌파는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의 깜짝 흥행과 함께 올 연말 가장 의외의 결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그 사이, 외국영화와 사이좋게 양분했지만, 한국영화 점유율은 49.6%를 기록해 2010년 이후 4년 만에 50% 아래로 떨어졌다. 천만 영화의 범람은 멀티플렉스 상영관 증대와 관람객증가의 결과인 동시에 쏠림 현상의 심화로 읽을 수 있을 것이다. 200만 정도로 손익분기점을 맞출 수 있는 대작과 저예산 사이, 허리를 받쳐 줄 수 있는 중급 예산 영화들의 체급을 키워야 할 때다.

# 9(편) : 올 한 해 배우 이경영의 개봉작 편수
농이 아니다. 지금 한국(대중)영화는 이경영이 출연한 영화 출연하지 않은 영화로 나뉘는 분위기다. 숨 가쁘게 나열해 보자면, (최근 개봉 순으로)<패션왕> <제보자> <타짜-신의 손> <해적:바다로 간 산적> <군도:민란의 시대> <무명인> <백프로> <관능의 법칙> <또 하나의 약속>. 이경영의 출연작은 쉴 틈 없이 스크린에 걸려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그에 필적한 배우는 '자꾸 죽는 사나이' 송영창과 '오천만 배우' 오달수 밖에 없어 보인다).

그리고 이경영은 드라마 <미생>의 출연으로 종지부를 찍었다. 그는 스스로를 '충무로 노예'로 표현한다. 1990년대를 풍미했던 미남 배우는 그렇게 연기력과 매력을 겸비한 중년배우로 현장의 맏형을 자처하는 중이다.

현재 촬영 중인 최동훈 감독의 <암살>을 비롯해 <허삼관> <협녀: 칼의 기억> <은밀한 유혹> <소수의견> 등 개봉작도 대기표를 받고 기다리는 중이다. 사극과 현대극, 주조연과 특별출연을 가리지 않고 '다작왕'으로 거듭난 이경영은 아마도 현재 한국에서 가장 '행복한' 배우일 것이다.

# 10(년) : 천우희가 데뷔 후 <한공주>로 여우주연상 타기까지 걸린 기간

 영화 <한공주>의 포스터와 배우 천우희.

영화 <한공주>의 포스터와 배우 천우희. ⓒ 무비꼴라쥬, 이정민


천우희는 데뷔작 <신부수업>에서도, 봉준호 감독의 <마더>에서도, 얼굴을 알린 <써니>에서도 불량학생이었다. 그러나 밀양 여중생 성폭행 사건의 피해자를 연기한 <한공주>로 그녀는 당당히 청룡영화상과 한국영화평론가협회상, 올해의 여성영화인상을 거머쥐었다. "독립영화, 예술영화에 더 관심을 가져달라"던 수상 소감과 함께 흘린 천우희의 뜨거운 눈물은 많은 관객들에게 깊은 인상을 주었다. 데뷔 10년차, 1987년생 배우의 진심이었다.

그러나 올 한해 다른 여배우들의 활약은 깊은 인상을 주지 못했다. 여배우 기근이 아니라 여성 캐릭터 기근 덕이다. 흥행작으론 <수상한 그녀>의 심은경이나 <해적: 바다로 간 산적>의 손예진이 눈에 띄는 정도였다. 반면, 최민식을 필두로 송강호, 김윤석, 이정재, 황정민, 하정우, 강동원 등 열거하기도 벅찬 남자 배우들은 이미 차기작을 확정짓거나 출연 중에 있다. 부디, 천우희에게 향했던 응원이 2015년에는 이 땅의 모든 여배우들에게 전해지기를!

# 16(편) : <자유의 언덕>으로 돌아온 홍상수 감독의 장편영화 수
올해는 유독 주목할 만한 한국영화의 해외영화제 진출 소식이 드물었다. 칸을 위시해 3대 국제영화제 경쟁부문 진출작은 없었다. 로카르노국제영화제를 비롯해 중소규모의 국제영화제를 순회 중인 박정범 감독의 <산다>나 로테르담영화제에서 수상한 <한공주> 정도가 눈에 띈다. 그만큼 한국 작가주의 영화가 위축돼 있다는 반증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홍상수 월드'는 전진한다.

