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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봄, 우리는 세월호 사건을 통해 한 사회의 문화가 생명을 살릴 수도 죽일 수도 있음을 보았습니다. 무고한 생명을 죽음에 이르게 한 원인을 우리는 어디서 찾을 수 있을까요. '새들마을학교'는 배우고 가르치는 일, 즉 교육이 이 사회의 문화를 낳았다고 생각합니다. 교육과 배움으로 바른 문화를 만들기 원하는 이들이 모여 '생명을 살리는 교육'을 고민하는 자리를 마련했습니다. '열린도시연구소 새 들'과 산하 '새들마을학교'는 '생명의 교육, 길을 찾아서'라는 주제로 '고뇌와 축제로 펼치는 교육문화연구학교'를 10월 9일부터 12월 25일까지 12회 진행합니다. 이를 계속 연재합니다- 기자말

"살아있는 교육의 전통이 우리 역사 속에 있다는 것이 감격스럽습니다. 그동안 '문'에 치우친 공부를 해 왔습니다. 몸으로 삶으로 익히고 배워야겠습니다." (강한종, 자영업자, 34세)

"홍익인간의 깊은 뜻을 다시 되새기며 '곧 태어날 아이의 이름을 '김홍익'으로 지을까'라는 생각도 해보았습니다. 몸과 마음을 바르게 하여 모든 생명에게 이로움을 끼치고자 했던 조상들의 착함이 깊은 울림이 되었습니다." (김덕영, 직장인, 33세)

지난 24일, '새들교육문화연구학교' 4번째 시간을 마치면서 참석자들이 나눈 소감이다. 충의 길과 페스탈로치의 삶, 덴마크의 행복을 탐구한 이들이 이번에는 우리 역사 속에 흘러내려온 교육의 면면을 살폈다. 발제자 이동원 교사(새들마을학교)는 홍익인간의 이념을 통해 우리 교육의 명암을 조명했다.

 우리 역사 속에 흘러내려 온 교육의 면면을 살폈다. 발제를 듣고 소감을 나누는 참석자들의 모습.
 우리 역사 속에 흘러내려 온 교육의 면면을 살폈다. 발제를 듣고 소감을 나누는 참석자들의 모습.
ⓒ 이명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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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은 홍익인간의 이념 아래 모든 국민으로 하여금 인격을 도야하고 자주적 생활능력과 민주시민으로서 필요한 자질을 갖추게 하여 인간다운 삶을 영위하게 하고 민주국가의 발전과 인류공영의 이상을 실현하는 데에 이바지하게 함을 목적으로 한다.' (<교육기본법 제2조(교육이념)>)

홍익인간(弘益人間)은 널리 인간세계를 이롭게 한다는 뜻이다. 우리의 건국이념인 홍익인간이 교육법에 들어 있다. 전쟁하고 파괴하고 정복을 지향한 건국이념이 아니라 다른 누군가를 이롭게 함을 통해 나라를 세우는 가치를 담은 것이다.

다른 이를 돕기 위해서는 자신을 지키고 남을 지킬 수 있는 힘이 필요하다. 끊임없는 외적의 침입 앞에서 우리를 지킬 수 있는 정신과 힘이 요청되었다. 때문에 '문'(文)과 함께 '무'(武)가 요구되었다.

문무(文武)의 조화, 낭가사상

고구려 때는 '선배(仙輩)제도'라는 것이 있었다. 선배는 높은 인격을 지닌 자를 가리키는데, 각종 예기의 장기 경쟁에서 선발한다. 가장 뛰어난 자가 전체 선배들을 통솔하는 수장을 맡았다. 선배제도는 계급과 무관하게 열려 있어서 다양한 계층이 벼슬에 오르는 길이 되기도 했다.  

