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BS 수목드라마 <피노키오>가 12일 첫 선을 보였다. <너의 목소리가 들려>의 박혜련 작가·조수원 PD 콤비가 다시 한 번 뭉쳐 선보인 드라마다.

그런데 굳이 박혜련·조수원이란 이름을 거론하지 않아도, <너의 목소리가 들려>라는 전작을 드러내지 않아도, 첫 회 <피노키오>를 보고 있노라면 박혜련 작가의 <너의 목소리가 들려>가 떠오른다.

델리 스파이스의 동명의 노래 제목을 붙인 <너의 목소리가 들려>의 수하(이종석 분)는 어릴 적 사고로 상대방의 눈을 보면 그 마음의 소리가 들리는 능력을 지닌 인물이었다. 하지만 그 슈퍼맨 능력 같은 증상으로 인해 수하는 고통 받는다. 항상 들려오는 누군가의 마음의 소리로 인해 괴로워하는 그는 그걸 막고자 항상 음악이 흐르는 헤드폰을 끼고 있었다.

<피노키오>에는 거짓말을 숨기지 못하는 '피노키오 증후군'을 가진 소녀 인하(박신혜 분)가 있다. 거짓말을 하지 않는 건 좋은 것이다. 하지만 막상 우리가 사는 세상은 거짓말을 하지 않고서는 못 베기는 사회를 합리하듯, 진실만을 말하고서는 살아가기 힘들다.

그런 사회에서 인하는 거짓말을 하려 하지만, 그때마다 딸꾹질이 그녀를 폭로한다. 이 아이는 거짓말을 하고 있다고. 거짓말을 밥 먹듯이 하는 사회에서 거짓말을 하지 못하는 아킬레스건을 가진 소녀가 거짓 세상 속을 헤쳐 나가는 모습이 곧 <피노키오>의 주제 의식을 전달하는 방식 중 하나가 될 것이다.

사회와 어른들에게 상처받은 아이, <피노키오>에도 있다


<너의 목소리가 들려>와 <피노키오>에서는 주인공들의 어린 시절 사건이 그들 삶의 중요한 터닝 포인트가 된다. 민준국(정웅인 분)에 의해 아버지를 잃게 된 소년 수하, 그런 수하를 돕기 위해 법정에 서서 진실을 증언하게 된 혜성(이보영 분), 그 사건으로 인해 두 사람의 인연은 깊어졌고, 혜성의 세상은 지금까지와 전혀 다르게 전개되기 시작한다.

<피노키오>에도 아버지를 잃은 소년 하명이 있다. 머리가 좋은 작은 아들을 동네방네 자랑하지 못해 좀이 쑤시는 순박한 아버지는 소방대장으로 출동했던 공장 화재 사고에서 공장 직원의 발뺌과 잘못된 보도로 인해 동료들을 사지로 몰아넣은 살인자이자, 혼자 살아남아 도망 다니는 파렴치범이 되고 만다. 그런 아버지의 죄과는 고스란히 가족들의 짐으로 떠넘겨지고, 그로 인해 가족은 산산조각 나고, 소년의 삶은 전혀 다른 곳에서 최달포(이종석 분)라는 이름으로 다르게 전개되기 시작한다.

행복하기만 할 줄 알았던 동심의 세계는 단 한 순간에 파괴되고, 어린 시절의 주인공들은 그들을 보호해줄 보호자를 잃고 세상을 떠돈다. 잔혹 동화다. 그런데 <너의 목소리가 들려>에서도, <피노키오>에서도, 이 잔혹 동화를 빚어낸 건 자신의 이익만을 탐하는 사회의 어른들이다. 동심의 세계를 파괴한 것은 우리 사회의 구조적 시스템 속에서 자신만의 이해를 추구했던 어른들의 타산적 행동이다. 그런 어른들의 탐욕으로 아이들은 보호받을 그늘을 잃었고, 영원히 씻지 못할 상처를 입었다.

그렇게 동심의 세계를 파괴한 어른들의 사건은 드라마의 주제가 될 하나의 질문을 던진다. <너의 목소리가 들려>에서 내던져지듯 들어간 법정에서 자신을 잡아먹을 듯한 범죄자의 시선 앞에 진실을 고백했던, 하지만 무기력했던 소녀 혜성의 증언은 법 앞의 진실에 대한 질문을 남긴다. <피노키오>에서 대중들의 흥미를 좇는 보도 관행 앞에 파괴되어버린 가정은 사회적 공기로서 언론의 사명이라는 원론적 질문부터 시작하게 만든다.

하지만 동시에, 깨어진 동심의 세계에서 튕겨져 나온 아이들은 주저앉아있지 않고 그로부터 어른이 된 자신의 삶을 시작한다. <너의 목소리가 들려>에서 인권 수호자는커녕 철면피한 국선 전담 변호사가 된 혜성의 직업이 그것이었다. <피노키오>에서 잔인하기까지 했던 기자들의 세 치 혀로 인해 아버지의 생환을 기뻐하지도 못하고, 어머니마저 잃게 된 소년 하명은 기자가 될 예정이란다.

첫 회를 선보인 <피노키오>는 단 1회이지만, 사연 많은 주인공들의 이야기와 그로인해 빚어진 주인공들의 캐릭터, 그리고 그들을 만들어 낸 우리 사회의 모순까지 명쾌하게 그려냈다. 사실을 보도한다 하면서도 그 사실의 선을 넘나들다 누군가의 생명을 앗아가는 칼이 되어버린 우리 사회의 언론의 단면을 선명하게 드러내고, 그런 무심한 누군가의 사회적 행위로 인해 어린 시절을 잃은 주인공들의 사연을 선연하게 그려낸다.

상처받은 아이에서 영웅이 된 <너의 목소리가 들려>의 주인공들처럼, 동화의 세계에서 튕겨져 나온 <피노키오>의 주인공들은 또 어떤 어른이 되어 우리 사회를 밝혀줄까, 기대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