비록 칸이나 베니스 경쟁부문에 이름을 올리지 못했지만, <자유의 언덕>은 베니스영화제 오리종티 부문을 비롯해 토론토, 벤쿠버, 뉴욕 등 해외 20여개 영화제에 초청됐다. <다른 나라에서>의 이자벨 위페르에 이어 일본배우 카세료를 캐스팅한 이 작품은 북촌의 게스트 하우스에 머무르는 모리의 2주일을 그린다. 한국인들과의 만남을 비선형적인 시간 구성으로 배열하고 모리가 읽는 편지를 통해 중첩된 액자 형식을 취했다. 독립 제작 방식으로 가열 차게 영화를 만드는 그는 한국영화계의 유일무이한 존재다. 그리고 매번 익숙한 듯 새롭다. '홍상수 월드'의 전진은 계속된다.

#22(억 원) : <또 하나의 약속>이 두레 후원과 개인투자로 마련한 제작비

 영화 <또 하나의 약속>, <제보자> <카트>의 포스터.

영화 <또 하나의 약속>, <제보자> <카트>의 포스터. ⓒ 에이트볼픽쳐스,영화사수박,리틀릭픽쳐스


삼성전자가 7년 만에 사과를 했다. 영화 <또 하나의 약속>이 사회적인 이슈가 된 후다. 삼성 반도체에서 일하다 백혈병에 걸린 고 고 황유미씨와 아버지 황상기씨의 실화를 영화화한 <또 하나의 약속>에 이어 다큐멘터리 <탐욕의 제국>이 연이어 개봉하며, '삼성 백혈병' 문제는 국민들의 관심을 샀다. 그리고 지난 8월 삼성 측은 산재소송을 낸 이들의 손을 들어준 법원의 판결을 존중한다고 밝혔다.

2014년은 <또 하나의 약속>과 같이 사회 현실을 반영한 드라마들이 주목을 받았던 해이기도 하다. 11월엔 대형마트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파업 투쟁을 그린 <카트>가 잔잔한 반향을 일으켰고, 이에 앞서 개봉한 <제보자>는 황우석 박사 사태를 정면으로 그린 사회파드라마였다. 1000만 관객을 동원한 <변호인> 역시 고 노무현 대통령과 부림사건을 극화한 영화였다. <도가니>이후 4년, 실화의 힘은 여전히 강력했다. 

# 187(세) : <님아...> 강계열 할머니와 고 조병만 할아버지의 나이
이른바, 누구도 예상 못한 '슬리퍼 히트'(깜짝 흥행)이다. 11월 27일 개봉해 28일까지 355만을 동원해, <워낭소리>(2008)가 보유했던 종전 다큐멘터리 흥행 기록을 다시 썼다. 두 노부부의 사랑과 죽음에 대한 진심이 젊은 관객들까지 울렸다는 평가다. 그 흥행의 이면엔 다큐멘터리로는 이례적으로 186개 스크린에서 출발할 수 있었던 CGV 무비꼴라쥬의 배급망이 자리하고 있었다.

올 한 해 다큐멘터리영화들은 질적, 양적 성장을 거듭했다. 11월 말까지 개봉한 다큐는 25편 가량. 다큐멘터리 전문 제작사가 설립되고, 방송사 PD까지 영화로 넘어 오면서 공급이 넘친 상황이다. 하지만, 이 모두를 합쳐도 <님아> 한 편의 관객 수에 못 미치는 기묘한 상황은 독립·다큐 영화의 배급망과 멀티플렉스에 집중돼 다양성이 배제된 상영 조건에 대해 재고하게 만든다. 

# 1123(명) : '세월호 특별법 촉구 선언'에 서명한 영화인 수

영화인들, '세월호 가족들과 끝까지' 영화인들이 3일 오후 부산 해운대구 우동 영화의전당 앞에서 열린 <철저한 진상규명이 보장된 세월호 특별법 제정 촉구 영화인 1123인 선언>에서 특별법 제정을 촉구하고 있다.