'선배제도의 조의선인은 학문에 힘쓰며 수박과 활쏘기 등의 기예를 익히고 원근 산수를 탐험하며 시가와 음악을 익히며 공동으로 일처에 숙식했다. 평시에는 환난 구제를 자임했고, 전시에는 전장에 나가 목숨을 걸고 일신을 희생했다. 지방의 교육기관이었던 경당에서도 문무가 분리되지 않았다. 지방 서민의 아들들이 결혼하기 전까지 밤낮으로 독서와 활쏘기를 익혔다고 전해진다.' (<태조본기>, <구당서 동이 고려조>)

신라의 화랑도는 고구려의 선배제도를 모체로 성장했다고 볼 수 있다. 화랑은 서로 도의를 닦고 함께 노래와 음악을 즐기고 산수를 돌며 자연을 즐기고 전쟁을 대비해 지리를 익혔다. 아무리 먼 곳이라고 해도 가지 않은 데가 없었다.

이를 통해 그 사람됨이 나쁜지 좋은지를 알아내어 좋은 사람을 택해서 조정에 천거하게 되었다고 <삼국사기>에 나온다. 육체를 단련하면서 드러나는 사람의 됨됨이, 관계 안에서 검증된 사람이 다른 사람을 위해서 일할 수 있다는 것을 우리 선조들은 꿰뚫어본 것이다.

백제는 아쉽게도 기록을 찾기 어렵다. 짧게나마 사료를 찾아보면, <북주서 백제전>에 "백제인은 말타기와 활쏘기를 즐겨 했으며 아울러 고서나 사서 읽기를 매우 좋아하였다. 그 가운데 뛰어난 자는 글짓기에도 정통하였다"고 나온다. 백제 역시 문무에 동일하게 무게감을 두고 있었다.

단재 신채호 선생은 문과 무를 중시하는 사상의 흐름을 '낭가사상'으로 명명하고, 이를 우리 민족 고유의 국풍(國風)이요 국맥(國脈)으로 봤다.

 새들교육문화연구학교 4번째 시간, '우리 교육의 발자취'.
 새들교육문화연구학교 4번째 시간, '우리 교육의 발자취'.
ⓒ 이명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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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으로 편향된 교육과 사대주의자들의 주도권 장악

학문뿐 아니라 육체를 고루 단련시켰던 우리 교육의 전통은, 삼국 시대를 지나 통일 신라에 이르면서 흐름이 바뀌었다. 삼국 각축이라는 위기 상황이 해소되면서 화랑도의 존재 의의가 반감된 것이다.

동시에 새로운 형식의 교육 기관인 학교가 등장했다. 당의 국자감을 축소 시켜 놓은 국학이 있었고, 지방 공립학교로 향학이 있었다. 유교 사상을 연구하고 보급하는 역할을 했다. 인재 등용시험으로 독서삼품과가 있었는데, 필수 도서 목록을 읽고 시험 결과에 따라 이에 상응하는 직위가 주어졌다. 관리 선발 기준이 더 객관화되었다.

고려로 넘어오면서 과거제 선발 중심의 교육제도가 갖춰졌고, 이는 조선 후기까지 이어졌다. "학교에서 길러 과거를 통해 선발한다"는 게 고려 교육의 기본 정책이었다. 958년 과거제도를 실시하면서 무예 실력을 보던 삼국과는 달리 학문만 출중하면 관리로 임명됐다. 문무가 함께 이뤄지던 교육은 문으로 편향됐다. 무신에 대한 멸시도 생겨났다.

관학 기관이었던 국자감과 향교, 학당 등은 시설 면에서나 교육의 내용 면에서나 유명무실해졌다. 권위 있는 유학자들은 사학을 세웠다. 그중 시중을 역임했던 최충의 문헌공도 같은 학교는 학문뿐 아니라 선진과의 우정 관계, 사제 간의 애경과 도의연마 등을 중시했다. 지방에는 서당이나 서원이 생겨났다.

