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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봄, 우리는 세월호 사건을 통해 한 사회의 문화가 생명을 살릴 수도 죽일 수도 있음을 보았습니다. 무고한 생명을 죽음에 이르게 한 원인을 우리는 어디서 찾을 수 있을까요. '새들마을학교'는 배우고 가르치는 일, 즉 교육이 이 사회의 문화를 낳았다고 생각합니다. 교육과 배움으로 바른 문화를 만들기 원하는 이들이 모여 '생명을 살리는 교육'을 고민하는 자리를 마련했습니다. '열린도시연구소 새 들'과 산하 '새들마을학교'는 '생명의 교육, 길을 찾아서'라는 주제로 '고뇌와 축제로 펼치는 교육문화연구학교'를 10월 9일부터 12월 25일까지 12회 진행합니다. 이를 계속 연재합니다.... 기자말

"'오! 대박. 우리 가족 식사 완전 간만.' 식당에서 밥을 먹는데 한 학생이 이렇게 말하며 들어오는 거에요. 그러더니 가족 네 명이 각자 스마트폰을 보며 식사를 하더라고요. 오랜만에 같이 식사하는데 스마트폰만 들여다보는. 우리 관계가 얼마나 깨어졌는지 잘 보여주고 있지요."

 봄 나들이를 가서 함께 도시락을 먹었다. 함께 밥 먹는 건 언제나 좋다.
 봄 나들이를 가서 함께 도시락을 먹었다. 함께 밥 먹는 건 언제나 좋다.
ⓒ 새들마을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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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일뿐 아니다. 지하철을 타면 귀에 이어폰을 꽂고 눈은 스마트폰에 고정한다. 손은 부지런히 페이스북 친구와 소통하고 있지만 주변 일에는 관심이 없다. 10월 24일 새들마을학교에서 연 교육문화연구학교 4번째 시간. '우리 교육의 발자취를 찾아서' 발제를 한 새들마을학교 이동원 선생은 홍익인간 이념의 상실에서 그 원인을 찾았다.

건국 이념인 홍익인간은 우리나라가 나만 잘 먹고 잘 사는 게 아니라 다른 사람까지 이롭게 하고자 세워졌다는 것을 천명하고 있다. 교육기본법 2조에서도 우리 교육 이념을 홍익인간에 두고 있다. 인간 세계를 이롭게 하는 이를 길러내는 것이 우리 교육의 목적이란 말이다. 하지만 우리의 교육 현실은 그렇지 않다. 옆 친구를 이롭게 하면 안 된다. 모든 것이 바로 점수로 환원되어 앞날이 결정되기에 오로지 내 점수만 높이기 위해 애를 써야 한다. 승자는 단 1명뿐이다. 높은 점수를 얻기 위해 친구의 책을 숨기는 일은 귀엽다. 이젠 친구도 성적에 따라 사귄다. 반만년의 역사에 빛나는 홍익인간은 어디 갔나.   

 새들마을학교 이동원 선생은 관계가 깨어진 교육 현실의 원인을 홍익인간 이념의 상실에서 찾았다.
 새들마을학교 이동원 선생은 관계가 깨어진 교육 현실의 원인을 홍익인간 이념의 상실에서 찾았다.
ⓒ 새들마을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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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재 신채호 선생은 묘청이 서경천도 실패를 우리 역사 일천 년 이래 제1의 사건이라 했다. 자주파였던 묘청이 사대파였던 김부식에 패함으로 우리 역사가 사대주의로 흘러갔다는 것이다. 표준국어대사전은 사대주의를 '주체성이 없이 세력이 강한 나라나 사람을 받들어 섬기는 태도'라 했다. 지난 23일 전시작전통제권 반환이 또 연기됐다. 기한도 명시되어 있지 않은 사실상 무기한 연기다. 큰 것에 붙어있지 않으면 마음을 놓을 수 없는 거다. 사대주의다.

큰 것에 붙어살면 안전한데 사대주의가 무슨 문제인가 하는 이야기도 있다. 실리적 외교란다. 조선시대 중국을 숭상하여 따르고 지금 미국을 숭상하여 따르는 것처럼 큰 나라를 섬기는 것에 사대주의를 한정하면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사대주의는 단지 큰 나라를 섬기는 것이 아니다. 힘에 대한 숭배 그 자체가 사대주의다. 그렇기에 사대주의는 사람의 정신에 깃들고 나라의 문화를 바꾼다. 우리 것이 있는 자체로 큰 것을 숭상하게 되는 것이 아니다. 모든 기반이 큰 것에 맞춰 흔들린다. 그래서 신채호 선생이 묘청의 실패를 그렇게 안타깝게 여긴 것이다. 묘청의 서경 천도 실패는 우리 교육 문화를 바꿔 버렸다. 널리 인간 세계를 이롭게 하자는 홍익인간을 변질시켰다. 관계 중심의 우리 교육을 파괴했다.