영화인들이 지난 10월 3일 오후 부산 해운대구 우동 영화의전당 앞에서 열린 <철저한 진상규명이 보장된 세월호 특별법 제정 촉구 영화인 1123인 선언>에서 특별법 제정을 촉구하고 있다. ⓒ 이정민


배우 송강호는 말했다. "세월호 참사"를 기억하자고. 이에 동참하는 영화인들은 서명을 했고, 광화문에서 릴레이 단식을 이어갔다. 부산국제영화제에서는 전 세계 영화인들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었다. '스크린쿼터' 투쟁 이후 영화인들이 한 목소리를 낸 건 처음이었다. 뜻을 함께한 영화인들과 감독들은 '세월호 추모영상제'를 개최하기도 했다.

한편, 영화인들의 기자회견을 촉발시킨 건 세월호 참사 현장을 다룬 다큐멘터리 <다이빙벨>이 도화선이 됐다. 난데없는 부산국제영화제 상영금지 목소리에 영화인들이 반발하고 나선 것. 여당 국회의원들과 보수언론이 불을 댕겼고, 급기야 서병수 부산시장까지 의견을 표명하며 영화제 측을 압박했다. 이후 상영은 무사히 마쳤지만, 부산국제영화제에 부산시가 감사에 착수한다는 뒷말을 남겼다. 한국의 '표현의 자유'는 이렇게 위축되어 가는 중이다. 

# 342(만 명) : '아트버스터'로 홍보된 <비긴 어게인>의 관객 수
예술(Art)과 블록버스터(blockbuster)의 조합이라니, 꽤나 한국적이다. <님아>의 흥행으로 '다큐버스터'란 용어까지 등장한 지경이다. 헌데, 이 마케팅 포인트가 제대로 먹혔다. 유달리 한국에서 사랑받았던 <원스>의 감독 존 카니의 신작 <비긴 어게인>이 '잭팟'을 터트렸다. 이 사랑스런 음악영화 외에도 77만 명을 동원한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과 <인사이드 르윈>, <한공주>, <그녀> 등 다수 작품이 예술영화관과 SNS를 진원지 삼아 흥행에 성공했다.

하지만 아트버스터가 예술영화의 다양성을 제대로 담보해내는지는 의문이다. 1만 돌파니, 3만, 5만, 10만 돌파니 하는 마케팅 전략은 단기간에 성과를 내야 하는 상업영화의 전략을 그대로 답습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제작비 1천만 달러를 들인 <비긴 어게인>은 다양성 영화로 분류되는 일도 다반사고, 일부 스타 감독, 배우에게 쏠리는 경향도 적지 않다. '아트버스터'는 MB정부 이후 다양성영화로 흡수되고 그 의미가 혼재되어 버린 독립·인디·예술영화의 현주소를 반영하고 있다.   

# 1174(만명) : 배급사 NEW가 올 11월까지 동원한 관객 수

 2014년 NEW 배급작인 <남자가 사랑할때>와 <해무>

2014년 NEW 배급작인 <남자가 사랑할때>와 <해무> ⓒ NEW


급전직하, 배급사 뉴(NEW)가 올해 겪은 살풍경한 광경이다. 2013년 <변호인>을 위시해 점유율 29%를 차지하며 영광을 누렸던 이 배급사는 그러나 올해 200만을 넘긴 영화가 한 편도 없을 만큼 급작스런 추락을 맛봐야 했다. 최고 흥행작은 <남자가 사랑할 때>(197만). 자사 극장이 없다는 핑계를 대기에도 무색한 숫자다. 흥행은 요지경이란 사실을 또 한 번 입증하는 숫자가 아닐 수 없다. 하지만 뉴는 내외적으로 내실을 다지는 중이다.

지난 10월 중국 엔터테인먼트그룹 화책미디어와 중국 진출을 위한 합작 법인을 설립했다. 화책미디어는 NEW의 지분 45%를 가진 2대 주주가 됐다. 지난 23일엔 코스닥시장에 상장됐다. NEW의 목표는 글로벌 종합 미디어 콘텐츠 유통기업이다. 한편 메가박스는 중국계 기업에 매각이 유력해지고 있다. 1대 주주인 맥쿼리펀드는 지난 24일 중국 투자사에 지분매각 계약을 체결했다. 2대 주주인 제이콘텐트리의 결정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충무로 인력들의 진출이 눈에 띄게 늘고 있는 중국발 투자가 2015년 한국영화계에 어떤 영향을 미치게 될까.