고대부터 이어져 내려오던 낭가사상은 과거 제도에 밀려 힘을 잃어 가다 1135년 묘청의 서경천도운동의 실패로 주저앉게 된다. 북벌을 주장하던 이들이 자기 안위만을 지키려고 했던 사대주의자와 격돌했고, 여기서 전자인 묘청이 후자인 김부식에게 졌다. 고구려와 백제의 역사가 삭감되고 고조선 역사는 신화가 되었다. 신라 위주로 역사가 기술됐다. 사대적이고 보수적인 사상에 홍익인간의 이념을 담고 있던 선배제도와 국풍파가 패한 것이다.

맑은 물을 다시 흘려보내려는 이들의 분투

이후로 무는 더 천시됐다. 선배 정신은 완전히 쇠퇴했다. 선배라는 말은 '무'의 역량이 탈색된 '선비'라는 말로 둔갑했다.

'조선에 들어서 성균관에서는 쉬는 날에 사냥을 나가거나 검술을 연마하는 자는 학교에서 쫓겨나거나 매를 맞기도 했습니다. 입시 위주, 성적 위주의 학문 교육만을 강조한 것이지요.' (<태학지> 권5학령 참조)

 발제자 이동원 교사(새들마을학교)는 홍익인간의 이념을 통해 우리 교육의 명암을 조명했다.
 발제자 이동원 교사(새들마을학교)는 홍익인간의 이념을 통해 우리 교육의 명암을 조명했다.
ⓒ 이명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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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부는 이러한 움직임을 거부했다. 사학이 일어났고 실학으로 이어졌다. 실학은 현실과 동떨어진 관념적 학문을 경멸하고, 실생활에 필요한 진리 탐구를 목적으로 한 학풍이었다.

일제강점기에 우리는 일제의 필요에 따라 주체적으로 사고하는 방법을 거세당했다. 일본은 우리 민족을 일본에 '충량한 국민'으로 만들고자 노력했고, 우리 민족의 사상을 일본화하거나 말살했다.

이를 거부한 움직임이 있었다. 일제 식민 통치 시기, 독립운동가들은 나라를 되찾기 위해 무관학교를 세워 문무 교육을 이어갔다. 남강 이승훈 선생이 세운 오산학교는 교육을 삶으로 연결 시킨 이상적인 농촌공동체를 만들어 조선에서 가장 모범적인 경제, 문화, 신앙의 산실이 되려 했다. 지식과 덕과 체력을 균형 있게 훈련하는 걸 중요하게 여겼다. 1919년 이후로 학교 운영이 어려워졌다. 일제의 탄압으로 결국 오산학교는 총독부의 인가를 받았고, 그 결과 쇠락의 길을 걸었다.

그러나 오산의 정신은 여기서 사그라지지 않고 홍성의 풀무학교로 계승되었다. 오산학교가 제도권 교육 기관으로 편입되는 것을 비판했던 이승훈 선생의 조카 손자 이찬갑 선생이 1958년 풀무고등공민학교를 세웠다. 풀무는 학교와 지역 공동체 운동을 통해 더불어 사는 꿈을 실현하려는 이들을 길러냈다. 역시 지덕체 교육을 중시했다.

주목해서 볼 것은 몸의 교육, 즉 노동을 강조한 것이다. 과거 외세의 위협을 막아야 했던 조건에서 무예를 단련했다면, 한국전쟁 후 삶의 기반을 복구해야 했던 상황에서 농촌의 현장에서 실제로 살아낼 수 있는 기술을 연마하는 데 풀무는 주력했다.

또 풀무는 생명의 교육을 추구했다. 풀무를 토대로 홍성에서 국내 최초 유기농 벼농사가 시작됐다. 토종 종자, 마을 도서관, 지역 화폐 등 각종 협동조합운동이 일어났다. 공동 육아나 대안 어린이집 등 지금 형태의 우리나라 대안교육이 활발해질 수 있던 것도 풀무학교를 만든 이들이 한 세대 동안 부지런히 맑은 물을 흘려보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지난 여름, 풀무학교 공동설립자인 밝맑 이찬갑 선생을 기념해 만들어진 홍성 홍동 밝맑도서관을 새들마을학교 학생들이 방문했다.
 지난 여름, 풀무학교 공동설립자인 밝맑 이찬갑 선생을 기념해 만들어진 홍성 홍동 밝맑도서관을 새들마을학교 학생들이 방문했다.
ⓒ 새들마을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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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익인간 이념의 회복, 문무가 조화로운 교육

