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일 대한극장에서 정동영 전 의원 주관으로 열린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카트> 단체 관람

8일 대한극장에서 정동영 전 의원 주관으로 열린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카트> 단체 관람 ⓒ 명필름


"나는 오늘 이 자리에서 영화 <카트>에 보다 많은 관람 행렬이 이어지기를 기원하고 또 호소하고 싶다. 요즘 우리 사회를 보면 여야 국회의원 300명이 영화감독이나 연극 연출가 한 명만도 못한 경우가 많다. 영화나 연극 한 편이 국회의원 300명이 못하는 일들을 해내고 있기 때문이다. 만약 <카트> 관객이 100만을 넘어서고 700만까지 간다면 한국 사회도 크게 변화할 것이다."

8일 충무로 대한극장에서 LG유플러스와 SK브로드밴드 설치기사 등 비정규직 노동자와 각계 인사 100여명과 함께 <카트>를 관람하기 위해 찾은 정동영 전 의원은 상영에 앞서 영화가 갖는 상징성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이날 관람은 영화를 이미 관람했던 정 전 의원이 의미 있는 영화가 흥행 부진을 겪고 있는 데 대한 안타까움을 느껴 비정규직과 시민들을 초청해 대관 상영을 마련한 자리였다. <카트>의 제작사인 명필름 심재명 대표도 자리를 함께 해 대관에 감사의 뜻을 전했다.

'인터스텔라' 등 대작에 밀려 상영관 축소...대관 상영으로 돌파구

할리우드 영화의 공습으로 국내 영화들의 흥행이 부진한 가운데, 묻히기 아까운 영화들에 대한 대관상영 바람이 불고 있다. '좋은 영화를 이렇게 묻히게 할 수는 없다'는 게 영화를 본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내리는 평가다. 가장 대표적인 영화가 바로 <카트>다.

비정규직 마트 노동자들을 소재로 한 <카트>는 작품성과 배우들의 열연이 호평을 받았으나 <인터스텔라>를 비롯한 대작 할리우드 영화가 스크린을 장악하며 상대적으로 피해를 입었다. 좌석점유율이 상승하며 고른 연령층의 관심을 받았으나 대작 외화들이 잇따라 개봉하면서 스크린 수가 반 토막 났다. 한 영화가 1000개 이상 스크린을 장악하는 과도한 독과점에 <카트>의 마트 노동자들은 눈물을 흘릴 수밖에 없었던 셈이다.

<인터스텔라>는 개봉 이후 최대 1410개의 스크린을 장악했고, 개봉 후 21일 동안 1000개 이상의 스크린을 유지했다. <카트>는 이후 '퐁당퐁당(교차상영)'으로 관객과 만나고 있으나 8일 현재 상영관이 50개 미만에 불과한 상태다.

심재명 대표는 <카트>의 상영관이 축소된 지난달 25일 트위터에 절박한 심정을 담아 "<인터스텔라>의 흥행광풍에 직격탄을 맞고 휘청이다 빌빌거리는 중이다"며 "제작자로써 뼈가 아프다. 함께 사는 세상을 향해, 절박한 맘으로 만든 영화 많이 봐주세요"라고 요청해 반향을 일으키기도 했다.

극장이 줄어든 현실에서 새로운 돌파구를 찾기 위한 <카트> 단체 관람은 지난 2일 사회운동 인사들이 불을 당겼다. 백기완 통일문제연구소장과 함세웅 신부 등이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초청해 영화를 단체로 관람했다. 8일 정동영 전 의원이 주관한 단체 관람도 이 같은 흐름을 잇는 것으로 정 전 의원이 영화표를 구입해 '티켓 나눔' 형식으로 대관상영이 이뤄졌다.

심재명 대표 "100명 이상이면 전국 어느 극장에서든 단체 관람 가능"

 영화 <카트>의 한 장면. 사측의 물대포 공세에 맞서 카트를 밀어 맞서는 마트 노동자들

영화 <카트>의 한 장면. 사측의 물대포 공세에 맞서 카트를 밀어 맞서는 마트 노동자들 ⓒ 명필름


대관상영은 <카트>만이 아닌 최근 독립영화들의 불리한 상영조건을 극복하기 위한 방편으로 활용되고 있다. 독립예술영화극장이 많지 않은 데다, 관객들이 상영시간을 맞추기가 힘든 점도 있어 화제작들은 단체로 극장을 빌려 보는 관람 문화가 늘어나는 분위기다.

최근 개봉한 독립다큐멘터리 <누구에게나 찬란한>은 스크린이 대폭 축소된 상태에서 유소년축구팀과 축구동호회 등의 대관상영을 통해 흥행을 이어가고 있다. 최근 현안으로 부상하고 있는 민영화 문제를 다룬 <블랙딜>은 극장에서는 종영됐지만 대관상영이나 공동체 상영을 통해  관객들과의 만남 횟수를 늘리고 있다.

<카트>를 중심으로 일고 있는 대관상영은 2001년 사회적 반향을 일으킨 '와라나고' 운동을 연상시킨다. 당시 <와이키키 브라더스>(임순례 감독), <라이방>(장현수 감독), <나비>(문승욱 감독), <고양이를 부탁해>(정재은 감독) 네 편의 작품성 있는 영화가 상업영화에 밀려 상영기회를 얻지 못하자 관객들이 자발적으로 벌였던 관람 운동이다.

할리우드 영화들의 스크린 장악에 작품성 있는 영화가 밀려난 현실에서 대관상영을 통한 영화보기 운동은 '와라나고' 운동과 유사한 점이 많은 모습이다. 영화진흥위원회가 발표한 2014년 11월 한국영화산업 결산 발표를 보면 외국영화 점유율이 78.6%로 한국영화 점유율 21.4%를 압도하고 있다.

<카트>의 경우 외화들 사이에 끼어 관객들로 제대로 된 평가를 받지 못했다는 점에서 대관상영 운동이 탄력을 받는 분위기다. 명진 스님이 이번 주말 불교계 인사 100명과 함께 집단 관람을 할 예정으로 알려졌으며, 민교협과 교수 4단체도 소속 교수 및 가족들과 집단 관람을 할 예정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명필름 심재명 대표는 "단체들의 대관상영 신청이 계속 들어오고 있다. 100명 이상일 경우 배급사에 요청하면 전국 어느 극장에서도 영화를 단체로 관람할 수 있다"며 관객들의 관심을 요청했다. 이어 "1월 7일까지 대한극장과 광화문 독립영화관 인디스페이스에서 장기 상영에 들어간다"고 덧붙였다.

한편 <카트>에 출연한 염정아 배우는 지난 12월 4일 '여성영화인모임'이 선정한 '올해의 여성영화인상'을 수상했다. 여성영화인모임은 "<카트>가 대한민국을 관통하고 있는 가장 뜨거운 문제 중 하나인 갑과 을, 정규직과 비정규직 문제를 대중영화의 스펙트럼을 가져와 소통을 시도했다"며  "비정규직 노동자 선희 역을 맡은 배우 염정아가 '제발 우리의 이야기를 들어달라'는 간절한 외침으로 관객들에 깊은 울림을 전했다"고 평가했다.

카트 명필름 심재명 비정규직 염정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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