고려 초반까지 우리 교육의 핵심에는 선배제도가 있었다. 선배(仙輩). 한자를 그대로 풀이하면 고상한 사람의 무리다. 신라의 화랑도가 대표적이다. 일제에 의해 화랑도가 유희와 향락만을 일삼는 집단처럼 왜곡되었지만, 화랑도는 김유신, 관창처럼 백성을 사랑하고 나라에 충성하는 이들을 길러내는 집단이었다. 화랑도에서는 서로 도의를 닦고 함께 거하며 본이 되는 사람을 선배로 뽑아 그 걸음을 따랐다. 선배제도는 신라뿐 아니라 고조선, 고구려, 백제까지 우리 교육의 공통 분모였다.

 서로 도의를 닦고 함께 거하며 본이 되는 사람을 선배로 뽑아 그 걸음을 따랐다. 사진은 새들마을학교 여름들살이.
 서로 도의를 닦고 함께 거하며 본이 되는 사람을 선배로 뽑아 그 걸음을 따랐다. 사진은 새들마을학교 여름들살이.
ⓒ 새들마을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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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리서 배울 것을 찾지 않았다. 내 눈앞의 사람, 나와 일상을 같이 하는 사람으로부터 배웠다. 선배로부터 배운 화랑은 나라에 충성하고(사군이충), 부모에 효도하고(사친이효), 벗을 나와 하나로 여기고(교우이신), 겨레를 위해 생명을 바치고(임전무퇴), 생명을 소중히 여겼다(살생유택). 관계의 도와 책임을 알았다. 고구려는 선배를 통한 배움으로 중국으로부터 삼국을 보호했고, 신라는 삼국을 통일했다. 우리나라 통일의 첫 역사를 열었다.

김부식은 화랑 정신을 버렸다. 관계와 삶에 기반을 둔 배움을 버리고 사대를 택했다. 그리고 고려 광종 때 과거제를 시행하며 우리 교육은 '문', 글자 중심의 입시 교육으로 변질되었다. 앞선 이로부터의 살아 있는 가르침 대신 중국에서 건너온 책, 죽은 가르침을 외우기 시작했다. 유학의 본질은 관계의 도다. 하지만 사대주의 안에서 유학의 본질이 아닌 대국의 유학을 받아들였다. 과거제도 자체는 필요할 수 있다. 입시 자체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하지만 관계 안에서의 검증은 버리고 글자의 우열로만 인재를 뽑게 되며 문제가 생겼다. 학교는 책상머리에 앉아 입시를 준비하는 기관으로 전락했다. 친구는 경쟁자가 되었다. 국가에 대한 굳은 신앙으로 생사를 가벼이 여겼으며, 세속의 일과 세상 인정에 구애받지 않고 몸을 공익에 잘 바쳤으며, 평일의 노고를 통하여 신체를 잘 단련하고, 전란에 나아가는 데 용감하였던 선배들(<고려공도>(서긍))이 사라졌다.

그것이 지금의 교육 뿌리까지 닿아 있다. 우리 교육은 고지론과 문자적 권위의 숭상으로 병들어 있다. 본성이 착한 우리 민족은 마음 깊이 홍익인간을 품고 있다. 아이들에게 물어보면 대통령이 되고 싶은 이유도, 법조인이 되고 싶은 이유도, 사업가로 성공하고 싶은 이유도, 글로벌 리더가 되고 싶은 이유도 다른 사람을 돕기 위해서라도 한다. 가난한 사람을 돕기 위해 부자가 되어야 하고 서민을 섬기기 위해 높은 지위에 올라야 한다. 큰 인물이 되어 널리 인간 세계를 이롭게 하자는 것이다. 홍익인간이다. 하지만 다른 사람을 돕는 사람이 되려면 지금 내 친구의 어려움에는 눈을 감으라고 한다. 그저 책에 나와 있는 내용을 외우고 문제를 풀고 또 푼다. 배움은 관계가 아니라 글을 통해 이루어진다. 글로 연애를 배웠다고 농을 할 정도로 관계와 만남은 소홀해졌다. 지금 내 옆의 관계를 소홀히 하면서 다른 사람을 이롭게 할 수 있을까.

선배제도는 홍익인간을 가장 잘 구현하기 위해 고조선부터 내려오던 교육 방식이었다. 지금 내 옆의 관계를 책임지고 이롭게 하는 것이 인간 세계를 전체를 책임지고 이롭게 하는 것과 같다는 믿음이다. 그리고 실제로 그렇게 내 옆의 관계를 책임지고 이롭게 하고, 그 안에서 배웠던 이들이 나라의 운명을 맡아 책임졌다. 고구려의 선배제도인 조의선인에 대해 신채호는 <조선상고사>에 대해 다음과 같이 기록하였다.

