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스텔라> 공식 포스터

<인터스텔라> 공식 포스터 ⓒ 워너브라더스


영화 <인터스텔라> 관객 수가 800만 명을 넘어섰다. 영화 속 물리법칙에 관한 글도 연일 인터넷에 쏟아져 나온다. 영화보기를 즐기는 편은 아니지만 궁금증과 약간의 의무감으로 극장을 찾았다.

영화 초반, 몸을 못 가눌 정도의 흙먼지 바람이 화면을 가득 채웠다. 농작물 대부분이 멸종해 이제 먹을 수 있는 작물은 옥수수가 유일하다. 부족한 식량 때문에 기술자 대신 농업인이 절실한 시대. 현재 과학기술을 뛰어 넘는 놀라운 장면이 등장하는 영화인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나 싶을 만큼, 초반 영화 속 풍경은 황량하고 삭막했다.

기대했던 내용은 영화 중반부터 나오기 시작했다. 우주선을 타고 우주공간을 누비는, 흥미롭고 때론 신비롭기까지 한 이야기가 펼쳐졌지만 내 머릿속에선 처음에 등장한 먼지바람이 내내 가시지 않았다.

인터스텔라에 몰입할 수 없었던 이유

극장을 나선 이후에도 마찬가지였다. 왜 농작물이 멸종했는지, 먼지바람은 왜 부는지, 영화에선 그 이유를 찾을 수 없었다. 나는 마치 영화감독이나 된 듯 영화에서 보여주지 않은 이전의 이야기를 상상해보기로 했다.

'1900년대 후반, 세계는 모든 인구를 먹여 살리고도 남을 만큼 농작물을 생산했다. 이와 함께 인구수도 크게 늘었다. 육식이 만연했다. 농작물의 절반은 가축의 먹이가 됐다. 숲은 점차 농경지와 가축의 사육장으로 변해갔다. 땅은 황폐해지고 숲이 사라지면서 지구 곳곳이 건조한 사막으로 변했다. 먼지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농작물 수도 크게 줄었다. 다양한 유전자를 지닌 농작물 75%가 이미 사라지고 유전자를 조작한 단일작물이 이를 대신했다. 쌀, 밀, 바나나, 오렌지 등 저마다 똑같은 유전자를 지닌 작물들이 거대한 면적의 농장에 뿌리를 내렸다. 단일작물은 전염병과 해충에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었다. 제일 먼저 인간이 먹을 수 있는 유일한 품종의 바나나 '캐번디시' 종이 1980년대부터 변종 파나마병으로 위협을 받기 시작했다.

대만에서 시작한 이 병은 2014년에도 치료법을 개발하지 못한 채, 인도, 중국, 호주로 빠르게 확산되고 있었다. 파나마병에 맞설 바나나 품종을 개발하는 일은 쉽지 않았다. 이를 기다리지 못한 채 바나나는 멸종을 맞았고 이후 수많은 농작물이 바나나와 같은 처지가 됐다. 결국 재배 가능한 작물은 오크라와 옥수수만 남았다. 몇몇 종자가 실험실에 남아 싹 틔울 날을 기다리고 있을 뿐이다'

 <인터스텔라>에서 머피 역의 제시카 차스테인, 톰 역의 케이시 애플랙

<인터스텔라>의 한 장면. ⓒ 워너브라더스


상상이라고는 하지만, 마지막 세 문장을 제외하곤 모두 사실에 근거한 내용이다. 위기에 처한 지구를 구할 것이냐, 지구를 버리고 떠날 것이냐, 선택만 남은 상황에서 <인터스텔라> 감독은 탈출을 선택했다. 내가 영화에 몰입하지 못한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이렇게 망쳐 놓고 떠나면 다 끝나는 일인가? 다른 생물은 멸종하는데 인간만 도망가 살면 되는 것인가? 새로운 곳에서는 또 어떤 문명(?)을 만들어 갈 것인가? 그곳에선 지구에서 겪은 시행착오를 반복하지 않을 수 있을까? 우주는 인간을 위해 남겨진 공간인가? 결국, 인간에겐 지구도 일회용이었나?

현실에서 가끔 경험하는 일이지만 현재 과학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현상들, 이를 테면 텔레파시나 예지력 같은 초자연적인 현상조차 '인간의 메시지'로 해석한 감독의 배짱이 놀랍고도 두렵다. 그토록 전지전능한 인간이 다른 생명체와 함께 수억 년 동안 적응하며 진화해 온 지구를 왜 버리고 떠난단 말인가.

우리가 지금 해야 할 이야기가 블랙홀과 웜홀, 물리법칙뿐이라면, 영화 속 '희망 없는 지구'는 결국 현실로 눈앞에 나타날 것만 같다. 물리법칙을 몰라도 우주는 스스로 잘 돌아간다. 되돌아보지 못하고, 잘못을 뉘우칠 줄도 모르는 인간에게 과연 우주는 또 다른 공간을 허락해 줄 것인가. 정말 기대되는 미래가 아닐 수 없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시사인천>에도 실렸습니다.
인터스텔라 사소한 과학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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