발제자 이동원 교사는 신채호 선생님과 함석헌 선생님의 관점을 바탕으로 묘청의 서경전쟁 패배가 우리 교육에서 홍익인간의 이념이 흐릿하게 되어버린 가장 큰 원인이라고 전했다. 사대주의자들이 권력을 장악했고, 다른 사람을 이롭게 하려는 교육 목적은 자기 자신의 출세와 안위를 위한 공부에 밀려났다고 말했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교육은 무엇일까요. 교육문화연구학교 첫 시간(관련 기사 : "한글창제와 명량대첩, 모두 '충' 덕분?")에 참된 교육은 본질을 만나게 하는 것이라고 우리는 들었습니다. 이 본질이라는 것은 홍익인간의 이념과 맞닿아 있는 것 같습니다. 다른 이를 이롭게 하려는 것을 배우는 것, 나를 잃지 않으면서도 너를 지킬 수 있는 만남, 이를 가르치고 훈련하는 게 요청되는 것 같습니다."

발제가 끝나고 참석자들은 모둠별로 느낀 점을 나눴다. 그중 중학교 3학년 학생이 쓴 글을 소개한다.

"예로부터 교육은 지덕체가 함께 어우러졌다. 신라의 화랑제도, 고구려의 조의선배제도가 그러했다. 지식을 배우며 동시에 무술을 연마하며 육체 단련을 게을리하지 않았다. 이는 우리의 건국이념인 홍익인간을 길러내기에 적합한 교육이었다. 생각할 줄 알며 남을 도울 줄 알게 하는 교육이다. 건장한 몸이 있어야 비로소 홍익인간의 이념에 맞는 것이다. 

그 전통이 고려 때 와서 깨졌다. 나라가 안일하게 굴러가자 무신은 더 이상 귀족 대우를 받기 힘들었다. 문신의 나라가 되었다. 과거 시험이 생겼고, 그 결과 교육열은 더욱 심해졌다. 학교에서도 오직 글공부만을 가르쳤다. 이런 전통을 이어받은 조선에서는 심지어 여가 활동으로 무예를 일삼는 자는 내쫓거나 곤장을 때리기도 했다. 

이런 모습은 현재와 다를 것이 없다. 모두가 하나의 바늘구멍으로 들어가려 하고 있다. 체육이란 과목은 학년이 올라갈수록 시험에 맞춰 이론 수업으로 바뀌어 간다. 혹은 아예 자습시간으로 바뀐다. 덕은 어떤가? 과연 도덕책을, 윤리를 일주일에 몇 시간이나 가르칠까? 이런 세태에서 당연히 홍익인간은 길러질 수 없다. 

지금의 근대 교육을 일으켰던 페스탈로치도 애초에는 지덕체는 함께 가야 한다고 했다. (관련 기사 : 파스퇴르? 아니, 페스탈로치!) 홍익인간과 뿌리가 맞닿아 있다. 모든 것의 근원은 다르지 않다는 것을 느꼈다. 이 근원을 탐구해 나가는 것이 바로 역사고 수학이며 과학이고 윤리며 체육이라는 것을 나는 알았다. 두근두근하다."(새들마을학교 구한글 학생)

 새들마을학교 뿌리별학당 친구들이 비오는 날 체조와 달리기 수업 시간에 명상 수련을 하는 모습.
 새들마을학교 뿌리별학당 친구들이 비오는 날 체조와 달리기 수업 시간에 명상 수련을 하는 모습.
ⓒ 새들마을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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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새들마을학교 홈페이지(club.cyworld.com/saedeulmaeul)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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