 내 옆의 관계를 책임지고 이롭게 하는 것이 세계를 책임지고 이롭게 하는 것과 같다. 김장 후 청소하는 아이들.
 내 옆의 관계를 책임지고 이롭게 하는 것이 세계를 책임지고 이롭게 하는 것과 같다. 김장 후 청소하는 아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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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동으로 한 곳에서 숙식(宿食)을 같이 하며, 평소에는 환난(患難)의 구제, 성곽이나 도로 등의 수축(修築)을 자임(自任)하고, 난시(亂時)에는 전장에 나아가 죽는 것을 영광으로 알아, 공익(公益)을 위하여 자기 한 몸을 희생하는 것이 선배들이었다."

관계의 단절, 힘에 대한 숭배는 문자에 권위를 부여했다. 내 삶과 떨어진 이름난 이의 가르침에는 권위를 부여하고 배움으로 받아들이면서 내 옆에 있는 이의 가르침은 가볍게 여긴다. 9월 프랑스 경제학자 피케티가 한국을 방문했다. 피케티 열풍이 불고 있다. 그의 책 <21세기 자본>이 미국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며 그 여파가 한국에도 미친 것이다. 2011년에 마이클 샌델의 <정의란 무엇인가>가 100만부를 돌파했을 때와 비슷하다. 피케티에 대한 열풍도 마이클 샌델에 대한 열풍도 우리 사회가 얼마나 정의에 목말라 하고 있는지를 보여 준다. 하지만 이 열풍이 사람들의 삶을 바꾸지 못하는 것 같다. 정의에 대한 이야기는 무수히 쏟아지는데 정의에 대한 갈망은 더욱 강해진다.

각종 심리학 책이 베스트셀러에 오르는 것도 같은 이유가 아닐까. 이제 인생에 대한 어떤 물음이 생기면 책을 찾는다. 성실하게 살아야 한다는 아버지의 가르침 대신 처세술에 관한 책을 읽고, 늦은 밤 언니에게 하던 연애 상담 대신 연애에 관한 책을 읽는다. 촌부에 불과한 어머니의 회초리가 삶에 깊은 가르침으로 자리 잡았던 것과 다르게 책장에 책은 느는데 삶은 바뀌지 않는다. 조선시대 지배층들의 배움이 부족하여 우리나라를 일제에 넘긴 게 아니다. 그들은 사서삼경에 능통하다 못해 줄줄 외웠다. 지금 우리도 영어를 제 나랏말처럼 공부한다. 원하기만 한다면 무엇이든 배울 수 있는 환경에서 산다. 배움이 부족하여 삶이 안 바뀌는 게 아니다. 입시를 위한 공부는 아무리 열심히 해도 대학만 가면 모든 배움이 날아가는 걸 모두들 경험한다.

지금 우리 교육에 가장 시급한 일은 사대주의를 버리는 일 같다. 관계가 아닌 문자에 권위를 부여 하고, 작은 내 옆 사람이 아닌 큰 힘, 큰 가르침을 숭상하는 사대주의. 그리고 관계 안에서의 배움을 회복하는 일이다. 몸소 삶으로 물음에 답하는 선배들과의 관계를 통해 홍익인간의 정신을 다시 기억하는 것. 작고 소소한 만남이 전 세계를 만나는 것과 같고 한 사람을 책임지는 것이 전 세계를 책임지는 것과 같다는 배움.

 발제를 듣고 참가자들은 자신에게 새겨진 내용을 함께 나누었다
 발제를 듣고 참가자들은 자신에게 새겨진 내용을 함께 나누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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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제를 듣고 참가자들은 자신에게 새겨진 내용을 함께 나누었다. 언젠가 이름 없이 사라질 작고 소소한 나눔이지만 지금 내 삶을 바꿀 힘 있는 나눔이었다. 

"홍익인간의 개념처럼 너와 나의 경쟁이 아니라 모두가 함께 잘 살아야 한다는 목적을 가지고 공부를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우리 교육사를 보면 그 노력과 시도가 계속 있었습니다. 그리고 지금 곳곳에 작은 학교에서의 교육이 그 대안일 수 있습니다. 우리는 얼마든지 새로워질 수 있습니다."(박미정, 32세)

 "교육이 만남이라는 말이 인상 깊게 다가왔습니다. 분단의 현실 속에서 우리에게는 분단을 넘어 만나야 할 대상이 있습니다. 그리고 또 그 상을 넘어 전 인류를 이롭게 하는 만남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우리 사회가 너무 분열되어 있습니다. 이 분열을 넘어서는 만남의 교육이 우리 교육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 생깁니다." (안송수, 28세)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새들마을학교 홈페이지(club.cyworld.com/saedeulmaeul)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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