# 60만3090(명) : 영화 <우는 남자>의 최종 관객수  
<아저씨>의 이정범 감독, 수식이 필요 없는 장동건 주연의 <우는 남자>의 제작비는 100억 원대. 홍보마케팅비까지 계산하면 더 치솟을 제작비에 비해 손익분기점의 4분의 1도 건지지 못했다. 차승원 주연의 <하이힐>, 주원 주연의 <패션왕>, 이정재 주연의 <빅매치>, 하지원 주연의 <조선미녀삼총사> 등 참담한 결과를 낸 상업영화는 이외에도 수두룩했다.

올 한 해 상업영화의 함량이 '하향평준화' 됐다는 지적이 많았다. 한 마디로, 빤하고 안전한 상업영화들로 넘쳐나고 있다는 얘기. 칸 감독주간에 진출하며 344만 관객을 동원한 <끝까지 간다> 정도가 올해의 수확이라 꼽을 만 했다. 그만큼 대기업 투자 위주로 돌아가는 제작방식이 창의적인 작품의 출현을 저해한다는 목소리가 높았다. 바라건대, 2015년엔 안일하거나 흥행 요소만을 답습하는 상업영화들이 퇴출되기를.

# 17,610,893 : 영화 <명량>의 최종스코어

 영화 <명량>의 '이순신' 최민식.

영화 <명량>의 '이순신' 최민식. ⓒ CJ엔터테인먼트


최소 1500만은 물리적 저항선이라 여겨졌다. 그러나 <명량>은 단숨에 <아바타>와 <괴물>의 1300만 대 관객 동원 기록을 훌쩍 뛰어 넘었다. 초등학생들도 친숙한 이순신이란 캐릭터, 애국주의와 감상주의, 세월호 정국과의 결합, 최민식의 카리스마, 드라마와 액션 스펙터클의 적절한 배합 등 <명량>의 흥행 요인은 이미 다각도로 분석을 마친 바 있다.

눈여겨 볼 것은 <명량>이 열어젖힌 '파이'다. 3년 연속 한국영화 관객 1억 명 시대, 1700만란 숫자는 '천만' 흥행이 가시권 안에 들어왔음을 알리는 신호탄과도 같다. 이를 노린 대작들에 대한 투자와 제작도 좀 더 활발해 질 전망이다. 단, 이것이 독이 될지 약이 될지는 좀 더 지켜봐야 할 듯싶다.

# 5,500,000,000 : CJ E&M과 롯데엔터테인먼트가 공정위로부터 부과 받은 과징금
두 대기업은 시장 지배적 지위를 남용했다며 과징금과 함께 검찰에 고발된 상태다. 한국영화계의 고질적 병폐로 손꼽혀 온 스크린 독과점 문제에 공정위가 칼을 빼든 것이다. CJ E&M과 롯데엔터테인먼트는 "상생을 도모하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또 하나의 약속>이 롯데시네마를 상대로 불공정거래 제소와 관련한 기자회견을 연 것이 지난 2월. 1년여가 지난 연말 극장가, 3대 배급사 작품이 아닌 <개를 훔치는 완벽한 방법>이나 <더 테너 리리코스핀토>는 스크린 잡기에 난항을 겪고 있다. 55억이란 과징금보다 검찰 조사 결과를 기다려봐야 하는 이유다. 한국영화 관객 1억명 시대, 이번 공정위의 제소가 배급투자사가 갑이 된 지 오래인 영화계 지형을 건강하게 만드는 실마리가 되어 줄 수 있을지 지켜 볼 일이다.

한국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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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작업 의뢰 woodyh@hanmail.net, 전 무비스트, FLIM2.0, Korean Cinema Today, 오마이뉴스 등 취재기자, 영화 대중문화 칼럼니스트, 시나리오 작가, 각본, '4.3과 친구들 영화제' 기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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